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정의 원초적 본능

도심을 붉게 뒤덮는 그런 애국심이라면 왜 북한동포에 대한 동정심으로 전환되지는 않는가.
서울역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거리는 이른바 한국의 권력축이다. 요사이 이쪽 길로 들어서면 양쪽 건물 벽면에 걸린 시뻘건 월드컵 선전물이 시야를 압박한다. 동시에 열개도 넘는 그림이나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시뻘건 색깔이라 더 눈을 자극한다. 좋은 것도 지나치면 나쁜 것이 된다는 예가 이런 경우일 것이다.

월드컵 응원 선전물을 달지 않으면, 월드컵 응원 셔츠를 입고다니지 않으면 친일파나 역적으로 몰린다는 강박관념에 걸린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서울인가? 이런 민족적 자부심이나 애국심이 왜 가축처럼 굶어죽고 맞아죽고 있는 북한동포들에 대한 동정심으로 전환되지 않는가. 이런 열정이 왜 김정일 타도로 가지 않는가. 이런 열정이 왜 민족의 원수 김정일을 추종하는 부패하고 악랄한 좌파들에 대한 행동으로 전환되지 않는가. 이런 열정과 애국심이 왜 대한민국의 약점과 과거를 캐러다니는 자들에게는 향하지 않는가.

균형감각이 사라진 흥분과 열정은 소모적이다. 이성에 의해서 절제되지 않는 감성적 에너지는 비생산적으로, 때로는 파괴적으로 소진된다. 광화문 거리를 덮은 태극전사들 응원 선전물 사태 속에서 한 두 개쯤은 이런 구호가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김정일을 타도하고 북한동포 구출하자'
'북한동포 외면하는 노무현은 각성하라'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미워하는 노무현을 미워한다'
'간첩 없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이런 이성적 구호가 없이 온통 붉은색으로 도배된 서울의 심장부를 걸을 때 느끼는 감정은 민족감정에 기초한 '원초적 본능'이다. 브라질과 우루과이가 월드컵에서 우승했다고 일류국가가 되지 못한 것처럼 월드컵 선전물을 경쟁적으로 내거는 것이 한국인의 교양과 시민윤리를 高揚시키는 것은 아니다. 생각하는 국민이 되자. 월드컵 흥분은 지나치다. 그 중 10분의 1은 북한동포들에게 떼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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