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끝내면서
필자는 근대화 혁명가 朴正熙의 생애를 傳記형식으로 기록하는 시도를 지난 9년간 斷續的(단속적)으로 해왔다. 1997년 9월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했고, 2000년부터는 月刊朝鮮으로 지면을 옮겼다. 지금까지 쓴 분량은 350페이지짜리 10권 분량이다. 올해 안에 全10권의 전집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드라마틱한 생애와 거대한 업적으로 인해 한국인으로서 가장 많은 傳記의 주인공이 될 인물이 朴正熙이다. 미국에서 링컨 傳記가 수만 種이 되는 것처럼.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앞으로 나올 그런 수많은 傳記의 첫 작품이란 의미가 있다. 제대로 朴正熙를 쓰는 데는 10권으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오래 살았더라도 회고록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국토를 「내가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했듯이 이 대한민국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회고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전기를 쓰는 가운데 나의 朴正熙觀도 다소 바뀌었다. 10여 년 전엔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초등학생처럼 쓴 유치한 感想文」이란 느낌을 가졌다. 요사이 다시 읽어 보니 「유치함」이 「순수함」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60代 권력자가 어린아이처럼 솔직한 감정을 담아 「유치한」 감상문을 매일 밤마다 쓸 수 있었으니 나는 『朴正熙는 권력으로 부패하지 않은 魂의 소유자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의 최후가 車智澈 같았다면 그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좀 찜찜한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진면목은 죽음의 모습이었다. 인간은 산 대로 죽는다!
傳記 연재는 끝났으나 朴正熙에 대한 나의 탐험은 계속될 것이다. 그의 살아간 모습은 나, 아버지, 삼촌들의 삶이었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민족사의 가장 깊은 고민과 성취를 느껴 볼 수 있는 것이다. 盧武鉉이 오늘날 한국인의 얼굴이듯이 朴正熙는 開發年代 한국인의 얼굴이었다.
연재 기사를 읽어 주신 분들의 격려와 비판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취재에 응해 주신 분들은 이 傳記의 동업자였다. 특히 月刊朝鮮 기자로서 자료 수집을 도왔던 李東昱씨의 역할이 컸다. 朴正熙의 위대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늘에서 떨어진 영웅이 아니다. 李承晩이 깔아 놓은 것들과 全斗煥의 마무리役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기억하는 그런 朴正熙는 없었다.
나의 글을 읽고서 21세기型 朴正熙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朴正熙 전기 연재를 끝내면서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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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5-31, 0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