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람 잡지는 말라

조그마한 허물은 덮어줄 줄 아는 사회, 될 수 있는 대로 유능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리려는 그런 사회가 바람직하거늘…

우리나라의 역사를 훓어 보면 두드러진 사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중상과 모략이 판을 치고 그것 때문에 많은 선량하고도 유능한 인제들이 매장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세조의 사랑을 받던 남이 장군은 시 한 수를 쓴 것이 화근이 되어 역적으로 몰려 마침내 비명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 시는 본디 대장군의 기개를 가지고 무인의 용맹스런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나쁜 놈들이 글자 하나를 바꿔치기하여 그는 그런 비운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었다.

조선조의 유능한 선비 고산 윤선도는 이이첨 같은 간사한 놈들이 날뛰면 장차 민생이 도탄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믿고 상소문 한 장을 올린 것이 화근이 되어 평생에 벼슬다운 벼슬을 한번도 못하고 유배지를 전전하는 불운한 사나이로 한 평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런 울적한 심정을 안고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며 한 평생을 보냈다. “꽃은 무슨 일로 피는 듯 쉬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른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을 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고달픈 자신의 운명을 탄식한 것으로 풀이가 된다.

충무공 이순신은 편한 삶을 살았던가. 그는 그의 공로에 어울리는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그는 왜놈들과 내통했다하여 오랏줄에 묶여 다니며 재판을 받은 적이 몇 번인가. 사형을 겨우 면하고 “백이종군”하라는 엄명을 받고 삼도수군 통재사가 일개 졸병이 되어 출정할 수밖에 없었을 때 그의 마음의 고통은 얼마나 큰 것 이었을까. “나는 죽고 싶다”라고 <난중일기>에 고백한 사실은 지금도 한국인의 가슴을 울린다.

오늘 썩어가던 청계천을 복원한 사실 때문에 국내 국외에 명성이 자자한 사실을 시기하는 자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요새도 가만 보면 그를 죽이고 싶어 하는 자들이 적지 않음을 깨닫고 통분함을 금치 못한다.

생사람 잡는 그런 사회는 발전하기 어렵다. 조그마한 허물은 덮어줄 줄 아는 사회, 될 수 있는 대로 유능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리려는 사회-그런 사회가 바람직하거늘 어찌하여 매장하려고만 하는가. 정말 보기에도 민망하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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