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일보는 민단·조총련 합작 분쇄과정을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조총련 계열 야쿠자의 테러 위협으로 강창만 사장에 대한 사진촬영은 불가했다.
2006년 在日 민단(民團)·조총련 야합을 저지하는 데는 언론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2월 民團은 단장인 하병옥을 비롯해 反국가단체 조총련, 한통련에 사령탑에 잠식당했고, 지난 5월17일 조총련과의 화해를 선언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과정은 화해(和解)라는 미명 아래 民團 주동자들의 실체는 물론 의도도 가려진 채 진행됐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 등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조총련, 한통련이 속임수에 의해 기사회생의 공작을 시도한 것이었다.
이때 일본에서 발간되는 유일한 교포신문인 ‘통일일보(1959년 창간)’는 民團 내 좌익프락치세력의 실체와 저의를 폭로하고, 합작을 무산시키는 데 앞장섰다. 언론의 선도 아래 지방에서부터 시작된 民團 회원 서명운동은 결국 9월21일 하병옥 단장의 자진사퇴를 이끌어냈다. 언론의 사실보도와 구성원들의 궐기가 좌익쿠테타를 무산시킨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통일일보, 비판 사설`기사 잇따라 보도>
기자는 11일 서울을 방문한 ‘통일일보’ 강창만(姜昌萬) 사장을 만나보았다. 사기(詐欺)에 의한 좌우(左右)합작과 사실보도에 의한 야합(野合)진압이라는 메커니즘은 한국에도 들어맞는 공식이 될 듯했다. 북한과 연계된 左翼 民團지도부가 절대다수 民團 회원들에게 조총련, 한통련 출신임을 속인 채 야합을 시도한 일련의 과정은 북한과의 소위 공조(共助)에 나서고 있는 남한 집권세력과 흡사하게 느껴졌다.
『5월17일 民團과 조총련이 공동성명을 발표했을 때 일본의 모든 매스컴은 민족 내 화합을 이룬 역사적 사건으로 치켜세웠습니다. 온통 긍정적 보도 일색이었죠. 그러나 공동성명 2조는 6·15선언 이행을 못 박고 있더군요! 통일일보만 치고 나왔습니다. 이건 화합(和合)이 아니고 야합(野合)이다!』
姜사장의 지휘 아래 통일일보는 民團·총련 야합을 비판하는 일련의 사설과 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하병옥 단장은 民團개혁과 재일동포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당선됐습니다만, 개혁이나 화합의 구체적 내용이 없었죠. 그러던 河단장은 취임 이후 한통련(73년 일본에서 金大中을 의장으로 추대해 출범한 한민통의 후신으로 反국가단체로 판시돼 있다)과 이를 만든 곽동의에 대한 명예회복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河단장은 취임 이후 인사(人事)에서도 한통련 출신 김군부, 강영지 같은 인물을 요직에 배치합니다. 河단장 본인도 조총련계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조총련 활동을 했던 인물이었죠. 통일일보는 이런 사실을 폭로해갔습니다. 당시는 정말 절박했죠.』
통일일보 등에서 ‘民團이 일본 내 탈북자지원센터 운영을 중단키 조총련에 약속했다’ ‘民團이 조총련에 회담을 구걸했다’ 는 등 새로운 사실이 추가 보도되면서 民團 분위기는 급속히 바뀌어 갔다.
<國本운동·미래한국 보도도 기여>
반전(反轉)에 힘을 실어준 것이 국민행동본부와 미래한국신문 같은 남한 애국세력이었다. 국민행동본부는 지난 6월 광주에서 열린 6·15기념행사에 참석키로 한 6·15해외위원회 사무국장 박용이 조총련 거물간첩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再입국 저지에 나섰다. 그러자 6·15해외위원회를 통해 광주행사에 참여키로 한 民團이 불참을 결정했다. 이를 주선한 河단장측은 코너에 몰렸다.
미래한국은 수차에 걸쳐 南民戰 공범 임헌영이 在日간첩 김윤을 통해 주범 안용웅을 월북시켰다는 당시 수사결과를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김윤은 김동일로 이름을 바꾼 뒤 民團 내 평화통일 추진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民團·총련 야합에는 북한과 연계된 인물들의 조직적 공작이었음이 속속 확인돼 갔다.
『民團은 자유민주주의와 한국의 국시를 인정하는 강령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총련, 한통련 세력은 사기적 수법으로 民團을 삼키려 했죠. 통일일보 보도와 함께 지방조직의 반대성명이 잇따랐습니다. 그런데 河단장이 끝까지 버텼죠. 그래서 반대성명은 반대서명으로 확산됐습니다. 표면적으로 ‘조직정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면에는 民團 내 원로들로 구성된 ‘정상화위원회’라는 이중조직을 갖췄습니다. 그리고 단기에 529명의 대의원 중 320명이라는 河단장 퇴진을 위한 서명인원을 받아냈습니다. 河단장도 서명운동이 이렇게 빨리 전개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죠.』
<야합 성공 시 韓日관계 惡化 불가피>
民團·총련 야합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姜사장은 『재일교포사회는 붕괴되고 한일관계도 최악이 됐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조총련은 일본인 납치문제로 비난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합작이 성립했다면 民團은 일본 사회에서 조총련과 동일시됐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탈자가 속출하면서, 民團조직은 무너졌을 테지요. 김정일 지휘를 받는 조총련이 유일한 교포단체가 된다는 것은 재일교포들도 김정일과 똑같은 빨갱이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야말로 일본에서 재일교포들은 살 수 없는 지경이 됐을 겁니다. 이건 한일관계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겠지요.』
姜사장은 民團·총련 야합은 한국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판 연방제의 성공은 곧 한반도에도 그대로 적용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본은 예로부터 김일성·김정일 대남공작의 기지입니다. 일본에서 연방제를 성공시켰다면 다음엔 화해·협력 명분을 내세워 한국에서도 분위기를 몰고 갔을 것입니다. 民團·총련 야합은 막판에 몰린 김정일의 명확한 지시가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한국정부도 이를 지원했죠. 청와대가 ‘올 초 향군선거와 民團선거 중 하나는 성공했다’고 말했다는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안타까운 일입니다.』
民團·총련 야합이라는 좌익쿠테타는 일단 진압된 상태다. 그러나 긴장하지 않으면 또 다시 시도될 것이라는 게 民團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姜사장은 물론 통일일보 관계자들은 아직도 각종 협박·공갈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조총련과 연계된 야쿠자들의 테러정보가 입수돼 사진 공개조차 어려운 상태다.
『위협은 많지만 한국과 일본 우리 자신을 위해 좌익의 음모를 분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재일동포들은 大義 아래 대동단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세력도 작은 차이와 친소(親疎)관계를 접고 큰 뜻 아래 힘을 합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