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주도 금강산회합에 3억4천 지원

반역의 主무대 금강산...이적단체 訪北허가 모자라 돈까지 줘
◎ 마지막 날인 ‘금강산 통일의 밤’은 북한 공연단과 비전향장기수들이 서로 얼싸 안고 “조국통일”을 연호하는 울음바다가 돼버렸다.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청년대학생상봉모임의 한 장면
반역(叛逆)은 금강산에서 시작됐다.

남한 좌파세력과 북한 정권 사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反대한민국 회합(會合)은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금강산에서 개최돼 온 각종 南北공동행사가 시발점이었다.

盧武鉉 정권은 “6·15선언의 연합·연방제 실현”과 “反6·15세력의 청산과 척결”을 다짐하는 이들 행사에 범민련·한총련 등 金正日 정권을 추종해 온 이적단체(利敵團體) 참가를 허가(許可)하고 심지어 국고를 지원(支援)해왔다.

통일부에서 발간하는 ‘남북협력기금통계’에 따르면, 盧정권이 각종 이적단체들의 금강산 회합에 대준 돈은 총 3억4천4백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포함, 6·15선언 이래 각종 금강산 회합에 지원된 돈은 총 8억8천5백만 원에 이르렀다.

<南北반역 회합의 主무대 금강산>

금강산 南北공동행사는 농민에서 학생, 청년, 여성, 교사, 종교인으로 참여대상이 확대돼왔다. “6·15선언실현”과 “반외세자주통일”을 주장하며 개최돼 온 이들 행사의 명칭과 정부지원 금액은 아래와 같다.

《‘6·15공동선언 1돌 민족통일대토론회(2001년 6월15일. 2억5천3백만 원 지원)’ ‘6·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南北농민통일대회(2001년 7월18~19일)’ ‘6·15공동선언 발표 2돌 민족통일대축전(2002년 6월14~15일. 4천7백만 원)’ ‘6.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南北海外청년학생통일대회(2002년 10월12~14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여성통일대회(2002년 10월15~17일. 8천3백만 원)’ ‘6.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南北청년학생대표자회의(2002년 9월1일~9월2일)’ ‘남북대학생 금강산 통일새내기배움터(2004년 3월12~14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교육자 통일대회(2004년 7월18일~20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대학생 상봉모임(1차 2005년 5월22~24일. 2차 같은 해 7월17일~18일. 총 2억7백만 원 )’ ‘금강산통일기행(2005년 7월15일~17일)’ ‘통일맞이 대학생축제(2006년 7월31일~8월1일)’ ‘새해맞이 통일행사(2006년 1월1일. 4천6백만 원)’ ‘6·15공동선언실천 南北여성대표자회의(2006년 3월9~10일, 1천2백만 원)’ ‘6·15공동선언실천 우리겨레 단합대회(2006년 4월1일. 4천4백만 원)’ ‘故윤이상 추모 음악회(2006년 4월29일. 1억2백만 원)’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대학생대표자모임(2006년 5월10일~12일. 9천1백만 원)’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공동기도회(2006년 5월25일)’ 》

<지난 해 한총련 회합에 2억7백만 원 지원>

2004년 7월 정동영 통일부장관 취임 이후, 盧정권은 이적단체가 주축이 된 금강산 南北공동행사를 허가한 데서 나아가 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통일부는 2005년 5월22~24일 소위 ‘6·15실현청년학생본부(6·15청학본부)’가 북한의 ‘조선학생위원회’와 개최한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대학생 상봉모임’을 허가했다. 6·15청학본부가 이적단체 한총련이 주축이라는 사실이 각종 언론을 통해 확인된 상황에서도, 한총련 간부들의 방북을 허용한 것이다. 6·15청학본부 공동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한총련 의장 송효원은 ‘의장님’을 연호하는 북한 참가자들을 향해 “한총련 역사상 처음으로 의장이 이곳에 오게 됐다”며 “미국에 의한 전쟁위기를 남북대학생들이 저지하자”고 화답했다. 참가자들은 한반도기를 흔들며 “反외세·자주통일”을 결의했다.

통일부는 같은 해 7월17일~18일에 금강산에서 개최한 제2차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대학생 상봉모임’도 허가했다.

의문사위 위원장을 맡았던 한상범이 공동대표로 있는 ‘불교인권위원회’ 등은 같은 해 5월23일 성명을 내고 한총련의 금강산방문을 역사적 사건으로 치켜세웠다. ‘조선학생위 엄정철 위원장과 한총련 송효원 의장의 금강산 상봉을 축하하며’라는 이 성명은 “이들의 만남은 참으로 소중한 만남이라 아니할 수 없다”며 “이제 남북의 최고지도자들이 만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연방제(聯邦制) 공화국으로 조국을 통일하자는 선언을 체결하라”고 촉구했다.

盧정권은 한총련이 주도한 금강산 회합을 허가한 것 뿐 아니라 후원에 나섰다. 통일부는 5월과 7월 두 차례의 ‘南北대학생 상봉모임’에 총 2억7백만 원의 혈세를 지원했다.

2005년 7월15일~17일 간에는 역시 이적단체인 범민련남측본부의 소위 ‘금강산통일기행’이 허가됐다. 참석자 290명 중에는 국가보안법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자들과 보안관찰대상자도 포함됐다. 간첩·빨치산 출신 소위 비전향장기수도 다수 참여했다. 마지막 날인 ‘금강산 통일의 밤’은 북한 공연단과 비전향장기수들이 서로 얼싸 안고 “조국통일”을 연호하는 울음바다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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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反대한민국 회합 리스트】

<反韓활동 윤이상 음악제에 억대 지원>


2006년에도 이적단체들의 금강산 회합은 계속됐다.

이적단체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는 2005년 12월31일부터 올 1일1일, 지역조직인 ‘서울청년단체협의회(서청)’ 명의로 북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反국가단체 한통련 산하 ‘재일한국청년동맹’과 ‘새해맞이 통일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대회 후 “6·15실현을 위한 反통일세력 청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盧정권은 이 행사를 허가한 것 뿐 아니라 4천6백만 원을 지원했다.

한총련이 주축이 된 ‘6·15청학본부’는 지난 5월10일~12일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 등 학생들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대학생대표자모임’을 열었다. 2005년 ‘대학생 상봉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두 차례 가졌던 금강산회합을 2006년 ‘대학생 대표자모임’으로 격상한 것이었다. 이 행사 역시 한총련 의장 장송회가 공동대표 자격으로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대회 후 “6·15선을 끝까지 고수할 것”과 “外勢와 야합하는 反통일세력의 청산”을 결의했다. 盧정권은 여기도 9천백만 원을 지원했다.

이밖에도 지난 4월29일에는 일생에 걸쳐 親北·反대한민국 활동을 벌여 온 故윤이상을 추모하는 금강산 음악회에 1억2백만 원이 지원됐다.

▲2006년 7월31일~8월31일. ‘통일맞이 대학생축제’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등이 주최, 금강산과 백두산 2곳에서 개최.
‘하나된 민족, 당당한 나라를 위해’라는 슬로건 아래 학생들은 『외세의 간섭 없이 민족통일을 이루자』고 결의했다.

▲2006년 5월10일~5월12일. ‘6·15공동선언을 위한 南北대학생대표자회의’ ; 정부 9천1백만 원 지원

한총련 주축인 ‘6.15남측위위원회 청년학생본부(6.15청학본부)’ 주최.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을 끝까지 고수하고 실천해 나갈 것...내외 反6.15세력의 책동을 청춘의 용감성과 단호한 투쟁으로 철저히 물리쳐버림으로써 全민족적인 자주통일운동의 선봉대가 될 것...조국강토에 대한 그 어떤 외세의 침략정책도 반대하며 외세와 야합하는 反통일세력을 민족내부에서 청산하기 위한 운동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등을 결의했다.

▲2006년 4월1일. ‘6·15공동선언실천 우리겨레 단합대회’ ; 4천4백만 원 지원

사)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이사장 한양원) 주최.
『외세에 의한 민족분단으로 우리 겨레는 장장 반세기 이상에 걸쳐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겪고 있다. 분열의 고통을 극복할 유일한 방책은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민족의 힘을 하나로 합치는데 있다...온갖 전쟁요인을 배격하며 민족공조의 위력으로 민족의 안녕과 평화를 수호해 나갈 것』 등을 결의했다.

▲2006년 3월9일~11일. ‘6·15공동선언실천 남북여성대표자회의’ ; 1천2백만 원 지원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여성본부(상임대표 정현백)’ 주최.
『우리 민족끼리 단결하여 나라의 평화를 이룩하고, 6.15공동선언을 실천할 것을 다시금 결의한다...남북(북남)여성들은 우리가 원치 않았던 분단을 종식하고, 자주적인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모두 일어서서 함께 손잡고 힘차게 전진하자』 등을 결의했다.

▲2005년 12월31일~2006년 1월1일. ‘새해맞이 통일행사’ ; 4천6백만 원 지원

이적단체 ‘한청’ 지역조직 ‘서청’ 주최.
『우리민족청년이 제2의 6.15시대를 열어내는 견인차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反통일세력을 청산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우리민족청년이 힘을 굳게 모아 내부에 있는 모든 反통일세력과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결의했다.

▲2006년 4월29일 ‘윤이상 추모 음악제’ ; 1억2백만 원 지원

▲2006년 5월22일~24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대학생 상봉모임’ ; 8천2백만 원 지원

한총련 주축인 ‘6·15청학본부’ 주최. 출발 전날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대학생운동본부준비위원회’(대학생준비위)를 급조, 한총련 의장 송효원·민노당 학생위 위원장 이주희·전국여대생대표자협의회 참가단장 최지혜, 흥사단대학생아카데미전국협의회 집행위원장 김동환,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의장 노정원, 한국대학원리연구회 대표 양화충 등을 공동대표로 선임.
『우리는 6·15공동선언의 정신인 ‘우리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의 자주와 평화,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남북(북남) 대학생들이 가장 앞장에서 역사를 이끌어가는 기수, 선봉대가 될 것을 결심한다...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실현하는 길로 중단 없이 나아갈 것이다』고 결의했다.

▲2005년 7월17일~18일. ‘6.15공동선언실천 南北대학생 상봉모임’ ; 1억2천500만원 지원

한총련이 주축이 된 6·15청학본부 주최.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 김지하, 서총련 의장 김진, 강총련 의장 김병설, 민노당 학생위 위원장 이주희, 영남대·부산대·전남대 총학생회장 등 7명이 ‘주석단’으로 참가
『전쟁위협으로부터 조국반도를 지키고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일구어나가기 위한 실천을 앞장에서 벌일 것』등을 결의

▲2005년 7월15일~17일. ‘조국통일범민족 남측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이규재)’의 ‘금강산 통일기행’

이적단체 구성원들의 공식적 방북.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이종린은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통일부에서 9명을 불허(주로 보안관찰대상자)하고 금강산에서 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야 행사를 허가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우리 측(범민련) 실무자가 만약 한 명이라도 불허된다면 행사를 취소하겠다』고 맞대응 하자, 통일부에서 『지금까지 얘기됐던 것은 다 없었던 일로 하고 9명 전원 다 다녀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2005년 5월25일 ‘6.15공동선언실천과 평화통일을 위한 南北공동기도회’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 신경하, 총무 백도웅, 기장 총회장 김동원, 기장 총무 윤길수, 구세군 사령관 전광표, 성공회 교무원장 김광준 등 200여명이, 북한에서는 그리스도교연맹 강영섭 위원장을 비롯해 평양 봉수교회(담임목사 손효순) 교인 등 12명이 참석.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27일자)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어떤 난관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6.15공동선언은 리행되여야 한다』면서 『평화의 일군으로 부름 받은 우리 북남교회는 6.15공동선언의 실현을 위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할 것이다』고 결의했다.

▲2004년 3월12~14일. 남북대학생 ‘금강산 통일 새내기 배움터’
한국 대학생 800여명, 북한 대학생 100여 명이 참석.

토론회에서 ‘북과 남의 대학생들이 우리민족제일주의 기치 밑에 단결하여 자주통일을 앞당기자’라는 제목으로 김일성종합대학 김철호,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빛 내이자’라는 제목으로 홍익대학교 정승곤, ‘외세의 간섭과 침략책동을 종식시키고 민족자주통일의 활로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으로 김책공업종합대학 백별림, ‘남북대학생의 단합된 힘으로 통일의 새날을 열어갑시다’라는 제목으로 단국대학교 박웅배 등이 발제했다.

▲2004년 7월18일~20일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제1회 南北교육자 통일대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원영만, 전교조)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윤종건, 한국교총) 소속 초중등 교사와 교육부 관계자 등 총445명이 참가, 북한에서는 조선교육문화직업동맹(위원장 김영도, 교직동) 소속 교원 300명이 참가.
『6.15 공동선언을 적극 실천할 것...제자들이 외세 없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통일조국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서로 연대와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 등을 결의했다.

▲2002년 10월12~14일 ‘6.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南北海外청년학생통일대회’

한국 대표단 249명과 북한 대표단 200여명, 해외동포 대표단 50여명이 참석.
『6.15 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거족적인 운동에 앞장서 나갈 것...전쟁을 방지하고 조국의 평화를 수호하는 길에 앞장설 것...청년학생들의 연대연합을 실현함으로써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해 나갈 것』을 결의했다.

▲2002년 10월15~17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여성통일대회’ ; 8천3백만 원 지원

통일연대(상임의장 한상렬)와 각종 여성단체 회원 등 한국 대표단 353명 및 북한 대표단 참석.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통일운동에 적극 나설 것...새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 등을 결의했다.

▲2002년 6월14~15일. ‘6.15공동선언발표 2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4천7백만 원 지원

행사장에 북한의 대남공작원 송두율이 출현했다. 송두율은 『북한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평양에 왔다가 오늘 금강산에서 행사가 있다기에 축하하기 위해 개인 자격으로 왔다』고 말했다.

▲2001년 7월18일~19일. ‘6·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南北농민통일대회’

한국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개최.
『남과 북의 농민들은 6.15공동선언을 이행하고 관철하는데서 언제나 마음도 하나 힘도 하나로 합치며 공동행동을 적극 벌려 나갈 확고한 결의와 의지를 다지었다』고 결의했다.

▲2001년 6월14~15일. ‘6.15공동선언발표 1돌 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 ; 2억5천3백만 원 지원’

한국 통일연대·민화협로 구성된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2001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 주최.
『6.15 공동선언이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선언이며 새 세기에 우리 민족이 튼튼히 틀어 쥐고 나가야 할 조국통일의 공동강령, 공동 이정표로 된다며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풀어 나가려는 확고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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