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부터 13년간 ‘김정일의 요리사’를 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씨가 지난 7월 ‘책과 여자를 사랑한 장군님’을 펴냈다. ‘김정일의 요리사’ ‘김정일의 사생활’에 이어 그의 세 번째 책이다. 월간조선 9월호는 최근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을 발췌해 보도했다. 다음은 주요 부분.
◆김옥은 ‘집무실 금고지기’였다
87년 당시 김정일의 제1비서로 있던 20대 중반의 김옥을 처음 만났다. 김옥은 ‘흰 살결에 미소 띤 얼굴, 158㎝의 키에 발군의 각선미’를 갖췄다. 김옥은 김정일과의 식사 자리에 고영희(김 위원장의 세번째 부인·2004년 사망)가 빠질 땐 고영희가 쓰는 프랑스제 식기를 사용했다. 김옥은 김정일 전용의 금고관리까지 했다. 김정일의 집무실에 거대한 금고가 있었고, 우리들이 해외로 나갈 때 금고에서 돈을 꺼내준 것이 김옥이었다.
김정일은 취하기 시작하면 오른쪽에 앉힌 여성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버릇이 있는데, 고영희가 없을 때는 오른쪽에 앉아있는 김옥의 머리카락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고영희가 사망한 지금 관저에서 김정일과 함께 생활하고 있지 않을까. 아무튼 김옥은 고영희가 공인한 존재였다.
◆위조지폐 10만 달러 환전
96년쯤 김정일은 “최근 우리나라의 호텔이나 외화벌이 상점에 위조 달러가 나돌고 있다. 이를 회수해서 길재경(당시 비서실 부장)이 폴란드 인접국에 가고 있다. 잘 된다면 진짜 달러와 교환해서 10만 달러를 갖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주일 후 길재경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들어와 외교행낭을 김정일에게 건넸다. 김정일은 “수고했어. 잘했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부터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위조지폐를 제조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10만 달러의 위조 지폐가 평양호텔이나 외화벌이 상점에 한꺼번에 나돌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길재경은 각국 주재 외교관들에게 위조지폐의 환전을 하게 해 그 회수 역할을 담당한 것이 아닐까. 그 자신도 9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위조지폐를 환전하다 적발돼 추방당했다.
◆“핵 대피 지하실 있어”
96년 김정일이 주최한 한 연회 자리에서 대장 중 한 사람인 김명국이 돌연 “장군님, 안심하십시오. 전쟁이 시작되도 우리들이 생명을 걸고 장군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지하실도 완성했습니다. 실내 온도도 22도로 잘 설정돼 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순간 김정일은 술이 깨는 듯했다. 극히 일부 측근 이외에는 알려지면 안되는 중요한 군사기밀이었음이 틀림없다. 실제 서너 달 후 김명국은 김정일의 연회에서 멀어져 갔다.
전쟁이 시작되도 김정일을 지킬 수 있는 지하실은 어디에 있을까. 평양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22호 초대소가 나오는데, 나는 여기에 김정일의 핵 대피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22호 초대소는 92년 후반부터 2년간 출입이 통제된 적이 있었다. 그 2년간은 벤츠가 왕래하는 대신에 공사를 위한 군용트럭이 들락거렸다. 이때 22호 초대소 지하를 핵대피시설로 만든 것이 틀림없다.
어느 초대소라도 출입체크는 엄격하지만 22호 초대소 경비는 더 엄격했다. 22호 초대소는 평양의 김정일 관저에서 지하도로 연결된다. 이곳은 3000m의 경마장과 사격장이 완비돼 김정일 부부가 평양에서 가볍게 오락을 즐기러 가는 곳이다. 이곳은 김정일 전용열차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지상 2층, 지하 3층 규모의 건물로 다른 초대소보다 경비가 매우 삼엄했고, 표고 150m의 견고한 암반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정시행기자 polygon@chosun.com
“김정일, 네 번째 여자 김옥은 금고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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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19, 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