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는 그날까지!

[인터뷰]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정의와 진실이 없는 독재정권의 ‘우리민족끼리’에는 우리 민족의 절반인 북한 인민이 없다. 자유북한방송은 김정일이 정권이 무너지는 그날까지 북한의 현실을 진실 되게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대북 라디오 방송인 '자유북한방송'(대표 김성민)이 지난 4일 프로그램을 신설 개편했다. 3년 전 자그마한 돛단배로 거친 바다를 향해 출발을 알렸던 자유북한방송이 이제는 북한민주화를 위한 함선이 되어 대양을 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성민 대표는 9일 <프리존뉴스>와의 만남에서 지난 3년 동안의 시간을 ‘고난의 행군’으로 표현했다. 김 대표는 이날 탈북자의 한 사람으로서, 동시에 남한 국민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고향인 북한과 또 다른 고향으로 삼은 남한 모두를 관통하는 실체적 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통일연대-한총련의 자유북한방송 탄압

김 대표는 방송국을 개국한지 한 달 만인 2004년 5월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항의에 시달리다 북한연구소로부터 무상 제공받은 사무실을 등져야 했던 사연, 그리고 가까스로 마련한 사무실에서 ‘통일연대’와 ‘한총련’이 벌인 비방시위 등을 회상했다.

통일연대의 경우 한상열 상임대표를 주축으로 30여명의 회원들이 양천구 목동 소재의 방송국을 방문해 방송중단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을 비방하는 방송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2004년 6월 11일)

이 같은 통일연대측의 비방에 자극받은 김 대표를 비롯한 일단의 탈북자들은 경찰 사이를 뚫고 그들과 접촉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통일연대 한 회원이 김 대표를 밀어 그는 길바닥에 머리를 부딪치고 정신을 잃기도 했다.

“목동에 새로 사무실을 얻자마자 통일연대에서 30~4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기자회견을 하더니 얼마 안 있다가는 한총련의 통일선봉대인가 하는 조직에서 150여명이 와 한바탕 흔들고 갔다. 장소도 협소하고 직원도 얼마 없는 사무실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난리를 치고 가는 모습을 보니 여기가 서울인지 평양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한편, 북한 측의 직접적인 위협도 있었다. 황장엽 전 비서의 방송 출연 후 북한의 대남선전기구인 ‘한민전’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대변인 담화문을 발표하고 “범죄자들의 사이비 방송을 폭파시키고 그들의 명줄을 끊어놔야 한다”고 협박한 것이다. 또 지난 2005년 5월 5일 평양에서 개최된 1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북측의 권호웅 단장은 자유북한방송의 즉각 중단과 탈북자의 미국행 금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작통권 단독행사로 김정일 50년 묵은 체증 해소”

호흡을 가다듬은 김 대표는 김대중 정권에 이은 노무현 정권의 대북 정책에 대해 “빵점보다 더 아래에 해당되는 마이너스 점수”라고 평가했다.

“북한과 남한 내 친북단체들이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의 개념은 대남사업의 전형적인 통일전선전략에 불과하다. 김대중 노무현의 햇볕정책은 김정일 정권과 북한 주민을 동일시해 결과적으로 적(敵)도 없고 아(我)도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대북 정책의 제1원칙은 김정일 정권과 북한 주민을 명확히 분리해 대응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작통권)의 한국군 단독행사 문제에 대해 “노무현 정권이 김정일의 50년 묵은 체증까지 해소시켜주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북한은 그동안 한미연합사의 해체, 주한미군의 감축, 그리고 연합방위체제의 약화를 목적으로 작통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작통권을 남한이 행사하는 것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무력 적화통일을 달성하려는 북한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북한군은 미군은 매우 두려워하지만 남한군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남한이 첨단무기를 보유했기 때문에 북한의 도발을 저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신 차려야 한다. 전쟁이 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엄포가 아니다.”

남한과 북한에서 인정받은 엘리트 출신 ‘시인’

지난 1999년 남한입국 이래,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 탈북자 봉사단장, ‘백두한라회’ 대표,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자유북한방송 대표에 이르기까지 김 대표의 활동은 누구보다도 활발하다. 크고 작은 국내외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북한독재체제와 탈북자 실태를 알리는 데도 열심이다.

비장한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북한민주화를 위해 정작 북한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 남한 활동가들의 열정적 활동을 보면서, 그리고 안타까운 현실과 부딪치면서 점점 격렬한 투사로 변해가고 있다는 김성민 대표. 그러나 그는 '투사'에 어울리지 않게 북한과 남한에서 모두 인정받은 '시인'이다.

1962년 북한 자강도 희천시에서 출생, 북한의 대표적 작가양성 교육기관인 김형직 사범대학 작가양성반을 졸업하고 인민군 대위로 부대 예술선전대에 근무했으며 북한의 '조선문학'지를 통해 등단했다. 그의 아버지는 북한 최고의 서정시인이자 김일성 대학교수, 조선작가동맹 시분과 위원장을 역임한 김순석 선생.

김 대표는 남한 입국 후 연대 국문과 3학년에 편입, 졸업 후 중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지난 2003년에는 계간문예지 '자유문학'을 통해 '탈북시인 1호'로 등단했다. 그런 그가 '자유북한방송' 개국을 위해 준비를 시작한 것은 2003년 10월, 다음해인 2004년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 1차 시험방송에 이어 두 달 후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 2차 시험방송을 거친 후 20일에 정식으로 개국했다.

“청취대상 1호는 중국 내 탈북자와 북한주민”

북한에서는 왜곡되어 있고 남한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진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자유북한방송의 목표다. 개편된 자유북한방송은 인터넷 사이트 운영과 함께 하루 1시간 분량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새로 개편된 방송 프로그램에는 ‘자유북한뉴스’와 ‘심층취재’, 황장엽-강인덕-조갑제 선생의 대북한 메시지, 그리고 김수연(이대 대학원 북한학과 졸업) 기자의 ‘라디오 단상’ 등이다.

또한 남한의 전현직 아나운서들이 출연하는 ‘이심전심’과 ‘광고’와 함께 북한 방송원 출신의 탈북자들이 진행하는 ‘탈북자 소개’, ‘고향에 보내는 편지와 시’ 프로가 신설됐다. 탈북자들과 남한의 청년들이 함께 진행하는 ‘리얼 토크’ 시간에는 남북한의 생활 체험이 극명하게 조명되고 있고, 이금룡 기자가 진행하는 ‘숫자로 본 북과 남’, 김기혁-김수연 기자의 ‘사회주의 변혁 그 현장 속으로’에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개방에 대한 상세한 과정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이번 프로그램 개편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강철환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의 수기인 ‘수용소의 노래’를 방송극으로 제작, 준비 과정에 여러 탈북자들을 출연시킴으로써 북한 민주화운동에 여타 탈북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킨 것이라 하겠다. 한편 북한 주민들이 매주 진행하는 ‘주 생활 총화’가 그대로 재현됐고 이들의 속마음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킨 ‘주 노동당 생활 총화’도 북한주민들과 청취자들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방송은 단파 11750khz와 9760khz로 매일 저녁 7시(30분간)와 새벽 2시(30분)에 송출된다.

김 대표가 꼽은 자유북한방송 청취대상자 1순위는 물론 중국 내 탈북자들과 북한 내 주민들이다. '북한에서 막 벗어나 방황할 수 있는 그들에게 북한의 현실과 탈북과정, 남한에서의 생활, 정착과정 등을 알리는 것은 대단히 필요한 일'이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북한을 낙원으로 오해하는 일부 남한사람들도 청취 대상”

이와 함께 북한의 선전대로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오해하고 있는 남한 사람들도 중요한 청취대상자다. 신문과 책 등 인쇄매체가 통제되는 북한에서 라디오는 외부의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다. 현재 북한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DVD나 CD는 일부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소수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 대표는 '북한에서 라디오를 접한 사람은 아직 소수이지만, 라디오를 들은 것이 탈북의 동기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김성민 대표 역시 대북방송 '라디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가 처음 대북방송을 접했던 것은 1982년 군에서 무전기를 통해서였다.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방송청취를 시작한 그는 군단 정치부 작가로 창작실에 근무하는 시간을 이용해 남한방송을 즐겨들었다. 그가 즐겨 들었다는 프로는 '역사의 진실을 말한다'와 '노동당 간부들에게'라고 밝혔다.

'당시 중대 김용범 교수가 진행하던 '역사의 진실을 말한다'라는 프로에서 김정일의 고향이 백두산이 아닌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면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최초의 교과서와 이후 교과서를 펴놓고 앞뒤를 살핀 김 대표는 김정일의 백두산 출생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출생 년도가 한해 앞당겨진 사실을 발견했다. '그 때 '단순히 사실이 틀렸구나'하는 생각을 넘어서서 '북한 당국이 말하는 다른 부분도 충분히 거짓말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이 진행했던 프로그램인 '노동당 간부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이라고 전했다. '노동당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라는 내용이나 '노동당 간부의 비리' 등의 내용을 들으면서 김 대표는 '정말 그러네'하며 조금씩 북한의 현실에 대해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북한에 자유민주주의를 알려 앞으로의 혼란에 대비할 것”

김 대표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은 '탈북자'가 직접 등장하는 프로그램. 비슷한 북한 말투가 들리자 귀가 번쩍 뜨였고 마음에 새겨졌으며 무엇보다도 남한에 대한 오해들을 풀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는 것.

'어느 날 탈북자 전철우씨가 라디오에 출연해 남한에서 사기당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사기'라는 내용을 들으면서도 김 대표는 '탈북자가 남한에 가도 죽는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탈북자 정성산씨가 털어놓은 탈북과정 방송은 '나도 저렇게 하면 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김 대표는 '다른 건 몰라도 탈북자들이 하는 얘기만은 꾸민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자유북한방송의 비전은 북한으로의 '공중파 방송'이다. '그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라디오방송은 김정일 독재체제를 경고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알리는 동시에 앞으로의 혼란을 대비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 대표는 특히 북한주민들에게 독재체제를 거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스스로의 봉기를 유발시키는 데는 '자유북한방송'과 같은 탈북자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상 남한 사람들이 하면 '모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육성이 전달되면 북한 주민들은 방송을 신뢰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어려운 점은 '비용'이다. 현재 김 대표는 자유북한방송의 '꿈'인 공중파 방송 비용 마련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북한에서 '자유'를 듣고자 갈망했던 그들이기에 더욱 북한에 '자유'의 전파가 필요함을 알고 있는 이들. 자유북한방송이 쏘아올린 간절한 '자유'의 전파가 북한 전역 곳곳에 쏟아져 거대한 자유의 물결로 되돌아오길 기대해본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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