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행 北계좌로 들어간 現代 자금 내막

김대중 정권의 對北불법송금 사건은 결국 김정일의 비자금 계좌를 노출시켜 김정일의 목을 조르도록 한 셈이다.

趙甲濟 기자가 쓴 '金大中의 正體' 276페이지엔 김대중 정권-현대그룹에 의한 對北송금사건에 관해서 중대한 정보가 소개되어 있다.
<현대상선이 조성한 2억 달러 가운데 국정원 직원 김00의 명의로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 계좌주 DAESUNG BANK로 송금한 4500만 달러가 실제 계좌주인 DAESUNG BANK-2와 일치하지 않아 송금처리 되지 않은 송금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권의 지휘하에서 현대상선이 조성한 불법자금을 김정일 정권으로 송금할 때 송금 실무책임자인 국정원이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내에 있는 북한노동당 39호실 산하 대성은행 명의의 계좌로 돈을 보냈다는 요지의 이 정보는 물론 2003년 검찰이 밝혀낸 부분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39호실이 관리하는 김정일의 비자금이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 계좌에도 들어가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對北금융제재를 발동시킨 것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이 김정일의 불법자금을 관리해왔기 때문인데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국은행도 김정일의 계좌를 안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은, 김정일이 마카오 등지의 은행에 갖고 있었던 계좌는 범죄자금 세탁, 위조달러 유통에 이용된 것이라고 규정하여 이런 계좌를 열어놓은 은행에 대해서는 미국 금융기관이 거래를 해선 안된다는 행정명령을 내려놓고 있다. 미국은 증거가 분명하게 드러난 방코델타아시아 은행만 표적으로 삼아 이 명령을 시행하여 북한정권을 벼랑으로 몰았다.

미국은 중국은행에 그런 행정명령을 적용할 경우 중국의 외환업무를 거의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이는 美中 사이의 정면대결을 부를 것이므로 신중하게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국도 미국이 중국은행과 북한정권과의 거래 사실을 조사하여 약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이번 유엔안보리의 對北제재안 표결 때 미국에 도전하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對北불법송금 사건은 결국 김정일의 비자금 계좌를 노출시켜 김정일의 목을 조르도록 한 셈이다. 이는 김정일의 自業自得이고 김대중의 반역이 부른 逆효과이다.

미국이 중국은행과 북한정권의 거래를 조사하면서 김대중이 지시한 현대그룹의 송금을 알았을 것이고, 이 돈이 어떻게 쓰였는가도 알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군통수권자가, 교전중인 상대방 敵將의 비자금을 몰래 보태준 희대의 반역사건 드라마는 아직도 막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오늘 문화일보는, 유엔 안보리 對北결의안 통과후 對北제재협력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테러리즘 및 금융범죄 담당 차관이 18일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개성공단의 임금 및 금강산 관광비용으로 북한에 유입되는 달러가 미사일 및 대량살상무기(WMD) 개발비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국방부 산하 한국 한국 국방연구원의 성채기, 박주현, 백재옥, 권오봉 연구원이 2003년 8월에 발표한 논문 [북한경제위기 10년과 군비증강 능력]에서도 금강산 관광 代價로 지급되는 달러가 군사비나 對南공작비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연구자들은 이 논문에서 금강산 관광 代價로 現代측이 제공하는 달러는 김정일이 직접 관리하는 '궁정경제'의 관할로 들어가 군사비나 對南공작비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또 '꼭 필요로 하는 국가전략적 사업이 발생하는 유사시기에는 이 자금이 군사적 목적으로 투입될 중요한 자금원임에는 틀림없다고 보여진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자들은 이어서 金正日이 매년 6000-7000만 달러의 비자금을 축적하고 있으며 해외에서 관리되는 규모는 20-40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가기관이 명시적으로 금강산 관광 자금의 군사비 轉用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이 논문이 유일하다.
1993년 5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개발과 관련한 북한 내각기관지 「민주조선」의 다음과 같은 회고성 보도는 이를 잘 보여 준다.

“김정일 총비서가 주재한 인민군 지휘관 회의에서 새로운 장비를 만드는 회의가 열렸는데, 그 장비는 세계적으로 아직 몇몇 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곳으로 엄청난 자금이 요구되었다. 이 장비를 개발한 시기는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이르는 제3차 7개년 계획의 후반기 과업을 수행하던 때라서 한 푼의 자금도 쪼개 써야 할 상황이었으나 김정일 총비서가 직접 자금을 풀어주어 짧은 기간에 위력 있는 전투기술기재를 완성했다.”

이렇게 볼 때, 정확한 규모야 파악할 수 없지만 적지 않은 외화자금과 금과 같은 자원이 김정일 처분을 기다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이고, 따라서 궁정경제-군사경제로 이어지는 독특한 경제운용체제를 고려할 때, 꼭 필요로 하는 국가전략적 사업이 발생하는 유사시기에는 이 자금이 군사적 목적으로 투입될 중요한 자금원임에는 틀림없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극히 필요한 사업이나 시기가 아닌 상황하에서는 이 자금이 쉽게 군사 목적으로 상시적으로 전용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작년 9월 미국이 自國 금융기관에 대해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과 거래를 하지 말 것을 명령한 이후 북한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대충 이러하다.

1. 세계의 거의 모든 은행들이 북한과 외환거래를 끊었다.
2. 따라서 북한의 무역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달러로 현금거래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위조달러가 있다는 의심을 사 이것도 어렵다.
3. 김정일이 스위스 등지에 넣어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약60억 달러 비자금을 빼내기도 어렵고 쓰기도 어려워졌다.
4. 이 때문에 김정일의 통치자금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장군들에게 주는 선물의 양이 줄었다고 한다.
5. 북한 엘리트와 무역일꾼들의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높아간다. 군대와 기업소 등 무역을 해서 자체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기관들이 타격을 많이 받는다.
6. 요사이 북한은 달러현찰을 들고 나와서 만주에 있는 작은 은행에 예금하고 이 예금을 담보로 삼아 홍콩 등지에서 대출을 받는 식의 편법도 쓰고 있다.
7. 이 문제에 관한 한 중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김정일 편을 들지 않는다.
8. 북한정권이 달러위조, 필로폰 제조 등 범죄행위에 의한 돈벌이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9. 무기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10. 결론적으로 북한 엘리트층에서 김정일의 권위가 약해지고 불만은 늘어나고 있다. 김정일만 책임져야 하고 그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11. 미사일 발사 도발은 이런 고립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결국 이번 위기는 김정일의 비자금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즉 위기의 본질은 독재자의 돈문제인 것이다.


어제 한 탈북자로부터 희한한 이야기를 들었다. 몇년 전 이 고위 黨간부는 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북한의 은행으로부터 7000달러의 현찰을 경비로 받아 출장을 떠났다. 출장지에서 그 돈으로 호텔값을 내니 100달러짜리가 위조라고 했다. 그래서 7000달러를 검색기에 걸어보았더니 2000달러가 위조달러임이 밝혀졌다. 곤욕을 치른 그는 귀국하자마자 위조달러 뭉치를 갖고 은행으로 달려가서 따졌다. 은행에선 '우리는 그런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더라고 한다.

이 탈북자에 따르면 북한정권은 외교관들에게 위조달러를 섞어서 주면서 소비하도록 시킨다고 한다. 중국사람들은 북한사람들로부터 물품대금으로 달러를 받을 때는 으례 한 20% 정도는 위조달러가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미리 20% 정도를 올려서 청구한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지혜의 호주머니가 여러 개 있어 거짓말에 그런 식으로 대응한다는 이야기이다.

국가은행이 위조지폐 유통의 창구 역할을 하는 나라 같지도 않은 이런 나라를 상대로 협상을 해야 하는 노무현 정권은 중국의 高단수를 배울 필요가 있겠다.

對北금융제재와 미사일 발사 도발의 배경이 되는 ‘김정일 해외 비자금’의 성격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돈은 북한에 있어야 할 북한당국과 북한주민들의 公金이다. 이 돈을 조성한 데 들어간 것은 북한사람들의 땀이고 北韓産 자원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1980년대부터 외화벌이 사업, 즉 비자금 조성을 독려했다. 북한사람들은 전국의 山野를 헤매고다니면서 砂金을 캐고, 송이버섯을 키우고 금광을 개발했다. 군대는 헤로인, 필로폰 밀조 밀매 공장을 직접 운영했다. 북한정권은 가짜 담배와 가짜 의약품을 만들고 달러를 위조하며 가짜 의약품까지 만드는 거대한 국제범죄기관으로 전환했다. 외국 주재 대사관들과 외교관들은 마약밀매, 가짜달러 유통의 네트워크 역할을 했다. 이런 국제범죄 규모는 1990년대 후반부터 커져 연간 10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게 되었다.

金達玄 호소: “김정일 횡령으로 북한경제 망가져”

이런 범죄와 무역으로써 벌어들인 자금은 북한의 경제구조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김정일이 직접 관리하는 노동당 자금(중앙당 재정경리실, 즉 39호실 자금이라고도 한다)으로 들어가 巨額이 스위스, 마카오, 싱가포르, 홍콩으로 빼돌려졌다. 이렇게 조성된 김정일의 해외비자금은 본질적으로 북한주민들과 북한의 자원을 약탈하고 횡령한 북한의 公金인 것이다. 故 申相玉 감독이 김정일 정권을 평할 때 쓴 말이 ‘마적단’이었다. 북한이라는 마을을 점령하고 약탈하여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면서도 자신들은 호화판으로 생활해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집단이란 뜻이다.
‘김정일 횡령 비자금’이 많아질수록 수탈당한 북한경제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와 북한경제가 瀕死(빈사)상태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사회주의 경제권의 몰락이 아니라 김정일이 공금을 빼돌려 비자금화한 때문이라고 호소한 사람이 바로 金達玄부총리였다. 金 부총리와 친했다는 한 고위급 탈북자 A씨(70代)는 金씨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울분을 터트리더라고 증언했다. 金達玄이 1988년에 정무원의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이 된 뒤의 이야기였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우리가 타격을 본 것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바르샤바 조약에 들지도 않았고 그들 국가와 바터 무역을 조금 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대신 동남아시아와 일본으로 무역을 확대했다. 내가 정무원의 국가계획위원장이 된 뒤 보니까 무역으로 들어오는 자금이면 경제를 돌릴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런데 수출한 돈이 正門으로 들어오지 않고 黨으로 빼돌려져 대성은행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조선은행과 무역은행은 빈털터리다. 송이버섯을 수출하여 연간 9000만 달러를 버는데 다 빠져나갔다. 스위스 은행에 잠긴 돈이 최소한 40억 달러는 된다. 김정일 동지 때문에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電力도 내각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반도 안된다. 100개가 넘는 별장에는 수령님이 머물지 않더라도 전기를 끊을 수가 없다. 그 수많은 혁명 史蹟址(사적지)에 대해서도 전기를 끊을 수 없다. 군수공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1980년대 북한에서는 흥남비료공장의 현대화가 필요해졌다. 한때 연간 160만t의 유안비료를 생산하던 이 공장은 日帝 때의 낡은 시설을 교체하지 못해서 생산량이 줄고 있었다. 관련 기술자들은 공장을 현대화하는 데 외국에서 약1억5000만 달러어치의 시설을 도입해야 한다는 계산을 하여 金達玄과 상의했다. 金達玄은 김정일에게 외화 자금을 마련해달라고 건의했다. 김정일은 거절했다. 자신이 해외로 횡령한 공금을 비료공장 재건에도 쓰지 않으려 했다.
金達玄이 자꾸 이런 건의를 하자 김정일은 노동당 조직부 생활지도과를 시켜 그를 불러 혼을 내게 했다. 생활지도과에 불려가면 부총리급이라도 반말과 욕설을 듣고 나온다고 한다.

“김대중이 巨額의 선물을 바쳤다”

고위급 탈북자 A씨는 “아직도 김달현의 울먹이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고 말했다.
“생활지도과에선 김달현을 불러다놓고 ‘왜 당에다 대고 돈 달라고 하는가’라고 추궁했다고 합니다. ‘외국에 돌아다니더니 노랑물이 들었는가’라면서 ‘왜 우리 것을 낮추어보는가. 노동계급의 혁명의식을 조직하고 동원하면 해결할 문제를 왜 외국돈에 의존하려고 하는가. 자기검토를 하라’고 하더랍니다.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을 시켜서 ‘反黨反革命(반당반혁명)분자를 축출하라’는 시위를 벌이게 했으니 흥남비료공장 현대화 계획은 좌절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흥남비료공장은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年産 5만t까지 떨어졌습니다. 북한 식량난의 근본 원인은 비료 부족이었습니다. 1990년대말에 金達玄이 자살한 것도 절망감 때문이었습니다”
고위급 탈북자 A씨는 김정일의 스위스은행 비자금이 바로 북한 경제를 망친 主犯이라면서 金大中과 盧武鉉 두 사람은 “비자금을 보태주고 그 비자금을 보호해주려는 민족의 반역자이다”고 격분했다.
'2000년 6월 김대중-김정일 회담 직후 평양에서 중앙부서 부부장급 이상을 모아서 당 선전부가 강연을 했습니다. 요지는 김대중이 흰 깃발을 들고 거액의 선물을 바쳐서 이뤄진 것이 평양회담이란 것이었습니다. 강연자는 또 햇볕정책은 이번 회담으로써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김대중이 북한체제를 존중하고 평화공존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김대중이 5억 달러를 보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북한의 엘리트들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김대중이 김정일을 도와주지 않았으면 북한이 중국식 개혁 개방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지금도 아쉬워합니다. 평양회담 직전에 엘리트층 안에서 모종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A씨는 黨, 정부, 군대의 고위직에 올랐던 김달현, 연형묵, 강성산, 현철해, 오극렬 같은 혁명 2세대 그룹이 그래도 비판의식과 ‘애국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김달현, 연형묵, 강성산 등 혁명2세대는 ‘김정일이 해외로 자금을 빼돌려 북한경제가 망가지고 있는 실상’을 金日成에게 直訴(직소)하여 김정일이 경제문제에서 손을 떼도록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총리출신인 강성산이 그 惡役을 맡았다. 비로소 김일성은 경제파탄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는 黨 회의에서 김정일을 향해 화를 내면서 “이제부터는 내가 경제를 다루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문제를 제기했고 김정일은 그 돈이 조국통일 사업 등에 잘 쓰이고 있다고 변명하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김일성의 죽음과 스위스 비자금 관계

김일성은 김정일과의 후계자 경쟁에서 져 僻地(벽지)에 내려가 있던 동생 金英柱 전 노동당 조직부장을 불러올려 부주석으로 앉혔다. 1992년 김일성의 80회 생일 잔치 때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성격이 급한 金英柱는 김정일을 가리키면서 험한 말도 했다고 한다. 1994년에 들어오면 한국의 安企部도 북한권력층 내부의 심상치 않은 동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이 前面에 나오고 김정일이 실각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김정일은 권력의 실무부서를 완벽하게 장악하여 아버지를 감시하에 놓고 있었다.
1994년 7월로 예정되었던 남북頂上회담은 父子 갈등을 깊게 만들었다. 김일성은 金泳三 대통령을 만나 경제지원을 받을 생각이었고 서울 答訪(답방) 가능성까지 검토했지만 김정일은 반대했다. 1994년 7월8일 묘향산 별장에서 김일성이 심장마비로 죽었을 때 그 곁에는 주치의사도 수입해온 심장소생器機도 없었다. 고위급 탈북자 A씨는 “김정일이 김일성을 죽였다는 증거는 아직 없으나 죽음을 유도했거나 방치했다는 의심은 많이 간다”고 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죽자 한때 아버지 편에 붙으려고 했던 간부들을 숙청했다. 상당수는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처형되었다. 김일성의 죽음으로써 혁명2세대의 꿈은 사라졌다. 김일성 父子의 갈등과 수상한 죽음을 부른 것도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김정일의 비자금이었다.

軍需, 과학기술 계통에 밝은 이 고위급 탈북자 A씨는 김정일의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해서 아주 흥미 깊은 분석을 했다. 대포동 2호가 발사된 지 40초 뒤에 공중폭파된 것은 실패가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김정일은 이 대포동 2호를 미국을 향하여 쏠 만큼 무모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1998년 실험에서 대포동 2호는 3단계까지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번에 실험하고싶었던 것은 1단계 로켓의 추진력을 증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1단계 몸통에 엔진을 추가하여 쏜 것인데, 이 추진력을 실험하는 데는 발사 후 40초이면 충분합니다. 2, 3단계 분리 실험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어장치도 달지 않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번 실험은 실패작이 아닙니다”

“SS-22 미사일 실험했을 것”

A씨는 또 다른 첩보를 내어놓았다. 발사된 여섯 발의 추정 노동 미사일과 추정 스커드 미사일중 하나는 북한식 SS-22 중거리 미사일이란 것이다. 북한 군부는 노동 미사일보다도 스커드 미사일을 좋아한다. 노동 미사일을 쏘는 데는 연료주입이나 充電(충전)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발각되기도 쉽기 때문이다. 2000년 무렵부터 북한 과학원은 SS-22 미사일 모방 설계를 완성하여 試製品을 만들었고 A씨는 그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 미사일은 물론 핵무기 운반용이다. SS-22는 스커드 미사일보다 사정거리는 길고(약900km) 적중도가 높다. 북한이 폐기된 SS-22 설계도를 어떻게 구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SS-22는 1979년에 소련이 SS-12 중거리 미사일을 대체하면서 배치한 신형 미사일에 서방측이 붙인 이름이다. SS-22는 스커드 B형을 개량한 것이고 같은 發射車臺(발사차대)를 쓴다. 소련은 이 미사일을 소련영토에 배치하고서도 西유럽의 대부분을 사정거리 안에 두었다. 연료는 액체, 길이는 12.4m, 무게는 9700kg, 장착하는 핵탄두는 500kg이다. 미국과 소련은 1987년에 사정거리가 500~5500km인 핵탄두 장착용 미사일을 서로 폐기하기로 합의하여 2년안에 실행했다. 소련은 1989년 7월25일에 SS-22를 최종적으로 폐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SS-22가 쿠바로 밀반출되었다는 미확인 소문이 돈 적이 있다. 이번 미사일 발사 도발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 수집 능력을 보여준 일본은 발사 직후부터 ‘신형 스커드’가 발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額賀방위청장관은 7월8일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서 “스커드 미사일의 능력을 높여 노동 미사일에 가까운 비거리를 가진 신형 스커드를 실험한 것이 아닌가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의 주장대로 SS-22 미사일 시험발사가 성공했다면 이는 김정일이 한국과 일본을 위협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무기를 하나 더 손에 넣었다는 뜻이다. SS-22의 사정거리라면 일본의 중부지방까지 포함된다. A씨는 북한 과학자들이 아직 믿을 수 있는 핵폭탄을 만들지 못했고,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500kg까지 소형화 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으나 성공했다고 김정일에게 허위보고를 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진정한 사회주의자와 손 잡아야”

A씨는 “북한 정권내부에 反김정일 개혁세력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여러번 말했다. 그는 “그 개혁세력이 자유민주주의자이기를 기대해선 안된다”고 주문했다. 김달현, 연형묵 등 혁명2세대로 대표되었던 이들은, 김정일이 사회주의를 파괴한 자이므로 사회주의를 再建(재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십시오. 김정일은 사회주의자의 허울을 쓰고 金氏王朝를 통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가 해외로 빼돌린 자금이 專制왕국에서 이뤄진 일이라면 좋다 이겁니다. 왕족들이야 별도의 경제권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자는 사회주의를 자칭하면서 그런 짓을 하는 겁니다. 김정일은 권력을 세습하고, 배급경제를 망쳐 주민들을 굶겨죽임으로써 북조선의 사회주의를 스스로 파괴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애국심이 있는 북한의 진짜 사회주의자들과 손잡고 김씨왕조를 타도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左右가 같이 김정일을 공격해야 합니다. 이것은 善과 惡의 싸움이 아니라 악마와의 싸움입니다”
고위급 탈북자 A씨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2000년의 6.15 회담을 보고 평양의 양심적인 사회주의자들이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代는 이렇게 살다가 가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푸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부시의 금융제재가 들어가니 그들도 다시 희망을 가질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이 김정일을 압박해주는 것이 이들 사회주의자를 격려해주는 일입니다. 외부의 김정일 압박이 강해지고 김정일이 수습하지 못한다면 궁정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먼저 김정일 가족내에서 叛旗(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개혁주의자들이 합세하여 김정일에게 경제관리권을 내어놓으라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 물론 김정일이 경제권을 내어놓으면 그것이 몰락의 시초가 되겠지요. 그런 뒤에 중국 鄧小平식 개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북한체제의 목표가 對南적화가 아니라 인민들을 먹여살리는 것이 될 때 비로소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고, 이때엔 한국이 주도하는 남북연방제도 가능할 것입니다. 김정일을 상대로 연방제를 한다니까 반대가 많겠지만 시장주의를 지향하는 애국적 사회주의자를 상대로 한 연방제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김정일이 미사일 도발을 한 이유는 해외 비자금을 지키려는 발악입니다. 김정일이 북한주민들을 착취하고 김대중을 협박하여 만든 60억 달러 이상의 비자금을 횡령하여 마카오 스위스 은행 등에 숨겨놓는 바람에 북한경제가 망가진 것입니다. 따라서 김정일 편을 드는 것은, 독재자의 도둑질을 돕고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영속시키려는 反민족, 反통일, 反인류범죄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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