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활기에 차 있던 폴러첸씨지만, 14일째 물만 마시며 단식을 하고 있는 지금은 기진맥진한 모습이 역력했다.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룩했고 그의 금발머리는 낡은 빗자루처럼 윤기를 잃었다. 다가가서 인사를 했더니 억지로 미소를 짓는다.
자원봉사 의사로 북한에서 2년간 체재하기도 했던 그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독일인이다. 내 부모님 세대는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 침묵했었다. 오늘날 북한에서 굶어죽는 어린이들과 인권유린에 대해 침묵한다면, 나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했던 부모님 세대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북한의 이면을 미국 기자들에게 알렸다가 북한에서 추방된 그는, 북한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남한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더한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 앞에서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그의 호소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분노한 그는 '反정부 투사'가 되어 거리로 나섰다. 그는 김정일과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반대하는 집회가 있을 때면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의 사진을 들고 나와 그들을 굶주리게 하는 김정일과 그를 돕는 김대중-노무현을 소리높여 규탄했다. 그런 폴러첸씨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대답은 경찰의 밀착감시, 입국거부, 그리고 강제추방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폴러첸씨는 지난 12일부터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외교통상부 청사를 농성장으로 택한 것은 '전세계 인권문제를 다루는 유엔사무총장에 출마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동족인 북한의 인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폴러첸씨가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난 12일, 청사 안으로 들어가던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폴러첸씨가 들고 있는 팻말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청사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외교부 청사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 회의가 있던 지난 14일, 경찰들에 의해 인근 세종로공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경찰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반면에 주한독일대리대사는 폴러첸씨와 30분간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른 외국 외교관들도 외교부 청사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격려를 보낸다고 한다.
오늘은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전여옥 의원이 폴러첸씨의 단식농성장을 다녀갔다. 여야를 막론하고 최고위원급 정치인이 폴러첸씨의 단식농성장을 찾아온 것은 전여옥 의원이 처음이다. 전의원은 폴러첸씨의 건강 등에 대해 물어봤고, 폴러첸씨는 'Freedom for North Koreans'라고 쓴 팻말에 붙어 있는 북한 어린이들의 사진을 가리키면서 “이 사진 속의 북한 어린이들처럼 뼈가 앙상해질때까지 단식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 자격으로 찾아온 것인지, 개인자격으로 찾아온 것인지’를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전여옥 의원은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저렇게 단식을 하고 있는 폴러첸씨를 위로하러 오는데, 자격을 따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문제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늘 활기에 차 있던 폴러첸씨가 저렇게 기운이 빠져 있는 모습으로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어제는 송영선 한나라당 의원이 다녀갔다. 연방 “I'm sorry'를 되뇌이던 송의원은 ”북한 주민들을 위해 정말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폴러첸씨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는 최대집 자유개척청년단장(내과의사)은 “혈압이 떨어지고 몸무게가 84㎏에서 74㎏으로 줄었다. 소금이라도 섭취해야 하는데 ‘소금을 섭취하면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는 이유에서 물만 먹고 있다. 하루 종일 작은 의자 위에 앉아 있느라 하체에 마비증세가 있다. 낮에는 햇볕 아래서 밤에는 한기(寒氣)를 맞으며 청사 옆에서 노숙을 하는 것도 건강에 몹시 안 좋다. 침대에 누워서 단식을 하는 것보다 3~4배는 더 어려운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그 동안은 날씨가 선선해서 다행이었는데, 장마가 끝나고 땡볕더위가 시작되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폴러첸씨의 단식농성장에는 그동안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이경식 전 대한언론인회 회장 등이 다녀갔다.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 최대집 자유개척청년단장, 최용호 자유청년연대 대표, 재미북한인권운동가 신동철 목사, 북한인권운동가 문국한씨 등이 ‘폴러첸지킴이’를 자원해 농성현장을 지키고 있다.
폴러첸씨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북한인권관련 단체들을 비롯한 한국인들의 무관심이다. 강인구 전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 조사국장은 “평소 남의 탓을 하는 법이 없는 폴러첸이 이번에는 (한국인들의 무관심에 대해) 조금 섭섭해 한다”고 말했다.
아마 폴러첸씨의 단식은 앞으로 며칠이 한계일 것이다. 시간이 나는 분은 세종로 외교부 청사 옆에서 단식을 하고 있는 폴러첸씨를 찾아가 감사와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면, 폴러첸씨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느라 고난을 자처하고 있는 의인(義人)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