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민주화세력이라고??

박상학 국장은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아니 「경찰들이 나 같은 탈북자 한 명 죽이는 것은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하더군요.
입원 중인 박상학(朴相學)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북한서 김책공업대학을 졸업한 박상학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박광일 전도사(탈북민), 최우원 부산대 교수, 홍정식 활빈단장, 황재학씨 등과 함께 南北장관급회담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벌이다 12일 오후 경찰에 강제 연행됐었습니다.

朴국장 일행은 南北대표단 숙소인 부산 웨스틴조선호텔 로비에서 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성명서를 낭독했는데, 『호텔영업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해운대 경찰서에 끌려갔습니다.

朴국장은 강제 연행 과정에서 목뼈에 전치3주의 부상을 입고 기브스를 하는 등 심하게 다쳤습니다. 경찰서 안에서 밤새 복부 통증을 호소하며 피를 토하기도 했죠.

朴국장은 서울서 내려간 국민행동본부 서정갑(徐貞甲) 본부장 및 부산서 활동 중인 김광일(金光一) 변호사 등의 도움으로 13일 오후 5시경 풀려났습니다. 감금된 지 30여 시간 만이었습니다.

풀려난 후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목뼈 이외 또 다른 상처와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朴국장은 14일 서울로 돌아와 전치3주의 진단을 다시 받았습니다. 목 말고 왼팔까지 기브스를 한 것입니다.

그의 상해진단서에는 복잡한 病名이 적혀있었습니다. 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염좌』, 피를 토하는 증상인 『토혈』 , 경찰에 내동댕이쳐지면서 생긴 『뇌진탕』이라는 단어가 보였습니다. 『위장출혈이 의심돼 미확인 질병, 합병증상이 발생되면 추가 진단이 요구 된다』고도 적혀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전치3주 이상의 치료가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상처 원인은 『구타에 의한 외상』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朴국장을 직접 만나 전해들은 경찰의 행태는 그야말로 엽기적(獵奇的)이었습니다. 朴국장이 경찰서에 끌려와 고통을 호소하며 입원시켜 줄 것을 호소할 때마다 『조사받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며 이를 묵살했습니다.

잡혀온 지 두 시간 만인 12일 오후 4시경 상태가 심각해지자, 경찰은 경찰서 인근 병원에서 진통제 주사 두 방을 놔 줬습니다. 하지만 朴국장은 주사를 맞은 후 통증과 피로가 겹치면서, 병원서 실신해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환자 양 팔을 잡고 질질 끌면서 경찰서로 다시 데려왔습니다. 朴국장과 함께 입건된 이들이 『사람은 살려놓고 보자』며 朴국장을 입원시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경찰들은 『조사받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합니다.

새벽2시경 경찰들은 朴국장 일행에게「병원에 가자」며 지하에 있는 유치장(留置場)으로 데려가 감금했습니다. 구속을 한 것입니다. 난동을 부릴까봐 거짓말까지 했고요. 朴국장은 통증이 겹치면서 유치장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실신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심장을 누르고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이 장면을 활빈단 홍정식 단장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어놓았는데, 경찰들은 들어와 카메라를 압수한 뒤 아무런 조치 없이 그냥 나가버렸습니다.

급기야 朴국장은 새벽2시를 넘어가며 피를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들의 「엽기(獵奇)행각」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환자를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유치장에 들어와 피만 닦고 나가버린 것입니다.

같이 잡혀 온 최우원 교수 등 주변 분들이 「너희들 정신이 있는 거야? 여기가 대한민국 맞아?」라고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경찰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소동을 피우자, 그제 서야 「병원에 데려 가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경찰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병원 갈 돈이 없다」고 말했답니다. 결국 催교수님 신용카드를 빌려 병원으로 가게 됐는데, 수사과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소리 질렀습니다.
『수갑을 채워 끌고 가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朴국장은 전날 진료를 받은 병원으로 옮겨졌고, 입원시켜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경찰과 이야기를 나눈 의사들은 진통제인지 진정제인지 모를 주사만 맞히고 돌려보냈습니다. 새벽 3시경 유치장에 돌아온 朴국장이 통증을 다시 호소하자, 경찰들은 같은 병원에 데려가 주사를 맞힌 뒤 유치장으로 돌려보내기를 계속했습니다. 오전 7시경 朴국장이 통증과 스트레스로 유치장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자해를 시도하자, 경찰들은 진통제주사를 다시 맞췄습니다.

항의를 하면 병원에 데려가 주사를 맞히고, 맞고 오면 맥이 풀렸습니다. 한두 시간 지나 말을 다시 하면 주사를 또 맞혔습니다. 朴국장은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아니 「경찰들이 나 같은 탈북자 한 명 죽이는 것은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하더군요.

경찰들이 朴국장 일행을 구속한 사유는 업무방해죄였습니다. 그러나 부산에서 朴국장 사건을 의뢰받은 김광일(金光一) 변호사(前 대통령비서실장)는 『박상학 국장은 죄가 안 되는 것이 명백한데도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고, 불법으로 구금한 뒤, 가혹행위를 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특정다수가 드나드는 호텔로비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어떻게 업무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는가? 최고책임자인 부산경찰청장 및 그 지휘체계에 있는 인물들을 상대로 고소장을 작성 중이다. 경찰은 죄 없는 박상학 국장을 不法的으로 연행, 구금하고 가혹행위 및 폭력행사를 한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한마디로 죄 없는 사람을 잡아다가 때리고, 던지고, 온갖 가혹행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민주화세력이라는 자들의 特命을 받고서 말입니다.

朴국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북좌익들에게 죽창, 쇠창으로 찔리는 경찰들이 김정일을 비판하는 애국세력에게는 혹독하기 짝이 없더군요. 盧武鉉 정권의 경찰들은 평양 안전원보다 더 잔인하고 잔혹했습니다 이제 김정일을 비판할 자유도 빼앗긴 것입니까?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아픕니다. 自由를 찾아 왔는데...自由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고 死地를 넘어 여기까지 왔는데...』

감정이 북받친 朴국장은 끝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평소 朴국장을 알고 있는 저는 그의 의협심(義俠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유를 찾아 南으로 왔음에도, 돈이나 명예 대신 북한동포를 구출하겠다는 의로운 마음으로 인권운동을 벌여왔습니다.

공산독재 치하에서 반세기 이상 고통 받아 온 2000만 동포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朴국장 같은 이들에게 빚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남한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짓거리를 보십시오. 교활(狡猾)하고 비열(卑劣)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욕하지만, 惡의 질량(質量)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절대적(絶對的)입니다. 사악한 독재자 김정일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더러운 음모와 술수를 서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인권(人權)과 자유(自由)를 말하며 국가에 회칠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人權이란 결국 김정일과 주구(走狗)들의 인권이요, 自由란 공산통일의 자유였단 말입니까?

저는 대한민국에서 정상적 사고를 하는 우파, 보수세력이 할 첫번째 일이 바로 경찰의 朴국장 不法감금·폭행사건을 진상규명하고 책임자처벌을 촉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더 아프다는 朴국장의 한 마디가 가슴을 찌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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