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태평양에 떠있는 섬 사이판에 갈 일이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던 해인 1945년 6월과 7월에 걸쳐 사이판은 격전지였다.
미 군함의 함포사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 섬의 일본군 총사령관은 미군의 상륙을 눈앞에 보면서 일본군이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모두가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할 것을 명령하고 사령관 자신도 거기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 섬에는 “만세절벽”이 있어 일본군 병사들이 그 절벽에서 몸을 던지면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거기에는 그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있고 비석들도 있는데 오늘의 천황 아키히토가 시를 한 수 적은 것이 돌에 새겨져 있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 전사들의 넋을 위로하며 그 공로를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태평양전쟁에 희생된 한국인들의 수도 수천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사이판에 있는 “자살절벽”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뒤에서 일본군이 밀어 떨어져 죽었다고 하니 자살은 아니고 타살이었다. 그들의 원혼을 기리는 추념비도 한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나도 80년대에 한 번 찾아 가 본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월드건설의 조규상 회장이 그 섬에 있는 큰 호텔하나를 인수하여 월드리조트라고 명명하고 크게 오픈닝 모임을 하는 한편 그 한국인들의 추념비도 사재를 털어 잘 재정비하면서 거기에 내 글 한편을 돌에 새기는 제막식에 나도 초대 받아 갔었다.
일본인들이 거기서 죽은 것은 의미가 있지만 징병에, 징용에 끌려가 마지못해 죽은 한국인들은 불쌍하지 아니한가. 나라가 없는 슬픔!
오늘의 한국은 그 때 보다 좀 나아졌는가. 고이즈미 일본 수상은 한국이 반대하고 중국이 반대해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계속하겠다고 하고 일본의 교과서는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기록했다니 그 수모를 당하는 한국은 오늘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중국도 우리를 우습게보고 일본도 우리를 한심하게 여기는데 오늘의 청와대, 오늘의 대통령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건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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