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cm정도의 키로 알려져 있는 김정일의 사진과 그림을 비교해보았다. ⓒ자유북한방송
평성예술대학 졸업 후 개천철도 미술창작사에서 4년, 조선인민군25후방 총국에서 탈북 전까지 3년여 동안 ‘1호창작가’를 지낸 이철호(35)씨는 김 부자를 그리는 데에는 엄연한 ‘원칙’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가장 우선되는 원칙은 ‘아무나’ 그릴 수 없다는 것.
일차적으로 그림을 창작 및 생산할 수 있는 곳은 ‘만수대창작사’와 ‘조선인민군미술창작사’ 두 곳뿐으로, 기타 창작사에서는 이 곳에서 창작된 작품을 받아 복사만 할 수 있다. 복사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시험을 통과한 ‘1호창작가’여야 한다. 일반 작가들이 맘대로 그렸을 경우 ‘정치범’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원칙으로는 작업 시 ‘최대의 정중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있다. 김 부자의 그림을 그릴 때는 단정한 옷차림을 갖추어야 하며, 흡연은 물론 잡담도 금지된다. 또한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좋은 점은 부각시키고 부족한 점은 생략해야 한다. 김일성의 그림에 ‘혹’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 전신 그림일 경우 8등신으로 ‘미화’되어 묘사되며 표정은 보통 ‘자애롭고 인자한 영상’으로 묘사된다.
김 부자의 그림은 크게 ‘초상화’와 ‘미술작품’으로 나뉜다. 일반 가정에 걸리는 ‘초상화’는 사진이 대부분인데, 공공장소 등에 걸리는 큰 ‘초상화’의 경우는 그림을 걸게 된다. ‘미술작품’은 김 부자의 활동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대부분 군중들이 함께 등장한다.
이철호 씨의 경우 초상화는 이틀에 하나, 유화작품은 한 달에 3~4개 정도가 할당량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초상화만 계산해도 한 달에 15장으로, 일 년에 180여장 정도를 그려야 한다는 얘기다. 김 부자의 그림에 동원되는 미술가는 대략 전국적으로 1~2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철호 씨는 작업에 들어가는 물자도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재료는 100% 수입되어 만수대창작사에서 다시 가공되어 공급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외화만도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것.
유화작품을 걸 구조물과 작품을 매일 쓸고 닦는 관리원도 필요하며, 전력난에도 유화작품을 비추는 전기는 꺼지면 안된다. 게다가 초상화를 운반하는 차량은 ‘1호 작품 모심 열차’로 지정해 별도로 관리한다. 이 씨는 그림을 그리기 전 밑작업으로 제소작업을 할 때 달걀의 흰자위를 섞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양만 해도 엄청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씨는 자신을 비롯해 대부분 초상화와 일부의 작품들을 복사하는 작업일 뿐 자유로운 창작이 보장되지 않는 미술작업에 회의를 느끼는 작가들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탈북 후 홍익대에 진학해 미술을 전공한 이 씨는 웃으며 “아직도 북한 그림에 나오는 백두산은 눈감고도 그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김수연 기자 nksue@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