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역전승한 히딩크 감독의 추억

맞은편 자리에 있던 히딩크 감독은 책을 펴놓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만년필로 한 문장을 써서 돌려주는 것이었다.
방금 끝난 월드컵 축구 호주-일본 對戰에서 히딩크 감독이 지휘하는 호주팀이 3-1로 역전승했다. 승리의 어퍼컷을 날리는 히딩크를 보면서 나는 2년 전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서 만난 그를 떠올렸다.

필자가 소속된 尙美會여행단(02-734-1245) 30여명은 2004년 3월 말 전자회사 필립스의 고향인 네덜란드의 공업도시 아인트호벤에 가서 이 도시 축구팀 감독인 히딩크 부부를 만나 아인트호벤 스타디움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일행중 20명 정도가 미리 갖고 다니던 축구 공과 티 셔츠 등에 히딩크의 사인을 받았다. 일행중 한 분은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기념관에서 산 책을 내밀면서 사인을 부탁했다.

나의 맞은편 자리에 있던 히딩크 감독은 책을 펴놓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만년필로 문장을 써서 돌려주는 것이었다. 내가 보니 그 내용은 「귀하가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역사의 아주 심각한 부분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였다. 안네 프랑크 가족 등 많은 유태인들이 네덜란드 사람들의 密告에 의해 나치에 끌려가 희생되었다는 점에 대한 이 나라 사람으로서의 반성이 담긴 글이었다. 그냥 습관적으로 사인을 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깊이 한 다음 의미 있는 글을 써준 히딩크 감독의 人格에 새삼 느끼는 바가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다. 표현이 절제되고 정확하다. 이것은 그의 정신력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처럼 속이기 어려운 민족도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한국 사람들처럼 속이기 쉬운 민족도 드물 것이다. 이성적인 민족과 감성적인 민족, 실용적인 민족과 관념적인 민족의 차이라고나 할까.
식사시간에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단을 맡아보니 한국 사람들의 본성을 알 수 있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잘할 때와 못할 때의 격차가 매우 커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날 히딩크 감독은 우리 여행단을 아인트호벤 축구장으로 안내해주고 다음날 경기에 초대까지 해주었다. 그는 '내일 게임엔 여러분을 위해서 박지성과 이영표를 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프랑스 팀과 한 경기였는데 두 한국 선수가 맹활약한 이유도 있고 해서 아인트호벤이 3-0으로 이겼다. 히딩크 감독의 배려가 고마왔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세기' 때 네덜란드의 선원 박연, 하멜 등이 한국에 표착하여 한민족과 처음 접촉한 서양인이 되었다. 이런 좋은 인연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히딩크 감독의 호주가 이번 월드컵에서 2002년의 한국팀처럼 활약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늘 시합에서 일본이 졌지만 깨끗한 플레이가 돋보였다. 호주팀도 당당하게 했다. 승패에 관계 없이 재미 있는 게임이 되었다. 누가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당하고 깨끗한 플레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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