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조적 민족주의의 정치적 위선을 더 혐오한다"
'친일파 재산몰수, 반외세 정치선동 악용우려'
“또 친일파청산 타령인가?” 이것이 지난 8월 13일 공식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친일부역자 재산 국가 환수 선언’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반응이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법무부, 경찰청, 재경부, 국세청 등에서 파견된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104명의 조사관들이 18일부터 1904년-1945년 해방 때까지 일제침략에 부역하거나 중용된 친일부역자 400명의 후손들이 취득한 재산을 조사하여 몰수할 것이라고 한다. 이 조사위는 위원회의 직권으로 예비조사를 거쳐 재산조사를 결정을 하거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조사를 의뢰할 경우에 곧바로 재산조사에 착수한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57년 만에 노무현 정권에 의해 재개된다는 반민특위 활동을 환영하는 국민들만큼 의혹을 품은 국민들이 많다는 사실에 노무현 정권이 직면한 비극적 처지가 나타난다.
이 친일행위자 재산조사위는 이완용, 이재극, 민영휘의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땅 찾기 소송´에서 이겨 소유권을 인정받은 재산에 대해서도 최근에 예비조사를 벌여 재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사유재산권에 대한 재판을 번복할 초법적 재산몰수활동을 이 위원회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재조사 결과 친일파의 후손들이 보유한 재산이 반민족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밝혀지면, 조사위원회는 과반수 출석에 다수결 방식으로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하는 결정하게 된다. 친일부역자들의 후손들에 대한 초헌법적 재산몰수가 가능하다는 판단도 할 수 있다. 57년 만에 재개된 ‘반민특위’가 역사바로세우기 인상도 풍기지만, 재산몰수의 동기, 국민적 반응, 법적 실효성 등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설사 친일부역의 대가로 재산을 친일파들이 획득했더라도, 재산 몰수의 대상, 범위, 합헌성 여부는 법적 기술상으로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친일파의 재산을 이미 제3자가 사정을 모른 채 취득했다면 몰수할 수 없다. 부당하게 취득한 재산으로 파악하여 먼저 팔아먹은 약삭빠른 친일파 후손들은 면죄되고, 불법이 아닌 것으로 여기고 팔아먹지 않고 재산을 보존한 후손들만 처벌받는다. 더 교활한 자들이 더 유리하다는 선례를 또 남긴다. 조사위의 재산몰수 결정에 대해 당사자는 이의신청 및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설령 친일부역의 대가로 재산을 획득했다손 치더라도, 어느 정도의 부역자로부터 어느 정도의 재산을 몰수해야 하느냐는 ‘몰수범위’에 대한 논란과 사유재산권 보장을 중시하는 헌법을 이 특별법이 어떻게 침해할 수 있느냐는 ‘위헌여부’에 대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친일재산몰수가 가진 이런 기술적, 법적 논란의 소지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이 시기에 노무현 정권이 초법적 기구를 통하여 친일재산몰수를 시도하는 것이 과연 진정성이 있느냐이다. 친일파 청산에 대한 현 정부의 의도가 국민들로부터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문제이다. 친일청산의 구호가 궁지에 몰린 현 정권이 국민을 오도하려는 정치적 술책이 아니냐는 의혹이 인다. 반외세-민족자주를 남은 임기동안에 정치적 승부수로 쓰지 않느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주야로 정치적 술수만 꾸미려는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민족의 안정과 장래에 유익하냐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 노 정권의 모든 정책에 무슨 반국민적 꼼수가 숨겨졌는지 국민들이 감시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반미-반일을 정권보호의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의심받는 노무현 정권의 친일청산도 국민적 동감을 받기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적 단죄는 본질적으로 그 명분과 결과에서 애매한 것이다. 필자의 역사관과 정치관을 형성한 라인홀드 니버는 선과 악으로 이분법적으로 인간역사를 재단하는 단순한 역사해석을 배격하고 역사의 복잡한 아이러니를 강조했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역사 속에서 충돌하는 경우는 없다고 그는 보았다. 유한한 선과 악, 상대적 옳고 그름, 부분적 빛과 어두움이 마치 황혼(twilight)처럼 혼융된 인간역사의 사건들에 대한 해석과 대응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야만적 한민족 지배에 대한 판단은 분명히 통탄할 일이지만, 20세기 전반에 선조들이 고민했던 다양한 민족생존전략들을 누가 쉽게 선과 악으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외세부역자들에 대하여 필자도 분노하지만, 역사의 애매성을 고려하여 신기남 의원처럼 친일파 심판을 맹목적으로 외칠 그런 위선과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서양세력이 식민지를 넓혀가는 역사적 상황에 직면한 조선말기 선조들의 곤경을 오늘날의 눈으로 단칼에 단죄하기 어렵다. 외세에 대한 수용과 배격사이에서 선조들은 나름대로 민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민했을 것이다. 해방 후에 ‘친외세와 반외세’가 곧 ‘선과 악’을 가르는 흑백논리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외세에 개방적이라고 다 반민족적이지 않을 것이다. 교조적 민족주의를 빙자한 동족탄압은 사실상 외세부역자들의 민족탄압보다 더 혹독할 수도 있다. 일례로, 교조적 반미-반일 정치종교로 북한 동포들을 전체주의적 폭압통치에 예속시킨 민족주의자들의 죄악은 친일부역자들보다 더 크다. 교조적 민족주의는 고상한 구호이지만,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민족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 역사를 단칼에 단죄하려는 자들의 무지와 교만은 종종 시간이 지난 뒤에 더 큰 악으로 판명될 경우가 많다.
아무튼 해방 후 남한의 국가재건에 중용된 외세부역자들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 한국인들에게 결핍된 윤리의식은 정치인들이 저지르는 악덕에 대한 단호한 심판이다. 값싼 동정심에 빠진 한국인들은 폭력과 사기를 가하는 정치인들을 당시에 보복하지 못하고 피해간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항상 정권이 끝난 뒤에 과거 정치인들에 대해 군소리가 많다. 한국인들에게 정치적 악덕을 제대로 심판할 지성과 용기가 부족된 것 같다. 외세에 기생하여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 한국의 국익을 심하게 손상시킨 남한의 외국프락치들이나 외세배격을 핑계로 권력을 대대로 독점한 북한의 폐쇄적 민족주의자들은 철저하게 단죄되어야 한다.
사회의 전반적 현상들을 포괄하는 정치적 사건에 대한 판단과 반응에 한국인들은 무디고 비겁하다. 군사정권의 민주억압도 정권이 끝난 뒤에 말이 많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국가해체도 시간이 지나서야 심판될 것이다. IMF침공으로 경제주권을 국제금융세력에게 내어준 김대중 대통령을 아직도 IMF극복의 영웅으로 착각하는 한국인들은 정치적 판단에 미숙하고 비굴하다. 오늘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정체성을 흐리고 민족생존권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친북-반한-반외세 노선을 강행하거나 자신의 측근들을 싹쓸이로 사면시켜도 국민들은 단호하게 나무라지 못하고 수군거리기만 한다. 역사적 심판은 포괄적이고 신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단호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국인들은 익숙하지 못하다.
역설적 사건들이 뒤엉킨 정치사에서, 외세부역자들을 단죄하는 것이 곧 민족주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아니다. 거룩한 명분을 삥땅치는 사기가 흔하게 발생되는 정치사에서, 친일파 단죄나 재산몰수를 악용하는 정치세력이 있을 수 있다. 외세부역한 자들에 대한 단순명백한 정죄를 권력유지수단으로 가장 잘 악용한 정치세력은 역시 북한 정권이다. 북한 전체주의 정권은 교조적 반일-반미이념을 민중의 비판을 봉쇄하는 일당독재 정권으로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악용한 대표적 사례이다. 민족자주라는 거룩한 명분이 얼마나 한민족의 생존권과 자존심을 훼손하는지는 북한 정권이 선명하게 보여준다. 반일-반미 투쟁에 광신적인 교조적 민족주의를 앞세운 북한 정권이 희대의 민족 억압세력이 된 현상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친일부역자 재산몰수를 들먹거리는 노무현 정권의 의도와 진정성에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노무현 정권이 말하는 친일세력 청산과 민족주의 정립은 북한의 외세배격과 얼마나 다른 동기와 결과를 가지고 있을까? 그 동안 친북-반미-반일정책을 정권의 생존전략으로 채택한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 노무현 정권이 벌이는 친일부역자 재산몰수 소동은 또 다른 반일-반미 정치선동이 아닌지 국민들은 의혹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권의 친일부역자 재산환수라는 거룩한 구호를 듣고서, 반일-반미 정치구호를 60년 권력독점에 악용한 북한 공산정권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망상일까? 현 정권의 민족자주와 외세척결의 진정성이 의혹 받고 있다.
다시 기술적인 문제로 돌아가면, 해방 후 60여년이 지난 사유재산에 대하여 특별법에 의한 국가의 몰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초법적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의 재산권에 대해서는 존 로크가 가장 흥미롭고도 재미있게 “두 번째 정부론”에서 정리해두었다. “모든 인류에게 공여한 자연에 생산, 수집, 보존, 배양, 가공 하는 등의 개인의 노동이 부가하여 가치와 효용성을 높이면, 그 자연물은 사회의 공유물에서 개인의 사유물이 된다”는 요지의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이론을 로크는 주창했다. 그는 개인의 사유재산권은 생명권 다음으로 중시하여, “병사의 생명은 국가가 희생할 수 있지만, 전사자의 1페니도 본인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획득 후 60년이 지난 재산에 대한 사유재산권 박탈은 자본주의체제가 생명권 다음으로 중시하는 사유재산권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일제시대에 한민족을 팔아 부역한 대가로 토지나 재산을 받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었다면, 이미 50년 전에 국가에 몰수되고 처벌되어야 했었다. 그런데 해방 60년이 지난 오늘날 일제부역자들의 재산을 환수한다고 하는 것의 기술적 문제가 있어 보이고 정치적 타당성도 매우 희박해 보인다. 사실 자본주의를 선택한 남한에서 사유재산권의 획득 시효는 재산권 분쟁에 결정적인 판단기준이 되어왔다. 재산권의 행사나 분쟁에서 시효가 지난 이의제기는 재산권의 확보에 결정적으로 불리하다. 사유재산권에 대한 기본적 시효가 흔들리면, 재산분쟁은 걷잡을 수 없다. 그런데 해방 후 60여년이 지나서 친일파들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극단적 정의구현은,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지만, 또 다른 법적, 사회적, 정치적 논란이 야기될 것이다.
역사적 판단은, 라인홀드 니버가 믿은 것처럼, 항상 애매하고 역설적이다. 의로운 선조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불의한 외세부역자들을 살찌운 반민족주의에 대한 집요한 단죄도 중요하지만, 한민족을 이 정도로 번영하게 만든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안정적 유지도 이 시기에 중요하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친일파-친미파 단죄논쟁은 국론분열과 국력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사이비 민족주의와 사이비 반외세는 미국의 폭력성과 일본의 교활성을 진지하게 비판하는 양심가들을 침묵시킬 수 있다. 친일-친미 반민족주의자들의 악을 역이용하는 사이비 민족의자들의 폐쇄적이고 교조적 민족주의가 노무현 정권 하에서 활개 치는 현상은 국가적 비극이다. 지금은 친일-친미주의자들의 드러난 정치적 해악보다 반외세-민족주의로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교조적 민족주의자들의 정치적 위선을 국민들이 더 혐오한다.
지금은 군사정권의 억압과 폭력이 물러나고 군중정권의 사기와 선동이 활개를 친다. 방자와 사기를 남용하는 군중정권이 무정부상태를 계속 조장하면, 다시 질서와 안정을 강조하는 무력이 등장한다는 것은 라인홀드 니버가 지적한 역사의 순환이다.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책임을 제대로 유지시키지 못하는 나쁜 사회에서는 폭력이 차면 사기가 등장하고, 사기가 차면 폭력이 등장한다. 폭력배보다 사기꾼을 더 혐오하는 필자는 제국의 충견이 된 외세숭배세력의 ‘육적 죄악(sensual sin)’보다 민족자주라는 명분을 착취하는 민족주의세력의 ‘영적 죄악(spiritual sin)’을 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반일-반미 노무현 정권이 친일부역세력의 사유재산을 국고로 몰수하는 소동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결국 역사청산의 도덕적 정당성을 실추시키고, 결과적으로 매국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2006-08-14
[조영환 칼럼니스트]younghwancho@naver.com
'친일파 재산몰수, 반외세 정치선동 악용우려'
“또 친일파청산 타령인가?” 이것이 지난 8월 13일 공식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친일부역자 재산 국가 환수 선언’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반응이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법무부, 경찰청, 재경부, 국세청 등에서 파견된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104명의 조사관들이 18일부터 1904년-1945년 해방 때까지 일제침략에 부역하거나 중용된 친일부역자 400명의 후손들이 취득한 재산을 조사하여 몰수할 것이라고 한다. 이 조사위는 위원회의 직권으로 예비조사를 거쳐 재산조사를 결정을 하거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조사를 의뢰할 경우에 곧바로 재산조사에 착수한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57년 만에 노무현 정권에 의해 재개된다는 반민특위 활동을 환영하는 국민들만큼 의혹을 품은 국민들이 많다는 사실에 노무현 정권이 직면한 비극적 처지가 나타난다.
이 친일행위자 재산조사위는 이완용, 이재극, 민영휘의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땅 찾기 소송´에서 이겨 소유권을 인정받은 재산에 대해서도 최근에 예비조사를 벌여 재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사유재산권에 대한 재판을 번복할 초법적 재산몰수활동을 이 위원회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재조사 결과 친일파의 후손들이 보유한 재산이 반민족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밝혀지면, 조사위원회는 과반수 출석에 다수결 방식으로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하는 결정하게 된다. 친일부역자들의 후손들에 대한 초헌법적 재산몰수가 가능하다는 판단도 할 수 있다. 57년 만에 재개된 ‘반민특위’가 역사바로세우기 인상도 풍기지만, 재산몰수의 동기, 국민적 반응, 법적 실효성 등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설사 친일부역의 대가로 재산을 친일파들이 획득했더라도, 재산 몰수의 대상, 범위, 합헌성 여부는 법적 기술상으로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친일파의 재산을 이미 제3자가 사정을 모른 채 취득했다면 몰수할 수 없다. 부당하게 취득한 재산으로 파악하여 먼저 팔아먹은 약삭빠른 친일파 후손들은 면죄되고, 불법이 아닌 것으로 여기고 팔아먹지 않고 재산을 보존한 후손들만 처벌받는다. 더 교활한 자들이 더 유리하다는 선례를 또 남긴다. 조사위의 재산몰수 결정에 대해 당사자는 이의신청 및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설령 친일부역의 대가로 재산을 획득했다손 치더라도, 어느 정도의 부역자로부터 어느 정도의 재산을 몰수해야 하느냐는 ‘몰수범위’에 대한 논란과 사유재산권 보장을 중시하는 헌법을 이 특별법이 어떻게 침해할 수 있느냐는 ‘위헌여부’에 대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친일재산몰수가 가진 이런 기술적, 법적 논란의 소지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이 시기에 노무현 정권이 초법적 기구를 통하여 친일재산몰수를 시도하는 것이 과연 진정성이 있느냐이다. 친일파 청산에 대한 현 정부의 의도가 국민들로부터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문제이다. 친일청산의 구호가 궁지에 몰린 현 정권이 국민을 오도하려는 정치적 술책이 아니냐는 의혹이 인다. 반외세-민족자주를 남은 임기동안에 정치적 승부수로 쓰지 않느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주야로 정치적 술수만 꾸미려는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민족의 안정과 장래에 유익하냐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 노 정권의 모든 정책에 무슨 반국민적 꼼수가 숨겨졌는지 국민들이 감시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반미-반일을 정권보호의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의심받는 노무현 정권의 친일청산도 국민적 동감을 받기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적 단죄는 본질적으로 그 명분과 결과에서 애매한 것이다. 필자의 역사관과 정치관을 형성한 라인홀드 니버는 선과 악으로 이분법적으로 인간역사를 재단하는 단순한 역사해석을 배격하고 역사의 복잡한 아이러니를 강조했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역사 속에서 충돌하는 경우는 없다고 그는 보았다. 유한한 선과 악, 상대적 옳고 그름, 부분적 빛과 어두움이 마치 황혼(twilight)처럼 혼융된 인간역사의 사건들에 대한 해석과 대응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야만적 한민족 지배에 대한 판단은 분명히 통탄할 일이지만, 20세기 전반에 선조들이 고민했던 다양한 민족생존전략들을 누가 쉽게 선과 악으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외세부역자들에 대하여 필자도 분노하지만, 역사의 애매성을 고려하여 신기남 의원처럼 친일파 심판을 맹목적으로 외칠 그런 위선과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서양세력이 식민지를 넓혀가는 역사적 상황에 직면한 조선말기 선조들의 곤경을 오늘날의 눈으로 단칼에 단죄하기 어렵다. 외세에 대한 수용과 배격사이에서 선조들은 나름대로 민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민했을 것이다. 해방 후에 ‘친외세와 반외세’가 곧 ‘선과 악’을 가르는 흑백논리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외세에 개방적이라고 다 반민족적이지 않을 것이다. 교조적 민족주의를 빙자한 동족탄압은 사실상 외세부역자들의 민족탄압보다 더 혹독할 수도 있다. 일례로, 교조적 반미-반일 정치종교로 북한 동포들을 전체주의적 폭압통치에 예속시킨 민족주의자들의 죄악은 친일부역자들보다 더 크다. 교조적 민족주의는 고상한 구호이지만,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민족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 역사를 단칼에 단죄하려는 자들의 무지와 교만은 종종 시간이 지난 뒤에 더 큰 악으로 판명될 경우가 많다.
아무튼 해방 후 남한의 국가재건에 중용된 외세부역자들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 한국인들에게 결핍된 윤리의식은 정치인들이 저지르는 악덕에 대한 단호한 심판이다. 값싼 동정심에 빠진 한국인들은 폭력과 사기를 가하는 정치인들을 당시에 보복하지 못하고 피해간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항상 정권이 끝난 뒤에 과거 정치인들에 대해 군소리가 많다. 한국인들에게 정치적 악덕을 제대로 심판할 지성과 용기가 부족된 것 같다. 외세에 기생하여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 한국의 국익을 심하게 손상시킨 남한의 외국프락치들이나 외세배격을 핑계로 권력을 대대로 독점한 북한의 폐쇄적 민족주의자들은 철저하게 단죄되어야 한다.
사회의 전반적 현상들을 포괄하는 정치적 사건에 대한 판단과 반응에 한국인들은 무디고 비겁하다. 군사정권의 민주억압도 정권이 끝난 뒤에 말이 많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국가해체도 시간이 지나서야 심판될 것이다. IMF침공으로 경제주권을 국제금융세력에게 내어준 김대중 대통령을 아직도 IMF극복의 영웅으로 착각하는 한국인들은 정치적 판단에 미숙하고 비굴하다. 오늘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정체성을 흐리고 민족생존권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친북-반한-반외세 노선을 강행하거나 자신의 측근들을 싹쓸이로 사면시켜도 국민들은 단호하게 나무라지 못하고 수군거리기만 한다. 역사적 심판은 포괄적이고 신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단호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국인들은 익숙하지 못하다.
역설적 사건들이 뒤엉킨 정치사에서, 외세부역자들을 단죄하는 것이 곧 민족주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아니다. 거룩한 명분을 삥땅치는 사기가 흔하게 발생되는 정치사에서, 친일파 단죄나 재산몰수를 악용하는 정치세력이 있을 수 있다. 외세부역한 자들에 대한 단순명백한 정죄를 권력유지수단으로 가장 잘 악용한 정치세력은 역시 북한 정권이다. 북한 전체주의 정권은 교조적 반일-반미이념을 민중의 비판을 봉쇄하는 일당독재 정권으로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악용한 대표적 사례이다. 민족자주라는 거룩한 명분이 얼마나 한민족의 생존권과 자존심을 훼손하는지는 북한 정권이 선명하게 보여준다. 반일-반미 투쟁에 광신적인 교조적 민족주의를 앞세운 북한 정권이 희대의 민족 억압세력이 된 현상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친일부역자 재산몰수를 들먹거리는 노무현 정권의 의도와 진정성에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노무현 정권이 말하는 친일세력 청산과 민족주의 정립은 북한의 외세배격과 얼마나 다른 동기와 결과를 가지고 있을까? 그 동안 친북-반미-반일정책을 정권의 생존전략으로 채택한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 노무현 정권이 벌이는 친일부역자 재산몰수 소동은 또 다른 반일-반미 정치선동이 아닌지 국민들은 의혹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권의 친일부역자 재산환수라는 거룩한 구호를 듣고서, 반일-반미 정치구호를 60년 권력독점에 악용한 북한 공산정권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망상일까? 현 정권의 민족자주와 외세척결의 진정성이 의혹 받고 있다.
다시 기술적인 문제로 돌아가면, 해방 후 60여년이 지난 사유재산에 대하여 특별법에 의한 국가의 몰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초법적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의 재산권에 대해서는 존 로크가 가장 흥미롭고도 재미있게 “두 번째 정부론”에서 정리해두었다. “모든 인류에게 공여한 자연에 생산, 수집, 보존, 배양, 가공 하는 등의 개인의 노동이 부가하여 가치와 효용성을 높이면, 그 자연물은 사회의 공유물에서 개인의 사유물이 된다”는 요지의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이론을 로크는 주창했다. 그는 개인의 사유재산권은 생명권 다음으로 중시하여, “병사의 생명은 국가가 희생할 수 있지만, 전사자의 1페니도 본인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획득 후 60년이 지난 재산에 대한 사유재산권 박탈은 자본주의체제가 생명권 다음으로 중시하는 사유재산권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일제시대에 한민족을 팔아 부역한 대가로 토지나 재산을 받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었다면, 이미 50년 전에 국가에 몰수되고 처벌되어야 했었다. 그런데 해방 60년이 지난 오늘날 일제부역자들의 재산을 환수한다고 하는 것의 기술적 문제가 있어 보이고 정치적 타당성도 매우 희박해 보인다. 사실 자본주의를 선택한 남한에서 사유재산권의 획득 시효는 재산권 분쟁에 결정적인 판단기준이 되어왔다. 재산권의 행사나 분쟁에서 시효가 지난 이의제기는 재산권의 확보에 결정적으로 불리하다. 사유재산권에 대한 기본적 시효가 흔들리면, 재산분쟁은 걷잡을 수 없다. 그런데 해방 후 60여년이 지나서 친일파들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극단적 정의구현은,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지만, 또 다른 법적, 사회적, 정치적 논란이 야기될 것이다.
역사적 판단은, 라인홀드 니버가 믿은 것처럼, 항상 애매하고 역설적이다. 의로운 선조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불의한 외세부역자들을 살찌운 반민족주의에 대한 집요한 단죄도 중요하지만, 한민족을 이 정도로 번영하게 만든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안정적 유지도 이 시기에 중요하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친일파-친미파 단죄논쟁은 국론분열과 국력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사이비 민족주의와 사이비 반외세는 미국의 폭력성과 일본의 교활성을 진지하게 비판하는 양심가들을 침묵시킬 수 있다. 친일-친미 반민족주의자들의 악을 역이용하는 사이비 민족의자들의 폐쇄적이고 교조적 민족주의가 노무현 정권 하에서 활개 치는 현상은 국가적 비극이다. 지금은 친일-친미주의자들의 드러난 정치적 해악보다 반외세-민족주의로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교조적 민족주의자들의 정치적 위선을 국민들이 더 혐오한다.
지금은 군사정권의 억압과 폭력이 물러나고 군중정권의 사기와 선동이 활개를 친다. 방자와 사기를 남용하는 군중정권이 무정부상태를 계속 조장하면, 다시 질서와 안정을 강조하는 무력이 등장한다는 것은 라인홀드 니버가 지적한 역사의 순환이다.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책임을 제대로 유지시키지 못하는 나쁜 사회에서는 폭력이 차면 사기가 등장하고, 사기가 차면 폭력이 등장한다. 폭력배보다 사기꾼을 더 혐오하는 필자는 제국의 충견이 된 외세숭배세력의 ‘육적 죄악(sensual sin)’보다 민족자주라는 명분을 착취하는 민족주의세력의 ‘영적 죄악(spiritual sin)’을 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반일-반미 노무현 정권이 친일부역세력의 사유재산을 국고로 몰수하는 소동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결국 역사청산의 도덕적 정당성을 실추시키고, 결과적으로 매국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2006-08-14
[조영환 칼럼니스트]younghwancho@naver.com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