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槿泰 의원의 세 兄은 북한에 있다"

정부기관의 정보파일 내용: '숙모, 숙부도 월북'
*아래 글은, 2004년3월호 월간조선에 실렸던 '노무현 정부의 레프트 코드'란 제목의 기사중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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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당 원내 대표 金槿泰 의원의 아버지는 교장선생이었다. 그는 5·16 군사혁명 후 강제로 교직을 떠났는데 그 충격으로 심장판막증에 걸려 사망했다. 金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그의 약력과 경력, 그리고 교장선생이었던 아버지의 삶이 소개돼 있는데, 유독 형제들 이야기는 빠져 있다. 형제들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하자, 金대표는 『알아서 쓰라』며 고사했다.

정부 기관에서 작성한 「金槿泰 신원 및 배후 사상관계」 파일에 따르면, 그의 큰형은 서울大 미대 출신으로 6·25 당시 金日成 초상화를 제작한 후 越北했다. 둘째 형 역시 越北 후 평성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등중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셋째 형은 의용군으로 越北해 교육성 장학사를 거쳐 통일전선부 對南 공작원으로 선발되었다고 한다.

그의 숙부는 越北 후 인민경제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성 부국장을 역임했으며, 숙모는 6·25 때 월북했다고 적혀 있다.

金대표도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아 1988년 가석방되었고, 1990년에는 全民聯 결성 선언문 작성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 파일에 따르면, 1973년 북한 對南 공작부서에서 교육성 장학사로 있던 金대표의 셋째 형을 남파시키려 했으나 金正日이 중지시켰다는 첩보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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