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덕에 날아온 풍선 이야기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바다이야기’로 온통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바다이야기는 횟집인 줄 알았다”는 누구의 말처럼 저도 진짜 횟집인 줄 알았습니다.
남쪽의 바다이야기는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 이야기이지만 북쪽의 풍선이야기는 그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남쪽과 연계된 이야기죠.
1985년 7월경, 요덕수용소 구읍지구에 난데없는 남조선 삐라들이 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위원들은 정치범들을 비상소집하고 집주변과 산골짜기에 떨어진 삐라들을 모두 수거해 바치라고 명령했지요. 사실 남조선 삐라를 처음 봤을 때의 심정은 한마디로 두근거림이었습니다. 발전된 남한의 모습이나 망명자들의 풍족한 생활을 담은 내용을 보니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으니까요.
찢어도 찢어지지 않고 비에 젖지 않았고, 불에 넣어도 잘 타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질긴 특수삐라를 처음 보면서 “남조선 놈들 참 기술도 발전했네” 하면서 감탄 했었지요.
하도 자주 뿌려지니까 보위원도 정치범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됐습니다. 발견되면 바치는 정도가 됐습니다.
하루는 수백명의 젊은 정치범들이 요덕수용소 3작업반 다리 건설에 동원됐습니다. 손씨로 기억되는 새로 들어온 정치범이 도로 옆 숲속에 들어갔다가 아마 삐라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삐라는 절대 보지 말고 무조건 바치라는 수용소 규정대로 이 사람은 주은 삐라를 옆구리에 감추고 보위원에게 달려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뭣 모르고 오버한 것입니다.
아직 수용소에 온지 얼마 안됐으니까 너무 순진했던 것이죠.
그는 “보위원동지, 남조선 삐라를 주었습니다” 라고 보고를 하면서 삐라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삐라를 보는 보위원의 얼굴이 갑자기 험하게 굳어졌습니다. “쎄끼 뒈지고 싶어?” 하면서 쌍욕을 퍼붓더니 몽둥이로 사정없이 손씨를 두들겨 팼지요.
나중에야 손씨가 왜 매맞았는지 밝혀졌습니다. 수용소에서 삐라는 정치범들이 화장지로 널리 쓰였는데, 한 정치범이 길 옆 숲속에서 뒤를 보면서 삐라를 화장지로 쓰고 길 옆 숲속에 버린 것을 주어 그대로 보위원에게 바쳤으니 그 광경은 가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위원이 삐라를 펴는 순간 냄새와 함께 변이 묻은 삐라를 보았으니까, 꼭지가 돌만도 했구요. 그날 손씨는 죽지 않을 만큼 매를 맞았습니다.
다음해부터인가 풍선에는 삐라뿐 아니라 속옷, 양말, 약품, 라면, 볼펜 등 북한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 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풍선 비닐은 워낙 질겨 창문유리 대용(代用)으로 요긴하게 쓰였고, 풍선을 매단 밧줄은 또 워낙 질겨 소몰이 用이나 나무끈으로 아주 좋았습니다.
삐라는 정보의 역할을 하고 풍선 자체까지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하나의 보물인 셈이죠.
정치범들은 해마다 풍선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풍선이 뜨면 그것을 먼저 잡으려고 산속으로 달리다가 보위원에게 잡혀 고문당하는 사람들도 생겼구요.
한번은 새벽에 촛불을 든 정치범들이 주변에 떨어진 풍선에 접근해서 풍선 바람을 빼려다가 수소가스에 불에 붙으면서 폭발해 3~4명의 정치범들이 화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1987년 요덕수용소에서 석방돼 요덕군 읍에 배치받고 생활을 시작하는데 또 삐라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요덕군 읍 광장에서 군민(郡民) 전체가 모여 정치행사를 하고 있는데 그 위에 남조선 삐라가 뿌려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슬렁거리고 동요가 아주 심각했지요.
1989년 동유럽에서 한국에 망명한 유학생들의 사진도 모두 삐라에 담겨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위험해지면 탈북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삐라에 담긴 유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부터입니다.
요덕군에서는 이미 풍선 잡는 사람은 보물을 얻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산에 떠 있는 풍선을 잡기 위해 몇 개의 산을 넘는 것은 흔한일로 됐구요. 풍선에서 떨어진 내의를 입고 다니다가 단속돼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없어서 못입을 정도였습니다. 좀 아쉬웠던 것은 쌍방울 제품에(BYC)라는 영문이 있어 남조선제라는 것이 쉽게 알려져 드러내놓고 입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풍선덕분에 요덕수용소는 물론, 요덕군 인민들도 많은 덕을 봤습니다.
정보도 얻고 생필품과 의약품도 서민에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릅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북한엔 더 이상 풍선이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요덕수용소의 정치범들에겐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이번 수해로 인해 북한에 2300억원의 대규모 지원을 한다고 해서 차라리 풍선으로 보내자고 했더니 일부 독자들이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가 없다고 해서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수해난 북한인민들을 돕고 싶은 것은 탈북자들이 더 간절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해를 구실로 남한에서 보내준 쌀과 구호품들은 보나마다 권력자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뻔하기 때문에 풍선이 효과적이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구호품에 대해 모니터링 할 의지도 없습니다. 때문에 북한을 경험한 탈북자들은 절대로 구호품이 주민에게 안간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것은 수십년간 북한에서 살아온 경험으로 터득한 것입니다.
구호품을 보내자면 현지 피해 파악이 가장 중요 합니다. 피해지역을 남측에 보여주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도와야 할 지 다 알게 되는데 한국정부는 정확한 피해 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민간단체가 북한에 삐라를 보내기 위해 비닐풍선에 수소를 넣는데 7kg을 날리는 풍선에 약 3~5만원의 수소 가스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원시적인 장치를 달아 보내는데 2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듭니다. 휴전선 인근, 멀리 날아가면 평양부근까지 날아간다고 합니다.
정부적 차원에서 요덕에 날아왔던 풍선처럼 수해지역에 가벼운 라면이나 의약품 같은 것은 얼마든지 보낼 수 있습니다. 풍선으로 보내는 것이 김정일정권에게 직접 주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든다고 할지라도 북한주민들이 풍선으로 보내는 것이 너무 반가울 겁니다.
타락한 김정일 위원장을 거치지 않고 대대적인 풍선 날리기 운동을 한다면 아마 북한에 도움을 주고 싶은 국민이 지금보다는 100배 더 많아질 것입니다.
요덕에 날아온 풍선 이야기
- 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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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31, 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