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지마 성조기 게양의 진실

"우리 아버지들이 꽂은 성조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2편의 영화 개봉을 계기로 알아본 이오지마 성조기 게양의 진실
6명의 美해병대 병사들이 61년전 이오지마(유황도)에 미국 국기(성조기)를 꽂는 사진을 한번쯤 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사진은 당시 AP 통신의 종군 사진기자였던 조오 로오젠썰(Joe Rosenthal)이 찍은 것인데, 이 사진은 1945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이 사진을 그대로 조각한 동상을 중심으로 한 공원이 워싱턴에 조성되어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 유명한 사진이 찍힌지 61년이 되는 올해는 왕년의 액션 스타 클린트 이스우드(Clint Eastwood)가 이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2편의 영화를 감독, 제작했다. 영화 하나는 미국에서,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제작되었는데, 영어판은 이번 주 미국에서 일제히 개봉되고, 일본어판은 10월말쯤 일본에서 개봉된다.

영어로 제작된 영화 'Flags of Our Fathers' (우리 아버지들이 꽂은 성조기)는 성조기를 꽂은 6명의 미군 병사들의 이야기를, 일본어로 제작된 영화 '붉은 태양, 검은 모래' (영어 타이틀은 Letters from Iwo Jima)는 이오지마에서 미군에 대항하여 싸운 일본군 입장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76세의 노익장 감독 이스트우드가 일본 배우들을 동원하여 제작한 영화다.


운명을 달리한 2장의 사진

해병대 잡지 '레더넥' 기자 로워리 상사가 맨먼저 찍은 사진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수세에 몰린 일본은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남태평양 여러 섬에서 미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다. 이 중 가장 치열한 전투는 이오지마에서 벌어졌는데, 1945년 2월23일 미국 해병대는 마침내 이오지마의 수리바찌야마 산 꼭대기에 성조기를 꽂는데 성공한다.

이 날 성조기는 두 번 꽂혔고, 그때마다 사진이 찍혔다. 첫 번째 국기가 꽂힐 때는 美해병대 잡지 'Leatherneck'의 기자 루이스 로워리(Lewis Lowery) 상사가 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 국기가 꽂힐 때는 AP통신 사진기자 조 로젠썰이 찍었다. 그런데 로젠썰이 찍은 사진은 퓰리처상을 받고 2차 세계대전 최고의 걸작 사진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으나 로워리 상사가 찍은 사진은 오늘날 거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더 큰 국기를 다시 게양할 때 AP통신 사진기자 로젠썰이 찍은 사진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최초로 이오지마에 성조기를 꽂은 해병 소대 위생병이었던 리차드 휘일러(후에 시인이 됨)는 1964년 미국 역사잡지 American Heritage 6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그 진상을 적었다. (24세의 조선일보 애송이 기자로 일하고 있던 1966년 9월 필자는 처음으로 책을 한권 출판했는데 책 타이틀은 '大記者와 大事件'이었다. 리차드 휠러의 글은 이 책에 번역되어 실려있다.)



'성조기는 우리가 먼저 꽂았다!'


리차드 휘일러

우리가 이오지마를 처음 본 것은 1945년 2월 19일, 그 때 이 섬은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등지고 잿빛 실루에뜨를 이루고 있었다.

상륙부대를 엄호하는 해군의 함포사격이 시작되어 공격 목표지점은 작렬하는 포탄으로 붉은 구멍 투성이었다. 수송선의 갑판으로부터 우리 해병 28연대 2대대 E중대 3소대 소속 장병들은 이오지마를 우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약 20 평방 킬로미터 밖에 안되는 이 작은 섬에는 2만여명의 일본 정예군이 놀랄만큼 공고한 진지를 수도없이 쌓아놓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섬의 최고봉은 서남단에 위치한 사화산(死火山) 수리바찌야마. 이 철통같이 요쇄화된 고지가 우리의 첫 공격 목표였다.(중략)

상륙 나흘째 되는 날 미군은 수리바찌야마를 완전히 포위, 이 사화산의 점령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이른 아침 중대 행정 장교가 3소대를 대대본부로 인솔해 갔다. 행정장교가 대대장과 이야기 하고있는 동안 소대원들은 탄약을 지급받았고, 위생병 4명과 카메라맨 한 명(해병대 잡지 기자 루이스 로워리 상사)이 추가로 3소대에 배속되었다. 그들이 적진 수색 임무 명령을 받고 출발하기 앞서 대대장은 소대장에게 접은 국기 하나를 주었다. 그리고 3소대에 명령했다. 수리바찌야마에 올라가 산정을 점령하고 국기를 게양하라는 것이었다.

3소대원들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곳은 경사가 너무 심해 그들은 손과 무릎으로 기어올랐다. 동굴이 몇 개 보였으나 적의 저항은 없었다. 30분이 채 안되어 그들은 무사히 산 정상에 오를수 있었다. 사화산인 수리바찌야마의 분화구는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여기저기 동굴 입구들이 더러 보였으나 이상하게 조용했다. 한 병사가 산 아래를 향해 오줌을 깔겼다. 그러나 이 모욕적인 행동에 대해서조차 일본군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3소대의 반은 산 정상에 남고 나머지 반은 국기 게양에 필요한 막대기를 찾기 위해 분화구 속으로 내려갔다. 맨 앞에서 걸어가던 하사가 제일 먼저 적을 발견했다.
적은 밖으로 등을 돌린 자세로 수직 동구로부터 기어나오고 있었다. 하사가 총을 쏘자 일본군은 동굴속으로 떨어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다른 일본군들은 동굴 밖으로 수류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해병대원들은 땅에 납작 엎드렸다가 수류탄을 수직 동굴 안으로 던져넣었다. 이렇게 공반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라벗 리더 하사와 리오 로제크 일등병이 긴 쇠막대기 하나를 발견하고 산 정상으로 올려보냈다. 이 쇠막대기는 일본군이 동굴 입구에 설치한 빗물 방지시설의 일부로 보였다.

국기를 가지고 산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대장 쉬라이어 중위는 어네스트 토마스 상사, 헨리 헨슨 중사, 차알스 린드버그 하사 등과 그 쇠막대기에 국기를 매달았다. 이윽고 국기가 게양되고 마침 부는 바람 덕분에 성조기는 수리바찌야마 정상에서 자랑스럽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때는 1945년 2월23일 오전 10시 30분경. 마침내 이오지마의 수리바찌야마는 2차 세계대전 중 우리 미군이 점령한 최초의 일본 땅이 되었다.

펄럭이는 성조기는 전투에 지친 미군 장병들에게 용기와 자부심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산아래서 올려다 보고있던 병사들이 '야, 성조기가 꽂혔다!'라고 외쳤다. 이 감격적인 외침은 해병 각 부대로 파도타기 식으로 계속 번져나갔다. 심지어 해안에 정박 중인 군함까지 이 소식은 전달되었다. 이 소식은 나중에 본국에까지 전달되어 늘어나는 전사자 수에 절망하던 국민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한편 수리바찌야마 정상에서는 국기가 게양된 직후 우리 해병은 적군의 도전을 받았다.
일본군 한 명이 동굴에서 나오더니 카메라맨 로위리 상사와 랍슨 일등병을 향해 총을 쏘았다. 다행히 총알은 빗나갔다. 그러나 랍슨 일등병의 총알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군은 랍슨의 총알에 맞아 쓰러진 적의 시체를 동굴 속으로 도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일본군 장교 한명이 칼날이 반밖에 남지 않은 일본도를 들고 험상굳은 인상을 하고 동굴에서 걸어나오더니 조금 전 국기를 게양한 3소대원들을 향해 무섭게 돌진해왔다. 그러나 그는 우리 해병들의 일제 사격을 받고 쓰러졌다.

그러나 다른 동굴들에서 일본군들은 수류탄을 밖으로 내던졌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옆에 떨어지자 카메라맨 로워리 상사는 산비탈 아래로 풀쩍 뛰어내려 다시 한번 위기를 모면했다. 그는 15미터쯤 산비탈을 굴러내려가다 덤불을 잡고 멈추었는데, 몸은 무사했으나 카메라는 외부가 좀 망가졌다.

우리 해병은 일본군 장교가 긴 칼을 들고 나왔던 동굴에 화염방사기와 수류탄으로 맹공격을 가했다. 후에 이 동굴에서는 일본군 150여명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한다.(이들 중 상당수는 동굴 안에서 질식해 죽기보다는 수류탄으로 자폭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곧 다른 부대가 산정으로 올라와 해병 3소대와 합세하여 분화구내 적 소탕작전을 전개했다.

3소대 병사들이 산 정상에 국기를 게양한지 3시간이 지나서 대대장 챈들러 존슨 대령은 국기를 다른 것으로 바꿔 다시 한번 꽂기로 결정했다. 처음 게양한 국기는 가로가 1미터35센티, 세로가 70센티에 불과해 망원경 없이는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오지마가 아직 완전 점령되지 않은 상태라 아직도 더 많은 전투를 치러야하는 해병용사들에게 산 정상에서 펄럭이는 우리 국기를 보여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대대장은 좀 더 큰 국기를 다시 꽂기로 한 것이다. 그는 정박중인 LST 함정에서 큰 국기를 하나 구했다.

이 큰 국기가 산정으로 운반되는 것을 본 AP 통신 사진기자 로젠썰은 그 기를 따라 산을 올라갔다. 이렇게 해서 저 유명한 로젠썰의 국기게양 사진이 탄생했다.(중략) 내가 해병 28연대 2대대 E중대 3소대 전우들의 숨은 이야기를 공개한다고 해서 역사가 크게 수정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옛 전우들이 완전히 망각의 베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 글을 썼다. 3소대원들이야말로 이오지마에 가장 먼저 성조기를 꽂은 진정한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국기게양 때 로젠썰 기자가 찍은 사진은 첫번째 국기 게양 때 해병잡지 기자 로워리 상사가 찍은 사진보다 훨씬 있고 멋있다. 이 유명한 사진에 찍힌 6명의 해병 중 3명은 그 후 계속된 이오지마 전투에서 전사하고 절반인 3명만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3명은 영웅 대접을 받으며 본토로 소환되어 전쟁 채권 발매 촉진 선전요원으로 동원되었다. 해군 위생병인 존 브래들리도 생존자 중의 한 명이었다.
두번째로 이오지마에 성조기를 꽂은 병사 6명 중 살아남은 3명은 영웅 대접을 받으며 귀국, 전쟁 채권 발매 촉진 선전에 동원되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들어 이번주 미국서 개봉되는 영화 '우리 아버지들의 꽂은 성조기'의 한 장면

그의 아들 제임스 브래들리는 그의 아버지가 1994년 사망하기 전에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Flags of Our Fathers'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을 가지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같은 타이틀의 영화를 미국에서 제작했다. 이스트우드는 일본군 입장에서도 이오지마 전투를 영상화하여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일본에서 출판된 어느 장교의 이오지마 참전기를 토대로 또 하나의 영화 '붉은 태양, 검은 모래'를 일본에서도 제작한 것이다. 이 영화는 Letters from Iwo Jima(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라는 영문 타이틀로 일본 외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다.

워싱턴에서
조화유

이오지마 국기게양 병사들의 동상. 워싱턴 관광 명소 중의 하나다.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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