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부시 대통령

내가 본 부시는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타입이다
며칠 전 백악관의 부시대통령에게 탈북자, 북한인권, 황장엽선생과 요덕스토리 등을 거론하며 편지를 보낸바 있다. 회답이 없다. 꼭 회답을 바라고 쓴 글이 아니어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주제에 묶여 비서실의 어느 서랍에 들어있지 않나 싶어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더욱이 오늘 새벽 국내 TV를 통해 북한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는 미국 대통령을 보니 지난 4월 28일의 일들이 생각나 가슴 울컥해 진다. 그 방이다. 같은 시간에 만나 거의 같은 시각에 이야기를 마쳤고, 기자들과의 만남도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 진 것 같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다. 어떤 어떤...차이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방종일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비교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있어 “방종”을 떨고 싶어졌다.

내가 본 부시는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타입이다.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백악관의 주인은 함부로 남의 이야기를 막거나 자기 위주의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흥분하면 귀밑이 조금 붉어지고 상대방으로부터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면 무릎위에 얹었던 두 손을 허벅지로 약간 끌어올리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완전히 답답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눈썰미가 모아지고 입귀가 약간 쭝긋거리며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 어떤 경우에도 아니다! 안 된다! 그럴 수 없다! 고 말하는 부시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행동에서도 유머와 재치가 번뜩인다. 그날, 한미(탈북어린이)를 번쩍 들어 올렸던 그가 곧바로 한 말은 “허리 아파 죽겠다”였다. 그러면서도 빙글 빙글 안아 돌며 키스까지 골인시켰다. 노 대통령이 어제 않았던 그 의자에 한미를 “초대”할 때도 도무지 “버르장머리” 없는 한미가 엄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자 그 아픈 허리를 또 한 번 혹사해가면서 한미를 번쩍 들어 의자에 “묶어”버렸다.

요코다 메구미의 어머니 사카이 씨가 일본 납북자 단체에서 만든 파란 리본을 꺼내 북한에 납치된 내 딸과 일본인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성큼 다가서자 당혹스러움을 예의 몸짓으로 표현 하더니 “직접 달아주다가 내 가슴 찔리면 책임지겠는가”고 하면서 슬그머니 손에 받아드는 재치를 보여주었다.

김정일에 대한 상욕들이 터져 나올 때도 생전처음 듣는 욕설들이어서인지 귀밑이 붉어지면서도 눈길을 지긋이 보냈고, 어떤 때는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의미로 오른손을 쑥 내밀고 엄지손가락을 펴 보였을 뿐, “됐다”거나 “그만하자”는 말은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기자들이 들어오자 태도가 일변했다. 그 흔했던 웃음 한 점 보여주지 않고 30여분동안 탈북자들과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가족들의 대변자가 되어 불길 같은 말을 쏟아냈다. “...세계는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과 맞서 싸울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나는 미국이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임을 분명히 다짐한다. 우리는, 북한인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자유롭고 희망찬 세계에서 키울 수 있도록, 다시는 이런 어머니가 납치된 딸을 걱정하며 살지 않도록 하기위해, 자유를 위해 힘차게 노력할 것이다.”

다시 오늘 새벽에 방영된 한미정상회담의 이야기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가진 언론회동에서 “김정일이 고립되는 것보다 인민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고, 그 지역의 안정이 자신의 이익이자 북한 주민들의 궁극적인 이익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북한의 가족들이 혜택을 보고 식탁에 음식이 놓이게 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북핵 프로그램을 제거하면 분명히 더 좋은 길이 열릴 것이다”고 이야기 했다.

수개월 전에 김정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사탄이라는 탈북자의 의견에 동의했고,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김정일과 세계는 맞서 싸워야 하며 미국이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라고 분명히 다짐했던 부시대통령을 이런 식의 바보로 만들만큼 노대통령과 회담 전 사전 조율을 마쳤을 청와대 보좌진들의 언변이 비열했더라는 생각이 지금 이 순간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에필로그]

백악관 방문 하루 전의 미팅에서 스티브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은 “한마디도 미스 없이 액면 그대로 통역된다. 발언 심중해라”고 말한바 있다. 백악관의 통역사 역시 사전미팅을 거쳐 남북한의 뜻 같은 다른 말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런데...오늘 새벽 KBS의 동시 통역사는 왜 그렇게도 부시가 말하는 “김정일”을 “김정일 위원장”이라고 역 해석하는지 모르겠다.

피곤했다.


김성민(탈북자) 자유북한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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