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를 둘러싼 이념논쟁을 바라보면서

시민단체 진영에서 이재오에게 문제를 건 것은 그가 빨갱이라고 공격한 것도 아니고 ‘색깔론’을 제기한 것도 아니었다.
I
5.31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이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예상을 깨고 강재섭이 1위로 당선되어 당대표로 선출되었고 인기투표에서 1위를 달렸던 이재오가 2위가 되어 역전의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전여옥, 정형근 등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사실을 보더라도, 그 이념적 분포로 볼 때, 보수세력의 회귀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당내 좌파들과 이명박세력이 지원한 이재오가 2위에 머물면서, 이명박의 대선후보 경선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위의 이재오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한 채 두 가지 문제를 걸고 전남 선암사로 직행했다.

첫 번째는 박근혜의원이 강재섭을 지원하면서 대리전 양상이 벌어져서 과열되었다는 점이고, 좌석 배치에서도 연설 도중에 박근혜가 이동하는 바람에 주위가 집중되지 않아서 투표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논리이다.

두 번째는 여론조사에서 시종우세했는데 우익성향의 시민단체들이 가세하여 소위 ‘색깔론’으로 당했다는 것이다. 그는 10년동안의 동지를 색깔론으로 공격한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우익논객과 시민단체 진영에서 이재오에게 문제를 건 것은 그가 빨갱이라고 공격한 것도 아니고 ‘색깔론’을 제기한 것도 아니었다. 이재오가 과거 남민전에서부터 완전히 전향했다면 완전한 轉向의 분명한 태도를 밝히라는 것이었고, 또 궁금한 것이 만약 이재오가 대표가 되었을 때, 국가보안법을 과연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으므로 그 점을 분명히 밝히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문제의 제기라고 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추진한 4가지 소위 개혁법안 중에서 통과시키지 못한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국가보안법이기 때문에, 당대표라면 사활을 걸고 이 법안의 통과를 막아서 대한민국이 ‘간첩의 천국’이 되는 것을 막아야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보수우익세력의 절박한 마음이었다. 이재오가 그 주변의 측근들이 정치를 계속하려면 꼭 해야 할 일은 우선 5.31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향배를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5.31선거는 국민들이 이제는 사상이 의혹투성이 인물은 신뢰할 수 없으므로 다시는 권력을 맡길 수 없다는 무언의 국민적 항의가 표출된 것이다.

첫 번째, 국민들은 김대중의 사상에 50년 동안 깜쪽같이 속았다. 김대중의 정체는 조갑제가 쓴 베스트셀러 <김대중의 정체>에서 백일하에 폭로되었는데, 이전에 이미 검찰과 공안당국의 기록에 그의 해방이후 좌익 활동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으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설마하였고 그를 민주주주를 위해 평생을 몸 바친 투사라고 믿어서 권력을 주었다. 노벨평화상을 얻기 위해서 그가 김정일과 야합한 6.15공동선언의 기만성과 친북정책의 구체적 실상을 이 지면에서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너무 잘 알 것이다.

두 번째, 국민들은 노무현에게 연거푸 두 번을 속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후보시절 TV 토론에서 사회자는 노후보의 장인 권오석의 빨치산 경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를 질문했다. 노후보는 역정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 아직도 필자의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다면 아내와 이혼하란 말이요?” 이런 식으로 賢聞愚答을 했다. 사회자는 노후보의 이런 반박에 어이가 없는지 한참동안 말을 못했다. 그리고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때 노후보는 눈물을 흘렸다. 많은 시청자들은 오죽 마음이 아프면 눈물을 흘릴까하고 모두 노후보를 동정했다. 장인이 빨갱이이라고 사위가 빨갱이라는 법이 있나? 그렇게 마음 착한 국민들은 믿었다. 이후 여론조사에서 노후보는 10%이상 인기가 올라갔다. 이유는 “가정을 지키려는 용감한 경상도 사나이”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사회자는 더 집요하게 노후보의 사상을 추구했었어야 마땅하다. “아니 누가 이혼하라고 했습니까? 그런 뜻이 아니고,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총질한 빨치산 사상을 지지합니까? 아니면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을 지지합니까? 말을 돌리지 말고 확실하게 대답해 주세요?” 이렇게 추가 질문을 했어야했다. 노무현의 눈물도 지금 생각해 보니까 자신의 빨치산애호사상, 친북사상을 위장하기 위한 ‘악어의 눈물’이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 의해 탄핵되었을 때도 국민들은 “대통령이 힘이 없어서”라고 하여 그를 동정하여 지지했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었을 때, 멋모르고 사상이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신출내기 여당의원후보들을 국회로 보내었고, 대법원에서 그를 사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 후 노대통령은 국민들을 철저하게 배신했다.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대법원의 위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수도이전을 강행했으며 과거의 대한민국 역사를 뒤집고 철저하게 親北聯共정책을 추진했다. 그 이적행위의 결과 김정일은 대한민국 報恩에 보답하기는커녕 핵개발, 미사일 발사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노대통령과 집권당에 실망한 국민들은 한나라당에게 무조건 투표했는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친북반미주의자 최열을 공동인수위원장에 임명하자 그에게 또 속은 것 같으니,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사상검증을 철저히 해야겠다는 것이다. 이런 당 외부에서 불어닥친 이념논쟁의 바람이 한나라당에게 스며들어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II
이재오가 70년대에 몸을 담았던 남민전은 결콘 간단히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한 민주화투쟁 시민단체가 아니었다. 남민전은 1960년대 인혁당, 통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출감한후 재규합하여 북한과의 연계속에 결성한 지하공산혁명조직으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도시빈민 및 각계각층의 민중을 규합하여 지하투쟁을 전개한 지하당이다.

‘민주투쟁국민위원회’라는 전위조직 산하에 민주구국연맹, 민주구국농민연맹, 민주학생연맹 등을 설치하고 ‘민주화투쟁’을 위장한 적화혁명을 꾀하였다. 이 사건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좌익사건으로 관련자만 해도 100여명에 달하는 해방이후 최대의 좌익사건이었다(유동렬, <한국좌익운동의 역사와 현실>, 다나: 1996, p. 42).

이재오는 모두 4차례에 걸쳐 검거, 투옥된 인물이다. 첫 번째는 유신반대로 투옥되었고(1973-74), 두번째는 남민전의 핵심위원으로 활동했는데,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었다(1977-78년). 세 번째는 역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1979년에 투옥되었는데, 다시 검거되었다(1979-83년). 그 뒤 민중당에게 가입했으며, 그의 행적은 겉으로는 민주화 투사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의혹이 많다.

이재오는 자신의 사상검증은 15, 16.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종결되었다고 강변하지만, 사상검증이 국회에 당선된다고 OK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김대중은 자신의 사상검증은 중앙정보부 책임자였던 김종필과의 DJP 연합으로 검증되었다고 큰 소리쳤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김대중-노무현 친북좌파 정권의 등장이후 국민들은 이제야 두 지도자의 위험한 사상과 그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적화위기를 파악하고 독이 올라있다. 그 결과가 5.31선거에서 집권당의 참패로 나타난 것이다. 한 두번 外道를 저지른 남편에게 불안한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정기적으로 확인할 권리가 있고, 외도의 잘못을 저지른 남편은 몇 번이고 아내에게 믿음을 주는 언약을 반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가 있다.

사상검증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그들이 몰표로 지원해준 야당대표 선출에서 이재오의 사상검증을 다시 하고 싶은 것은 정당한 주권행사이며 당연한 권리이다. 10년전에는 군사정권의 종식과 민주화의 열풍속에서 감방에 들어갔다 오면 무슨 훈장이라도 탄 것처럼 사상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적당하게 넘어갔고, 아니 영웅대접을 받으면서 의기양양하게 금배지를 달고 국회에 진출한 운동권출신들의 황금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민주투사로 위장한 친북좌파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적화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광범하게 유포되어있다. 김대중-노무현-오세훈의 사상에 속았다는 인식 때문이다.

III
이재오가 주장하듯이, 박근혜가 자리를 옮겼기 때문에 경선에 졌다는 것은 치졸하고 비열한 변명이다. 이미 대의원들은 결정을 하고 오는데, 박이 이리저리 옮기면서 박수를 했다고 해서 표심이 순식간에 좌측에서 우측으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시비거리의 명분을 찾으려는 추잡한 구실에 불과한 것이다. 필자의 기억에는, 과거 10년동안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남민전 참여에 대해서 분명하게 진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이재오는 경선전에 자신의 남민전 경력에 대해서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고, 김문수의원처럼 전향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밝히지 않았다. 경선에 실패한 이재오가 그 이후 보여준 행보는 전형적이 과거 구태의연한 운동권적 체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최고위원 사퇴시사-순천 선암사 산행-당무 복귀-당지도부 ‘보수수구’로의 회귀 비판-대선후보 선출방식의 변경요구-독자적 지방나들이 등의 돌출행동은 장차 전개될 박근혜-이명박의 대선후보 경선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명박의 하부조직을 관리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당대표 경선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불행하게도, 한나라당은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나뿐 의미에서 언론의 초점을 받게 되었다. 한나라당의 이미지도 많이 부정적으로 변질될 것이다.

그는 과연 과거 이회창과의 대결에서 패배하여 탈당한 이인제의 再版이 될 것인가? 이점이 정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당장 그는 이인제처럼 탈당을 결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때 YS의 황태자로 화려하게 성공하였으나 流星처럼 몰락한 이인제의 흥망성세는 정치권의 반면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후 그는 집요하게 공정한 경선을 위한 제도개선과 ‘보수수구’에 치중된 당 개혁을 요구할 것이고 이를 받아드리지 않을 경우 박근혜-이명박 대선후보 경선포기의 명분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차후 탈당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이명박은 “경선에서 불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과거 이인제도 이회창과의 경선 전에 그런 말을 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전례가 있다. 당대표 선출 패배이후 이재오의 행각에서 볼 수 있듯이 낙관만을 할 수 없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이재오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경선해서 탈당하나, 경선을 아예 포기하고 탈당하나 경선의 불복이라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같은 뜻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할 것이다.

IV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배한 이재오 변수로 인해 거대 야당 한나라당은 집권의 거대한 대전략과 웅대한 프로그램을 세워 보다 국민들 앞에 친숙하게 다가서면서, 대여투쟁에 공세를 취하기 위해 전열을 정비하기 보다는, 내부 분열과 自中之亂의 틈새를 막아야하는 절박한 입장으로 몰리게 되었다. 국민들이 너무 몰표를 주면 교만해진 나머지 이런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을 둘러싼 이재오 소동은 현재 후보를 낼 수 없는 절망상태에 빠진 열린우리당에게는 꺼져가는 불꽃에 하나의 희망의 불씨를 안겨주고 있으며, 제3차 친북좌파 정권의 수립에 애타게 그리는 평양의 김정일은 가방끈을 다시 동여매고 야당에 대한 政治工作의 중요한 모티브를 잡았다고 회심의 미소를 지을 지도 모른다. 이미 김정일은 한나라당이라는 호수에 떡밥과 함께 낚시를 던졌기에 大漁가 걸리기를 학수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광대 사학과 이주천 교수(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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