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1960년대에 1인당 국민소득이 북한보다 훨씬 못한 100달러 정도에 머물던 한국(1965년 북한 162달러, 한국 105달러)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세계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였다. 특히 금년 들어 우리나라는 세계적 규모의 축구, 야구경기와 동계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주니어 피겨 스케이팅과 골프 대회에서도 거듭 우승을 함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한껏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대다수 지각 있는 국민들은 정부가 성장과 경쟁보다 분배를 중시하고 對北포용정책을 추진하여 南南갈등과 기존 혈맹국가와 마찰을 야기함으로써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親北좌파세력의 득세로 많은 사람들은 피와 땀 흘려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광범위한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고 다음은 체제 전복이라고 걱정까지 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終言과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오래 전 절대왕정들은 하나님이 창조한 천지와 만물을 아담과 이브에게 다스리도록 한 것에 근거하여 국민을 다스리는 권한을 神으로부터 받았다는 王權神受說(왕권신수설)로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해 왔으나 1789년 불란서 대혁명 이후 국민주권설에 의한 자유민주주의가 확립됨으로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는 19세기 중엽의 서구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정치이념과 제도로 발전하였으나, 가혹한 자본축적과 착취는 무산자 계층인 산업프롤레타리아들이 유산자 계층인 지배계급을 종식시켜 무계급 사회의 유토피아와 평등사회를 실현하려는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의 기치를 내세우는 근거가 되었다.
1917년 10월 소련 공산혁명을 시발로 하여 東歐,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서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국가들이 창궐하였으나 이들 공산국가들은 그들이 지향하던 것과는 달리 빈곤, 불평등, 인권 무시와 주민 감시가 일상화되는 공산당 독재의 공포정치를 추진하다가 1990년을 전후하여 대부분 몰락하고 말았다.
1992년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자신의 저서인 「역사의 종언」에서 선고한 것처럼, 공산주의 이념은 정치적인 내부 결속력을 유지할 만한 이념으로서 그 기능을 상실하여 사망한 것이 세계적 대세이다. 그나마 공산주의 이념을 고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국, 베트남도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여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 사상은 완전히 종말을 고했다고 볼 수 있으며 남아 있는 공산주의 국가도 계획경제 제도를 버리고 시장경제 제도를 채택하여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신세대들은 어느 이념이 좋다, 나쁘다는 판단 없이 이미 종말을 고한 공산주의 체제를 내세우는 북한을 못 사는 친척쯤으로 여기고 있고 친북 좌파들은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어 나가려 하고 있다.
신세대들이 정치이념에 대하여 몰가치하게 생각을 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좌파가 드러내놓고 친북활동을 하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가 2000년 6월 15일 북한과 '6. 15 남북공동선언'을 합의, 선포한 후 북한의 정치체제가 변화와 개혁을 하는 듯이,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을 목표로 하는 북한의 對南전략이 변화하고 있는 듯이 호도하고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 현 정부가 미국 등 우방과 거리를 두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해방 이후 번영해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더욱 발전시켜 선진조국과 통일한국을 앞당기기 위하여 국민 모두가 북한의 정치체제와 대남전략을 올바르게 인식, 정신적으로 무장하여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 체제와 ‘북한식 변화’의 특징과 변화 전망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의 대표들로 구성된 국회가 제정한 헌법이 국가의 권력구조를 규정하고 있는 반면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헌법 위에 있는 공산당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 검토하고자 하는 북한에는 공산당 위에 또 수령이라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수백 년 전에 이미 소멸된 절대왕정 시대의 왕조처럼 대를 이어 통치하고 있다.
김일성은 1945년 해방 후 소련 공산당의 후견으로 북한지역에서 집권을 한 후 1961년 9월 노동당 제4차 대회를 계기로 1인 지배체제를 확립하고 1974년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이라는 행동강령을 제시하였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은 4년간의 유훈통치를 마치고 1998년 9월 5일 제10기 제1차 회의에서 헌법을 수정하여 자신의 체제를 출범시켰는데, 그 체제는 김일성 생존시 확립된 수령 유일지배 체제를 더욱 강화한 것이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공인된 1980년대에 들어와 수령 유일지배 체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인민대중이 역사의 창조자이지만 지도자가 없는 대중은 무의식적인 비조직 군중에 불과하므로 혁명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수령이 필수적이라는 ‘혁명적 수령관’과 최고 뇌수인 수령이 주는 정치적 생명을 매개로 하여 어버이 수령-뇌수, 당-중추, 인민-지체(肢體)의 관계를 이룬다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제시하였다. 이 이론들로 인해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북한 사회의 인민대중들은 수령의 지시를 충성을 다하여 무조건 이행하는 객체가 되고 말았다.
또한 북한은 아래 기독교와 북한 체제 비교표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마치 죽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서 통치를 하고 있는 神政(신정)국가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지구상에 북한과 같은 군사국가 체제는 없다. 인구의 반 이상이 군인이고 4대 군사로선(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 유아기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교양사업과 군사교육, 군대식 일상생활은 김정일이 등장하기 전부터 확립되어 있다. 특히 김정일이 자신의 체제를 출범하면서 확립한 국방위원장 중심의 권력체제와 그가 제시한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과 ‘선군정치’라는 구호로 군사중심 지배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를 맞아 김정일도 김일성이 만들어 놓은 체제를 지속적으로 강화시키고 그의 교시를 새롭게 해석하는 선에서 ‘북한식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식 변화’의 예로서는 1998년 9월 수정헌법에 도입한 경제적 측면에서의 실용주의 제도, 2002년 7월 1일을 기하여 취한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이에 따른 북한 협동농장의 실적분배 원칙 확대와 개인의 지적 재산권 확대, 2003년 3월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시로 평양의 40여 개를 비롯하여 북한 전역에 300여 개의 종합시장 개설과 주민에게 규격화된 점포와 매대의 분양 등 단계적으로 시장경제 성격의 조치를 취하면서 대외경제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실리사회주의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김정일이 추진하고 있는 변화와 개혁은 정치적 민주화와 시장경제로 체제전환을 한 러시아, 동구 제국과 다르며, 이념적으로는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중국, 베트남 식 개혁도 아니므로 우리가 기대하는 변화와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김정일과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기득세력들은 개혁의 범위나 속도가 통제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개혁의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핵심 권력구조를 동요시키지 않을 정도의 ‘북한식 변화’만을 고집하려 할 것이다. 즉, 북한의 기득층은 장기적인 경제개혁·개방과 경제의 지속적 발전보다는 체제·권력의 유지와 연명이 현실적인 정책 목표가 되기 때문에 톨게이트에서 통행료(기득이익의 포기)를 지불하고, 일단 들어가면 되돌아 나올 수 없는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것과 같은 ‘개혁의 분수령’을 넘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북한의 장래에 대하여 예견되는 시나리오로서는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하여 늘어나고 있는 대규모 탈북자의 발생과 이를 막기 위한 공개처형,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대외 교류의 증가로 인한 사상적 해이와 체제이탈 현상, 노동당에 의한 군 지배체제의 붕괴, 체제반대 세력의 암약 등 김정일 체제의 종말 현상으로 인하여 1989년 12월22일 루마니아의 유혈혁명에 의하여 ‘차우세스크’(Nicolae Ceauscescu)가 처형되는 것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거나, 동독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 체제를 전환한 후 1990년 10월3일 서독 연방에 가입함으로써 독일 통일이 실현된 사태가 전혀 예상도 하지 않은 시기에 한반도에도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對南 전략의 핵심(‘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혁명’)과 변화 전망
북한 체제의 변화 여부와 함께 주시해야 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을 달성하고자 하는 북한 노동당의 대남 전략이 앞으로 변화할 것인가 여부이다. 북한 노동당 규약의 전문에 규정되어 있는 대남전략은 1920년대 초 ‘레닌’(Vladimir I. Lenin)이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제국을 공산화할 목적으로 제시한 反제국주의 통일전선 이론을 추종, 작성되어 지금까지 조그마한 변동도 없다. 이 대남전략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 남한을 포함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당면 목적과 온 사회의 주체 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 건설이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하는 두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제1단계는 북한을 혁명기지로 건설하는 것과 함께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하는 ‘민족해방’과 국가보안법 철폐 후 노동자, 농민들이 미제와 결탁한 지주, 예속 자본가, 반동관료배 등 착취계급이 쥐고 있는 현 남한 정부를 폭력으로 타도, 전복하여 ‘인민민주주의정권’을 수립, 즉 ‘남조선혁명’을 달성하는 것이다.
제2단계는 북한이 ‘남조선 혁명’으로 수립된 남한의 ‘인민민주주의정권’과 합작하여 공산화 통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 정부가 ‘인민민주주의정권’이 아니라도 북한의 통일정책을 지지하면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중요한 기본합의를 할 때에는 남한 당국이 북한의 공산화 통일정책을 지지한 것으로 해석되는 ‘통일원칙’ 조항을 반드시 포함시키고 있다.
‘남조선 혁명을 통한 조국통일’이 북한의 대남전략이라고 하면, 김일성이 1960년 8월 14일 과도적 형태의 연방제를 제의한 이후 국내외 정세 변화에 따라 내용과 강조사항을 수정, 제시한 1980년 완성형 연방제와 1991년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그들의 평화 통일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방제 제의들도 '레닌'이 1920년 6월 5일 코민테른 제2차 대회의 토의에 붙이기 위하여 작성한「민족 및 식민지 문제에 대한 테제」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경험에 비추어 연방제는 여러 민족의 노동자가 완전한 통일로 나아가는 과도적 형태'라고 하면서 '군사, 경제적 동맹 등을 염두에 두면서 점점 긴밀한 연방적 결합을 지향해 가야 한다'고 한 주장을 그대로 추종한 것인데, 기본적으로는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혁명이론’에서 고안된 상층통일전선전술의 일환이다.
북한은 2000년「6.15 남북공동선언」이후에도 자주(‘민족해방’ 실현을 위한 주한미군철수)·민주(남한 내 공산당 활동 자유를 위한 국가보안법 철폐)·통일(‘인민민주주의혁명’으로 집권한 남한의 공산정부와 합작하여 공산통일정권 구현)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기존의 대남전략과 연방제 통일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남한 내 교란을 위한 선전, 선동도 보다 구체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2000년 6월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이후 제1항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를 ‘북한식 민족공조’인 외세 반대와 주한미군철수로 해석하고, 제2항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를 김일성이 제시한 ‘연방제’ 통일 합의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5년도에 입수된 북한 내부 문서들은 대북포용정책을 편 김대중 정부는 물론 그를 계승한 현 정부도 혁명 투쟁과 타도의 대상임을 명백히 하면서 “김정일의 위대한 영도 하에 남조선혁명이 완성기에 들어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6년에 들어와서도 북한은 대남공산화전략을 더욱 노골적으로 표명 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친북좌파세력이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에 대항하여 우리사회의 지식인들에 의한 뉴라이트 운동이 일어나자 김정일은 신년사 형식으로 발표되는 노동신문 등 3사의 2006년 공동사설을 통하여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신보수의 결탁과 도전을 진보의 대연합으로 짓부셔 버리고 매국 반역집단에 종국적 파멸을 안겨야 한다”고 하면서 2006년 남한 좌파들이 할 최우선적인 임무는 이른바 신보수를 초장에 박살내는 것이라는 지령을 내렸다.
결국 북한이 말하는 ‘우리민족끼리’는 바로 그들의 대남 공산화 전략에 근거하여 이른바 남북한 좌파세력들이 힘을 합쳐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유사 시 같이 미국에 대항하자는 것이며 남한 내 우파세력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선택과 이념 대립에 대응하기 위한 체제 구축
북한이 시대를 역행하면서 절대왕정보다 더한 수령유일지배 체제 하에서 ‘북한식 변화’만을 고집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상생·공영보다 ‘남조선 혁명’을 통한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을 고수하는 한 지금과 같은 북한 체제와 대남 전략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 사회는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한국 내부에 대한 북한의 교묘한 선전·선동의 영향으로 대북 경계심이 해이해 지고 극심한 이념대립의 혼란을 겪고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공산주의 지지를 드러내놓고 하더라도 정부가 엄격하게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고 젊은 학생들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대다수 국민들이 말로만 걱정만 하고 자기를 지키려는 의지를 표명하거나 행동을 하지 않는데 있다.
아직 보수층이 다수이나, 지역구도로 분열되어 있고 고령화되어 가고 있으며, 정권의 견제와 감시 하에 용기를 잃어 가고 있으며 상시 가동 조직이 약하여 지속적인 투쟁력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체제 도전 내지 파괴 세력에 대항하고자 하는 개혁 보수 세력들은 분열되어 있어 동원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1948년 건국 후 한국이 발전시켜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정치이념의 전개에 비추어 세계적 대세이며, 더욱이 대다수 한국인들은 국가로서의 생존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체제적으로 무능한 북한 공산체제에서 살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며 대남전략에 의한 공산화 통일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인들은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체제를 지키는 선택을 분명히 하고, 국민 각자가 놓인 형편과 위치에서, 남녀노소와 연령의 구분 없이 재력 있는 사람은 재력으로, 지혜와 지식 있는 사람은 지혜와 지식으로, 용기 있는 사람은 용기로,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시간을 내어 체제 도전·파괴세력에 대응하는 통일전선을 구축하여 적극 투쟁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첫째,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수호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체제 도전세력의 활동을 방치하지 말고 강력히 단속할 것을 요구하여야 한다.
둘째, 김대중 정부 이후 추진해온 대북포용정책은 재검토하도록 요구하여야 한다. 정부는 북한만을 상대로 한 1970년대의 대결·경쟁이나 최근의 무원칙한 포용보다 1948년 건국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당성을 훼손함이 없이 대북 정책 뿐만 아니라 대외, 대내 등 세 가지 분야의 각종 정책을 선진국 수준으로 변화, 개혁하여 북한의 변화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
통일 후 체제는 남북한 온 민족이 상생, 공영하여 평화·자유·민주·경제적 풍요와 복지를 구가하는 선진화된 민족공동체의 구현을 목표로 하면서 세계평화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창달에도 기여하여야 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남북한 간의 대화 과정에서도 평화정착과 교류·협력이 균형 있게 병행 실시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한국 정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주민에게 인도적 지원을 하되, 민간 기업들이 주체가 되는 남북경제협력은 시장경제원리로 풀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에 대하여는 이론적으로나 실제로 연방제를 구성하는 지방(支邦)정부들이 서로 공존과 공영을 추구하고 정치이념과 경제체제가 동일하여야 하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함을 인식시켜야 한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천인공노할 인권문제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정부는 대외적으로 세계화와 개방화의 새로운 국제질서와 함께 하면서 더 이상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 민족끼리’, 즉 주한미군 철수와 남북한의 대미공동 투쟁으로 해석하고 있는 ‘북한식 민족공조’에 동조하여 자주와 군사동맹을 대립개념으로 보는 듯 하는 언행을 하여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에 마찰을 야기하지 않아야 한다.
민족자결의 입장에서 북한과 대화를 하여야 하지만 북한군의 전진배치와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인한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우방과의 공조는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또한 최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 증가에도 대비하기 위하여서라도 전통 우방국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한 실정이다.
디지털 정보시대에 맞춰 국민의 민도를 높이고 구태의연한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각종 제도를 과감하게 선진제도로 쇄신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정부가 심각한 수준의 지역반목과 대립, 세대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후진적 성향의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절대빈곤층과 그보다 조금 나은 상대적 빈곤층이 전체 인구의 25%가 될 정도로 부와 복지가 편중되어 있는 ‘한국식 경제 풍요’를 개선하면서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 등 정치, 경제체제를 보다 선진화하여 북한이 우리나라를 진정으로 부러워하고 스스로 변화하도록 선도해 나가야 한다.
셋째, 한국의 건국이념이 아닌 특정 정치이념을 교묘하게 퍼트리는 신문, 방송에 항의하고 여기에 기대어 정치를 하고자 하는 정치인을 배격하여야 한다. 더 이상 혈연, 지연, 학연보다 국민을 잘 살게 하고 나라의 선진화 비전을 제시하느냐 여부가 각종 투표의 잣대가 되어야 한다.
넷째, 학계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친북인사들이 대학을 비롯한 각 급 학교에서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투쟁하고, 한국이 추구하는 이념에 부합하는 정치, 경제 체제에 관한 글과 책을 열정을 다하여 지속적으로 쓰고 발표하여야 한다.
특히 한국이 추구하는 정치, 경제 체제를 신봉하는 저명한 학자들로 구성된 패널이 각 급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교과서를 공정하고 철저하게 검토, 발표해야 한다. 다수 국민들이 개혁과 진보를 가장한 좌익들을 논박하는 책들을 사서 읽는 독서아카데미운동을 전개하여 지식시장에서부터 세를 만회해 나가야 한다.
다섯째, 경제인들은 기업 활동을 통하여 창출한 이윤으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방 일자리를 늘리고 빈곤을 해소하는데 기여하여야 한다. 또한 자본가와 노동자 등 경제 주체 모두가 결과의 균등보다 기회의 균등을 우선 덕목으로 생각하는 풍토를 조성하는데 앞장 서야 한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경쟁을 할 수 없는 사회소외 계층에 대하여는 정책적 배려를 하여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구현하는데 주의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여섯째, 가정과 각 급 학교와 각자가 섬기는 종교의 교당에서 건국 후 추구해온 정치이념과 경제체제가 훼손될 경우 닥칠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인 모두가 ‘조지 바나’가 말한 대로 서서히 열을 가하는데도 죽게 되는지 모르고 있다가 익어서 죽게 되는 ‘주전자 속의 개구리’ 신세가 되지 않도록 세계 역사 흐름의 중심에 서서 북한의 정치체제와 대남전략을 정확히 이해하고 대동단결하여 민족역사의 올바른 주역으로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이다.
필자 소개
마산중학교, 경복고등학교 졸. 서울대학교 문리대·대학원 외교학과,
터프트스대 플레처 국제법·외교대학원 졸, 한양대 정치학박사.
해군 중위 예편
1970년대 초 남북대화 참가,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실 외무부·통일원 담당관, 유엔총회 대표 겸 주유엔 대표부 공사, 주미대사관 정무공사, 충북대 초빙교수 역임,
『북한 협상행태의 이해』, 『남북회담: 7·4에서 6·15까지』등의 저서와 남북한 관계, 국제관계와 국가정보기관 개혁에 관한 논문이 다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