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는 모스크바 [2006-09-15 ]
이동복 방송위원은 14일 송출된 <이동복의 통일대화>를 통해 냉전시대에 ‘국제 공산주의’의 총 본산이었던 모스크바는 한반도 휴전선 남쪽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금지된 땅이었지만 지금은 하늘과 땅처럼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오늘의 모스크바에는 북한의 ‘흔적’이 거의 사라지고 없는 반면, 대한민국의 존재는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
이 방송위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스크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북에서 왔느냐, 아니면 남에서 왔느냐”라고 물었지만, 이제는 “자본주의 쪽이냐? 아니면 사회주의 쪽이냐?”라고 묻고 “자본주의 쪽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즉시 지극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러시아 사람들 역시 대한민국은 “성공한 잘 사는 나라”, 북한은 “수많은 사람들을 굶겨 죽인 실패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김정일도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스갯거리로나 거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반세기 가까이 북한 동포들의 안방이었던 모스크바나 상 페테르부르크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겪게 된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 두 독재자가 북한을 말아먹었기 때문”이라면서 그 변화를 일으킬 주인공은 북한 동포들이라고 권고했다.
김수연 기자 nksue@hanmail.net
[다음은 대북방송원고 전문]
모스크바 셰레미체보 공항에서의 김일성 배지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에서 보내드리는 이동복의 통일대화 시간입니다. 저는 지난주 내외 동반으로 2주일 동안의 북유럽 5개국 관광여행을 끝내고 귀국했습니다. 저는 금년에 우리 나이로 70세가 되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고희(古稀)라고 하지요. 그래서 제 두 아들이 여비를 마련해 주면서 부모님이 함께 다녀오시라고 해서 아직 가보지 못했던 북유럽 관광여행 길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러노라고 매주 목요일에 북한 동포 여러분과 나누던 대화를 두 주일 거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여행길에서 보고 느꼈던 몇 가지 일을 가지고 북한 동포 여러분과 얘기하려고 합니다.
저희 내외가 동행했던 관광단은 덴마크와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과 핀란드를 거쳐 9월2일 러시아의 상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두 밤을 보내고 9월4일에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로 가서 1박2일의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희 일행이 상 페테르부르크에 머물던 9월3일은 모스크바에서 세계청소년 여자축구대회 결승전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이날 관광일정을 끝내고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저희 내외는 호텔 객실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예상치 않았던 반가운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날 있었던 결승전에서 북한의 여자 축구 선수단이 우승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날 상 페테르브루크는 쾌청이었지만 모스크바는 우중이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는 이날 우중에서 거행된 결승전에서 북한 여자 선수단이 5-0으로 중국 선수단을 대파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저희 내외에게는 이번 러시아 방문이 초행길이었고 그래서 남다른 감회가 없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하늘과 땅처럼 달라졌지만 1990년 구 소련이 해체되기 전의 러시아 땅은 한반도 휴전선 남쪽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금지된 땅이었습니다. 거기는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흉악한 독재자의 한 사람으로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결에 따라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김일성을 북한의 독재자로 일으켜 세워 나라의 분단을 초래한 스탈린이 지배하던 땅이었습니다. 그 소련에서는 1990년 공산주의 독재가 무너지고 그 해에 대한민국과도 국교가 정상화되어 그동안 두 나라 사이에 많은 인적, 물적 교류가 이루어졌지만 저의 경우는 이번의 그 나라 여행이 초행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저희 내외에게 마침 저희들이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곳에서 있었던 세계 여자청소년 축구대회를 같은 동포인 북한 선수단이 제패했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다음 날인 9월5일 저녁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기에 탑승하기 위하여 셰르메체보 국제공항에 도착한 저희 일행은 뜻밖의 장면에 부닥치게 되었습니다. 공항 터미널에서 한떼의 북한 동포들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저희 일행이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20여 명의 북한 동포들은 이미 항공기 탑승을 위해 보세구역으로 들어가서 짐 검사를 받고 있던 다른 한떼의 북한 동포들에게 애틋한 석별의 인사를 건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짐 검사를 받고 있던 보세구역 안의 북한 동포들을 쳐다 본 저희들은 그들이 바로 세계 여자청소년 축구대회를 제패한 북한 선수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그들을 향해 “수고했다” “잘 했다” “축하한다”라는 말을 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상념이 구름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북한 동포들이 우리의 그 같은 인사를 과연 순수하게 받아들일 것인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단된 남북관계의 현 주소가 새삼 아프게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의 눈길을 사로잡은 광경이 있었습니다. 귀국길의 선수단을 배웅 나온 북한 동포들의 왼쪽 가슴 위에 달린 ‘낯익은(?)’ 배지였습니다. 더러 이 뱃지를 달지 않은 북한 동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여전히(?) 그들은 왼쪽 가슴 위에 붉은 색깔의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습니다. 이제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볼 수 없는 북한 동포들만이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의 가슴에는 찌르는 듯한 통증이 엄습해 왔습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북한 땅도 아닌 외국 땅에서 저렇게 ‘충성의 배지’를 일상적으로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순간적으로 북한 동포들에게 대한 연민의 생각이 가슴을 메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주마간산(走馬看山)격이기는 했지만, 이번 모스크바 방문을 통하여 저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북한 동포 여러분, 모스크바가 어떤 도시였습니까? 냉전시대 모스크바는, 구 소련의 다른 모든 위성국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에게도 ‘혁명의 수도’였습니다.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은 모스크바로부터 그의 권력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리고 45년간 북한은 정치, 경제, 국방,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 모든 것을 모스크바에 의존했었습니다. 모스크바는 ‘국제공산주의’의 총본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모스크바는 그때의 모스크바가 아닙니다. 오늘의 모스크바에는 북한의 ‘흔적’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모스크바의 도심부에 위치한 대한민국 대사관의 웅장한 모습과 변두리에 자리 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의 초라한 모습이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 모스크바에서 대한민국의 존재는 세계 모든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크레믈린 궁전과 ‘붉은 광장’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위치에는 대한민국의 최대 기업인 ‘삼성’의 광고판이 우뚝 서있고 크레믈린 왼편에 있는 접근 교량의 모든 교각 상단은 ‘LG’ 광고판이 독점하고 있어서 이 다리의 비공식 명칭이 ‘LG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상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웅장한 세계적 박물관인 ‘에르미타지’의 외벽 페인팅을 ‘삼성’이 매 2년마다 무상으로 해 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상 페테르부르크 시당국은 ‘에르미타지’ 앞 건물 옥상의 대형 광고판을 ‘삼성’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제 ‘삼성’과 ‘LG’의 나라이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북한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모스크바의 거리를 질주하는 승용차들 가운데서 한국제 자동차들을 쉽사리 발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한국의 ‘현대’ 자동차가 작년도 모스크바에서 가장 많이 수입한 외국산 자동차였다고 합니다. 자동차뿐이 아니지요. ‘삼성’에서 만드는 휴대전화가 작년도에 모스크바가 제일 많이 수입한 휴대전화였습니다. 금년에는 ‘삼성’이 아니라 ‘LG’의 휴대전화가 가장 많이 수입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스크바 사람들이 한국, 또는 조선 사람들을 만나면 “북에서 왔느냐, 아니면 남에서 왔느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그렇게 물어보는 러시아 사람들은 없다고 합니다. 이제는 “자본주의 쪽이냐? 아니면 사회주의 쪽이냐?”라고 묻고 “자본주의 쪽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즉시 지극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성공한 잘 사는 나라”로 인식하는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굶겨 죽인 실패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도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스갯거리로나 거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모스크바나 상 페테르부르크 시내의 거리, 거리에는 대한민국의 여행객은 물론 사업가들로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과 크레믈린 궁전은 물론 ‘아르바트’ 거리, 그리고 상 테르르부르크의 ‘여름궁전’ 내 ‘분수공원’과 ‘에르미타지’ 박물관에서 만나는 거리의 악사들과 행상들은 앞을 다투어 한국말로 한국 관광객들의 눈길과 돈 주머니를 낚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북한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이 같은 일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모스크바나 상 페테르브루크는 반세기 가까이 북한 동포들의 안방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이 도시들에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가 이처럼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이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명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 두 독재자가 북한을 말아먹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같은 상황을 언제까지 두고 보시기만 하겠습니까?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변화의 주인공은 북한 동포 여러분입니다. 변화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남쪽의 저희들과 독재와 억압을 혐오하고 자유와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세계 인민들이 여러분의 편이 되어 드릴 것입니다.
북한 동포 여러분,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 주에 대화를 계속하겠습니다. [끝]
北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는 모스크바
- 이동복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6-09-15, 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