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론, 그리고 이재오 최고위원의 엄살

아직도 ‘민정당’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
한나라당은 대체 어떤 정당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한나라당의 노선은 무엇인가? 최근 한나라당 내에서 벌어지는 색깔론 혹은 정체성 논쟁을 지켜보는 필자는 이 광경이 무척이나 낯설어 보인다. 왜냐하면 진보진영의 시각으로 볼 때 한나라당은 그냥 공화당, 민정당, 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한국 여당의 흐름을 계승하며,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주류의 시각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명확히 인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한나라당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언어이고, 실제로 진보진영에서 논의되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한나라당은 독재정권 하의 여당을 이어받아, 친미, 친일, 친 기득권 세력을 위한 정당이 아니겠는가?

어찌보면 이렇게 한나라당을 규정하는 언어들 탓에 한나라당 내에서의 정체성 논쟁이 더욱 거칠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나라당의 소장파 측에서는 한나라당이 기존의 수구꼴통 정당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면 재집권이 어려우므로 소장파가 원하는 한나라당으로 개혁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의 정통성을 옹호하는 측은 한나라당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야지만 결집된 힘으로 재집권에 나설 수 있다고 반박한다. 이 과정에서 색깔론이 튀어나오고,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상황까지 가고 말았다. 한나라당의 이재오 최고위원은 아직까지 자신에게 덮어씌운 색깔론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한발짝 떨어져서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이재오 최고위원이 공격받았다는 색깔론보다는 사실 그간 이른바 수구꼴통으로 공격받은 정통파에 대한 색깔론이 훨씬 심했다.

그 계산법은 간단하다. 이재오 최고위원에게 던져진 색깔론은 주로 질문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이재오는 남민전 때 무엇을 했는지 해명하라. 이재오는 국가보안법과 사학법에 대한 입장을 밝혀라. 만약 이에 대해 제대로 해명을 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 민중운동 시절 때의 좌파적 입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 한나라당 정통파의 입장이 아니었던가?

반면, 지자체와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한나라당의 정통파 아니 그보다는 대령연합회 등이 덮어쓴 색깔론은 그와 차원이 다르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정통 애국세력은 질문을 받은 바 없다. 그냥 너희들은 표에 도움이 안 되니 뒤에 빠져서 박수나 치라는 게 정통파에 대한 비판이었다. 질문이 없으니 답변할 수도 없고 토론도 안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공성진 의원의 대령연합회 비판이다. 다짜고짜 너희는 배급받아 생활했으니 시장을 모른다. 그러니빠져라. 이렇게 나오면 대체 대령연합회는 뭐라 항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전당대회 이후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정당히 당원들과 국민이 참여한 선거로 구성된 지도부에 대해, 단지 이재오가 당대표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이에 대해 ‘도로 민정당’이라는 딱지를 붙여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게 따지면 열린우리당 당대표인 김근태는 도로 평민당 혹은 도로 민주당이고, 여권의 유력 후보인 고건은 도로 공화당인가? 2006년도의 현대 정치판에서 아직까지 ‘민정당’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구시대의 발상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다.

난닝구 빽빠지 논쟁의 재판인가

필자는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왜냐하면 우선 이념적 좌표 상, 필자가 한나라당 혹은 보수세력 내에서의 노선 투쟁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최솟한의 상식은 있겠지만 나의 이름을 걸고 주장을 하기에는 나의 확신이 부족하다. 더구나 한나라당에 대한 적극적 지지자가 아닌 사람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왈가불가하면 그 어떤 쪽으로부터도 좋은 말을 들을 수 없다. 그래서 필자가 선택한 것은 색깔론의 방식과 행태만을 문제삼기로 한 것이다.

2003년 5월 민주당은 극심한 내분에 시달렸다. 그 당시 노무현과 유시민 등 이른바 열린우리당 창당 세력은 민주당 의원은 물론 대의원고 당원들에 대해 하루에 10번 이상씩 모독적인 말을 내뱉었다. 너희는 낡았다. 너희는 지역주의 세력이다. 너희는 부패세력이다 이러한 말들을 쏟아내며, 결국 이를 참지못하여 울분을 토하던 민주당 사람들을 남겨놓고, 신당 창당에 나섰다. 이른바 유시민 등의 빽바지파가 민주당의 난닝구파들은 확실하게 숙청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때도 그들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무런 근거 없이 조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호남에 지역구를 두었다는 이유로 지역주의 및 부패세력으로 몰아붙이고, 너희가 빠져야 개혁이 성공한다는 담론을 유포시켰다. 수십 년 간 야당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몸에 익힌 방어본능마저도 그들에게는 비아냥과 단죄의 대상이었다. 민주당의 구조, 그리고 이를 지켜온 대의원들이 노무현 세력이 보기에 왜 구태의연할 수밖에 없는지, 그에 대한 이해나 토론도 없이, 그들은 순식간에 수구꼴통세력으로 몰렸다.

한나라당 정체성 논쟁, 생산적일 수 없나?

다시 앞서의 질문을 던져보자. 한나라당은 어떤 정당인가? 한국의 산업화를 선두에서 지휘해온 정당이다. 그 과정에서 독재정권을 제대로 견인하지 못한 적도 있을 테고, 경부고속도로와 부산항을 통한 대일, 대미 무역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 상, 친미, 친일, 친영남세력으로 편중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북한과의 대치 상황 탓으로 강력한 반북 정책 또한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고 한나라당의 뿌리는 바로 산업화이고 대외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의 특성 상 그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정체성 논쟁은 어떤 방식으로 되어야할 것인가? 산업화는 먹고 사는 문제이고, 한나라당이 이를 주도해왔다면, 노무현 정권 이후 5%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경제성장, 그리고 미국에게도 일본에게도 중국에게도 막혀있는 외교 문제, 이를 산업화의 정통성으로 어떻게 해결나갈 것인지, 그 논쟁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 논의에 수구꼴통이란 단어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만약에 수구꽅통들 때문에 한나라당이 망할 것 같다 싶으면, 그들이 내세우는 대미정책, 대일정책, 대북정책을 종합해서, 당신들 말대로 운영했다가는 노무현 정권처럼 3%대 경제성장률에 머물고,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이 고립될 테니 당신들은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갖추시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된다 이것은 토론이 가능한 지적이다.

수구꼴통의 필수조건이라는 국가보안법과 사학법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마치 국가보안법 폐지를 이야기하면 진보이고, 이를 유지하자고 하면 수구꼴통으로 몰리고 있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추정치로 대한민국은 매년 40조원어치의 신기술이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산업스파이로부터 유출되고 있다. 이들이 단지 산업정보만 가져갈 리가 없다. 동북아의 최고 요충지인 대한민국에 대해서라면, 북한은 물론 러시아까지 모두 한국의 정보를 빼가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 국가 모두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법으로 자국의 정보를 보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매국노가 아니면 뭐라는 말인가? 이렇게 주장하는 ‘나’에 대해서 자신있으면 한번 수구꼴통으로 몰아보라. 이에 대해서라면 언제든지 논쟁에 자신이 있고, 실제로 나는 내 주장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반박을 받아본 적 없다.

색깔론? 솔직히 이재오 최고위원이 받았다는 색깔론은 제 3자인 필자가 보기에 엄살이다. 정통파는 그냥 질문을 한 것이고, 이재오 최고위원은 답했다. 그럼 그걸로 끝난 것이다. 정통파가 이것으로 이득을 봤을 리도 없다. 어찌보면 이재오에 대한 색깔론은 그간 소장파나 오세훈 시장 등에 의해 모독당한 한나라당 정통 지지자들의 섭섭한 마음이 반작용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비생산적 정체성 논쟁을 유발하는 것은 좌파 색깔론이 아니라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단칼에 내려치는 수구꼴통론이다.

오세훈 시장의 예를 보건데, 이미지로 포장하는 것이 득표에 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당의 지지기반을 구성하는 정통적 지지자들의 마음에 칼질을 해내면서 얻어내는 권력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낡은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해서 총선에 이긴 들, 그게 그들의 지지세력과 국가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었고, 국민통합에는 또 무슨 도움이 되었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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