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한나라당으로는 안된다

이런 야당은 이 나라의 안보와 평화의 개념을 변질시키고 있는 집권세력의 외교노선을 바로잡을 안목이 없다.


지난번 국회의 부동산 재건축 관련 법안 강행처리 과정에서 벌어진 여야 충돌을 보면서 이제 한나라당은 정권 창출의 의지도 없고 ‘반대당’으로서의 존재 의미도 상실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관련 문제의 찬·반과 당·부당을 떠나서 한나라당은 더 이상 국민이 기대하는 야당이 아니며 그런 요구를 수임할 능력이나 자질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만천하에 드러냈다. 이제 2007년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이라면 한나라당을 접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절박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6개 법안 강행처리를 계기로 한나라당 내부의 소리를 들어 보자. 지도부에 있는 어느 3선 의원은 “의원들이 서로 뒤에서 박근혜 흠집내기, 이명박 흠집내기에 몰두해 당이 친박, 친이로 갈라진 상태”라고 했다. 어느 영남권 3선 의원은 “의원들의 투지가 없어졌다. 초선들도 전부 몸 사린다. 고참들은 ‘나는 이제 그런 것 할 시기 지났다’고 하고, 젊은 의원들은 ‘그런 방식으로 투쟁할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지도부나 당직자도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당 전체에 투지가 없다”, 수도권의 재선 의원은 “여전히 변화의 의지가 없다. 박근혜 또는 이명박의 인기만으로 대선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많다. 여당이 저렇게 개판 치는데 우리가 무리하면서 당을 개혁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PK 초선 의원은 “영남 기득권에 안주하는 의원들 너무 많다. 심지어 ‘대선 이기면 뭐 하냐, 나 공천 줄 사람만 잘 관리하면 된다’는 의원도 있다”고 말한다.


한나라당 내 분위기를 정리하면 지금 지방단체장선거를 앞두고 당의 지지율이 크게 앞서는데 괜히 구실을 줄 수 있는 상황, 다시 말해 민생관련 법안 또는 ‘소수 강남권’에 세금폭탄 때리는 일을 막았을 때 생기는 부담감을 떠안을 이유가 없으며 굳이 ‘투지’를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밀리는 척 밀려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정체성과 진로를 바꾸려 하는 좌파정권과 맞서 싸우고 있다는 우파정당의 실상이다. 이것이 2007년 대선에서 그들의 집권 연장을 저지하고 정권을 잡겠다는 보수정당의 현주소다. 이런 야당은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이념노선을 달리하는 유권자를 대변할 수 없다. 이런 야당은 집권세력의 정책방향에 반기를 든 야권세력을 포괄할 능력이 없다. 이런 야당은 이 나라의 안보와 평화의 개념을 변질시키고 있는 집권세력의 외교노선을 바로잡을 안목이 없다.


한나라당이 잠재적 지지계층을 흡수하거나 대변하지 못하는 현상은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당들이 국민들의 이념 분화(分化)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당의 정체성이 ‘잡탕’적 성격을 못 벗어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심각한 이념 분화현상을 겪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고전이 돼버린 좌·우, 보수·진보의 대립이 온 나라를 갈등과 대결의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나라는 이렇게 갈려 있는데 정치권은 이것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열린우리, 한나라, 민노, 민주 할 것 없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혼성부대를 이루거나 기회주의적 처신을 밥 먹듯이 한다. 그래서 여당이 죽을 쒀도 야당이 보완(?)해 주고 야당이 야당답지 않게 놀아도 그 덕에 여당은 건재한 모양이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물고 물리며 어부지리를 얻는 격이다.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데도 여전히 웃고 있는 열린우리당을 보면 그 ‘반대당’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고도 남는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라는 여의도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당에는 그랜드 플랜이라는 것이 없다.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도 없고, 준비하자는 소리가 있어도 아무 지원이 없다. 여의도 연구소에도 실제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한두 명 있다. 그나마 전업이 아니고 부업이다.”


선거 때만 되면 공천비리에 헐떡이는 한나라당, 여당의 강행처리에 속수무책이거나 방관하는 제1 야당, 내부로부터 파열음이 터져나오는 자해적(自害的) 정당, 무엇보다 정권 장악의 의지와 투지가 없는 기회주의적 정당…. 이런 정당을 가지고는 나라를 제대로 세울 수 없다. 이런 야당은 있으나마나다. 아니, 있어서 해로울 수도 있다. 먼저 당이 스스로 변화를 향해 건곤일척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하면 국민이 한나라당을 버리고 새 야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


김대중 ·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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