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황폐화의 지속이냐, 아니면 그 終息이냐

'2007년 大選은 한반도 최후의 결전이 될 것'…「知性과 反知性」출판 기념회 11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4층에서 열려
5월 11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4층 컨퍼런스홀에서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과 류근일 前조선일보 주필의 대담을 엮은 책,「知性과 反知性」의 출판 기념회가 열린다. 이 행사는 저자와의 대화형식으로 치러진다고 한다.

다음은 류근일 前주필이 조갑제닷컴에 보내온 관련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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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性과 反知性」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


류근일(언론인/자유주의연대 상임고문)


나와 홍진표 씨가 이 대담에서 하고자 했던 것은 한 시대의 허위의식에 대한 도전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1960년대 초에 시작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의해 왜곡된 데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4.19 학생혁명으로 시작된 한국 민주화 운동은 본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운동으로 출발했다. 1960년대와 1970, 1980년대를 통해 민주화 운동이 보편적인 국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운동의 그러한 자유민주주의적 핵심가치 때문이었다.

그 기간을 통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담론이 점차 자유민주주의 이외의 ‘진보적’인 개념들을 추가해 갔던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이념적인 의미의 ‘민족’ ‘민중’ 같은 개념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유신 말까지만 해도 민주화 운동 주류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전두환 물러가고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울 정도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 자체를 뛰어넘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구호는 단순한 전술적 차원의 소도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 자체만은 부정하지 않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분명히 반영하는 것이었다.

운동 내부에는 물론 1960년대 초부터도 일부 극단적인 분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이름으로, 또는 ‘민족’의 이름으로, 운동을 끊임없이 자기들 쪽으로 견인해 가려는 ‘운동권 내부의 극좌파’가 바로 그 흐름이었다. 그러나 역대 권위주의 정권들의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법정신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확고하게 확립돼 있는 한에는 그러한 극좌 흐름이 운동의 다수파와 사령탑을 완전히 장악하거나, 그것이 운동의 대외적인 공식노선으로 채택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신군부의 정권창출이 만들어 냈던 일련의 비극적인 사태를 고비로 민주화운동은 ‘자유주의, 개량주의 타도’란 문건이 시사하듯, 1980년대 이후 급속도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뛰어 넘는 극좌적 변혁 운동으로 일탈하기 시작했다. 그 운동은 이미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 정의 진보’를 구현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사를 총체적으로 부정하기 위한 본격 마르크스 레닌주의 혁명, 또는 ‘주체사상’ 혁명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운동 내부에는 물론 그렇지 않은 자유주의적, 개량주의적 흐름, 비(非)극좌적 진보의 흐름, 그리고 중도적 민족주의의 흐름 등이 다양하게 혼재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운동의 사령탑 자체는 마르크스파와 주체사상파가 장악했으며, 그들이 운동권 내부에서 일종의 사상검열자로서의 권위와 권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운동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부정하기 위한’ 운동으로 일탈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질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자기들 쪽으로 견인하기 위해 1960년대 초부터 끈질기게 암약해 온 김일성-김정일 수령독재 세력에게는 그야말로 회심의 수확이면서, 반대로, 민주화 운동을 ‘대한민국 헌법정신의 테두리 안에서의 자유 민주 정의’ 운동으로서 추구하고자 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시작한 반독재 운동을 그보다 더한 독재에 빼앗겨 버린’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소련 동구권의 붕괴로 인해 조만간 시대착오로 증명될 수 밖에 없었던 공산주의 혁명 노선으로의 이같은 변질은 “민주화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과 관련해 나를 포함한 우리사회의 적잖은 비극좌적 지식인들에게 심각한 회의와 환멸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민주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참다운 ‘진보’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든 그것은 절대왕정, 군벌통치, 나치스, 파시스트 독재와 양립할 수 없듯이, 그 반대쪽의 스탈린적 전체주의, 1당독재, 수령독재와도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확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민주적 스펙트럼(다소 보수적이든, 또는 다소 진보적이든)에서 維新-新軍部에 반대해 투쟁했다. 그런데 그 투쟁의 주도권이 그 어떤 경위와 이유로든 그보다 몇 배나 더 잔혹한 스탈린적 모델과 金父子 폭정을 추종하는 세력에 의해 장악됐을 때, 우리는 지식인으로서 과연 어떻게 처신해야 옳을 것인가? 나?! ? “그래도 별 수 없이 함께 묻어 갈 수밖에 없다”가 아닌, “이건 아닌데...”라는 입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 민주 정의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고 심지어는 ‘진정한’ 진보의 시각에서 볼 때도, 金父子 폭정이야말로 한반도 최고의 惡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신과 신군부에 대한 대안으로서 ‘위수김동’ ‘친지김동’을 선택한 386을 바라보면서 나는, 자기들이 惡으로 규정한 상대방을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그보다 몇 갑절 더 사악한 악령에 憑衣된 환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악령은 극도의 증오심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악령 아닌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가 “나에게 네 영혼을 팔면 너에게 온 세상의 권세를 주겠다”며 유혹한다.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 광적인 사이비 超人들의 ‘저주의 혁명’ ‘증오의 혁명’ ‘타락한 혁명’ ‘황폐화의 혁명’ ‘학살의 혁명’ ‘수용소 혁명’이었던 것이다.

80년대 중반 이후의 운동기간은 그래서 극좌 ‘증오의 혁명론’이 한국 사회운동의 넋을 잠식한 시대, 한국 사회운동이 美學과 건강성, 인간성을 상실하기 시작한 시대였다고 나는 설정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386 그들도 일종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을 단순한 피해자로만 보아 넘기기에는 그들이 전파한 ‘사이비 진보’의 해악은 이제 인내와 방관의 한계선을 넘어섰다. 그것을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우리 2세 3세들의 행복한 미래는 고사하고, 수도 서울 광화문 한 복판을 ‘남북 련방제’를 고창하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죽봉 시위대가 석권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만큼 우리 청소년들과 일부 대중은 386적인 선전선동이 교육현장과 영상매체, 출판물,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전파하는 허위의 역사관과 사회인식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용출한 것이 바로 감성적 민족주의와 계층문제를 악용한 반지성적 포퓰리즘의 풍조다. 이 풍조는 대한민국을 사대매국으로, 김정일 수령독재를 민족자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신과 반역의 역사로, 따라서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그래서 대한민국은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변혁’으로 止揚돼야 할 나라로 규정하고 있다.

나와 홍진표 씨는 이 대담을 통해 우리 젊은 세대에 주입되고 있는 그러한 역사관과 현실인식은 사실과 진실에 기초하지 않은 기만, 조작, 허위라는 것을 설명하려 했다. 그리고 운동가로서의 자신들의 사상적 편력이 어떤 궤적을 그리면서 젊은 날의 이념적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의 혁신우파, 뉴 라이트 노선으로 진화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난 세월 무엇을 보고 깨쳤는지’를 전하려 했다.

나는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 사이를 오가면서, 그러면서도 광의의 자유주의적 에스프리(esprit)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러나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히 급진적인 청년으로서 감옥에서 어떻게 자신의 무지와 오만함을 자각했는지, 어떻게 인간과 이념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성찰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권위주의에 대한 지성의 반란을 특히 1987년의 6.29 선언 이후로는 더 집중적으로 볼셰비키에 대한 반란으로 표출하게 되었는지를 말하려 했다.

홍진표 씨 또한 자신이 어떻게 주사파 혁명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원의 신분을 청산하고 오늘의 뉴라이트 활동가로 거듭나게 되었는지를 자신의 운동체험과 사상적 편력에 바탕해 고백하고 있다.

이 고백을 통해 나와 홍진표 씨는 우리 현실의 근본문제는 문명사회 일반의 좌-우 이념 대립의 문제이기 이전에, 지성과 반지성, 교양과 야만의 대립임을 설명하려 애썼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우리 현대사의 주요 쟁점들에 대한 구(舊)좌파적, 친북적 왜곡을 반박하려 애썼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우리의 지난 반세기 역사는 여러 부작용을 동반했음에도 불고하고 자유와 개방 지향 대한민국의 성공의 역사였으며, 극좌 전체주의와 쇄국주의와 세습 수령독재를 채택한 북한의 실패의 역사였음을 논증하려 애썼다.

우리는 이 대담을 전교조와 지하서클 선배의 세뇌교육, 그리고 지난 권위주의 시대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이 만들어 낸 일부 젊은 세대의 편향된 현실인식과 역사인식에 대한 일종의 대항적 담론으로 전달하려 했다.

우리는 지난 1960, 70, 80년대를 통해 개발독재가 수반했던 자유 민주 인권의 위축을 묵과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토록 많은 신고와 간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의미 있는 세월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횡취하려는 마피아적 세습 수령독재의 반(反)문명적 폭정에 저항하기 위한 또 하나의 치열한 투쟁에 나서야 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더군다나 우리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후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파시스트적 군중 선동정치를 원용하는 3류-低質 포퓰리즘이 초래한 대한민국 해체현상, 일탈적 민중주의, 김정일 폭정에 ‘코 꿰이기’, 反시장적-反기업적-反개방적 정책으로 인한 新빈곤층 양산, 法治주의 훼손, 4강외교 표류, 국가적 사회적 통합을 깨는 편 가르기 수법, 평준화 교육의 파괴성이 바로 그것이다.

오는 2007년 大選은 이 같은 국가적 황폐화의 지속이냐, 아니면 그 終息이냐를 가름할 한반도 최후의 결전이 될 것이다. 이 결전을 앞에 둔 오늘의 시점에서 나와 홍진표 씨의 대담 ‘지성과 반지성’이 비록 부족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젊은 세대의 올바른 현실인식을 돕는 하나의 조그만 참고자료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2006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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