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대통령들과 박정희 대통령

명예박사 학위로 자신을 치장했던 YS,DJ,노무현"국민들 배불리 먹이고 나라 잘 지키는 게 최고 박사"라던 박정희
<노무현 박사?>

얼마 전 모 신문사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노무현의 인적사항을 살펴본 일이 있었다.

주량은 소주 반 병, 흡연량은 하루 반갑, 존경하는 인물은 링컨과 김구,갖고 있는 자격증은 변호사 자격증, 운전면허증, 요트훈련지도자 자격증, 좌우명은 '자신에겐 엄하고 타인에겐 너그럽게', 인물평은 '두뇌명철, 판단력 풍부, 개혁적 이미지가 강한데다 나름대로 정치적 소신을 지키고 있다는 평'이란다.

신문사 인물정보의 프로필은 대개 본인이(더 엄밀하게 얘기하면 해당자의 비서가)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솔직히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노무현의 좌우명은 아무래도 '자신에겐 너그럽고 타인에겐 엄하게'로 바꾸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고, 인물평은 그저 쓴웃음이 나올 뿐이다.

각설하고, 노무현의 학력 부분에서 나는 다시 한번 고소(苦笑)를 금할 수 없었다. 노무현의 정식 학력이 부산상고 졸업인 것이야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그가 '명예박사' 학위 소유자인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2004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대학에서 명예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나.

'명예' 학위이기는 해도 학위를 수여하려면 무엇인가 인류나 국가사회에 이바지한 바가 있어야 할 텐데, 모스크바대학이 노무현에게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한 것은, 그가 국회의 탄핵소추까지 받았다가 어용방송과 홍위병들을 앞세워 기사회생한 것을 기리기 위해서였을까?



예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는 숭문(崇文)의 전통 때문일까?

우리 사회에서 행세 좀 하는 사람들 중에는 '박사'학위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과거에는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거나, 돈을 써서 국내외 대학에서 정식 박사 학위 혹은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도 거의 대부분 '박사'호칭을 갖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진짜 박사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한 분뿐이었다. 그는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학사, 하버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에는 물론 지금도 자연스럽게 '이승만 박사','이 박사'로 불리우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밖에 서울대, 미국 조지워싱턴대, 베트남 사이공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던 윤보선 대통령은 말년에 경희대와 미국의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인터내셔널대학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내각책임제였던 2공의 실질적인 국정책임자였던 장면 국무총리도 생전에 '장면 박사'로 불리웠지만,실은 '명예박사'였다.
미국 맨해튼대학을 졸업한 그는 1948년12월 모교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마 유엔총회대표로 신생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적 승인을 얻어낸 그에게 모교에서 명예를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다.
1950년에는 미국 포드햄대학이라는 곳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초대 주미대사로 6-25를 맞아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던 그에 대한 미국 사회의 격려가 아니었을까?
그는 부통령 재직 중이던 1957년 미국 시튼홀대에서 다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록 5-16으로 실각하기는 했지만, 신생 대한민국을 위해 많은 헌신을 했고, 평생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간직했던 그이기에 그에게 '명예 법학박사' 학위가 주어진 것이 그다지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주 잠깐 대통령을 했던 최규하 대통령은 외무부 장관 재직 중이던 1970년 한국외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1985년에는 강원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 재직 중이던 1984년 미국 대학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하나 받았다.정치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그에게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대학은 페퍼딘대학이라는 곳인데, 어디에 있는 어느 정도 위상의 대학인지는 잘 모르겠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1991년 모스크바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그 지적 능력을 많이 의심받곤 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무려 9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야당 총재 시절이던 1974년 그는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미국 타우슨주립대라는 곳에서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속된 말로 방귀 꽤나 뀌는 사람이면 너도나도 명예박사학위를 따던 당시 유행을 따른 것이 아닌가 싶다.
나머지 명예박사 학위 중 7개는 대통령 재직 시절에 받은 것인데, 학위를 수여한 대학은 미국 아메리칸대,러시아 모스크바대, 일본 와세다대, 프랑스 소르본느대, 미국 조지타운대, 미국 미네소타대,미국 뉴욕대등으로 다양하다. 학위를 받은 분야도 법학,정치학, 인문학 등으로 다양하다. 그는 작년에는 중국 청화대에서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9개의 명예박사, 1개의 특별명예박사, 그리고 1개의 정식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그는 1983년 미국 에모리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미국 워시번대(문학/인문학), 미국 가톨릭대(법학), 원광대(정치학), 미국 포틀랜드주립대(인문학), 경희대(경제학), 미국 조지타운대(인문학), 고려대(경제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워시번대는 김대중씨에게 1988년에는 문학, 1998년에는 인문학 분야의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 대학은 1988년 김대중의 부인 이희호씨에게도 인문학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김대중씨는 2001년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특별명예박사를 받았는데, 그게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희한한 것은 그가 1992년 러시아 모스크바대 외교대학원에서 정식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논문은 <한국 사회에서의 민주주의 발생과 발전원리에 관하여(1945-1999)>라던가. 공식 학력은 목포상고 졸업이 전부고, 정식으로 대학 학부 과정이나 석사 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가 어떻게 해서 명예박사도 아니고 정식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는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가 가진 11개의 학위 가운데 다섯 개는 대통령 재직 중 받은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과 아들도 명예 박사학위 수집가이다.
이희호씨는 미국 워시본대(인문학), 미국 노스이스턴대(인문학), 미국 코럴리지침례대(종교교육학), 일본 아오야마학원(교육학), 이화여대(철학),동아대(문학),미국 드류대(인문학) 등 7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중 네 개가 남편의 대통령 재직 기간 중 받은 것이다.
DJ의 장남 김홍일씨도 네 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그는 중국 옌타이대(철학), 몽골국립경제대(경제학),배재대(법학),국립목포대(행정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 중 세 개가 아버지의 대통령 재직 기간 중 받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모두 모스크바대 명예박사 동문인 셈이다.

권력의 최정상에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냈고, 한때 3김 시대의 일각을 차지했던 김종필 씨는 보유하고 있는 명예박사 학위 수에서는 YS,DJ를 앞질렀다. 그는 철학,법학,문학,정치학,경제학,행정학,과학 등의 분야에서 12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물론 이들 대부분이 그가 중앙정보부장,국무총리, 여당 대표 등으로 있을 때 받은 것이다.

<박정희,'국민들 배불리 먹이고, 나라 잘 지키는 게 최고 박사야!'>

현재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도 '박사'가 많다.
고건 전 총리는 2개(원광대-법학,미국 시라큐스대-법학), 이명박 서울시장은 5개(한국체육- 이학,서강대-경영학, 카자흐국립유라시아대, 몽골국립대-경제학, 목포대-경제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1987년 대만문화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당시 특별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던 그에게 왜 명예박사 학위가 주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손학규 경기지사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식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앞에서 살펴본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정식이든, '명예'이든,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명예박사' 학위 하나도 갖지 못한 대통령이 한 분 있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최규하, 김영삼, 김종필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내로라 하는 여야 정치인들, 고위 관료들이 앞을 다투어 명예 박사학위를 받던 시절,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국내외의 많은 대학들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 각료나 참모들 중에는 박대통령에게 이를 받아들이도록 권유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일축했다고 한다.
'국민들 배불리 먹이고, 나라 잘 지키는 게 최고 박사야! 임자들도 그런 궁리할 시간 있으면 수출이나 더 많이 하는 쪽으로 머리를 써봐!'


* 덧붙임)

1) 혹시 이번 6월 김대중씨가 방북하면, 김일성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라도 수여하지 않을까?

2)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재단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밀러드 필모어(제13대 미국대통령)는 대통령 퇴임 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그에게 라틴어 분야의 명예박사를 주겠다고 하자 '나는 고전 교육을 받지 못했다. 내가 읽을 줄도 모르는 분야의 박사학위는 받아서는 안 될 것 같다'며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반면에 역시 불학무식했던 제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은 하버드대에서 라틴어 분야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때 미리 외워두엇던 라틴어 문구를 외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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