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세력 비호하는 한명숙

골수 공산주의자 아내가 총리가 되더니 평택 좌익무장폭도들에게 집회허가를 내주도록 경찰에 압력 행사.
한명숙과 스톨리핀 ; 혁명과 개혁



출처: 프리존 강철군화의 어제오늘내일 2006/05/14



스톨리핀의 개혁


망명시절, 레닌으로 하여금 “나는 살아 생전 혁명을 볼 것 같지가 않아”라고 장탄식을 하게 만든 사람이 있었다. 1904년부터 1911년까지 제정 러시아의 총리를 지낸 페테르 A.스톨리핀이 바로 그 사람이다.

스톨리핀은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을 나온 후 내무관료가 된 사람이었다. 그는 사라토브주 지사로 재직하면서 관할 구역 내에서 발생하는 혁명운동에 대해 ‘단호하면서 공정하게’ 대처함으로써 명성을 떨쳤다. 혁명주의자들에 의한 테러 사건이 발생하면 그는 ‘현장 군사법원’을 설치해서, ‘테러에 의해 피살된 사람이 장례식을 마치고 매장되기 전에 테러범에 대한 체포․재판․처형․매장이 끝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절차적 정의’ 내지 ‘법치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초특급 재판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혁명주의자들의 테러로 시끄럽던 당시, 스톨리핀의 혁명주의자들에 대한 무자비할 정도로 단호한 태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런 단호함에 눈에 띠어 스톨리핀은 1904년 국내 치안을 책임지는 내무장관으로 발탁됐고, 제정 러시아가 러일전쟁의 패배와 제1차 러시아혁명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던 1906년에는 총리로 전격 발탁되었다. 그의 나이 44세 때였다.

총리가 된 스톨리핀은 혁명 세력에 대해 무자비하게 대했던 것처럼,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맞섰다. 썩고 무능한 관료들은 물론,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의 고통을 치유하는 신비한 능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황실의 총애를 받던 악명 높은 괴승(怪僧) 라스푸틴도 스톨리핀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이와 함께 스톨리핀은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1861년의 농노(農奴)해방령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도 자기 땅을 갖고 있지 못하던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려 한 것이다. 당시 러시아 농민들은 농노해방으로 신분적으로는 봉건적 질곡에서 벗어났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토지귀족들에게 얽매여 살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들은 체제에 대한 불만세력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레닌 등 혁명세력들도 이러한 상황에 주목했다. 그는 노동자만이 혁명의 주력군(主力軍)이 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교의(敎義)에서 벗어나, 농민들을 혁명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스톨리핀 역시 레닌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스톨리핀의 토지 개혁은 바로 이 잠재적 혁명세력인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자작농(自作農)으로 육성함으로써 농민들을 혁명세력으로부터 격리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을 체제에 대한 충실한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스톨리핀의 토지개혁 정책에 따라 1906~1914년 사이 1200만 농가세대의 약 600만 명의 농민들이 사유토지를 분급받기를 희망한다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적어도 스톨리핀의 개혁이 농민들의 마음을 사는 데는 성공했던 것이다.

레닌은 스톨리핀의 개혁이 갖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는 1908년 “만일 스톨리핀의 이 안(案)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어떠한 농촌개혁도 포기하도록 만들 것이다. 만일 스톨리핀의 정책이 계속된다면, 러시아의 농촌 구조는 완전히 부르주아적이 될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스톨리핀의 개혁이 ‘잘 유지되어 나갈 수 있는 중급(中級) 군주제를 향한 첫 걸음’”이며, “앞으로의 문제는 스톨리핀과 사회혁명 사이의 시간경쟁”이라고 보았다. 스톨리핀의 개혁안이 농민들의 호응을 얻자 레닌은 “나는 살아 생전 혁명을 볼 것 같지가 않아”라고 장탄식을 했다.

일면으로는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스톨리핀은 체제에 대한 위험요소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했다. 1907년 제2대 두마(국회)에 좌익세력이 다수 진출하자 그는 16명의 사회민주당 의원들이 반국가행위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들을 체포하겠다고 국회에 동고하고, 국회의 동의를 요구했다. 국회가 그의 동의요구를 거부하자 그는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실시했다. 이와 함께 스톨리핀은 러일전쟁의 패배를 교훈 삼아 군비확장에 힘썼다.

하지만 스톨리핀은 레닌이 말했던 ‘스톨리핀과 사회혁명과의 시간경쟁’에서 패배했다. 어쩌면 러시아를, 아니 세계를 공산주의의 참화로부터 구할 수도 있었던 스톨리핀의 개혁을 좌절했다. 그를 좌절시킨 것은 다름 아닌 기득권 세력이었다.

짜르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들은 스톨리핀의 개혁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스톨리핀의 개혁은 그들의 기득권에 대한 침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황실과 귀족들의 몰이해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스톨리핀은 1911년 9월14일 러시아 키에프의 한 극장에서 무정부주의자이자, 경찰 프락치인 드미트리 보그로프에게 암살당했다. 황실은 제국을 위해 진력하던 스톨리핀을 위해 단 한 마디의 애도의 뜻도 표하지 않았다. 스톨리핀을 암살한 것은 혁명세력이 아니라 황실과 연계된 기득권 세력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스톨리핀의 암살로 러시아는 스스로 체제를 개혁할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렸다. 스톨리핀이 없는 러시아에 남은 것은 무능하고 부패한 황실과 타성에 젖은 관료와 군대, 그리고 언제든 불만 붙이면 폭발할 수 있는 불만에 가득찬 기층민중들이었다.

결국 스톨리핀이 암살된 지 6년 뒤 로마노프 황가는 2월 혁명으로 무너졌다. 이듬해 7월16일 짜르 니콜라이2세와 그 가족들은 예카테린부르그의 한 건물 지하실에서 볼셰비키 혁명정권의 총살대에 의해 모조리 처형되고 말았다.

스톨리핀은 체제를 지키기 위해 기득권 세력과 혁명세력 모두에게 단호하게 맞섰다. 그는 기성체제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수술하면서도, 체제도전세력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대처했다. 나는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했어도 스톨리핀의 이러한 자세야 말로 ‘개혁’의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반역세력 비호하는 한명숙

한명숙 국무총리가 한명숙(韓明淑) 국무총리가 14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에서 강행하기로 한 집회를 허가하도록 이택순(李宅淳) 경찰청장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한총리는 12일 오후 '미군대책 실무위원회의'가 끝난 뒤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범대위가 평화적 시위를 약속한 만큼 '대추리 집회를 허용하는 방법을 검토해 봐 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청장은 '집회를 허용할 경우 다시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며 집회 불허 의견을 밝혔지만, 총리실은 거듭 집회 허용 방안 검토를 경찰에 요청하면서 경찰청과 범대위 관계자 간의 대화까지 주선했다고 한다. 경찰은 12일 밤 범대위 관계자를 만나 대추리 집회에 대해 의견을 나눴지만, '총리실이 시위대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듯해 답답하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 보도를 접하는 순간, 나는 “가재는 게편”이라는 속담을 떠올렸다.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과 군인들이 좌익세력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는 것을 목도하고서도 노골적으로 범대위의 역성을 드는 한총리를 보면서 나는 김일성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통혁당 사건과, 북한방송을 듣다가 발각된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으로 실형을 살았던 그녀의 전력(前歷)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한명숙의 태도나, 최근 한미관계의 근본적인 변환을 예고한 노무현의 일련의 발언들은 이 정권이 획책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정권은 말끝마다 '개혁'을 이야기 한다.
개혁(改革)이란 원래 ‘가죽 끈을 바꾼다’는 의미이다. 옛날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죽간이나 목간에 글을 쓰고, 이것들을 가죽 끈으로 묶어 책을 만들었다. 이 가죽 끈이 낡으면, 새 가죽 끈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개혁’인 것이다. ‘개혁’의 목적은 책을 계속 잘 보존하는 것이지, 책을 파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체제개혁은 그 체제를 건강하게 잘 보존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개혁을 명목으로 그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틀을 파괴하려 든다면, 그것은 이미 ‘개혁’이 아니라,‘혁명’이고 ‘반역’이 되는 것이다.

건강한 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이 스톨리핀의 경우에서 보듯, 기성체제의 잘못된 부분에 대한 과감한 수술과, 체제도전세력에 대한 단호한 대처이다.

지금 정권은 기성체제의 잘못을 과감하게 수술하고 있는가?

아마 그들은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수술은 자신들에 대한 반대 비판세력에 대한 공격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들이 신악(新惡)을 생산해 내고 있음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본다.

설사 현 집권세력이 기성체제의 잘못을 과감하게 수술하고 있다고 치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도전하는 세력들에 대해 그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한명숙의 경우에서 보듯, 송두율을 위해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까지 발동했던 천정배의 경우에서 보듯, 폭도들과 함께 군경에 맞섰던 임종인의 경우에서 보듯, 폭도들의 죽창 앞에 비무장병사들을 내몰았던 윤광웅의 경우에서 보듯, '김일성-김정일'의 관점에서 남북문제를 보는 이종석의 경우에서 보듯, '가진 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으면서 부동산 관련 발언에서 보듯 자본주의 원리를 부정하는가 하면 명맥한 친북용공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던 노무현의 경우에서 보듯, 노골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을 미화 찬양하는 정연주의 경우에서 보듯,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자들이 득실득실한 민노당과 야합하는 열우당의 경우에서 보듯, 여차하면 5-31선거결과를 검찰권을 동원해 뒤집겠다고 협박하는 정동영에게서 보듯, 과도한 세금으로 국민들의 재산권을 약탈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김병준의 경우에서 보듯, 그들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도전하는 세력의 친구요 동지들이다.

이 나라를 뒤집어 엎으려던 세력들은 국가로부터 보상과 명예를 받는 반면, 이 나라를 피흘려 지킨 서해교전 전사자들의 유가족들은 국가로부터 변변한 대접도 받지 못하면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반도기가 태극기를 대체하고, 행정도시 건설을 빙자한 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좌익단체들을 중심으로 Korea를 Corea로 바꾸자는 운동도 벌어지고, 이는 국호 변개(變改)의 전주곡이나 다름없다.

사유재산권과 자유선거와 법치주의가 위협받고, 국가 상징들이 속속 변개되고, 반역자가 애국자로 둔갑하는 상황, 이것이 혁명 상황이 아니면 무엇인가?

상황은 명백하다. 현 집권세력이 꾀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바로 ‘혁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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