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정치를 좀 정명훈처럼 지휘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한국과 프랑스가 국교를 맺은 지 꼭 120년이 된다고 한다. 그 수교를 기념하여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지난 8월27일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가 있었다.
나의 여러해 전에 시카고에 있는 <보더즈>라는 책방에 간 적이 있는데 책사의 한 면에는 CD, 카세트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왼편에서부터 값이 비싼 작품이 꽂혀 있었다.
호기심에 제일 비싼 칸을 뒤져보기 시작한 나는 그 자리에서 한국인으로 엄청난 감동을 느끼었다. 가장 비싼 CD가 진열된 칸에서 나는 여러 사람의 한국 음악인들의 작품을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수미의 아리아,” “정명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경화의 바이올린,” “장한나의 첼로 독주,” “세라 장의 바이올린” 등을 보고 한국인이란 참 대단하구나 하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정명훈이 지휘하는 교향악단의 연주를 듣게 된 것이었다. 과거에 그가 연주하는 음악회에 참석할 기회는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참석해 본적이 없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음악에 관한 전문인이 아니면서 평을 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 그는 신들린 사람 같았다, 그의 손으로 빚어지는 음악은 처음엔 물이 흐르듯 잔잔하였고 아침에 바다처럼 고요하다가 태풍에 바닷물이 흉흉하듯 사납기도 하였다. 그의 지휘는 문자 그대로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한국을 지휘한다고 자부하는 노무현을 생각했다,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정치를 좀 정명훈처럼 지휘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공연장을 메운 청중이 보내는 우뢰와 같은 박수는 계속되고 또 계속되었다. 앙콜 곡이 연주된 뒤에도 청중은 일어나려 하지 않고 계속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청와대의 주인은 반드시 지휘자 정명훈에게서 배워야 한다.
한국과 프랑스가 국교를 맺은 지 꼭 120년이 된다고 한다. 그 수교를 기념하여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지난 8월27일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가 있었다.
나의 여러해 전에 시카고에 있는 <보더즈>라는 책방에 간 적이 있는데 책사의 한 면에는 CD, 카세트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왼편에서부터 값이 비싼 작품이 꽂혀 있었다.
호기심에 제일 비싼 칸을 뒤져보기 시작한 나는 그 자리에서 한국인으로 엄청난 감동을 느끼었다. 가장 비싼 CD가 진열된 칸에서 나는 여러 사람의 한국 음악인들의 작품을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수미의 아리아,” “정명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경화의 바이올린,” “장한나의 첼로 독주,” “세라 장의 바이올린” 등을 보고 한국인이란 참 대단하구나 하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정명훈이 지휘하는 교향악단의 연주를 듣게 된 것이었다. 과거에 그가 연주하는 음악회에 참석할 기회는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참석해 본적이 없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음악에 관한 전문인이 아니면서 평을 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 그는 신들린 사람 같았다, 그의 손으로 빚어지는 음악은 처음엔 물이 흐르듯 잔잔하였고 아침에 바다처럼 고요하다가 태풍에 바닷물이 흉흉하듯 사납기도 하였다. 그의 지휘는 문자 그대로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한국을 지휘한다고 자부하는 노무현을 생각했다,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정치를 좀 정명훈처럼 지휘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공연장을 메운 청중이 보내는 우뢰와 같은 박수는 계속되고 또 계속되었다. 앙콜 곡이 연주된 뒤에도 청중은 일어나려 하지 않고 계속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청와대의 주인은 반드시 지휘자 정명훈에게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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