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賊
한명숙 씨의 총리 지명으로 대통령·국무총리·당의장·통일부장관·법무부장관 등 권력핵심부가 친북으로 일색화(一色化)됐습니다.
盧대통령 집권 4년 차인 2006년 3월 현재, 혹자는 이들을 가리켜 ‘親北五賊’이라 부릅니다.
前述한 한명숙씨 이외 4인의 행적을 요약해보겠습니다.
1. 노무현 대통령 - 김정일 정권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
盧대통령은 지난 1월25일 내외신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가 지속될 경우 한미간 마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再경고(?)했습니다.
그는 북한 위폐제조에 따른 미국의 대북금융제재와 관련, “한국정부는 북한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고 또 때로는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 내 일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아직은 아니지만...미국 정부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마찰과 이견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떠한 형식(形式)으로도 김정일 정권을 제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은 취임 이후 盧대통령의 일관된 노선이었습니다.
그는 “미국의 對北무력제재 시 전면전의 우려가 있다(2002. 12. 30 등)”는 논리로 무력(武力)제재에 반대함은 물론, “미국의 맞춤형 봉쇄정책이 북한을 제어하거나 굴복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회의적으로 생각한다(2002. 12. 31 등)”며 비무력(非武力)제재도 반대해왔습니다.
盧대통령의 ‘어떠한 형식(形式)’은 물론‘어떠한 상황(狀況)에서도’ 김정일 정권을 제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2005년 2월10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 이후인 같은 해 4월 13일 독일 방문 중 ‘디 벨트’紙와의 인터뷰에서 “일부에선 제재까지 포함해 북한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對北압박을 강화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럴수록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앞서 2004년 11월 12일 미국 LA방문 중에는 “1987년 이후 북한은 테러를 자행하거나 그 밖의 테러를 지원한 일이 없다”며“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었죠.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인권문제, 마약·위폐와 같은 불법행위 등‘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력·非무력의‘어떠한 제재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모두 조건부(條件附) 사랑뿐인데 盧대통령의 김정일 정권에 대한 사랑은 조건이 붙지 않습니다.
순정(純情)!
붉은 띠 머리 두른 혹자들은 순수한 민족애(?)의 대통령을 자랑스러워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맹목적 사랑에는 국가(國家)가 가려지고, 동맹(同盟)이 사라집니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훼손해서라도...한미간 갈등과 긴장을 각오하고서라도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盧대통령은 취임 직전인 2003년 1월 18일 KBS회견에서 “미국과 갈등이 있더라도 (미국의) 북한 공격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2003년 3월2일 동해 공해 상에서 북한 전투기가 미군 정찰기를 20여 분간 위협한 사건과 관련, 3월4일 미국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나가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했고, 3월5일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만큼 미국에 ‘지나친 모험을 삼가라’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월25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가 지속될 경우 한미간 마찰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경고는 이런 맥락에서 일관된 것입니다.
盧대통령은 ‘정말로’김정일 정권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가 故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강조한 데 대해 유의 한다(2005년 6월23일)”“김정일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노력에 대한 의지와 북핵문제의 평화적 노력에 대한 원칙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2005년 11월16일)”는 등 김정일 정권에 대한 신뢰를 계속 표현해왔습니다.
‘네가 나를 속일지라도, 네가 나를 해칠지라도 나는 너를 믿겠다’는 그야말로 순정(純情)입니다.
盧대통령은 급기야 2005년 11월19일 “북한과 적대관계가 발생할 것인가를 전제하고 말하는 것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과 친구가 되기 위해 성의를 다해 대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김정일 정권과 친구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盧대통령은 2005년 9월19일 ‘6자회담 공동성명(이하 9*19선언)’이 북한의 핵무기 폐기의무 불이행으로 무산됐음에도 북한과 군사(軍事)교류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2005년 10월12일 “한반도평화체제와 동북아 안보협력체제 정착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전략이자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라며 “앞으로 북한과의 경제 분야 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며 군사 분야 교류도 활발히 추진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 정동영 당의장 - 北폭정 무차별지지·옹호·강화
정동영(鄭東泳) 열린우리당 당의장 역시 통일부 장관 재직 당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일관된 지지·옹호·강화정책을 전개해 온 인물입니다.
鄭 의장은 북한이 2005년 2월10일 핵무기 보유선언을 한 상황에서 200만KW 대북송전을 또 다시 제시, 군사·정치·경제·외교적으로 북한과 운명공동체가 되는 新남북관계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鄭 의장은 2005년 7월12일 당시 “북한이 핵 폐기에 합의하면 현재중단 상태에 있는 경수로 건설을 종료하는 대신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200만㎾의 전력을 송전방식으로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소위‘중대 제안’을 발표했었죠.
그러나 북한이 같은 달 22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전력지원이 핵무기 포기의 동기가 될 수 없다”고 하고, 24일 다시 “전력만으로는 조선반도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없다”고 반응하자, 김정일 정권에 ‘더 큰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鄭 의장은 같은 달 26일 “북한이 핵 포기에 합의하면 남북간 ‘중대제안’을 협의 하겠다”고 발언했고, 한 달 뒤인 8월26일 통일부는“북한의 경제재건과 유관국간의 관계정상화를 거쳐 ‘남북경제공동체’로 발전해 간다”는 요지의 대대적 對北경제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했습니다.
鄭 의장은 2005년 8월11일“우리 입장에서 일반적 권리로서의 핵 이용, 즉 농업용·의료용·발전 등 평화적(平和的) 목적의 핵 이용 권리는 북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 부분에서 한국과 미국의 생각이 다르다”고 주장했고, 이 같은 소위 ‘평화적 核이용권’주장은 같은 달 23일, 25일에도 반복됐습니다.
鄭 의장은 급기야 지난 1월22일 국방비를 줄여 “南北양극화”등 5대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며 대한민국 국방비로 김정일 정권을 지원하겠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2월18일 당의장 수락연설에서도 “5대 양극화 바다를 건너 하나의 코리아를 만들겠다”며 이 같은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정전체제 붕괴 나선 정동영>
통일부장관 재직 시 鄭 의장의 정책은 한반도평화체제 실현이라는 목표 하에 진행돼 왔습니다.‘정전 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한반도평화체제는 그간 북한과 남한 內 친북세력이 주장해 온 대남혁명논리였습니다. 정전협정에 근거해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평화체제를 만든 뒤 ‘낮은단계연방제’내지 ‘연합제’를 거쳐 북한과 연북(連北)·연공(連共)세력이 주도하는 소위 ‘연방제’통일을 이루겠다는 발상입니다.
鄭 의장은 2005년 8월15일 민족대축전 남북공동행사 기념사에서 “한반도 정전상태를 종식하고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며 북한 측에 평화체제 구축을 공식제안한 데 이어 9월19일·20일, 10월17일에도 이를 再확인했습니다. 같은 해 광복절에는‘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북한상선의 제주해협 통과가 허용됐죠.
鄭 의장은 9·19선언이 무산된 상황에서도 한반도평화체제 실현을 밀어 부쳤습니다.
그는 2005년 10월24일 국회에서 “평화체제 구축을 넘어서서 남북연합을 내다본다면 헌법 3조의 영토조항을 손질해야 한다”며 북한을 反국가단체가 아닌 국가적 실체로 인정해야한다는 뜻을 피력했습니다.
그는 2005년 12월13일에서 16일 사이 제주도에서 열린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북한의 “국보법 철폐” 요구를 수용,“대결시대의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그를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나가기로 하였다(제1항)”는 공동보도문을 발표했습니다.
<태극기 거꾸로 달고 “동지”호칭>
鄭 의장은 정책 外 각종 언행을 통해서도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해체해왔습니다.
2005년 10월31일 서강대 특강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통 큰 지도자라고 밑에서 이야기 한다”고 말한 鄭 의장은 같은 해 12월 제주장관급회담에서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단 채 북측 대표단을“동지”라고 호칭했습니다.
그는 2005년 3월14일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한국은 누가 敵인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관련, “적절하지 않고 동의하지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해 7월8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美대사가 북한을 `범죄정권(criminal regime)으로 묘사한 것과 관련,“정부는 6자회담을 훼손하고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증가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鄭 의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도전하고 있는 친북세력의 준동을 확산시키는데도 일조해왔습니다.
그는 2005년 1월4일 “(남북간) 체제경쟁 정책은 이미 폐기됐다”며 2004년 11월 정보통신부가 접속 차단 조치를 한 30여개 북한 관련 웹 사이트 가운데 일부를 해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방북 불허 대상자인 이적단체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인물들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등 합법적 단체의 구성원 신분으로 방북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됐습니다.
3. 이종석 장관 - 장성들에 “對北적개심 교육 말라”지시
이번에는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 차례입니다. 그는 송두율(宋斗律)의 ‘내재적 접근법’을 차용(借用), ‘북한의 논리로 북한을 이해하자’고 주장해 온 학자입니다.
성균관大 행정학과 78학번인 李 장관은 1989년 ‘金日成의 抗日빨치산운동연구’로, 1993년 ‘金日成 주체사상과 조선로동당 연구’로 석·박사학위를 모두 성균관大에서 받았습니다.
李 장관은 석사논문에서 金日成을 가리켜 “군사지도자로서의 탁월성을 보여 준다”고 평가하며, 金日成의 ‘보천보전투’에 대해 “역사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고 격찬했습니다.
그는 석·박사 과정 이래 ‘진정한 통일은 민족민주운동진영이 한국사회를 강점하는 제국주의 세력을 축출하는 민족해방을 통해 가능하다’(월간지 「사회와 사상」 88년 9월호 등)는 요지의 통일관을 보여 왔습니다.
李 장관은 盧정권 출범 이후 NSC사무차장으로서 외교·통일·안보정책의 입안(立案) 및 집행(執行) 전 과정에 참여하면서 김정일 정권을 지지·옹호·강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종석의 NSC’는 2003년 2월‘동북아중심국가론’을 필두로‘전시작전통제권 환수(2003년 8월 등)’‘자주국방론(2003년 10월 등)’‘작계5029추진 중단(2005년 4월 등)’‘동북아균형자론(2005년 3월 등) 등 한미동맹 파열을 자초하는 비현실적 정책들을 연발해왔습니다.
2006년 1월 초에는 북한이 줄곧 주장해 온 대남정책이었던 한미연합독수리훈련(FE)과 한미전시증원훈련(RSOI) 연기를 추진하다 무산되기도 했죠.
‘이종석의 NSC’는 2년 간 對北퍼주기가 북한의 2005년 2월10일 核보유선언을 통해 실패로 입증됐음에도 △2005년 7월12일 200만KW 대북전력제공 △2005년 8월26일 북한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출범 전반기를 마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성과와 향후 전망’자료 中) △2006년 1월22일 정동영 열우당 상임고문의 군비감축 통한 “南北양극화 해소”지원 등을 주도했습니다.
또 △2005년 12월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의 국보법 철폐 요구를 수용하는 공동보도문 발표 △2004년 11월15일 “북 핵 일리 있다”는 盧대통령 LA발언 △2003년 4월16일 외교부 UN인권위 북한인권결의 찬성투표 제동 △2003년 8월19일 盧대통령에게 ‘보수단체 人共旗 소각’과 관련 북측에 유감표명토록 설득하는 등 對北굴종행태의 배경에도 ‘이종석의 NSC’가 간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李 장관은 개인적으로도 △2004년 6월15일 휴전선 인근의 대북‘자유의 소리’방송 중단을 주도했고(2004년 6월 월간조선 보도) △2004년 3월‘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에서 주적개념 삭제, 2004년 6월19일 육사‘2004 무궁화회의’“북한에 적개심 교육 말라”강연 등을 통해 2005년 국방백서 주적(主敵)개념 삭제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李 장관은 통일부 장관 취임 직후인 지난 2월16일 휴전선에 배치된 전방경계초소(GP; Guard Post)철수를 주장해 충격을 줬다. 그는 이날 오전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재외 공관장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남북이 GP를 철수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GP는 휴전선 남방한계선에 설치돼 북한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전략적 군사판단을 좌우하는 현장정보를 확인*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곳이다. 군사전문가들은 GP철수는 대북방어를 포기하겠다는 안보포기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4. 천정배 장관 - 검찰인사에서 공안검사 승진 全無
왜 천정배(千正培)를 넣었는가 의아해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千장관은 대한민국 반대편에서 보면 최고의 공신(功臣)입니다. 千장관의 재임기간 중 체제수호를 위한 ‘마지막’ 권력기관으로 남아있던 검찰의 공안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됐기 때문입니다.
千장관은 2005년 10월12일 북한의 대남전략과 궤를 같이해 온 동국대 교수 강정구를 비호키 위해 헌정사상 초유의 법무부장관 검찰지휘권을 발동했습니다. 그는 같은 달 14일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퇴를 비롯한 여론의 빗발치는 비판 속에서도 강 교수 불구속을 밀어부쳤죠.
千장관은 2005년 10월21일 MBC 100분 토론에서 “개인적으로 국보법폐지 후 형법보완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장관으로 있으면서 국보법이 실정법으로 존재하는 한 무력화시키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온오프라인 상에서 난무하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고무·찬양 및 남한 이적(利敵)·친북(親北)단체 관계자들의 북한 대남관계자들과의 통신·회합에 대한 국가보안법상의 제재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증하듯 지난 2월1일 검찰 인사에서 공안 검사는 단 한명도 검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했습니다.
千장관은 이러한‘공안’홀대 지적에 대해 2월10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대가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에 따라 공안부의 기능과 업무영역이 합리적으로 재조정되고 있다”는 말로 직접적 대응을 회피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조직에서 승진누락은 “이제 공안검찰로 일하지 말라”는 가장 강력한 지시입니다. 국가고시에 여러 차례 수석(首席)했다는 千장관의 유능함(?) 덕분에 국가보안법은 식물인간(植物人間)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한명숙 의원을 포함한 이 다섯 명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부르실 생각입니까?
親北五賊 - 노무현, 정동영, 이종석, 천정배, 한명숙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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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3-30, 10: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