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용서할 수 없는 납치 사실을 알리고 (한국인들이) 같이 손잡고 싸워달라 그런 부탁을 드리고 싶어 왔습니다"
- 1978년 가고시마현 해변가에서 납치된 마쓰모토 루미코씨의 남동생과 언니와의 대담입니다. 이 방송은 20일 저녁 7시, 새벽 2시에 북한으로 송출됩니다.
김성민: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유북한 방송에서 이번에 특집으로 진행하는 일본인 납북자들을 돌려보내라 시간입니다. 오늘은 전 시간에 요코다 메구미의 아버지에 이어서 마쓰모토 테루아키 선생과 히라노 후미코 선생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사실 저희들이 일본인 납치자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껏 줄기차게 해왔지만 테루아키 선생 가족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니시오까 선생이 먼저 개괄적으로 설명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니시오까: 안녕하십니까? 니시오까입니다. 여기에 계시는 마쓰모토 테루아키씨 그리고 히라노 후미코씨는 똑같은 납치 피해자의 가족입니다. 납치 피해자 마쓰모토 루미코씨는 1978년 요코다 메구미 양이 납치된 1년 후에 역시 일본 해변가에서 납치되었습니다. 그때 20대 나이로 이치가 스이치라는 애인과 같이 데이트하다가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현장에 가니까 승용차가 그대로 있고 그 승용차 안에는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카메라 안에는 필름이 그대로 있고 그것을 현상해 보니까 아주 행복한 얼굴로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실종할 이유가 전혀 없었지요. 그런데 일본 경찰은 그때 당시 북한 공작선이 가고시마 가까이에 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2년 후에 일본 경찰 정보에 의해서 산케이 신문이 ‘납치다’라는 보도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그 후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았어요. 때문에 가족 입장에서는 전혀 소식을 모르는 상태에서 20년 지났는데 요코다 메구미양 사건이 일어나니까 요코다 메구미양 가족이 같이 파트너 하자고 해서 가족회를 만들었습니다.
김성민: 그러면 루미코 씨의 동생 분과 언니 되시는 분, 두 분의 소개를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히라노: 저는 1978년 8월 12일 가고시마현 부키하게하마라는 해변가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서 납치되었던 마쓰모토 루미코의 언니되는 히라노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목적은 한국 국민들에게도 이렇게 용서할 수 없는 납치의 사실을 알리고 같이 손을 잡아서 싸워 달라 그런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성민: 예 테루아키 선생 같은 경우는 제가 솔직히 몰랐어요. 납치 피해자의 가족이 아니고 활동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오늘 이렇게 보니까 참 죄송합니다. 피해자의 동생 되신 분이신데 함께 하시는 단체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쓰모토 테루아키: 역시 똑같은 납치 피해자 마쓰모토 루미코의 남동생인 마스모토 테루아키입니다. 1997년에 설립되였던 가족 연합회 발족 당시부터 사무국을 맡아왔습니다. 그때까지는 각 지방에 헤어져 있었던 가족들이 메구미양 사건을 계기로 해서 단결해서 같이 그 주위로 해서 운동을 해 왔었습니다. 모처럼 납치피해자 전원을 구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만은 올해는 2002년 하고 비슷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어서 올해야말로 기대를 가지고 세계 각지를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많은 분들이랑 같이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김성민: 예. 저희들이 단도직입적으로 두 가지만 물어 보려고 합니다. 처음에 동생이 북한에 잡혔다는 그 확증은 어떤 계기로 아셨고요. 그리고 북한에서 사망통보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테루아키: 북한의 납치문제 납치 자체는 78년도에 있었습니다. 그 후 80년도에 일본 신문보도에서 납치일 수가 있다는 보도가 있어서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왜 북한이 우리 누님을 납치해야 되는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납치가 사실이라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납치를 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조금 안심을 했습니다. 그 후 가까운 시일 내에 구출할 수 있다고 처음에는 생각하고 했는데 여태 구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누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지요.
히라노: 사망이라고 통보 받았을 때에는 날벼락이라고 할까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오히려 눈물도 나오지 않고 머리 속이 아주 완전히 하해 졌습니다. 당시 우리 아버님이 말기 폐암으로 앓고 있으셔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님께서 그런 뉴스를 들었을 때 충격을 받으실까 걱정이 되어 기자회견 TV화면을 통해서 “아버지 이건 진실이 아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호소를 했습니다.
김성민: 예 북한의 탈북자 한사람으로서 북한군 전 장교로서 사과를 드려야 될 것 같고요, 이러한 사실들을 북한 주민들이 북한 인민들이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지금 북한 정권은 끊임없이 이런 사실들을 거짓으로 꾸며가고 있는데 알게 된다면 북한 주민들도 양심적 가책을 받아서 우리들의 동지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북한 정권에서 하는 말은 다 반대로 들으시면 됩니다. 저희들은 체험자입니다. 아니다 할 때 맞다고 믿고 우리 그런 거 모른다고 할 때 꼭 납치했다고 믿고 죽었다고 할 때 꼭 살았다고 믿으면 됩니다.
청취자 여러분 저희들은 이 방송을 5월 18일 저녁 19일 새벽에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방송을 틀게 됩니다. 그리고 연이어 이틀 동안을 특집 방송으로 내보낼 것이고 그 이후에도 저희 마쓰모토 테루아키 선생님이나 요코다 메구미씨의 아버님 편지 같은 것들은 주기적으로 계속 보내도록 할 것이고요 이런 방송을 북한 동포들이 들을 수 있겠고 그리고 마쓰모토 루미코를 아는 분들도 꼭 들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반드시 여러분들의 가슴 아픔이 빨리 치유되고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마쓰모토 루미코의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자유북한]
- 1978년 가고시마현 해변가에서 납치된 마쓰모토 루미코씨의 남동생과 언니와의 대담입니다. 이 방송은 20일 저녁 7시, 새벽 2시에 북한으로 송출됩니다.
김성민: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유북한 방송에서 이번에 특집으로 진행하는 일본인 납북자들을 돌려보내라 시간입니다. 오늘은 전 시간에 요코다 메구미의 아버지에 이어서 마쓰모토 테루아키 선생과 히라노 후미코 선생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사실 저희들이 일본인 납치자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껏 줄기차게 해왔지만 테루아키 선생 가족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니시오까 선생이 먼저 개괄적으로 설명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니시오까: 안녕하십니까? 니시오까입니다. 여기에 계시는 마쓰모토 테루아키씨 그리고 히라노 후미코씨는 똑같은 납치 피해자의 가족입니다. 납치 피해자 마쓰모토 루미코씨는 1978년 요코다 메구미 양이 납치된 1년 후에 역시 일본 해변가에서 납치되었습니다. 그때 20대 나이로 이치가 스이치라는 애인과 같이 데이트하다가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현장에 가니까 승용차가 그대로 있고 그 승용차 안에는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카메라 안에는 필름이 그대로 있고 그것을 현상해 보니까 아주 행복한 얼굴로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실종할 이유가 전혀 없었지요. 그런데 일본 경찰은 그때 당시 북한 공작선이 가고시마 가까이에 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2년 후에 일본 경찰 정보에 의해서 산케이 신문이 ‘납치다’라는 보도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그 후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았어요. 때문에 가족 입장에서는 전혀 소식을 모르는 상태에서 20년 지났는데 요코다 메구미양 사건이 일어나니까 요코다 메구미양 가족이 같이 파트너 하자고 해서 가족회를 만들었습니다.
김성민: 그러면 루미코 씨의 동생 분과 언니 되시는 분, 두 분의 소개를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히라노: 저는 1978년 8월 12일 가고시마현 부키하게하마라는 해변가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서 납치되었던 마쓰모토 루미코의 언니되는 히라노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목적은 한국 국민들에게도 이렇게 용서할 수 없는 납치의 사실을 알리고 같이 손을 잡아서 싸워 달라 그런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성민: 예 테루아키 선생 같은 경우는 제가 솔직히 몰랐어요. 납치 피해자의 가족이 아니고 활동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오늘 이렇게 보니까 참 죄송합니다. 피해자의 동생 되신 분이신데 함께 하시는 단체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쓰모토 테루아키: 역시 똑같은 납치 피해자 마쓰모토 루미코의 남동생인 마스모토 테루아키입니다. 1997년에 설립되였던 가족 연합회 발족 당시부터 사무국을 맡아왔습니다. 그때까지는 각 지방에 헤어져 있었던 가족들이 메구미양 사건을 계기로 해서 단결해서 같이 그 주위로 해서 운동을 해 왔었습니다. 모처럼 납치피해자 전원을 구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만은 올해는 2002년 하고 비슷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어서 올해야말로 기대를 가지고 세계 각지를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많은 분들이랑 같이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김성민: 예. 저희들이 단도직입적으로 두 가지만 물어 보려고 합니다. 처음에 동생이 북한에 잡혔다는 그 확증은 어떤 계기로 아셨고요. 그리고 북한에서 사망통보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테루아키: 북한의 납치문제 납치 자체는 78년도에 있었습니다. 그 후 80년도에 일본 신문보도에서 납치일 수가 있다는 보도가 있어서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왜 북한이 우리 누님을 납치해야 되는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납치가 사실이라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납치를 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조금 안심을 했습니다. 그 후 가까운 시일 내에 구출할 수 있다고 처음에는 생각하고 했는데 여태 구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누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지요.
히라노: 사망이라고 통보 받았을 때에는 날벼락이라고 할까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오히려 눈물도 나오지 않고 머리 속이 아주 완전히 하해 졌습니다. 당시 우리 아버님이 말기 폐암으로 앓고 있으셔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님께서 그런 뉴스를 들었을 때 충격을 받으실까 걱정이 되어 기자회견 TV화면을 통해서 “아버지 이건 진실이 아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호소를 했습니다.
김성민: 예 북한의 탈북자 한사람으로서 북한군 전 장교로서 사과를 드려야 될 것 같고요, 이러한 사실들을 북한 주민들이 북한 인민들이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지금 북한 정권은 끊임없이 이런 사실들을 거짓으로 꾸며가고 있는데 알게 된다면 북한 주민들도 양심적 가책을 받아서 우리들의 동지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북한 정권에서 하는 말은 다 반대로 들으시면 됩니다. 저희들은 체험자입니다. 아니다 할 때 맞다고 믿고 우리 그런 거 모른다고 할 때 꼭 납치했다고 믿고 죽었다고 할 때 꼭 살았다고 믿으면 됩니다.
청취자 여러분 저희들은 이 방송을 5월 18일 저녁 19일 새벽에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방송을 틀게 됩니다. 그리고 연이어 이틀 동안을 특집 방송으로 내보낼 것이고 그 이후에도 저희 마쓰모토 테루아키 선생님이나 요코다 메구미씨의 아버님 편지 같은 것들은 주기적으로 계속 보내도록 할 것이고요 이런 방송을 북한 동포들이 들을 수 있겠고 그리고 마쓰모토 루미코를 아는 분들도 꼭 들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반드시 여러분들의 가슴 아픔이 빨리 치유되고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마쓰모토 루미코의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자유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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