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1일 시청 앞 북한해방국민대회. 태극기와 성조기 유엔기가 펼쳐진 서울광장 잔디공원공원 뒤로 애국시민들의 김정일폭정종식를 외치는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대한민국 正統(정통)세력이 右派세력
右派는 盧武鉉 정권 이후 빠르게 생성, 결집해왔지만 그 뿌리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서 비롯한다. 한반도에 빚어진 左右 대립 속에서 남쪽에는「대한민국」, 북쪽에는「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민공화국)」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右派란 대한민국을, 左派란 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세력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한국 右派의 산 증인인 李哲承(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상임의장은 이 같은 맥락에서 한국적 특수성에 기반 한 左右 개념을 강조한다.
『한국의 左翼과 右翼은 서구에서 말하는 개념과 다릅니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正統(정통)세력」이 右派이고, 건국을 반대했던 反美·親北·容共세력이 左派인 것이죠.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무시한 채 서구적 左右 개념을 끼워 맞춰 左派는 進步的(진보적)입네, 右派는 反動的(반동적)입네 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입니다.』
해방공간에서 反託(반탁)·反共(반공)운동으로 건국에 참여했던 李의장은 『右派의 사명 역시 자유민주주의라는 建國理念(건국이념)을 남한에서 守護(수호)하고, 북한까지 擴張(확장)시키는 것』이라며 『자유의 수호와 확산이라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성취하는 것이야말로 반탁반공·정통세력, 바로 右派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회7選의원으로서 70년대 YS-DJ와 함께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며 대통령후보로 나섰던 李의장은 8순이 넘은 나이에도 각종 집회의 연사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北韓구원은 金正日 멸망 통해 가능
「대한민국 正統(정통)세력」으로서의 右派는 盧武鉉 정권 들어 시청 앞 기도회·국민대회 등 대규모 군중집회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국가보안법사수 등을 외치며 많게는 10만 명 이상 모인 시민들은 前職 관료·군인·경찰·학자·회사원, 주부 등 묵묵히 체제를 지켜 온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시청 앞 대규모 군중집회를 물꼬를 튼 반핵반김국민협의회(이하 국민협의회)는 2003년 2월 金尙哲(김상철) 미래한국신문 회장을 제1기 집행위원장으로 선임한 이래 제2기 金景來(김경래), 제3기 安應模(안응모), 제4기 奉斗玩(봉두완), 제5기 徐貞甲(서정갑), 제6기 林炚圭(임광규), 제7기 金顯煜(김현욱), 제8기 朴讚星 집행위원장에 이르고 있다.
金尙哲 회장은 2002년, 右派의 운동紙 역할을 하고 있는 미래한국신문을 창간한 것 이외에도 2005년「正統保守(정통보수)」를 자임하고 출범한 「자유지식인선언」을 崔洸(최광) 前보건복지부장관, 朴聖炫(박성현) 서울대교수와 함께 만들었다. 기도교인인 그는 右派운동의 사명을 『북한 해방』에 두고 있다. 2003년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를 만들어 탈북민 보호를 위한 1000만 명 서명운동을 성공시킨 것을 비롯, 2004년부터는 「북한구원운동」을 만들어 金正日독재종식과 북한주민구원을 위한 대규모 기도회를 개최해왔다.
金회장은 지난 6월19일 서울교회(담임 李鍾潤(이종윤) 목사)에서 목회자, 북한인권운동가 등 3,000명이 참석한 북한구원목회자기도대성회를 주도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金正日정권과의 공조공존은 인류의 정의감에 반하고 민족의 양심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분단 60년 세월을 넘기고 있는 이제, 우리는 金正日 暴政(폭정)으로부터 북한을 해방시켜 북한의 동족을 구원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金正日정권이 멸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正義는 반드시 승리한다
국민협의회로 시작된 右派의 대규모 場外(장외)집회는 제5기 집행위원장인 徐貞甲 대령연합회장의「국민행동본부」에 의해 확대, 발전됐다. 徐회장은 2004년 7월 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피선된 후 7월23일, 8월6일, 8월15일, 8월27일 광화문국민대회와 10월4일 시청 앞 국민대회로 盧정권의 4대입법 강행을 저지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는 2005년 이후에도 국민행동본부를 이끌며 反김정일·反친북좌익척결의 선봉에 섰다. 主要사안이 있을 때마다 개최한 수 천·수 만 명 단위의 국민집회는 현재까지 20여 차례, 신문하단에 게재하는 의견광고는 이미 100번을 넘어섰다. 『독립운동 하듯 애국운동 하는 사람』으로 불리는 徐회장은 정권과 左派세력으로부터 고소·고발 등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왔다. 親北단체로부터 「內亂선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해 간첩들이 조사받는 對共공안분실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여러 차례. 그러나 徐회장은 입버릇처럼『정의는 승리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正義의 편에, 金正日의 인민공화국은 不義의 편에 서 있습니다. 어떠한 탄압과 음해. 모략이 있어도 正義의 편에 서 있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대령연합회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국민행동본부에는 『나 역시 대령』이라고 말하는 三星(삼성)장군이 있다. 바로 국민행동본부 고문인 閔丙敦(민병돈) 前 육사교장. 특전사령관을 거쳐 제33대 육사교장을 지낸 閔장군은 右派집회 때면 군복을 입고 나와 격려사를 빼놓지 않는다. 그는 종종 현재의 상황을 解放(해방)공간과 비교하는 말을 들려준다.
『8.15직후에도 左右대립이 심했는데 左派가 우세했었죠. 지금도 비슷해요. 그만큼 右派가 할 일이 많은 거죠. 우리 같은 軍출신들도 나라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려야 놓기 위해 해야 될 일이 많습니다. 그것이 조국을 위한 마지막 봉사이기도 할 것입니다』
軍출신 원로들의 노익장
閔丙敦장군 이외에도 각종 右派집회를 직·간접적으로 후원하며 老益壯(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들 중에는 軍출신 元老(원로)들이 많다.
현재도 활발한 안보강연을 다니고 있는 「월남전의 영웅」蔡命新(채명신) 장군은 6·25와 월남전 두 번의 전쟁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싸웠던 인물이다. 牧師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신앙을 말살하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군인을 택했다. 1965년부터 4년간 駐越한국군총사령관으로, 72년 중장예편 시까지는 軍사령관으로서 월남전을 지휘했던 蔡장군의 對民지원활동은 美軍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보다 蔡장군을 더 유명하게 만들 정도였다.
金聖恩(김성은) 前국방장관 역시 안보활동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6월21일에는 예비역장성들의 모임인 星友會가 서울역에서 주최한 DJ방북저지집회의 특별연사로 나섰다. 그는 6·25 당시 해병대 대령으로서 진동리전투, 통영상륙작전, 영월지구전투를 지휘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39세 때인 1963년 국방장관에 취임한 그는 68년까지 5년간 국방장관을, 1970년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육사출신 장성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자유수호국민운동」의 張坰淳(장경순) 명예의장은 靑年右派의 애국활동을 陰으로 陽으로 후원해주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張명예의장은 5.16주체세력 중 한명으로서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아래서 농림부장관과 무임소장관을 지내고 6·7·8·9·1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장외집회, 右派운동가의 행동의 장
국민행동본부 등에 의해 개최되는 場外(장외)집회는 右派운동가들의 말하고 행동하는 場(장)이 된다. 집회가 열리면 자유개척청년단(대표 崔大集(최대집)), 무한전진(대표 柳鉉邰(유현태), 자유한국포럼(대표 高岡(고강)), 라이트코리아(대표 奉泰弘(봉태홍), 姜承圭(강승규)), 나라사랑시민연대(대표 金京星(김경성))를 비롯해 나라사랑어머니연합(대표 權明湖(권명호)), 대한민국바로세우기여성모임(대표 林銀珠(임은주), 李惠實(이혜실)) 등 右派단체 회원들이 연설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퍼포먼스를 벌인다.
대표적 靑年右派단체인 자유개척청년단(자청단)은 서울대 출신 내과전문의인 崔大集씨를 대표로 하여 미국서 대학을 나온 증권애널리스트 출신 趙旲原씨가 부대표를 맡고 있다. 자청단은 적지 않은 前科(?)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9월11일에는 맥아더동상파괴를 기도한 左派단체에 맞서 동상사수에 나섰다가, 『合法집회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집시법위반이 적용,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해 11월에는 평택에서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하는 左派단체의 프래카드를 철거했다가 회원 중 한 명에게 절도죄가 적용됐다.
崔大集 대표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파괴하려는 叛逆(반역)은 비호하고 이를 저지하려는 행위에는 온갖 방법으로 단죄하는 것이 盧武鉉정권의 실체』라며『어떠한 정치탄압 속에서도 盧武鉉정권 아래 빚어지는 반역행태에 대한 투쟁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愛國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靑年右派단체 무한전진은 직장인과 대학생, 주부 등 일반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돼있다. 무한전진의 대표는 버클리음대를 나온 작곡가 柳鉉邰씨다. 柳씨는 2004년 3월 「盧武鉉탄핵적극지지카페」를 만든 후 미래한국신문에 실린 기사를 회원들에게 배포했다가 선거법위반으로 벌금형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柳鉉邰 대표는 『左派들의 선전선동으로 왜곡돼왔지만, 右派들은 수구나 꼴통이 아닌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북한을 민주화하겠다는 순수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라며 『도덕적으로 옳고, 현실적 선택이기도 한 右派的 가치 실현을 위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 보수층의 각성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라이트코리아 奉泰弘 대표는 行動力(행동력)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해 8월14일 남북축구경기가 열리던 상암동월드컵경기장에서 태극기를 배포하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들에 포위된 채 좌익이 던진 둔기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奉대표는 올 들어 북한체제를 찬양해 온 간첩전력자 金南植(김남식)을 「통일애국지사」로 미화한 「전국연합」사무실을 항의 방문해 문제의 묘비를 자진 철거케 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인터넷에 金日成·金正日 찬양 글을 게재한 빨치산출신 김영승이 소속된 「통일연대」사무실을 항의 방문해 역시 해당 글의 자진삭제를 이끌어냈다.
북파공작원 출신들로 구성된 HID청년동지회 역시 이름난 行動派(행동파)들이다. 이 단체 吳福燮(오복섭) 회장 등 3인은 지난 해 광복절행사 기간 중 태극기사용을 금지시킨 李海燦(이해찬) 前 총리에 대한 항의표시로 같은 해 9월28일부터 10박11일에 걸친 올림픽대교 위 고공(高空)시위를 벌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파주 보광사에 조성된 간첩·빨치산 통일애국열사 묘비를 철거에 나서기도 했다. 『나는 오늘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 HID청년동지회의 吳福燮 단장은 『내가 오늘 조국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면 자유는 지켜질 수 없다』고 말했다.
살림하던 주부들마저 거리로 나서
左派의 득세는 가정에 있던 주부들마저 길거리로 내몰았다. 중년의 여성들로 구성된 나라사랑어머니연합(나사연)은 姜禎求(강정구) 교수 규탄집회를 비롯해 金大中 前 대통령방북저지, 吳世勳(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의 崔烈(최열)씨 등용규탄 등 활발한 집회를 벌여왔다. 2003년 盧武鉉정권 출범과 함께 사회활동을 시작해 온 나사연의 權明湖(권명호) 대표는 『金大中정권 5년이 끝나자 이제 좋아지려니 했는데, 盧武鉉 정권이 들어서니 더 이상 살림만 하고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며 『左派정권의 집권연장을 막기 위해 주부들의 힘을 최대한 발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에는 또 다른 주부들의 右派단체인 대한민국바로세우는여성모임(대세모. 공동대표 林銀珠(임은주), 李惠實(이혜실))이 발족됐다.「雩南(우남) 李承晩과 건국사 바로 알기」인터넷카페 회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단체는 출범 이후 金大中 前 대통령 방북저지 등에 앞장서왔다. 『대한민국과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모토를 걸고 출범한 대세모의 林銀珠 대표는 『나라가 망해 가는데 집안 일만 하고 있을 수 없다』며 『행주치마로 왜적에 맞선 의병의 심정으로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친북좌익세력과 맞서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보수가 애국이라는 걸을 알려줬다
보수진영은 盧武鉉 정권 출범 당시 인터넷이라는 新銳(신예)무기에 졌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같은 반성은 3년이 지난 2006년 현재, 右派성향 인터넷매체들의 발흥기를 불러왔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右派가 左派를 압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 같은 성적표를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 중 하나가 독립신문의 申惠植(신혜식) 대표다. 金大中 정권 당시 야전에서 右派운동을 벌여 온 그는 2002년 7월 500만원을 종자돈으로 독립신문이라는 인터넷매체를 만들었다. 御用(어용)매체가 외면해버린 右派운동을 실시간으로 보도하는 신속성과 대표가 직접 제작하는 抱腹絶倒(포복절도)하는 패러디는 독립신문의 높은 조회수를 견인해왔다.
申惠植 대표는 지난 3~4년간 右派운동의 성과로 『右派나 보수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것』을 들었다.
『左派들의 선동으로 右派가 마치 기득권사수인 것처럼 왜곡됐던 것이 2002년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운동가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右派는 친북세력과 싸우는 것이고, 보수는 대한민국의 체제를 지키려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봅니다.』
지난해 8월25일에는 右派성향 인터넷매체들의 연합체인 한국인터넷언론협회(회장 姜承圭(강승규))가 만들어졌고, 지난 4월26일에는 右派언론인들의 연합체인 자유언론인협회(회장 梁榮太(양영태) 디지털치과타임즈 발행인)가 출범했다.
「人脈王」「多作王」이라는 별명을 가진 梁榮太 회장은 대통령주치의를 담당했던 치과의사로서 대령연합회의 사무총장 겸 대변인도 맡고 있다. 梁회장은 자유언론인협회 출범 당시 포털사이트와 공영방송의 정상적 역할 촉구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는 『현재 신문법에서 배제된 포털사이트는 권력의 비호 아래 언론 아닌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左派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선 특히 포털사이트가 검색사이트라는 본래적 기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권력과의 유착관계를 단절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차원의 右派운동도 전개
군사평론가인 池萬元(지만원) 박사가 운영하는 시스템클럽 역시 활발한 右派토론사이트 중 하나이다. 시스템공학 전문가인 池박사는 하루에 통상 대 여섯 편의 글을 게재하는데, 그의 글과 말은 사이버공간의 화제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池박사는 최근 『右派내부에 위장세력이 들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도『金正日은 열린우리당에 이미 민심이 떠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북한입장에서 용도 폐기됐다』고 말한 뒤 『북한입장에서 남은 선택은 한나라당이나 新右派를 자처한 뉴라이트 진영에 위장세력을 침투시키는 것』이라며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사랑선교회 金漢植(김한식) 목사는 「안보와경제살리기국민운동본부」를 통해 한미동맹 강화와 親北左派 척결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이는 등 기독교차원의 右派운동을 전개해왔다. 대규모 장외집회의 물꼬를 튼 시청 앞 국민대회는 그가 2003년 2월 기독교계 인사들과 함께 시청 앞에서 개최한 대규모 기도회가 시발점이 됐다. 金목사는 최근 金大中 前 대통령의 미국 내 비자금을 국민에게 밝히고 그를 사법당국에 법적으로 고발하는 「호남을 사랑하는 호남인들의 모임」을 이끌고 있다.
金목사는 『金大中 前 대통령은 민주화의 상징으로 대통령직에 취임했지만 이제 그의 실체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거짓의 연속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며 『호남인들의 약자 심리를 선동해 권력을 누려온 金 前대통령에 대한 依法 조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리위해 목숨 안 아낄 것
右派운동은 한반도 左派의 盟主(맹주) 격인 金正日과의 쟁투로 볼 수 있으며, 동시에 金正日이 저지른 북한인권 참상의 해결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인권운동가들은 右派운동가들과 동일선상에서 활동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자유북한방송 金聖珉(김성민) 대표는 1999년 남한 입국 이래 각종 탈북민 보호단체의 대표를 맡으며 북한인권운동의 선봉에 서왔다. 2004년 4월20일에는 단파라디오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을 개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부시 대통령을 면담해 북한으로 송신되는 단파라디오방송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을 하기도 했다.
金대표는 자유북한방송 개국 이래 더 한층 노골화된 북한의 공갈·협박, 親北단체들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金대표는『시작할 때 그랬듯이 「북한의 독재가 반드시 소멸되어야 한다」는 신념은 변함없고,「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우리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으며 「통일의 그날까지 자유의 목소리를 중단하지 않는다」는 오늘의 맹세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공동대표 姜哲煥 外)의 朴相學 사무국장은 탈북민 출신으로 2000년 입국 후 2003년 북한민주화운동본부의 전신인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에 참여해왔다. 그는 右派운동가들과 함께 親北단체들의 金正日 추종행태를 규탄하는 활동에 주력하는 한편, 각종 집회에서 북한의 인권실태를 알리고 남한의 각성을 촉구하는 연사로도 자주 등단한다.
朴사무국장은 7월12일, 남북장관급회담의 숙소였던 부산 모 호텔로비에서 金正日 정권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벌이다 경찰에 강제 연행돼, 30여 시간 동안 유치장에 감금되는 곤욕을 치렀다. 그는 강제 연행 과정에서 경찰이 가한 폭행으로 목과 팔에 기브스를 하는 등 전치3주의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朴사무국장은 『盧武鉉 정권이 金正日 정권을 돕는 만큼 북한 동포들은 더 많이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 죽게 될 것』이라며 『21세기 절대 악(惡)으로 남아있는 북한의 공산독재와 共助하는 것은 파멸로 이르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유는 싸워서 얻어내는 것
右派的 시각에서 보면 左派의 違憲的(위헌적)·不法的(불법적) 행태를 제어하기 위한 법정투쟁이 필수적이다. 2004년 盧武鉉 대통령 탄핵 당시 소추의원 측에서 변론을 맡은 李珍雨(이진우), 林炚圭(임광규) 변호사에 이어 최근에는 대구의 徐錫九(서석구) 변호사가 각종 애국변론에 임하고 있다.
徐변호사는 지난 해 8월22일 북한의 6·25남침을 통일전쟁으로 美化한 姜禎求(강정구)에 대한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고발을 필두로 일련의 反국가행위자들에 대한 고소·고발을 전개해왔다. 徐변호사는 이해찬 前총리와 정동영 前통일부 장관을 같은 해 9월21일 역시 내란선동과 국보법위반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각각 8·15행사 중 人共旗 소각 및 太極旗 사용 금지와 북한의 核개발 옹호발언 등이 실정법에 어긋난다는 취지였다. 徐변호사는 在美언론인 손충무氏와 盧武鉉타도연합 공동대표 한상구氏 등 右派운동가들의 소송도 변론 중이다.
그는 『盧武鉉 정권과 金正日 세력의 사악함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多數는 이제 깨어나 행동해야 한다』며 『자유는 공짜가 아니며 싸워서 얻어내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진정한 右派는 갱신과 개혁이 필수
右派운동은 軍(군)출신들이 주도해 온 場外集會와 함께 관료출신 등이 중심이 된 市民運動으로서도 진행돼왔다. 시민운동 차원에서 右派활동을 벌여 온 주요 단체가 2000년 11월 설립된 자유시민연대(자시연. 공동의장 安應模, 鄭起勝(정기승), 柳基南(류기남))이다.
自由主義(자유주의)와 市場經濟(시장경제) 기치를 내건 자시연은 盧武鉉 정권이 강행해 온 국보법, 사학법, 언론법, 과거사법 등 4대입법의 부당성을 알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자시연은 각각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동참한 2004년 9월9일과 2005년 10월18일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문」을 주도했다.
내무부장관을 지낸 安應模씨는 右派운동이 지향하는 가치를 지켜야할 것, 싸워야 할 것, 고쳐야 할 것의 세 가지로 정의했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시장경제를 지켜야 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적화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金正日체제와 그에 동조하는 남한의 親北反美세력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安 前장관은 그러나 『고쳐야 할 것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민주·시장경제를 우리가 지키기 위해서는 不正腐敗(부정부패)를 없애야 합니다. 부정과 부패 속에서는 상대적 약자의 불만을 토양으로 체제를 뒤집으려는 左派가 자라게 되죠. 그러니 진정한 右派라면 항상 갱신과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安 前장관은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 회장인 鄭起勝 前 대법관과 함께 지난 5월 발족한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위원장 諸成鎬)의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0년 자유시민연대 설립 당시부터 대변인으로 일해 온 趙南鉉(조남현)씨는 교육공동체시민연합 사무처장,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정책위원, 한국선진화포럼 운영위원회 간사 등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의 실무를 담당해온 인물이다. 그는 『右派운동의 과제로 한국사회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되찾아오는 것』이라 말한다.
『政權을 左派에게 빼앗겨서 사회가 左傾化된 것 이전에 사회적 담론의 주도권을 左派에게 빼앗겨서 政權도 넘어간 것이죠. 폭넓은 문화투쟁을 통해 이념지형을 左派에서 右派로 환원시켜야 정권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2007년 이긴 후 右派운동은 더 절실하다
趙南鉉 대변인의 이 같은 지적은 右派운동가들의 공통된 인식이기도 하다. 右派운동가들은 2007년 대선에서 左派의 再집권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左派성향의 집권을 막은 이후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 朴讚星 운영위원장은 『정권이 돌아와도 피라미드의 꼭지점만 바뀐 것이지, 나머지 몸통은 여전히 붉은 색이라고 봐야 한다』며 『右派운동은 金正日 정권이 종식되고 金正日의 추종세력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유효하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포럼 高岡 대표는 『左派가 종식돼도 左派가 심어놓은 사회분위기는 여전하고, 각계에 침투한 左派적 사조 또한 여전할 것』이라며 『左派정권이 종식되면 右派운동은 左派청산이라는 형태로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나사연 權明湖 대표는 『右派는 우선 2007년에 左派정권을 종식시켜야 하지만,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는 左派의 재집권이 실패해도 4·19이후 혼란이 우려 된다』며 『左派의 재집권을 저지한 이후에도 右派단체들의 할일은 더 많아질 것』라고 말했다.
국민을 開眼시켜야 할 右派
모든 운동은 현장의 집회·시위를 벌이는 행동 위주의 街鬪(가투)그룹과 이들에게 논리를 공급해주는 思鬪(사투)그룹이 함께 움직이기 마련이다.
右派의 투쟁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대표적 인물인 趙甲濟 前 월간조선 대표는『애국운동의 교과서』로 불려진다. 『金正日독재종식과 自由民主흡수통일』로 정리되는 그의 논리는 지난 해 월간조선 대표직 사퇴 이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趙 前대표는 현재 조갑제닷컴이라는 인터넷매체 겸 출판사를 독자적으로 운영하면서, 하루 평균 대 여섯 편의 글을 인터넷에 게재한다. 이렇게 제공된 趙 前대표의 「글」과 『대한민국 수호의 전도사』로서 강연장에서 전달되는 그의 「말」은 右派의 무기로 운동가들에게 숙지된다.
『한반도 내 벌어지는 갈등의 본질을 선과 악의 대립, 진실과 거짓의 대립』으로 통찰하는 趙 前대표는 『한반도의 가장 수구적 左派인 金正日과 그 추종세력이 청산될 때 대한민국의 선진화라는 비전 또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李度珩(이도형)사장은 월간지 한국논단을 통해 右派的 가치를 전달하고 있는 인물이다. 1964년 조선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92년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퇴직하며 발간했던 한국논단은 한때 50여 개 기업이 참여한 중량급 잡지였다. 그러나 97년 한국논단 주최의 「대통령후보자 사상검증토론회」에서 金大中후보를 집중 공격한 것이 화근이 돼 소송을 당했고, 결국 집까지 날리고 말았다.
『희생 없이 애국할 수 있겠느냐』는 李度珩사장은 『국민들이 한국의 左派는 체제전복세력이라는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을 때까지 잡지를 계속해갈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수준이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한국 좌익들의 거짓과 위선을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로 開眼(개안)이 돼야 합니다. 右派는 국민들에게 그 같은 본질을 알리는 역할을 계속 해야겠지요』
2004년 말 등장한 (Newright-신右派)의 산파역할을 한 柳根一(류근일) 前 조선일보 주필은 유신반대 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朴正熙 정권에서 8년간의 옥살이를 했던 인물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다시 極左派와의 투쟁전면에 나선 柳주필은 현 시국을 『건국초기의 원점(原點)으로 돌아가 있다』고 말한다.
『이승만 노선이냐, 金日成 노선이냐? 대한민국이냐 인민공화국이냐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1948년 체제」를 지키느냐, 허무느냐의 다툼이 현 시국의 본질입니다』
柳주필은 『대한민국이냐 인민공화국이냐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反대한민국-親金正日대연합」에 맞선 「反金正日-右派대연합론」을 펼쳐가야 한다』며 『한나라당은 전체 右派를 아우르는 폭넓은「右派 연합정권론」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左派 폭로 계속돼야
盧武鉉 정권 3년간은 右派의 「思鬪그룹」을 언론인에서 연구실의 학자들에게로 확산시켰다. 인터넷과 활자매체에서 左派들의 反動(반동)을 규탄하는 지식인들은 이제 강단과 거리를 넘나들기도 한다.
지난 해 7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통일연구원을 사퇴한 洪官熹(홍관희) 박사는 현재 안보전략연구소를 운영하며 미래한국신문의 주필로 상근하고 있다. 洪박사는 각종 칼럼과 강연은 물론 수도권에서 小規模 애국집회를 벌이며 릴레이 가두연설을 벌여왔다.
그는 『盧武鉉 정권 초기 속수무책이었던 자유애국운동은 이제 많은 국민들을 각성시켰고 그것이 지난 5.31지방선거에서의 親北左派에 대한 응징으로 나타났다』며 『右派들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이념적 정체성과 국가적 정통성 아래 한미동맹을 복원시켜 金正日정권을 조기 붕괴시키고, 자유민주통일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洪官熹 박사와 함께 정통보수를 표방하고 있는 자유지식인선언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李相敦(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최근 일부 인사들과 反共(반공)을 둘러싼 담론을 주도해왔다. 그는 『공산주의가 허용되는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반공주의는 통제와 억압의 어두운 상징』이라는 등 일부 뉴라이트 人士의 주장에 대해 『右派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李相敦 교수는 右派지식인으로서 사명을 묻는 질문에 『進步左派의 허구와 위선을 폭로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右派논객들이 일을 안 하니 지금 같은 좌편향 사회가 돼버렸습니다. 2007년 집권 여부를 떠나 進步左派의 거짓을 드러내는 保守右派의 활동은 계속돼야 합니다. 進步左派는 가난한 자를 더 가난하게 만들고 부유한 자는 돈을 안 쓰게 만들었죠. 역사는 保守右派가 도덕적 善이고 進步左派는 惡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간지대는 있을 수 없습니다』
反共(반공)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또 다른 右派논객이 鄭昌仁(정창인) 독립신문 주필이다. 육사출신인 鄭주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정책학으로 석사를, 영국 뉴캐슬대학에서 정치철학으로 박사를 받은 뒤 90년대 귀국해 전우신문, 재향군인회 등에서 일해 왔다. 그는 현재 多作(다작)의 右派논객이자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위원장 諸成鎬)의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自由를 최대로 누리게 하는 것』을 右派적 가치로 설명하는 鄭주필은 『인류가 그 같은 사회를 누리기 위해서는 계급적 敵(적)을 상정해 탄압하는 共産독재를 반대하는 反共(반공)이 기본적 가치로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트워크式 빈 칸 채우기
右派진영은 2004년 말 뉴라이트(Newright-신右派)의 등장으로 진용이 넓어졌다. 현재 기존의 정통보수와 뉴라이트는 일부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反金正日·反左派라는 명제 하에 상호협력하고 있다.
黨利黨略(당리당략)을 노리는 정치권과 달리 右派라는「이념적 價値(가치)」를 지향하는 이들 논객들은 右派의 사명은 대한민국 비전 제시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각종 글과 강연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확신에 찬 논리를 전개해 온 金光東(김광동) 나라정책원장은 『右派는 모든 가치와 기준들이 흔들릴 때에도 나라가 가야 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할 우익운동은 절실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이 열심히 일한다고 국가가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후진국은 국민들이 일을 안 해서 못 사나요? 국가라는 버스가 가긴 가는데 어디로 갈지, 행선지가 분명해야합니다. 그 행선지를 정하는 것이 국민의식이고 이것은 사회간접자본입니다. 右派는 이러한 국민들에게 국가의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 주는, 그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先驅者的·先覺者的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공동대표와 친북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右派운동의 猛將(맹장)역할을 하고 있는 諸成鎬(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의 설명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右派운동은 단기적으로 左派정권을 바로 잡고 右派정권을 세우는 것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 미래의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같은 비전 제시가 국민들을 위한 것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라는 국민적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右派가 빚져 온 부패하고 부정한 것을 버리는 도덕적 재무장이 절실하다』고 덧붙혔다.
장기적으로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단기적으로 이를 위한 정권교체를 노리는 右派는 각 단체·계파 간 네트워크의 필요성이 절실히 제기되고 있다.
원광대 李柱天(이주천) 교수는 『右派운동은 2007년 정권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007년 정권교체와 더불어 가속돼야한다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공동대표이자 정통보수로 분류되는 자유지식인선언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는 李교수는 『단기적 정권교체 역시 장기적 국가비전을 위한 것인 만큼, 장기비전을 이루기 위해 左派的 가치를 대체할 右派的 가치를 알리는 작업이 절실하다』며 『정치·사회·경제·문화·교육 등 나라 전반의 右派的 가치창출은 특정 단체나 특정 정당이 백화점식으로 할 수 없는 것인 만큼 右派단체간 빈 칸을 채워가는 네트워크 식 역할분담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청년 부족 보다 청년운동가 부족이 문제
운동가들과 논객들의 지적처럼 右派는 많은 일을 해왔고, 해야 할 일도 많다. 그러나 맑스주의, 주체사상과 같은 하나의 「世界觀」에 뿌리를 둔 左派에 비해, 상식적으로 살아 온 일반인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右派는 이데올로기 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 앞장서 左向左를 주도하는 가운데, 右派가 국가로부터 지원이 아닌 탄압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人的인프라 역시 약화되는 실정이다. 보수정당이라는 한나라당도 뉴라이트에 대해 부분적으로 긍정하는 모양새를 취할 뿐, 대다수 右派를 수구꼴통으로 매도하는 어용언론을 따라가면서, 凡右派 연대(連帶) 또는 연계(連繫)를 거부하고 있다. 右派는 자유와 안전을 희구하는 한국 사회 절대 다수의 국민 정서를 대변하고 있음에도, 南北左派에 의해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이 만든 결과 중 하나가 「청년(靑年)부족」이다. 지난 2002년 노무현 정권 출범 당시「靑年右派」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긍정하고 정체성을 수호하겠다는 이들 靑年右派 단체들은 인터넷포탈 다음 카페 등을 중심으로 雨後竹筍 생겨났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출범 4년, 右派운동과 담론을 벌이고 있는 靑年右派 대부분은 각자의 生業으로, 익명의 네티즌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결국 60~70대가 중심이 된 右派들의 집회·시위·강연·행사에서 젊은이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靑年右派 운동을 수년 간 벌여오다, 최근 활동을 접은 A씨는 『右派에 젊은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젊은 전업운동가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右派운동을 해서는 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계가 당장 막막하다는 것보다, 미래의 희망이 없다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길이 안 보인다는 것이죠. 右派운동을 한나라당이나 全經聯(전경련) 같은 단체마저 외면하는 상황에서, 정권이 바뀐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현재도 어렵지만, 미래도 안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 같은 전업운동가들이 右派를 떠납니다.』
A씨의 지적처럼 靑年右派 전업운동가는 대개 1~2년을 넘기지 못하고 활동을 접는 경우가 상당수에 달한다. 이러다보니 2006년 8월 현재, 오프라인 조직을 갖춘 靑年右派 단체는 자유개척청년단, 무한전진 등 몇 개에 불과하고, 전업운동가 역시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자키모(자유를지키는사람들의모임) 등 다음카페를 운영하며 현재 프리존뉴스 기자로 있는 김필재氏의 지적이다.
『「평범한」청년들을 右派에 참여시키려면, 적어도 생계는 유지시켜줘야 합니다. 특히「유능한」청년들을 右派에 專業(전업)시키기 위해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靑年右派들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부딪쳐 다른 길을 찾아 나서죠. 젊은 人材가 충원되지 않다보니, 保守·右派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는 國家 이전에 個人의 정치적 목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과 無爲徒食(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모두 後繼(후계)양성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결과입니다.』
프로골퍼 출신으로 골프장을 경영하다 정리한 뒤 올해로 5년째 右派운동을 해 온 張基正 국민행동본부 청년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나라 亡한다」고 장탄식하면서도, 愛國활동·愛國단체에는 인색한 자칭 保守·右派들도 적지 않습니다. 투쟁하는 사람들을 꼴통으로 보는 묘한 정서도 있죠. 義俠心(의협심) 하나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솔직히 쓸쓸해집니다. 그러나 한국의 保守·右派란 어차피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나라를 만들고, 지키고, 세워 온 국민 다수입니다. 靑年右派는 이들을 바라보며, 누구도 기대지 않고, 미래를 개척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靑年右派의 십자가와 같죠』
일제 하 독립운동가, 광야의 선지자
사회의 핵심가치(core value)를 지키는 이들을 保守, 自由를 지키려 싸우는 이들을 右派로 정의한다면 保守·右派의 역사는 10년 남짓에 불과하다.
짧은 역사,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기가 벌어졌기에 右派는 그 義憤(의분)과 熱情(열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혹자는 右派를 日帝시대 獨立運動家(독립운동가)에 비유한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잘못된 세상에 맞서 부지깽이, 호미를 들고 나온 엉성한 民兵隊에 견주기도 한다. 그만큼 이들은 이론도, 조직도 아직은 初步(초보)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亂世(난세)가 끝이 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右派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혼란이 이어지고, 대한민국의 운명이 다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右派에게 이론을 갖추고, 조직을 꾸릴 사명, 과제 이행을 요구할 것이다.
右派가 時代의 使命을 깨닫고 이뤄낼 때, 퇴행적 進步·左派세력을 넘어 북한 해방과 조국 통일 그리고 先進化(선진화)의 비전 또한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右派에게 凍土(동토)를 떠돌다 죽어간 獨立志士(독립지사)의 평가 대신 비전을 예언한 先知者(선지자)의 月桂冠(월계관)이 씌워져 있을지 모른다. 그날을 위해 右派는 獨行(독행)의 道(도)를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