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표에 대한 테러는 명백한 '정치테러'-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 수술을 한 의사에 의하면 “상처가 조금만 깊었으면 안면 근육이 완전히 마비되거나 동맥이 끊겨 즉사할 뻔 했다”고 한다.
범인들의 실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범인들이 범행 두 시간여 전부터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체포된 두 명 외에도 네 명이 더 있었으며 이들이 범행 당시 “박근혜를 죽여라”라고 외쳤다는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 그리고 범인들이 <민주주의 지키기 위한 모임>회원이라고 주장했다는 점 등으로 비추어 보아, 정신이상자에 의한 우발적인 범행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지키기 위한 모임>이라는 것이 뚜렷한 정치적 배후나 확실한 이념, 조직으로서의 실체를 가진 조직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정한 정치적 지향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반감을 가진 조직이라면, 이번 사건은 명백한 ‘정치테러’다. 1957년 장면 당시 부통령 저격 사건 이래 근 50년 만에 야당 정치지도자의 생명을 노린 테러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오래전 어떤 코미디언이 법질서도,원칙도 없는 엉망인 상태를 빗 대, “자유당 때~”라고 말하곤 했던 적이 있는데, 그런 시절이 다시 돌아온 셈이다. 훗날 어떤 코미디언은 법질서도,원칙도 없는 엉망인 상황을 빗대 ‘열우당 때~“라고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 정치테러의 시대가 다시 오나? -
박근혜 대표의 피습 소식을 접하는 순간, “이제 우리나라에서 해방공간에서와 같은 정치테러의 시대가 다시 오는 것 아닌가?”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해방공간은 '정치테러의 시대'였다. 고하 송진우, 설산 장덕수, 몽양 여운형, 백범 김구 등과 같은 민족지도자들이 잇달아 비명에 갔고, 좌우익간의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제주폭동을 진압하러 갔던 박진경 연대장이 군내 좌익분자에 의해 암살당한 일도 있었다.
그 시절 암살은 반드시 좌-우익 대결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송진우, 장덕수 선생은 신탁통치 문제 등을 둘러싼 우익 내부의 갈등으로 암살된 것이었다. 북한에서는 토착 공산주의자 현준혁이 암살됐는데, 이는 소련파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이라는 설이 있다.
정치테러 사건은 일제 시대 독립운동 진영 내에서도 비일비재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진영의 통합을 논의하다가 조선혁명당원인 이운한이라는 자의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맨 적이 있다. 청산리 전투의 영우 김좌진 장군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박상실이라는 공산주의자였다.
일제하 독립운동 진영 내에서의, 혹은 좌우익간의 갈등과 테러를 보면, 해방공간에서의 테러와 암살은 이미 일제 시대에 그 싹이 트고 있었던 것이다.
- 정치테러가 내전으로 번진 스페인-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이미 우리 사회가 격렬한 ‘이념적 내전(內戰)’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테러가 무력충돌이 수반되는 진짜 내전으로 가는 도화선에 불을 당기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1930년대 스페인의 경우가 그랬다.
오랫동안 구(舊)제도의 모순 아래서 신음해 왔던 스페인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봉건주의, 전통주의, 가톨릭, 자유주의,무정부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지역주의 등 온갖 사상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독선적이고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국민성이 이런 상황을 부채질했다.
쿠데타와 민중봉기와 탄압이 되풀이 되는 동안, 스페인은 ‘두 개의 나라’로 분열되었다. 왕당파와 공화주의자, 전통주의자와 계몽주의자, 교권주의자와 반(反)교권주의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좌익과 우익 등 스페인의 분열선은 복잡다기했다.
1931년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됐다. 그와 함께 좌익이 정권을 잡았다. 좌익은 토지개혁 등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1933년, 이번에는 우익이 정권을 잡았다. ‘반동’의 물결이 스페인 전역을 휩쓸었다. 아스투리아스 지역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봉기는 ‘죽음만세!’를 외치는 프랑코 장군 휘하 외인부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됐다.
1936년, 총선이 실시됐다. 좌익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신승이었다. 좌익과 우익 모두 각각 450만 표 안팎의 표를 차지했던 것이다. 국회에서 중도파의 존재는 사라졌다. 좌익은 다시 ‘개혁’을 들고 나왔고, 군부에서는 쿠데타 모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1936년 7월12일 좌익민병대 중위 호세 델 카스틸료가 피살됐다. 다음날에는 우익 지도자 카르보 소테로가 암살당했다. 소테로가 암살되자 우익 세력은 노골적으로 군부쿠데타를 선동했다. 그리고 7월18일,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미 갈등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던 상황 아래서 쿠데타는 내전으로 비화됐다. 내전 중 전투행위로 13만 5000명이 죽었다. 공화정부(좌익)측에서 7만4000명, 국민전선(우익)측에서 3만 9000명이 처형-학살됐다. 내전이 국민전선측의 승리로 끝난 후에도 1만5000여 명이 체포되어 처형되거나, 감옥이나 수용소에서 죽었다. 해외 망명자, 실종자, 부상자들까지 포함하면 내전의 희생자는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스페인의 경우, 정치암살에서 내전까지의 거리는 너무나 가까웠다. ‘두 개의 스페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깊은 정치-이념-경제-사회-문화적 갈등을 겪고 있던 스페인에서 일개 좌익민병대 장교에 대한 암살은 바로 우익 정치지도자의 암살로, 다시 쿠데타로, 내전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내전의 전주곡이 아니길...-
물론 여러 갈등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의 스페인과 오늘날의 한국은 여러 가지로 다르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을 잘못 처리한다면, 이 사건은 장차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정치인,언론인,지식인들에 대한 테러가 일상화되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된다면, 우익 세력들도 자위(自衛)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노무현에 대한 패러디를 이유로 독립신문은 득달같이 압수수색하면서, 평택 폭력시위의 주동자들은 하나도 안 잡는 이 정권의 행태로 볼 때, 과연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한 수사가 얼마나 공정하게 이루어질 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이미 정부 스스로도 엄정수사를 다짐하고 있지만, 이 정부가 이번 사건을 정말 철저하게 수사하고 엄중하게 처벌해야만, 이번 사건이 다른 정치적 테러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밤, 이번 박근혜 대표에 대한 테러가 다른 정치 테러, 더 나아가 ‘내전’으로 가는 전주곡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덧붙임) 노무현 정권은 작년 농민폭력 시위 후, 폭력 시위 중 농민이 사망했다는 이유로 경찰청장을 경질했다. 평택 반미(反美)폭력시위 때에는 죽창이나 다를 바 없는 죽봉과 쇠파이프에 군경(軍警)이 얻어맞아도, 경찰은 주동자들을 하나도 검거하지 않았다. 이들 폭력시위 세력들에게는 별의별 희한한 명목으로 정부지원금이 나가고 있고, 폭력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부지원금은 여전히 나갈 모양이다. 정권의 방조 아래 좌익의 폭력에 공권력이 하릴없이 무너지는 이런 상황이, 제1야당 당수에 대한 정치테러의 토양이 됐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정치테러의 시대'가 다시 오는가?
- 강철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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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5-21, 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