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덕스토리' 관람기:“거기 누가 있나요?"

솔직히 도망치고 싶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이 일을 어쩌나? 나는 도망칠 기회만 노렸다.
“거기 누가 있나요? 제발 우리 말 좀 들어 주세요”지난 60년간 남조선에만 가시는 하나님도 버린듯한 절망의 골짜기, 산으로 둘러싸인 함경남도 요덕군의 정치범 수용소 15호 관리소. 죽음이 차라리 구원의 꿈일 수 있는 곳, 죽는 것보다 더욱 견딜 수 없는 잔혹한 고통은 도저히 숨길 수도 참을 수도 없는 살아 있음의 적나라한 형벌 배. 고. 픔.

정성산은 뮤지컬이란 한정된 분야에 그가 올릴 수 있는 모든 외침과 통곡을 심장이 터져라 오열하며 꾸역 꾸역 무대에 올린 듯 하다.

뮤지컬의 완성도니 그런 따위 배부른 평가 전혀 필요 없다. 젊은 그가 죽음의 순간을 몇 번이나 뒹굴며 갈가리 상처나 헤어진 몸과 정신으로 오로지 두 눈에 펄펄 끓는 요덕의 깊은 골짜기보다 더욱 깊은 슬픔과 분노의 외침 하나 가슴에 끌어안고 자유라는 불빛 한줄기 바라보며 찾아 온 이곳에서도 또다시 수없이 받았을 협박과 차별과 방해 속에 다시 한번 분노와 외로운 절망을 가슴 저리게 당하면서 자신의 장기를 저당 잡아 피눈물로 강행해 온 뮤지컬“요덕 스토리”는 이 양재동 후미진 무대에 올린 것만으로 이미 승리의 문턱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요덕.

그 곳은 바로 우주에서 선택받은 아름다운 초록별이라고 우리가 믿는, 이 자랑스러운 지구에서 우리 인류가 위선과 이기심으로 모른 채 눈감고 외면했던, 우리 스스로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숨겨진 치욕의 골짜기였다. 김일성, 김정일, 이 시대 마지막 악마의 범죄 현장, 요덕.

사망의 골짜기, 생지옥, 짐승보다 못한 하루하루를, 차마 인간의 삶이라고는 결코 말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생존의 매 시간을 전쟁처럼 아프게 아프게 치루며 억울하게, 너무도 억울하게 가두어 버려진채 잿빛 유령과 같은 죽음을 형벌처럼 살고 있는 생명들.

그들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우리의 형제들이었다.

아니야! 내 가슴 속에서 큰 북소리처럼 치밀고 올라와 머리속의 모든 뇌세포를 갈기갈기 해체하며 퍼지는 외침은 처음에는 이 한마디 말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도대체 무엇이 아니란 말인가? 의 명확한 정의도 내리지 못한채 무조건 나는 부정해 놓고 싶었던 것 같다.

바늘구멍 하나 없이 완벽한 절망.

나는 뮤지컬이 공연 되는 170분 동안 솔직히 너무도 숨이 막혀 몇 번이나 자리를 박차고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온몸에 솟는 땀으로 오한을 느낄 지경이었다.

솔직히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이일을 어쩌나? 나는 도망칠 기회만 노렸다. 그 순간, 나는 진실로 맥아더 장군에 감사했다. 유엔군에게 감사했다. 나는 진실로 戰후 열강의 탐욕 속에서 남한만이라도 죽을힘을 다한 용기와 설득으로 자유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스탈린의 공산주의, 김일성의 공산주의에 목숨을 다해 이 나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실현시킨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의 인간의 존엄성에 절대 가치를 둔 자유에 대한 신념에 감사 했다.

戰후 그 가난의 시대를 기적처럼 뛰어넘게 한 박대통령의 소신과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경제부흥을 일으켜 이 나라를 반석위에 올리고 보석처럼 지켜 온 우리 모두, 우익 보수 자유 진영의 모든 국민들의 진정한 용기와 자존심과 자긍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우리는 행운이었다. 우리는 자유로웠고 풍요로웠으며 인간다운 존중 이상의 이 지구상 어느 누구보다 가장 고귀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누려왔다. 적어도 얼마 전 까지는.

그런 우리를 요덕의 악마 김정일의 절망의 골짜기로 되돌려 가지 못해 안달하는 김일성, 그 낡고도 끈질긴 악마적 치매에 걸려 온갖 망발과 뱀과 같은 죄악을 입으로 행동으로 쏟아내는 이 땅의 미친개들, 악령의 빙의 상태에서 귀신들린 이 땅의 좌익들이 정신 나간채 발호하며 우리가 지켜온 대한민국과 자유 민주주의를 뒤 흔들며 혼돈과 망국으로 이끌려 하기 전까지는.

그러나 그들 악마의 시대도 이제는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 함경남도 요덕을, 아니 거대한 요덕, 북녘 전체의 어두운 동토의 땅을, 악령과 악마의 검붉은 망토로 두텁게 덮였던 검은 절망을 이제 하늘과 역사와 인류의 정의와 사랑의 힘으로 제쳐버리는 자유의 바람으로 그들의 오랜 눈물을 닦고 말려 주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불행을 다 합친다 해도 요덕수용소 그들의 아픔을 흉내 낼 수조차도 없을 것 같다. 이 세상의 누구도 그들을 그런 슬픔 속에 방치 해 둘 권리는 없다. 비록 김정일이라는 학살자, 폭정의 독재자라 할지라도 이제는 결코 안 된다. 그러나 솔직히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이 힘들고도 가슴 아픈 이 문제를 떠맡기고 나는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동족으로서, 형제로서 비열한 두려움이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내가 그들의 깊은 슬픔을 알고 나서 어떻게 감당해 내야 할지 나는 조금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이제는 잘 안다. 나는 슬픔이나 고통에 유난히 참을성 없이 약한 편이라는 걸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지독한 이기주의자에 이제 남은 생애는 지금까지처럼 적당히 즐기고 풍요에 물들여진 생활의 멋에 자신을 길들인 대로 보기 싫은 것 보지 않고 주변의 아픔도 외면한 채 적당히 아름다운 것만 보며 멋지게 지내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진실로 그 어두운 절망의 골짜기의 합창에서 귀 막고 도망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결코 돌아보지 않고. 그래서 몰래 머리를 흔들었다. 꼭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이들을 위로 하겠지.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거기 누가 있나요? 이 비명소리 들리지 않나요? 거기 누가 있나요 ? 제발 우리 말 좀 들어 주세요 ” 무대 위에서는 다음 장면들이 계속 되고 있었지만 이제 내 귀에는 끝없이 그 처절한 합창이 반복 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몇 명의 탈북민들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다. 비교적 젊은 엘리트들인 그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띠는 순간에도 솔직히 나로서는 이 나이에도 아직 이해 할 수 없는 깊은 그늘을 그들에게서 느끼고는 당황해 했었다.

그저 막연히, 가족을 두고 사선을 넘어 낯선 곳에 온 사람들이니 그들 나름의 어쩔 수 없는 피해의식과 누구도 쉽게 위로 할 수 없는 슬픔을 지닐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이들은 본의 아닌 일로도 상처를 아프게 받을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런 외로움들이 더욱 그들의 자존심의 단단한 무장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도로 생각 했었다.

그런데“요덕 스토리”가 그들의 생애에 절대로 그칠 수 없는 절절한 통곡을 가슴 밑바닥에 산처럼 묻어둔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 준 셈이다. 그들은 웃으면서도 실은 가슴 속 깊이 매순간 심장을 터뜨리며 줄곧 오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난해 9월 프레스 센터의 시국선언 연설 때 같은 연설자로서 나의 바로 뒤에 마이크를 잡았던 정성산 감독이 처음부터 끝까지 흥분과 열정과 분노와 아픔을 자제하지 못하고 수용소 얘기와 돌에 맞아 돌아가신 부모의 얘기를 했을 때만 해도 나는 탈북민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던 때여서 솔직히 그의 열에 들 떠 흥분된 얘기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때도 그는“거기 아무도 없나요? 이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라고 외쳤던 셈이었다. 정성산 감독 뿐 아니라 이곳에 먼저 온 7000명의 탈북민들이 실은 그들 나름대로 줄곧 그 외침을 외롭고도 힘들게 외치고 울부짖고 그리고 또다시 외쳐 왔던 것이었다.

그들의 분노가, 그들의 식을 줄 모르는 아픔의 열정이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결국 이제야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 한 것이다.

여기 우리가 있다

“거기에 누가 있나요?”에 이제 “우리가 여기 있답니다.”란 화답의 메아리가 세계에서 퍼져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강철환의 책으로, 장진성의 詩로, 김성민과 동지들의 자유북한방송으로, 정성산의 뮤지컬로, 박상학의 행동으로 또 다른 탈북민들의 모든 방법으로 그동안 외쳐 온 이들의 깊고도 아픈 분노와 슬픔의 통곡과 사랑하는 형제들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용감한 외침은 이제 절망의 골짜기 요덕 수용소 뿐 아니라 김정일 독재의 폭정을 끝내고 북한의 모든 곳에 인간의 존엄성과 진정한 자유를 가져오는 맑고도 밝은 종소리가 된 것이다.

뮤지컬 관람을 마치고 만난 시인 장진성이나 수용소 생활의 믿기지 않은 아픔을 겪었다는 강철환기자의 해맑은 얼굴들에서 나는 이제 젊은이다운 자신감과 희망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이 시점의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방향조차 애매할 정도의 혼돈의 위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정감독이 표를 보내 초대한 열우당의 누구도 현실적으로“요덕 스토리”를 보러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노무현대통령이 보러 온다고 해도 그들이 김정일 체재를 옹호하는 정책을 지금 당장 버리지는 않는다.

전직 대통령이 산 표로 공연을 보려온 야당대표의 처음부터 끝까지 울면서 봤다는 등의 관람평과 인사가 공연팀에게 순간적인 위로는 되겠지만 그들 역시 근본적인정책에서 거의 6.15 선언이라든가...등등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스로 좌파라는 노정권에게 단 한마디의 저항 성명서도 없이 오히려 그 방향에 협조해 준 실수를 공공연히 저지른 사람들의 뻔뻔스런 정치적, 화려한 수사적 표현으로 공허하게 들릴수 있다. 그러나 이번의“요덕 스토리”관람을 계기로 한나라당은 또다시 표를 의식한 일일 이벤트로 보이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동안 망국의 혼돈에서 애매하게 처신하던 나라의 정체성과 이념의 문제에서 이제는 제 일 야당으로서 확고한 철학과 명확한 이념과 구국을 위한 당의 확실한 방향을 고민할 것을 진심으로 기대 해 본다.

뮤지컬“요덕 스토리”는 북한의 낡고도 녹슬고 무거운 폐쇄의 두터운 문의 빗장을 탈북민 스스로의 힘으로 풀고 열어 보려는 자유에의 진정한 용기로 새로운 역사의 첫 장에 기록되는 하나의 의미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눈물겨운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동시대의 인류의 이름으로 “절망의 골짜기, 그곳 요덕의 비명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곳에 우리가 있답니다. 우리가 그 곳의 문을 열고 자유의 이름으로 구해 낼 것입니다”라는 희망의 대답을 세계가 함께 마음을 합해 북한을 향해 화답하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외롭고 그래서 더 용감한 탈북민들, 그들은 한 역사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꽃을 피우는 따사로운 봄이 오기 전에 유난히 더 매서운 꽃샘바람이 그대들의 가슴을 다시 한번 움츠리게 만들지라도 부디 용기를 잃지 말기를. 이미 혹독하고 긴 겨울이 지났으니 요덕의 음습하고 차디찬 얼음 바닥, 그 깊은 골짜기에도 아름다운 봄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니.

[오정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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