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이 9일 전격적인 핵 실험을 단행함으로써 북한의 향후 목표는 '알 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과 연계해 미국 등 서방 국가를 겨냥한 '핵 테러'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한반도 전체의 주체사상화, 공산주의화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북조선혁명역량의 강화, 남조선혁명역량의 강화, 국제혁명역량의 강화'라는 3대 혁명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해 왔다.
北, 해외공작기구 통해 ‘제3세계 테러 요원’ 훈련 시켜
특히 북한은 제3노선인 ‘국제혁명역량의 강화’에 따라 노동당과 인민무력부에 해외 공작 기구를 설치해 제3세계의 테러 요원들을 북한에 데려와 훈련시키고 테러 교관들을 이들 나라에 파견해 교육훈련을 시켜왔다.
북한 내 제3국 테러분자들의 교육훈련장소로는 평양의 19개 특별구역중 하나인 삼석에 있는 15개소의 특별초대소와 평안남도 강동군 문흥리 소재의 특별초대소(15개소)등이다.
1999년 여름부터 2000년 말까지 북한에서 의료 활동을 했던 북한인권운동가 노베르트 폴러첸씨는 평양시내의 특별지구내에는 이라크, 팔레스타인, 이란등지에서 온 수많은 아랍인들이 외국인 전용맨션에서 살고 있으며 이들은 북한의 군 시설에도 들어갈 수 있고, 시설 내에도 이들을 위한 전용 숙박소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의 테러범 교육훈련 기간은 단기는 3개월부터 6개월, 장기는 18개월이다. 교육내용은 ‘미제’(美帝)의 팔, 다리, 머리를 각개로 잘라내는 기술과 전술, 비합법 침투, 잠복, 게릴라활동, 대적투쟁전술, 통신술, 살인폭파술, 기동훈련 등이다.
94년까지 북한서 훈련받은 테러요원만 5천 8백여 명
1966년부터 김일성이 죽은 94년까지 북한으로 초빙되어 교육훈련을 받은 인원수는 대략 이라크, 쿠바, 팔레스타인 등에서 온 5,800여명이다. (박갑동 現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 상임의장, 前 남조선로동당조직부장 증언)
2001년 4월 미 국무성이 발행한 보고서 ‘국제테러리즘의 양상 1999’(Pattern of Global Terrorism 1999)에는 북한이 알 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과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정보에 의하면 오사마 빈 라덴은 이미 20대에 북한의 테러 교관으로부터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빈 라덴의 테러 기법과 북한의 그것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 70년대 북한 공군의 주력 기종이었던 미그 15기 등 노후 전투기 1백 40여대를 대남 주요 목표물에 돌진시키는 ‘가미가제식’ 자살결사대를 지난 98년 창설했다.
이 자살 결사대는 지난 98년 8월말 김정일 직속으로, 공군사령관 출신인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차수)이 직접 진두지휘 하고 있으며, 원산과 해주 등 휴전선과 인접한 지하공군기지에서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38항공육전여단의 경우 여자들로만 구성된 자살특공대가 있다. 이 부대는 군사퍼레이드 등 공식행사에 대비해 창설되었으나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폭탄을 안고 주요 시설물을 파괴하는 ‘인간폭탄’임무를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지난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는 김정일과 조명록이 발상한 전술에 기초한 것으로, 북한의 테러 교육 과정에 따른 실습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北, 60년대부터 외국인 용병 美 접경지역에 결집 시켜
북한의 노동당 연락부와 통일전선부, 작전부에는 각각 해외공작 전담 부서들이 편성돼 있고 각 공작 부서들은 세계 각 국에 수많은 공작 거점을 확보하고 공작팀 단위로 거미줄 같은 공작망을 형성해 놓고 있다. 또한 미 본토에는 조총련에 버금가는 친북결사체로 ‘범민련 해외지역 본부’와 함께 과거 김대중 구명운동을 펼쳤던 ‘한민련’(민주민족통일한국인연합)이 북한의 해외공작 팀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유사시 미 본토 테러를 목적으로 북한은 1960년대부터 수백 명의 정예화 된 자폭 특공대와 외국인 게릴라들을 미국 접경지역에 결집시켜왔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 좌익 혁명조직과 북한과의 연계관계이다. 이에 대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파브리시오 고메즈는 1963년 소련 KGB가 패트리스 루뭄바 대학 장학금을 제공하면서 공작원으로 양성하고 훈련시켰던 강인하고 헌신적인 멕시코 인이었다...(중략) 고메즈는 68년 평양으로 들어가 조선노동당 연락부와 인민군 국사정보 장교들과 협의했다. 군사정보 장교들은 고메즈가 몇 명의 다른 학생들과 함께 멕시코로 돌아가 총 50명에 이르는 혁명가들을 추가로 모집하도록 종용했다. 이러한 50명의 혁명운동 신병(新兵)들은 북한 내의 3개 단체들에서 훈련을 받았다. 각 신병들은 멕시코로 돌아가 새로운 신병들을 가르칠 지도자와 교관으로써 훈련되었으며 이 기구는 급속하게 확대되었다”(출처: 조셉 S. 버뮤데즈, Jr. 북한과 테러리즘, 1991년 150p)
이 같은 북한의 이 같은 혁명수출 공작은 코스타리카를 비롯한 과테말라, 니카라과, 우루과이, 파나마 등 기타 나라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 국가들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되는 나라는 코스타리카이다. 코스타리카 혁명가들에 대한 북한의 관여는 코스타리카 공산당-'인민 전위당'(PVP)에 대한 재정적 지원과 함께 196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일례로 PVP 소속의 헤르난데즈는 71년 북한에서 혹독한 장교 교육 과정에 참가했으며 그곳에서 김일성을 만났다. 북한에서 고급훈련 과정을 마친 후 그는 니카라과에서 고참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 군 교관이 되기 위해 중앙아메리카로 돌아왔다. 북한은 PVP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 코스타리카 내에서 혁명을 고취하고자 했다.
1974년 6명의 북한 외교관들이 반정부 학생데모를 지도했다는 이유로 추방된 데 이어 75년 5월에 또 외교관 4명(김동은, 차평국, 박해부, 김희선 등 연락부 공작원들)이 추방된 사실도 있다. 코스타리카에서의 북한공작은 80년대를 통해 계속되었다. 1980년 그 수를 확인할 수 없는 코스타리카 인들이 북한에서 게릴라 훈련을 받았다.
북한의 이 같은 혁명수출 공작은 니카라과에서도 발생했다. 북한은 70년대 중반부터 니카라과 문제에 관여해왔다. 1979년 8월 '산디니스트민족해방전선'(FSLN)이 혁명을 일으켜 소모사 친미독재정권을 전복한 지 몇 주 만에 니카라과와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실제로 1970년대 말 북한에서 훈련된 기간요원들은 FSLN에 들어가 소모사(Somoza) 독재정권을 전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北, PLO-ETA-붉은 여단 등 각 국의 극좌 테러조직과 연계
그 후 8월 21일 북한과 니카라과는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80년 4월 내무장관 보르그가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하고 군사지원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장래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그리고 온두라스에서 니카라과가 지원하게 될 공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북한은 니카라과 정부에 군사적·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지원을 계속 제공했다. 군사적 지원은 무기에서 초계정, 군사고문 팀에서 조종사에까지 이르렀다.
1980년대 중반까지 북한과 니카라과의 관계에서 나타난 가장 불길한 양상은 니카라과 내에 수많은 국제 테러리스트 단체들이 존재하는데 있다. 이 단체들에 포함되는 것으로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단원들, 바스크 ETA(Euskadi Ta Askatasuna·자유조국바스크), 그리고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이탈리아의 극좌 테러단체) 등이다.
이러한 부대(部隊)들의 집결은 북한과 다른 단체들에게 새로운 접촉을 확립하고 장래 공작을 조종하는 전대미문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들 단체의 단원들은 니카라과를 통해 북한을 오갔을 뿐만 아니라 '산디니스트민족해방전선'(FSLN)이 주도하는 혁명과 산디니스타 정부에 대한 북한의 지원은 상당했다. 이 같은 사실은 1989년 7월 20일 니카라과 혁명승리 10주년 기념일을 축하하는 조선노동당의 성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한-니카라과 관계가 계속 확대되어 간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두 나라가 국제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그러한 지원에 기꺼이 협력했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처럼 멕시코,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는 북한이 양성한 수백 수천 명의 정예화 된 특공요원들과 외국인 게릴라(고용병)들이 활동하고 있다.
김정일의 다음 목표는 남한과 일본 그리고 미국 본토 테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2001년 12월 6일 노벨평화상 제정 100주년 기념집회에 출석해 “빈부의 격차 해결 없이는 21세기의 세계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전쟁과 테러의 원인은 빈부의 격차, 즉 가난한 자의 가진 자에 대한 원한 또는 반항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사마 빈 라덴은 빈궁해서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것인가? 김정일이 돈이 없어서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것인가?
빈부의 격차와 상관없이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도처에는 북한에서 교육을 받은 테러리스트들이 활개치고 있다. 이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폭 테러를 일으키기도 하며 9.11테러와 같이 수천 명의 인명을 삽시간에 앗아가는 테러를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북한은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6000톤의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서울이나 도쿄와 같은 대도시의 인구를 전멸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김정일은 핵무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법은 오로지 김정일을 제거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남북경협 등 독재를 부추기는 일체의 외부 지원통로를 차단하고 미일과 공조해 김정일 독재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대북공작에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 이 기회에 김정일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남한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도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