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에 걸쳐서 지금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적극적인 비호나 방관 아래서 反국가단체인 조총련과 한통련의 북한간첩용의자들이 공개적으로 한국을 드나들면서 6.15 반역선언 기념행사, 민단-조총련 합작 음모를 주도하고 있다. 좌파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검찰과 국정원은 수사하고 감옥에 보내야 할 이런 간첩용의자들의 대한민국 赤化활동에 대해서 전혀 제동을 걸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부와 공안기관이 간첩용의자에게 대한민국 赤化 활동을 보장하고 있는 초유의 사태를 설명해간다.
먼저 월간조선 2004년7월호 기사를 소개한다(필자 吳東龍 기자)
<서울중앙지법 제25형사부(부장 이현승)는 2004년 5월24일 운동권 동향 등을 在日 북한공작원을 통해 북한에 알려 주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閔庚宇(민경우ㆍ39) 통일연대 사무처장에게 국가보안법상 간첩ㆍ회합통신ㆍ자진지원ㆍ금품수수ㆍ찬양고무죄를 적용해 징역 4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1997년 3월부터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이하 汎南本) 사무처장으로 활동해 온 피고인은 1997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3년6개월 刑을 선고받고 1999년8월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閔庚宇는 출소 이후 다시 汎南本 사무처장으로 복직했고, 2002년 3월부터 통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국가보안법上 간첩ㆍ회합통신ㆍ자진지원ㆍ금품수수ㆍ찬양고무 죄를 위반했다. 피고인은 在日 북한 공작원 朴勇(박용ㆍ55)으로부터 활동지시 및 활동자금을 받으며 국가기밀을 탐지ㆍ수집ㆍ전달했다. 朴勇은 이메일과 팩스를 통해 閔庚宇에게 지령을 내렸다>
여기서 문제의 인물 朴勇이 등장한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간첩 민경우에게 돈을 대주면서 간첩행위를 지휘, 조종한 것은 조총련 간부 朴勇이었다. 재판부가 증거력을 인정한 검찰의 공소사실을 보자.
<▲2001년 5월3일=閔庚宇는 朴勇에게 전화로 범민련 10년사 책자, CD와 테이프, 배지, 3대 헌장 기념탑 모형 등을 만들어 보내는 데 500만원, 메모지ㆍ만년필 등을 새로 제작하는 데 500만원이 든다고 재정지원을 요청했다. 閔庚宇는 「민족의 진로」에 대한 재정지원도 요청했고, 朴勇은 권당 가격을 1000원으로 쳐서 月 200부 값 20만원을 예산에 책정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책값이 권당 2000원일 경우는 한 달 100부로 하고, 운송비는 보장해 주겠다』고 했다.
이 약속에 따라 朴勇은 그 후 2000년 통일대축전 제11차 범민족대회 기념 티셔츠 400벌 대금과 재정지원 명목으로 1021만3467원을 범민련 남측본부 재정고문 이○○의 하나은행 계좌로 보냈다. 그때부터 2002년 12월30일까지 이○○의 계좌에는 각종 명목으로 17회에 걸쳐 총 3324만3737원이 송금됐다>
재판부는 朴勇이 북한의 공작원이라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朴勇이 反국가단체인 朝總聯의 정치국 부장이란 것은 확인된 사실이고, 이미 1998년 4월29일 그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한 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閔庚宇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閔庚宇가 접촉한 汎民聯 공동사무국의 朴勇이 북한의 對南공작원이라는 증거가 없고, 閔庚宇는 몰랐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1심 재판에서 변호인 측은 『閔庚宇가 朴勇에게 제공한 정보와 자료가 이미 公知된 것이기 때문에 국가기밀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일부 내용이 언론 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보도되거나 알려지긴 했지만 제한적이고 개략적인 것이었고, 閔庚宇가 朴勇에게 제공한 것처럼 구체적이고 상세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일반인이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수집하거나 知得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공지된 사실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어 『남한內의 통일운동의 상황, 각종 재야단체들의 동향 등에 관한 내용은 反국가단체들에게는 비밀로 하거나 확인되지 않아야 대한민국에 이익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機密로 보호할 실질가치를 갖추고 있다』고 判示했다>
그런데 작년 8월15일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다. 민경우씨가 刑期의 반도 복역하지 않은 상태에서 석방되고 朴勇이 한국에 공개적으로 들어와 親北활동을 한 것이다. 최근 좌익추적전문 金成昱 기자가 펴낸 '대한민국赤化보고서'(조갑제닷컴)의 일부를 인용한다.
<민경우씨는 2003년 말 구속돼 2004년 5월24일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금품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4년, 자격정지3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다.
공안당국과 재판부가「북한 공작원」으로 파악해 온 조총련 對南부서 담당자 朴勇은 2005년 8·15 민족통일대축전 기간 중 公式(공식) 입국했다. 8·15 민족대축전 기간 중 열린 6·15 해외위원회 모임에 사무국장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법무부와 검찰은 한때 朴勇과 범민련 재일조선인연합 의장 임태광의 入國을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결국 허용하게 됐다고 한다. 민경우 前통일연대 사무처장은 지금도 강연을 하고 다닌다. 2006년 2월에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서부터 2005년까지의 좌파통일운동에 대해 서술한 『민경우가 본 통일운동사』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공안기관이 국내의 여러 간첩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朴勇은 최근 있었던 民團-조총련 합작 음모에도 등장한다. 김대중씨와 함께 反국가단체 한민통을 일본에서 조직할 때 그 주모자였고 우리 재판부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공작원이라고 판단했던 郭東儀씨는 2년 전부터 해외민주운동가로 둔갑하여 한국을 자유롭게 방문하고 親北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최근 통일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4월24일 오후5시30분에 민단 김순차 부단장과 강영지 부사무총장겸 기획실장, 두 분이 '6.15공동선언실천일본지역위원회' 사무실로 찾아왔다. 박용 사무국장과 부사무국장인 송세일 한통련 사무국장과 조선오 총련통일부장 세 사람이 받았다. 거기서 민단이 얘기하기를 선처해달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렇게 답했다.
열렬히 환영한다. 민단의 용단에 대해서 깊은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최대한 민단의 입장을 존중해서 최대의 배려를 하겠다. 그리고 이걸 곽의장께 전하겠다>
여기서 朴勇이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6.15실천일본지역위원회는 북한의 對南공작부서와 한국의 親北인사들과 일본의 북한계열(조총련과 한통련)이 주축이 되어 만든 反대한민국 통일전선적 조직인 '6.15민족공동위원회'의 소속 단체이다. 일본지역위원회의 위원장이 反국가단체 한통련의 곽동의씨이고 사무국장이 조총련의 對南공작원 朴勇이란 사실은 몇 가지 사실을 확인시켜주거나 아주 불길한 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첫째, 한통련과 조총련은 다 같이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는 단체이지만 편의상 분리된 체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국내간첩조종혐의자 朴勇이 최근에 있었던 民團-조총련 합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셋째, 民團 지휘부속에는 한통련 출신들이 위장하여 들어가 이번 조총련과의 합작을 주도했다.
넷째, 소위 '6.15민족공동위원회'가 오는 6월15일 광주에서 기념식을 갖기로 했음으로 朴勇은 또 다시 입국하여 反대한민국 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 세력이 일종의 南北좌익反대한민국 연합전선을 만들어 간첩용의자나 북한공작원들을 앞세우고 조총련까지 국내로 불러들여 대한민국 전복활동을 허용하거나 이를 고무하고 있다.
여섯째, 이번 民團-조총련 합작음모는 김정일의 지령을 받는 조총련과 김대중을 지지해온 한통련이 협력하여 민단내로 한통련 계열 인사들을 침투시키고, 노무현 정권은 民團에 대해 조총련과의 합작을 권하는 식으로 공조한 결과물이다.
朴勇 등 김정일의 지령을 받는 간첩조종혐의자가 노무현 정권의 방관 내지 비호 아래서 대한민국에 들어와 대한민국 赤化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이 사실은 정권에 의한 반역이 진행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박용 곽동의의 대한민국 파괴 활동을 비호하는 데 관여한 자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보안법 등 위반혐의로 고발하고 법정에 세워야 할 것이다. 반역을 이렇게 내어놓고 하도록 방치한 정권이나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법으로 응징하고 심판해야 조국이 살고 자유가 지켜진다.
김정일 정권과 死活을 건 대결을 벌이고 있는 한국에 간첩비호정권이 민주 개혁 진보 정권으로 위장하여 존재한다는 증거! 이런 반역사태는 선거를 통해서 법으로 조용하게 진압되든지 그것이 불가능하면 피를 흘려야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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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閔庚宇 간첩사건 內幕
(2004년 7월호 월간조선)
北 간첩線, 한국 최대 좌파 연합체인「통일연대」수뇌부에 침투하다!
이메일로 지령·보고
● 閔庚宇, 조총련 공작원 朴勇으로부터 지시 및 활동자금 3300만원 수수(검찰 공소장)
● 閔庚宇, 2001년 「통일연대」 결성 및 추진과정을 20여 차례 朴勇에게 보고
● 朴勇의 지시로 閔庚宇 「기특한 과자」, 「또라이 부시」, 「Fucking USA」 등 남한內 反美가요 가사를 北측에 전달
● 통일운동가로 위장하려는 간첩에 유죄 선고(서울중앙지법)
●『통일연대는 反美親北 운동을 주도… 朴勇은 국내에 여러 간첩망 운용하는 실력자』(公安 관계자)
李南圭 디지틀 조선 편집위원·前 朝鮮日報 워싱턴 특파원
징역 4년 선고
통일연대 회원들이 지난 6월11일 서울 양천구 목동 「자유북한방송국」을 방문, 방송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25형사부(부장 이현승)는 2004년 5월24일 운동권 동향 등을 在日 북한공작원을 통해 북한에 알려 주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閔庚宇(민경우ㆍ39) 통일연대 사무처장에게 국가보안법상 간첩ㆍ회합통신ㆍ자진지원ㆍ금품수수ㆍ찬양고무죄를 적용해 징역 4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 4월26일 통일연대 閔庚宇 사무처장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1997년 3월부터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이하 汎南本) 사무처장으로 활동해 온 피고인은 1997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3년6개월 刑을 선고받고 1999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閔庚宇는 출소 이후 다시 汎南本 사무처장으로 복직했고, 2002년 3월부터 통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국가보안법上 간첩ㆍ회합통신ㆍ자진지원ㆍ금품수수ㆍ찬양고무 죄를 위반했다. 피고인은 在日 북한 공작원 朴勇(박용ㆍ55)으로부터 활동지시 및 활동자금을 받으며 국가기밀을 탐지ㆍ수집ㆍ전달했다. 朴勇은 이메일과 팩스를 통해 閔庚宇에게 지령을 내렸다.
閔庚宇는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조국통일 3대 헌장(1996년 11월24일 북한의 金正日이 판문점을 시찰하며 제시했다고 하는 북한의 통일원칙), 全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조국통일 3대 헌장 중 하나인 북한의 통일강령), 북한식 연방제 통일방안의 실천투쟁을 전개해 왔다.
검찰 공소장에 의하면, 閔庚宇는 2000년 9월9일부터 2002년 12월30일까지 汎民聯 기념사업비 명목으로 1000만원을 받는 등 朴勇으로부터 17회에 걸쳐 총 3300여만원의 자금을 받았다. 閔庚宇는 朴勇에게 汎南本 사업전반에서 韓總聯 선거결과에 이르기까지 국내 상황을 보고했고, 朴勇은 『조국통일 3대 헌장을 관철시키라』거나, 『諸운동 단체와의 통일전선을 형성하라』는 등 구체적 지시를 내려왔다.
閔庚宇는 2001년 9월3일 林東源(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의 국회해임안 표결결과가 긴급뉴스로 보도되자, 이를 朴勇에게 『148대 119니까 표 차이가 크게 났다』고 보고했고, 朴勇은 『그러면 자민련은 거의 다 찬성했구먼. 알겠어. 한번 위(북한 지칭)의 지시를 보겠다』는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閔庚宇는 2001년 1월22일 통일연대 결성 때도 朴勇으로부터 『통일연대 결성이 웃동네(북한지도부) 관심 사항이니 광범위하게 묶어질 수 있도록 사업하고 제때 제때 상황을 통보하고 정확히 종합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후 閔庚宇는 통일연대 결성 및 추진과정을 20여 차례에 걸쳐 보고했다.
北 통일원칙 선전 위한「3대 헌장탑」모형 北送
閔庚宇는 2000년에서 2001년에 걸쳐 북한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제작을 위한 「옥돌 보내기 운동」을 벌이면서 2000년 6월2일 한총련 75개 단위에서 옥돌값을 모금했다. 閔庚宇는 2000년 11월19일 경희大 범민련 결성 1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며 「金正日의 가르침에 따라 생산현장을 변모시킨다」는 내용의 金正日을 美化하는 북한 영화 및 역대 대한민국 정부를 反통일 매국 정권으로 매도하는 영상물 등을 상영했다.
피고인은 2002년 3월 朴勇에게서 남측에서 불리는 反美 노래를 보내줄 것을 요청받고 「기특한 과자」, 「또라이 부시」, 「Fucking USA」 등의 反美 가요 가사를 보내기도 했다. 閔庚宇가 보낸 이 노래들은 북한 對南 통일혁명 전위기구인 韓民戰 기관지 「구국전선」 473호의 자주민주 통일의 광장란에 對南 선전·선동 자료로 게재됐다.
피고인은 「조국통일 3대 헌장의 관철을 위해」 북한의 통일원칙인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의 모형을 200분의 1로 축소제작해 朴勇을 통해 北送하기도 했다. 閔庚宇가 보낸 기념탑 중 일부는 『탑 모형에 바치신 남측본부 성원들의 통일의지와 지성에 감사한다』는 致謝(치사)와 함께 범민련 북측본부 별실에 전시됐다.
피고인은 2002년 11월24일 홍익大 범민련 12주년 기념대회에서 북한의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북측 주장을 지지하고, 2003년 3월21일 「전국농민회총연맹 통일일꾼수련회」에서 북한의 고려연방공화국을 중심으로 한 연방제 통일방안의 당위성을 선전했다.
법원,「북한은 여전히 反국가단체」
서울중앙지법은 『화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북한이 赤化통일 노선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명백한 징후가 없기 때문에 (북한이) 통일을 위한 협력의 동반자인 동시에 反국가단체라는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朴勇이 反국가단체인 朝總聯의 정치국 부장이란 것은 확인된 사실이고, 이미 1998년 4월29일 그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한 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閔庚宇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閔庚宇가 접촉한 汎民聯 공동사무국의 朴勇이 북한의 對南공작원이라는 증거가 없고, 閔庚宇는 몰랐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1심 재판에서 변호인 측은 『閔庚宇가 朴勇에게 제공한 정보와 자료가 이미 公知된 것이기 때문에 국가기밀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일부 내용이 언론 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보도되거나 알려지긴 했지만 제한적이고 개략적인 것이었고, 閔庚宇가 朴勇에게 제공한 것처럼 구체적이고 상세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일반인이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수집하거나 知得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공지된 사실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어 『남한內의 통일운동의 상황, 각종 재야단체들의 동향 등에 관한 내용은 反국가단체들에게는 비밀로 하거나 확인되지 않아야 대한민국에 이익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機密로 보호할 실질가치를 갖추고 있다』고 判示했다.
閔庚宇는 1983년 서울大 의예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1984년 서울大 국사학과에 再입학해 1989년 졸업했다. 이후 그는 서울 신림동에 있는 「관악청소년학교」에서 夜學교사로 있다가 1991년부터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관악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단체는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 쟁취」를 내걸고 1987년 5월27일 창립되었다. 그 후 그는 몇 개의 유사단체에서 활동하다가 1995년 9월 범민련 남측본부 서울연합의 사무국장으로 선임되었고, 1997년 3월에는 중앙 사무처장이 되었다.
공안 당국에 따르면, 汎民聯은 북한을 축으로 남·북·해외를 연결하는 對南 통일전선 조직으로 북한 노동당 산하 對南공작 부서인 「통일전선부」에서 직접 관장한다. 범민련은 공동사무국 밑에 북측본부, 남측본부, 해외본부(유럽본부, 美洲본부, 일본본부, 중국본부 등)가 있다. 범민련 북측본부의 인적 구성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부부장과 외곽조직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간부진으로 구성돼 있다. 1990년 12월 베를린에서 해외본부가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현재 해외본부는 일본 東京), 북측본부와 남측본부가 각각 1991년 1월 결성됐다.
閔庚宇는 1998년 4월2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6월,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이듬해 光復節 특사로 풀려 나왔다.
閔庚宇, 통일연대 3기 사무처장 선임되자 朴勇과 접촉 再開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閔庚宇는 조총련 중앙본부 정치국 부장이며, 범민련 공동사무국 상근 부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朴勇과 통신연락망을 구축했다. 閔庚宇는 朴勇에게 국내 재야단체 활동사항을 보고하면서 범민련 남측본부 활동을 총괄하고 있었다.
閔庚宇는 석방된 후 2000년 1월2일부터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 복직했고, 2003년 3월14일, 통일연대의 3기 사무처장으로 선임되어 朴勇과 접촉을 재개했다.
2001년 3월 결성된 「통일연대」는 통일운동을 하는 38개의 시민단체 연합으로 출범했다. 이 단체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하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다.
경실련 통일협회, 한국노총, 민변 등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나 현행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돼 있는 한총련과 범민련 남측본부 등 親北 좌파세력이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경찰 공안 관련부서에 근무하는 A씨에 따르면, 『통일연대는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反美親北 운동권 집회를 주도했다』면서 『촛불시위의 발단이 된 여중생 범대위 시위에도 통일연대가 개입했다』고 했다.
A씨에 따르면, 閔庚宇는 남북문제는 연방제 통일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조총련 공작원 朴勇을 통해 북한과 접촉하면서 남한內 범민련 활동을 사실상 지휘한 「총책」이었다.
A씨는 『東京에 있는 범민련 공동사무국에는 사무총장 임민식(덴마크 거주)과 韓統聯에서 파견된 황영치 등이 있지만, 朴勇은 조총련 중앙본부의 對南공작부서인 정치국 부장 겸 범민련 재일조선인본부 사무국장으로 실제로 북측본부와 접촉하면서 全權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閔庚宇는 범민련 사무처장 시절, 在日 북한 공작원 朴勇과 맺어진 것으로 안다』면서 『朴勇은 한국의 재야단체와 여러 線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閔庚宇는 1999년 光復節 특사로 석방된 후부터 2003년 11월1일까지 在日 북한 공작원인 朴勇의 지령에 따라 움직였다. 공소장에 기록된 閔庚宇의 주요 범죄 사실은 이렇다.
이메일로 진행된 공동의장단 회의
▲2000년 6월2일경=閔庚宇는 朴勇으로부터 이메일을 받는 등 접촉을 재개했다. 朴勇은 이메일을 통한 지령에서 「(2000년) 8월의 조국통일 대토론회와 통일대축전 범민족대회 준비사업을 추진하고, 북측 준비위원회 구성에 준해 남측에서도 범민련 중심의 준비위원회를 6월 초에 출범시킬 것」을 요구했다.
▲2000년 8월4일=閔庚宇는 朴勇에게 남북공동선언 관철과 민족의 자주ㆍ대단결을 위한 2000년 통일대축전 선전 세부계획서, 남북공동선언 관철과 민족의 자주 대단결을 위한 2000년 통일대축전 상설마당에 관련한 각 지역 부문 준비지침, 조국통일범민족 경기남부연합 결성선언문 등이 포함된 이메일 「남문서 8-1호」를 보냈다.
▲2000년 8월14일=朴勇은 閔庚宇에게 노동자통일축구에 관한 민주노총과 SBS 사장 간의 협의사항을 즉시 알려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틀 후 閔庚宇는 2000년 통일대축전 진행상황을 알려 주는 답장을 이메일로 보냈다.
▲2000년 11월18일=이메일을 통해 범민련 임시공동의장단 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공동사무국의 朴勇이 송신한 개회선언으로 시작되었다. 남측본부의 개회선언은 이종린 의장대리, 경과보고는 閔庚宇가 했다. 이메일 회의는 범민련의 강령ㆍ규약 개정안을 확정하고, 북측본부가 작성한 기조보고문 낭독 등을 통해 국가보안법 철폐, 미군철수 및 북한의 조국통일 3대 헌장 지지 등을 결의한 후 공동사무국의 폐회선언으로 끝났다.
▲2000년 11월19일=閔庚宇는 서울 중구에 있는 모 출판대행 업체에서 범민련 10년사 150부를 발간해서 범민련 남측본부 회원과 전국연합 등 재야단체 회원, 韓總聯 소속 학생들에게 권당 1만원씩에 판매했다. 이 책은 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고,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과 조국통일 3대 헌장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2000년 11월19일=경희大에서 閔庚宇의 사회로 범민련 결성 1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 모임에서는 金正日의 가르침에 따라 타이어 공장을 변모시킨다는 내용의 북한 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과 범민련 10주년의 역사를 담은 비디오가 상영되었다.
▲2000년 12월23일=연세大에서 범민련 남측본부 임시의장단회의가 열렸다. 의장 이종린 주재로 진행된 이 회의는 2001년도 주요 핵심사업으로 이적규정 철회 및 국보법 철폐를 선정했다. 이 자리에서 閔庚宇는 범민련 공식음반 제작 계획을 제안하여 승인받았다. 이 계획에 따라 그는 이듬해 1월20일 범민련 광주전남연합 前 사무국장이며 민중가요 작사 작곡으로 널리 알려진 박종화에게 공동사무국의 朴勇으로부터 받은 북한가요 CD 및 테이프를 주고 음반을 제작하도록 지시했다.
박종화가 작곡한 노래 중에서 「잡은 손 놓지 말자」, 「한별을 우러러 보네」, 「소풍 갈란다」, 「일심 단결가」, 「하나가 되어」, 「떠난 님을 위한 서시」, 「단이와 결이의 평양 여행」, 「3자 연대가」, 「자주의 길로 나서는 노동자」, 「통일농민가」 등 10곡에다 윤정환(예명 윤민석)이 작사 작곡한 「범민련 진군가」를 추가해서 1차분 CD 및 테이프 각 1000개가 제작되었다. 테이프는 5000원, CD는 1만원씩에 판매됐다.
▲2001년 1월22일=朴勇은 「민주노동당이 차기 대회에 북한의 정당대표를 초청하겠다고 했으나, 공식 초청장이 있어야 해당 정당에서 결정할 것이므로 조속히 답변해 달라는 것」, 「통일연대의 조직이 언제 정식으로 발족되는지 그 추진상황을 알려 달라」는 등의 이메일을 범민련 남측본부로 보냈다.
▲2001년 1월30일=閔庚宇는 이종린과 함께 全農 사무실에서 열린 통일연대 준비위원회에 범민련 남측본부 대표로 참석했다. 그는 여기서 본조직을 늦어도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는 결성해야 하고, 참여연대를 참가시키기 위한 섭외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다. 아울러 못자리용 비닐 보내기운동, 국민 대토론회 등 구체적인 사업을 확정했다.
▲2001년 1월30일=閔庚宇는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서 朴勇에게 전화를 걸어 앞서 보낸 이메일의 수신여부를 확인하고 의견을 물었다. 朴勇은 『잘 받았다』고 하면서 『웃동네(북한)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시로 상황을 통보해 달라』고 했다. 閔庚宇는 통일연대의 진척사항이 있는 대로 남측본부의 의견이나 평가까지 첨부해서 계속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통일연대 결성식
▲2001년 2월23일=在日 범민련 공동사무국을 통해 북측본부의 남측본부 결성 6주년 축사를 팩스로 받은 閔庚宇는 朴勇에게 전화로 수신을 확인했다. 朴勇은 이에 대해 『북측본부 祝辭는 홈페이지에 소개해도 좋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閔庚宇는 『통일연대에서 시민단체를 모두 포괄하는 문제를 토의한 끝에 金正日이 서울에 오면 환영사업은 같이 할 수 있어도 현재로서는 어렵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보고했다.
▲2001년 2월25일=한양大에서 150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 6돌 기념대회가 열렸다. 閔庚宇는 「범민련 특별임시공동의장단회의 기조보고─2001년 범민련운동 방향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30분간 강연을 하면서, 『범민련은 연방통일 조국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全민족적인 운동으로 더욱 확대 발전시켜야 하며, 그 조직은 노동자·농민·청년학생·지식인·종교인 등 각계각층 군중들이 연대 단합해야 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 벌여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1년 3월15일=오후 2시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범민련 남측본부, 전국연합, 민노총 등 31개 단체 회원 250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연대 결성식이 열렸다. 상임대표 천영세(現 民勞黨 원내대표)는 『외세와 분열주의 세력의 방해를 물리치고 6·15 공동선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통일연대의 창립을 선언한다』는 결성선언문을 낭독했다. 천씨는 『金正日의 남한 방문을 기필코 성사시키기 위해 모두 나서자』고 호소했다.
▲2001년 3월12일=범민련 남측본부는 그동안 소식지 형태로 발간해 오던 「민족의 진로」를 월간 기관지로 정기 발행키로 결정하고 閔庚宇는 원고 청탁 건으로 朴勇에게 전화를 걸었다.
朴勇은 『좀더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다른 민주단체에서 범민련 남측본부에 정식으로 가입할 움직임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閔庚宇는 『전국연합이 가입하기 어렵게 되자 전국연합 광주전남연합 자통위원회가 범민련 광주전남연합에 가입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朴勇은 『내부 분열이나 紛糾(분규)가 생길 수 있으므로 가입시키지 말라』고 했다. 閔庚宇는 『공동사무국과의 합의는 존중하지만, 무리하게 막았을 경우 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지역이나 부문의 실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朴勇은 『근본적으로 「변혁」과 「통일운동」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전국연합과 연대연합이나 공동투쟁은 할 수 있어도 가입은 허용할 수 없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2001년 3월21일=閔庚宇는 朴勇으로부터 남측본부 기관지 「민족의 진로」를 북한과 해외 보급용으로 매호 200부씩 보내 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朴勇은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건설에 필요한 돌 연마기와 금강석 톱, 돌가공用 경질 합금 정머리도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요청에 따라 閔庚宇는 「민족의 진로」(통권 34호) 200부를 국제우편으로 朴勇에게 보냈다. 「민족의 진로」에는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 이후 국내외 정세와 향후 통일정세, 범민련 방북대표단 공판투쟁, 좌담 「새로운 높이의 범민련 운동을 위해」, 投獄(투옥)된 동지 소식 등 남한정부를 反민족ㆍ反통일 독재정권으로 매도하는 내용의 글이 실려 있었다.
閔庚宇, 朴勇에게 對南공작금 요청
▲閔庚宇는 3월 정기의장단회의에서 결정된 3대 헌장 기념탑 모형 제작을 총무국장 윤○○에게 지시했다. 윤○○은 이 지시에 따라 경기도 여주군 오학리에 있는 덕명제형과 서당도예에서 300개를 만들었다.
▲2001년 4월27일=범민련 남측본부 인터넷 사이트 「남측본부 소식」에는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의 200분의 1 축소 白磁(백자) 모형을 개당 5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랐다. 5월18일, 閔庚宇는 높이 15cm의 이 모형 10개를 DHL 편으로 東京의 朴勇에게 보냈고, 7월2일에는 10개를 더 보냈다. 이 모형을 받은 북측본부는 『이 모형을 기념탑 별실에 전시하겠다』고 회신했다.
▲2001년 5월3일=閔庚宇는 朴勇에게 전화로 범민련 10년사 책자, CD와 테이프, 배지, 3대 헌장 기념탑 모형 등을 만들어 보내는 데 500만원, 메모지ㆍ만년필 등을 새로 제작하는 데 500만원이 든다고 재정지원을 요청했다. 閔庚宇는 「민족의 진로」에 대한 재정지원도 요청했고, 朴勇은 권당 가격을 1000원으로 쳐서 月 200부 값 20만원을 예산에 책정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책값이 권당 2000원일 경우는 한 달 100부로 하고, 운송비는 보장해 주겠다』고 했다.
이 약속에 따라 朴勇은 그 후 2000년 통일대축전 제11차 범민족대회 기념 티셔츠 400벌 대금과 재정지원 명목으로 1021만3467원을 범민련 남측본부 재정고문 이○○의 하나은행 계좌로 보냈다. 그때부터 2002년 12월30일까지 이○○의 계좌에는 각종 명목으로 17회에 걸쳐 총 3324만3737원이 송금됐다.
▲2001년 8월11일=閔庚宇는 서울 자택에서 朴勇에게 전화를 걸어 8·15 민족통일대축전 추진본부 명단과 참가자 명단을 보낸다고 하면서, 정부에서 이들의 訪北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북측이 남측 단체를 개별적으로 초청하지 않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월16일 朴勇은 이 행사에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이종린과 韓總聯 이용헌 조통위원장 등 3명의 訪北이 불허된 것을 규탄한다는 이메일을 보내고, 평양행사의 상황을 알려 주었다.
▲2002년 3월=閔庚宇는 「민족의 진로」 통권 36호 200권을 東京의 공동사무국으로 보냈다. 그가 위원장을 겸직한 정책위원회가 기고한 통일논단 「6·15선언 지지세력이 승리하는 大選으로」는 『남측에서 자주적인 민주정부가 수립되려면 反美자주화를 주선으로 하는 자주화 운동이 강력히 전개되어야 하고, 親美 보수세력을 타격하는 투쟁이 보조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특한 과자」는 부시의 목에 걸린 과자 프레츨을 노래한 것
▲2002년 3월5일=閔庚宇는 朴勇으로부터 북측이 남쪽에서 불리고 있는 「기특한 과자」와 「여성은 꽃이 아니야」라는 노래의 가사와 악보를 속히 보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2002년 3월8일=閔庚宇는 朴勇에게 전화를 걸어 「여성은 꽃이 아니야」라는 노래는 없지만, 「기특한 과자」와 「Fucking USA」라는 反美 노래는 있다고 알려 주었다. 朴勇은 그 노래 가사와 악보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기특한 과자」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맥주 안주로 인기 있는 프레츨을 먹다가 목에 걸려 졸도했던 일을 풍자한 운동권 가수 윤민석의 노래다. 「Fucking USA」 역시 그의 노래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미국 선수 오노에게 금메달이 돌아갔던 일 등을 소재로 해서 미국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2002년 3월14일=범청학련 남측본부는 범청학련 임시공동사무국과 북측ㆍ해외본부 앞으로 메일을 보내 「기특한 과자」와 「또라이 부시」, 「Fucking USA」 같은 反美 투쟁가요를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북한의 對南 통일혁명 전위기구인 韓民戰 기관지 「구국전선」은 2002년 4월1일 이 노래를 실어 對南 선전 자료로 이용했다.
간첩이 「통일운동가」로 행세
▲2002년 4월=閔庚宇는 「민족의 진로」 통권 37호 200권을 朴勇에게 보냈다. 이 간행물에는 訪北대표단의 金日成 백두밀영 방문기와 남측본부 정책부장 한현수의 「통일논단」, 「범국민적 통일운동을 향한 모색」등이 실려 있다. 閔庚宇는 「통일정세: 大사변기를 내포한 2002년 우리 민족끼리로 돌파해야」에서 『反통일 수구세력의 사상적 지반인 親美反北 대결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면서 『反美 자주화 투쟁을 대중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1심 재판에서 『閔庚宇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부총장 朴勇과의 사이에 범민련 업무에 관한 연락을 주고 받은 것일 뿐 指令(지령)을 수수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은 朴勇이 反국가단체인 조총련의 구성원임을 알고서도 그의 부탁을 받고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범죄사실 기재 사항들을 탐지ㆍ수집ㆍ전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피고인이 朴勇의 부탁을 받아 위와 같은 내용을 탐지 수집하여 그에게 전달한 것은 그의 지령에 따른 것이라 할 것이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제3조)의 적용대상」이라는 피고 측 주장에 대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규정하는 교류ㆍ협력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에 관해서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적용돼야 한다』면서 『피고인이 朴勇에게 통일연대의 조직체계, 출범시기, 국내 사회단체의 입장 등 그 결성추진과 관련된 세부사항 등을 전달한 행위가 남북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경찰 對共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A씨는 『최근 사회 분위기가 왼쪽으로 옮아 가면서 親北 左翼 세력들이 「통일운동가」로 행세하고 있다』면서 『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조차도 폐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는 『閔庚宇가 통일연대 결성과정을 在日 북한공작원 朴勇에게 보고했다는 것으로 미뤄 北이 통일연대 결성에 어느 정도 개입했을 개연성이 있다』면서 『현재 남한에서는 운동권 세력의 무게 중심이 「범민련」에서 「통일연대」로 옮겨 갈 만큼 통일연대의 활동이 왕성하다』고 했다.●
◈ 통일연대, 자유북한방송 중단 요구 시위
통일연대가 지난 6월11일 오전 서울 목동 「자유북한방송국」(www.freenk.net)을 방문해 방송중단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자 방송국 측은 『金正日이 지령을 내린 행동』이라며 자신들이 입수한 「金正日 지시내용」을 공개하며 맞섰다. 양측은 이날 비하발언이 오가고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金聖玟(김성민ㆍ41) 자유북한방송국 대표가 머리를 심하게 다쳐 구급차에 실려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상열씨를 주축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대학생 회원들과 함께 항의 방문한 30여 명의 통일연대 측은 『북한을 비방하는 방송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최근 남북장성급 회담내용 등 남북화해와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자유북한방송과 같은 北 비방 방송국이 생겨 민족화합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면서 『이 방송은 6·15공동선언의 기본 이념인 「우리 민족끼리」를 배반하고 있고, 민족의 화해를 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연대의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자유북한방송 측 10여 명은 북한 어린이들의 굶주린 모습과 金正日의 사진 등을 펼쳐 들고 『너희는 金正日의 지령에 의해 왔느냐』, 『北에서 한 달만 살아 보고 와서 말해라』, 『엄마가 내 앞에서 죽어가는데 썩은 물조차 먹일 수 없었다. 당신들이 그 심정을 아는가? 그걸 당해 봤나?』라고 소리치며 흥분했다.
자유북한방송 측은 이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金正日의 지시내용」이라고 밝힌 유인물을 나눠 주며 통일연대 측이 金正日의 지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북한방송 아나운서인 정주하씨는 『겉으로는 金正日의 일을 하고 있지만, 속내는 우리 편인 사람이 중국을 통해 우리에게 金正日의 지시내용을 넘겼다』면서 『이 지시내용을 보면 金正日은 「한국에 있는 3者를 동원시켜서 우리를 없애 버리라」고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자유북한방송이 金正日의 지시내용이라고 밝히면서 공개한 내용 전문이다.
● 金正日의 지시내용
최근에 남조선으로 도피한 사람들 중 우리 당에서 지키려는 혁명의 붉은 기를 지키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도피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어려운 점을 참지 못했거나 중국으로 건너가 생활거처를 찾지 못하게 되여 남조선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의식적으로 당을 배반한 자들이 남조선 추종자들과 함께 그 무슨 방송을 통하여 우리 당을 헐뜯으려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는 자들 속에는 반드시 주동분자가 있을 것입니다. 해당부문에서 보고한 데 의하면 황장엽이 남조선 당국자들과 함께 추종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 인민들이 용서치 않습니다.
해당부서에는 이러한 방송 장난을 하려는 자들만은 용서치 말아야 합니다. 인민의 이름으로 응당한 징벌을 안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경계할 것은 절대로 우리 사람들이 직접 나서지 말고 삼자들을 동원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말밥에 오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4년 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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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大中의 正體'(조갑제, 조갑제닷컴) 인용
<駐日대사관의 영사 증명 보고서는 金大中씨와 협력하여 韓民統 일본본부를 조직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던 郭東儀, 裵東湖, 金載華는 조총련의 조종을 받는 북한 간첩이나 하수인들이라고 기록하고 이들의 신상 정보를 자세하게 실었다.
郭東儀는 광복 직후 「남로당에 가입 활동하다가 1948년 12월 남해군 인민위원장 박종환의 지령에 의해 밀항 渡日」했다고 한다. 그는 리츠메이칸 대학에 재학중이던 1950년 9월경 조총련 요원에게 포섭되어 「재일 학도의용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하여 작전 방해 공작 후 월북하라」는 지령에 의해 입대했다고 한다. 그는 부평 미군 탄약 중대에 복무중 기회를 잡지 못해 同 부대에서 탈영하여 再밀항 渡日했다고 이 보고서는 기록했다.
곽동의는 1960년경부터는 조총련으로부터 月 10만 엔의 보수를 받으며 民團 조직 와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70년 4월경 북한 간첩 윤효동에게 포섭되어 북괴 공작선편으로 입북, 간첩 교육과 민단 파괴, 대남 공작 지령을 받은 후 同年 5월에 귀환한 그는 조총련 부의장 김병식으로부터 민단 와해 및 대남공작 자금으로 5000만 엔을 받았다는 것이다.
「郭東儀는 1973년 7월13일부터 8월4일 사이 배동호, 조활준, 김종충 등을 조종하여 金大中과 한민통 일본본부를 결성하도록 하고 자신이 同 조직국장에 취임하였다. 1977년 8월13일 조총련 중앙본부로부터 그간 한민통이 조총련의 의도대로 효과적인 反韓 활동을 전개하여 왔고 북괴가 의도하는 민주·민족통일 해외 한국인 연합을 결성하여 연대 투쟁 체제를 구축하는 데 공헌한 대가로 특별자금 5000만 엔을 받아 개인 주택 구입에 사용함으로써 비난을 받은 사실이 있음」>
맹활약중인 간첩朴勇의 후견자는 누구인가?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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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5-31, 1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