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총장은 유엔군 참모장이냐?”

1950년10월1일 한국군의 38선 돌파를 앞두고 李承晩 대통령과 丁一權 참모총장 사이에 있었던 긴장감 넘치는 대화.
38선 돌파 비화 -- “정 총장은 유엔군 참모장이냐, 한국군 참모장이냐”

노무현 대통령과 윤광웅 국방부장관이 소위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관련하여 반드시 읽어야 할 역사의 기록이 있다. 그것은 1950년10월1일 동해안에서 이루어진 한국군의 38선 돌파를 앞두고 李承晩 대통령과 丁一權 한국군 참모총장 사이에 있었던 긴장감 넘치는 대화의 기록이다. 이 기록에서 우리는 북한 공산군에 의한 6.25 남침을 격퇴하기 위해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에게 ‘일시적’으로 위임해야 했던 노 애국자 이승만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작전지휘권’觀을 읽을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의 독단전행에 의한 38선 돌파 이외에도 1953년 미국의 독단적인 휴전협상 강행에 대한 항의로 2만여 명의 ‘반공포로’들을 일방적으로 석방하여 그들을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그가 유엔군 사령관에게 “일시적으로 위임”했던 ‘작전지휘권’을 서둘러 ‘환수’하는 경거망동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한국군의 ‘작전지 휘권’ 을 유엔군사령관에게 맡겨 둔 채 휴전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오히려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에 대한 동의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미국으로부터 얻어 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더하여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배치를 관철시 킴으로써 그 뒤 반세기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재발을 성공적으로 억지하고 대한민국이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특히 이 나라 젊은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기록이다. 이 기록은 존 톨란드(John Toland)의 한국전쟁에 관한 저서 <死鬪>('A Mortal Combat')233-234쪽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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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에 의한) 38선 돌파라는 군사적 결단을 최초로 내린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그는 맥아더 원수와는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이 같은 결단을 내렸다. 이 대통령은 정일권 한국군 참모총장을 불러서 ‘38선 상에 무슨 표지(標識)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정 총장은 ‘없습니다’라고 답변했다. (38선 상의) 모든 지석(誌石)과 표지들은 이미 모두 치워진 후였다. 이 대통령은 ‘그런 것들은 무시해도 되는 것이냐’고 묻자 정 총장은 ‘각하, 본래 38선은 지도 위에 그려진 것일 뿐이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선입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그렇다면 총장은 어째서 (38선에 도달해 있는) 총장 휘하의 2개 연대에게 38선 돌파를 명령하지 않느냐’고 힐란했다. 이에 대해 정 총장은 ‘각하, (38선 돌파를 명령하는 데 필요한) 작전지휘권은 유엔군 사령관인 맥아더 원수의 수중에 있습니다’라고 항변하자 이 대통령은‘도대체 정 총장은 유엔군 참모총장이요? 아니면 한국군 참모총장이요?’라고 거듭 힐란했고 정 총장이 ‘각하, 당연히 후자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렇다면정 총장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추궁하면서 ‘나는 임시로 맥아더 원수에게 작전지휘권을 맡겼지만 내가 원한다면 오늘이라도 되찾아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총장이 ‘예, 대통령 각하, 각하께서 명령만 주시면 소관은 즉시 명령 을 이행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하자 이 대통령은 즉석에서 한 장의 종이에 몇자 글씨를 적어서 정 총장에게 주면서 ‘여기에 내 명령이 있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서명한 종이에는 ‘정 총장은 즉각 한국군에게 북진을 명령하라’는 지시가 적혀 있었다.” [존 톨란드(John Toland) 저 <死鬪>() 233-234쪽]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한 날인) 10월1일이‘국군의 날’로 지정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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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본문>

It was President Rhee who took the first military initiative to cross the 38thparallel, and he did so without consulting General MacArthur. Rhee summoned Chief of Staff Chong Il Kwon and asked if there were any markings along the 38th parallel. Chong’s answer was negative. All stones and markings had been removed. 'Do you think they should be disregarded? Asked the president. 'The parallel,' said Chong, 'is only a line drawn on a map. There is no such thing.'

'Why don’t you let those two regiments you have up there through it?' Chong protested that the operational authority to do so was in the hands of General MacArthur as commander of the UN forces. 'Well, are you the chief of staff of the United Nations or the chief of staff of the Korean Army.' The latter Chong replied. 'In that case,' said Rhee, 'don’t you think you think you should obey the order of the president of Korea? I gave General MacArthur authority over the ROK Army temporarily. If I want to take it back, I can take it back today.'

'Yes, sir, Mr. President, if you give me the order, I will immediately execute it.' Rhee scribbled on a piece of paper. 'This is my order.' It directed Chong to march his forces north immediately and was signed by the president. [See 'In Mortal Combat'by John Toland, pp. 233-234. It is probably more than coincidental that 1 October is marked as ROK Army foundation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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