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통령의 죽음

그때 "네 놈이 그 권총을 뽑아 내 가슴에 총알을 쏘아대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한 대통령의 죽음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서거는 단 한번이라도 그를 만나 본 적이 있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슬픔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고령사회가 되었다 하더라도 인생 88세는 장수임에 틀림이 없고 그는 천수를 누렸다고 가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 전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못하는 매우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정부의 여러 부서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공직자로서의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그런 성실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10.26사태 이후 공화당 정권을 인수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간에 전두환 씨가 이끄는 신군부가 등장 하였다. 신군부는 처음부터 정권을 장악할 야심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80년에 접어들어 학생시위가 격화되었으나 5월쯤에는 진정이 기미가 보이는 것 같았는데 광주사태같은 어지러운 일도 끼어들어 신군부 집권에 빌미를 제공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확인되지 않은 일설에 따르면 조국 역사에 큰 전환점이 최 대통령 집무실에서 벌어졌다는데, 집무실에 들어선 육군소장 전두환의 허리에는 권총이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전 장군은 최 대통령에게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제시했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그런 부당한 요구를 하던 바로 그 때 최대통령이 책상을 치면서 “야, 이놈아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권총을 차고 들어오느냐. 이놈아, 내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네 마음대로는 안 돼. 네 놈이 그 권총을 뽑아 내 가슴에 총알을 쏘아대라. 내가 쓰러진 다음에 네 놈 마음대로 해라.”

이렇게 일갈을 하며 전 씨를 노려보았다고 하자. 전 씨가 권총을 빼서 최 대통령에게 일격을 가했으리라고는 상상하기는 어렵다. 욕심이 있는 사람은 다 비겁한 법이다. 전 씨는 아마도 자기가 살기 위해 몇 마디 변명을 늘어놓고 그 자리를 물러났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었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살아 숨 쉴 수가 있었을 텐데.

그런 일이 있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렸을까. 신군부가 12년간 집권을 하고 난 뒤 지친 국민은 자칭 민주화투사라는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에게 차례로 대통령 자리에 앉혀주었지만 오늘은 운동권도 아니고 민주화 투사도 아니다. 그 뒤를 이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어부지리를 취하여 청와대 주인이 되어 나라를 이 꼴로 만든 것이 아닌가.

만약 전 장군의 권총에 맞아 1980년에 최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더라면 -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그 후 26년의 세월이 과연 최규하 대통령에게 있어서 영광스러운 세월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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