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단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은 핵무기나 유엔 결의문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북한 핵실험 후인 10월20일 개성 방문 당시)』
『김대중(金大中) 前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전쟁의 위험이 없어졌다. 햇볕정책 발전과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을 통해 정권재창출을 하겠다(북한 핵실험 후인 10월15일 해남·진도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원 유세 당시)』
『미국의 敵對的 무시정책은 核확산을 막지 못했고, 한반도의 무력충돌 가능성이 있는 무력제재는 절대 안된다. 남은 길은 새로운 대화의 모색뿐이다(북한 핵실험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주장. 10월10일 열린당 제3차 자문위원단회의 모두 발언 外)』
『대북포용정책 포기는 잘못된 것이다(노무현의 포용정책 재검토를 언급에 대한 반박. 10월10일 청와대 회동 外)』
『오는 8월15일에 南北국회회담 개최를 추진하겠다...국회회담에서는 △2000년 남북공동선언을 법제화, 제도화하기 위한 기본법 제정 △경제교류협력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적 합의 등을 추진하겠다(2004년 5월6일)』
『대북송금 사건은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막고 남북화해를 위한 결단이었다...햇볕정책과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2003년 6월22일)』
- 2003년 6월 3일 국회의원 29명과 함께 5억 달러에 달하는 不法대북송금사건에 대해 특검반대성명을 발표
<『惡法 국보법...극악(極惡)스러워』>
『국보법을 계속 갖고 있으면 북한(北韓)과 중국(中國)과 계속해서 협력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불필요한 장애가 된다(2005년 1월12일)』
『그토록 정권에 악용되고 국민의 자유민주주의를 탄압한 한낱 임시법이요, 악법(惡法) 중의 악법(惡法)인 국보법을 마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인 양 비장하게 말하고 있다...악법이 대한민국의 체제와 연결된다는 발상 자체가 극악(極惡)스러울 뿐이다...국가안보라는 명분 아래 독재정권의 안위를 위해 악용되던 국보법에 한나라당이 그토록 애착을 보이는 것은 군사독재의 적장자임을 자인하는 모습이라 더욱 씁쓸하다(2004년 9월10일)』
- 2001년 11월 28일 국회의원 20명과 함께 국보법폐지법률 서명을 주도
<金正日『구국의 영웅』찬양자에 『언제나 마음을 함께 하겠다』격려 >
『우리가 가야할 길은 많이 남아 있다...언제나 여러분과 마음을 함께 하겠다(2005년 6월7일 박종철인권상 수상장에서 수상자 윤기진 부부를 격려하며; 출처 「참말로」- 윤기진은 金正日을『한국을 해방할 민족지도자』『구국의 영웅』등으로 찬양해 온 이적단체 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으로서 7년째 수배 중이다.)』
『젊을 때 열정을 갖고 있더라도 나이가 들면 시들어 지는데 한결같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던 분이다. 한 번도 원칙을 포기한 적 없는 활동가며 지식인이었다(2005년 1월7일, 「金日成수령영생」등 북한을 미화해 온 간첩전력자 김남식 장례식장; 출처 통일뉴스)』
『(한나라당 등을 가리켜)용서하면 안 된다...더 이상 이런 야만이 준동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2004년 12월21일 열린당 이철우 前의원의 조선노동당 가입 관련 발언)』
『송두율에 대한 공격은 구시대적 매카시즘(2003년 10월 6일)』『본인의 소원대로 조국에서 후학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2003년 10월14일, 2004년 7월『북한 대남공작원』이라는 확정판결을 받은 송두율 옹호)』
『한총련 합법화에 대한 정부의 긍정적 검토를 바라며 양심수 석방과 수배자 해제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용단을 기대한다(2003년 4월 18일 여야의원 47명과 함께 한 성명 中)』
<나를 비난하는 건 색깔론?>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박근혜 대표와 대적할 사람은 색깔론의 희생자인 내가 적임자(2006년 1월25일)』
『한나라당은 모든 것을 색깔론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같은 달 9일, 8일, 4일 사학법 관련 발언』
『더 이상 이 땅에 냉전과 색깔논쟁의 망령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2004년 12월21일 이철우 파동 당시)』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이적행위로 매도하는 한나라당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행태(2003년 7월17일)』
<보유세·인하세 인하 불가(不可)>
『부동산거래세는 인하할 수 있지만 보유세나 양도세에 손을 대면 정책의 본질과 근간에 손을 대는 것이다』(대표적 左派정책인 보유세·양도세 인하 不可 발언. 2006년 6월18일)
『시장 친화적인 부동산 公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논의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사유재산권 침해로 94년 헌법불합치, 99년 위헌판결 받은 부동산 公개념 옹호 발언. 2006년 1월30일)
『이른바 실용(實用)은 실족(失足)했다.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2년을 냉정히 평가하고 땅에 묻어야 한다...중산층과 서민의 당이라는 우리의 기둥을 되찾아야 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2006년 1월15일. 실용노선 비판)』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정치를 현실이라고 주장한 분들은 실족했다...하겠다고 한 개혁을 확고하게 실현하지 않고 기웃거리며 난관에 부딪치면 물러서다 보니 국민으로부터 열린우리당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2006년 1월8일. 실용노선 비판)』
『열린우리당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당이다. 열린우리당이 자기 정체성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데 실패했다(2005년 9월28일. 개혁(?)정책 불철저가 열린당 지지율 하락 원인)』
<새로운 민주주의 주장>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 도입된 신자유주의경제, 시장만으로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국가권력 아래 기업, 근로자, 시민사회, 농민 등이 협력하는 새로운 국가발전모델, 새로운 사회모델을 만들어야 한다(2006년 5월4일. 새로운 사회모델 주장)』
『위험을 봤을 때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말씀이 생각난다...새로운 경제발전·민주주의의 갈림길에서 우리당의 역할을 위해 정치생명을 걸겠다(2006년 1월2일. 새로운 민주주의 주장)』
『요즘 붙잡혀 있는 화두는 「새로운 민주주의」이다...「따뜻한 시장경제」「인간의 모습을 한 시장경제」를 이뤄내고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2005년 6월1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동티모르 「구스마오 대통령과의 만남」中 새로운 민주주의 주장)』
<北韓인권개선촉구결의안 불참>
金의장은 2006년 5월29일 지방선거 유세 당시『테러와 폭력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듯이 싹쓸이와 민주주의도 양립할 수 없다』며 한나라당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2004년 4월13일 총선 유세 당시『거대여당 견제론이라는 유언비어가 수도권까지 넘어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부활을 막지 못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열린당 싹쓸이를 주장했다.
그는 2003년 3월 인권을 이유로 이라크전파병반대에 서명했지만, 2003년 7월 1일 북한인권개선촉구결의안에는 불참했다.
<金의장 세 형·숙부 모두 월북...『미군철수』주장 전민련 출신>
金의장의 이념성향은 그의 혈연관계에서도 그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월간조선이 2004년 3월 보도한 과거 정부의 「김근태 신원 및 배후사상관계」파일에 따르면 金의장의 큰형은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6·25당시 김일성 초상화를 제작한 후 월북했다.
둘째 형 역시 월북 후 평성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등중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셋째 형은 의용군으로 월북해 교육성 장학사를 거쳐 통일전선부 대남공작원으로 선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金의장의 숙부는 월북 후 인민경제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성 부국장을 역임했으며 숙모는 6·25때 월북했다. 이 파일에는 또 1973년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 金의장의 셋째 형을 남파시키려했으나 김정일이 중지시켰다는 첩보가 실려 있다.
김근태 의장은 민청련 의장으로 활동 중이던 1986년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 1988년 가석방됐고 1990년에는 전국연합의 전신인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정책기획실장으로 국가보안법을 위반,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인물이다.
전민련은 출범 이후 국가보안법철폐, 민주자유당 해체 등의 「반독재민주화투쟁」, 팀스피리트훈련 중지, 주한미군철수 등의 「반외세자주화투쟁」, 8·15범민족대회 등 「조국통일투쟁」을 전개해오다 1991년 12월 전국연합이 결성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체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