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 6월 5일 천안문사태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려는 군의 전차를 몸으로 막아 세운 왕웨이린의 모습. AP통신이 찍은 이 사진은 전 세계로 보도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 민주화 운동인 6·4 천안문(天安門) 사태 때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 민주화 항쟁의 상징 인물이 됐던 왕웨이린(王維林·가명)이 대만에 생존해 있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4일 보도했다. 명보는 “왕이 천안문 사태 직후 동료들의 도움으로 3년7개월간 은신해 있다가, 체포망을 피해 홍콩을 거쳐 대만으로 피신했으며, 현재는 타이베이(臺北) 고궁(故宮)박물관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천안문 사태란 1989년 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졌던 대학생·시민의 민주화 요구를 그해 6월 4일 공산당이 군대를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수백~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죽었다.
왕은 6월 5일 천안문 광장으로 진주해 들어오던 4대의 탱크를 맨몸으로 막았고 이 모습이 전 세계에 보도됨으로써, 국내외에 중국 민주화 항쟁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인물. 천안문 사태가 끝난 뒤 그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자, 한때 인민해방군에 끌려가 타살되었다거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밀명으로 체포돼 처형당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왕은 원래 고고학자로,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의 고대 고분 마왕퇴(馬王堆·전한기 귀족 부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으로, 당시의 악기와 칠기, 직물 등이 출토됨) 발굴단 현장 책임자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에서 결혼한 그는 “나의 처지를 공개함으로써 당시 외쳤던 민주와 자유의 이상을 중국 인민들에게 다시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천안문 사태 17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29일 희생자 유족인 ‘천안문 어머니회’가 당국에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요구했으나, 당국은 이를 일축하고 있다. 중국은 또 인터넷에서 ‘류쓰(六四·천안문 사태), 민주, 자유’ 등의 용어 검색을 차단하고 있다.
반면 홍콩에서는 지난달 28일 1000여명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천안문 사태 재평가를 요구하는 가두행진을 했고, 4일 저녁 8시 빅토리아 공원에서 17주년 기념 촛불시위를 벌였다.
홍콩=송의달특파원 edsong@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