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등 이적단체에 訪北허가하고 자금 지원>
<反대한민국 결의의 場이 돼 버린 금강산>
반역(叛逆)은 금강산에서 시작됐다. 남한 좌파세력과 북한 정권 사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反대한민국 회합(會合)은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금강산에서 개최돼 온 각종 南北공동행사가 시발점이었다.
盧武鉉 정권은 “6·15선언의 연합·연방제 실현”과 “反6·15세력의 청산과 척결”을 다짐하는 이들 행사에 범민련·한총련 등 金正日 정권을 추종해 온 이적단체(利敵團體) 참가를 허가(許可)하고 심지어 국고를 지원(支援)해왔다.
통일부에서 발간하는 ‘남북협력기금통계’에 따르면, 盧정권이 각종 이적단체들의 금강산 회합에 대준 돈은 총 3억4천4백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포함, 6·15선언 이래 각종 금강산 회합에 지원된 돈은 총 8억8천5백만 원에 이르렀다.
<南北반역 회합의 主무대 금강산>
금강산 南北공동행사는 농민에서 학생, 청년, 여성, 교사, 종교인으로 참여대상이 확대돼왔다. “6·15선언실현”과 “반외세자주통일”을 주장하며 개최돼 온 이들 행사의 명칭과 정부지원 금액은 아래와 같다.
《‘6·15공동선언 1돌 민족통일대토론회(2001년 6월15일. 2억5천3백만 원 지원)’ ‘6·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南北농민통일대회(2001년 7월18~19일)’ ‘6·15공동선언 발표 2돌 민족통일대축전(2002년 6월14~15일. 4천7백만 원)’ ‘6.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南北海外청년학생통일대회(2002년 10월12~14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여성통일대회(2002년 10월15~17일. 8천3백만 원)’ ‘6.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南北청년학생대표자회의(2002년 9월1일~9월2일)’ ‘남북대학생 금강산 통일새내기배움터(2004년 3월12~14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교육자 통일대회(2004년 7월18일~20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대학생 상봉모임(1차 2005년 5월22~24일. 2차 같은 해 7월17일~18일. 총 2억7백만 원 )’ ‘금강산통일기행(2005년 7월15일~17일)’ ‘통일맞이 대학생축제(2006년 7월31일~8월1일)’ ‘새해맞이 통일행사(2006년 1월1일. 4천6백만 원)’ ‘6·15공동선언실천 南北여성대표자회의(2006년 3월9~10일, 1천2백만 원)’ ‘6·15공동선언실천 우리겨레 단합대회(2006년 4월1일. 4천4백만 원)’ ‘故윤이상 추모 음악회(2006년 4월29일. 1억2백만 원)’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대학생대표자모임(2006년 5월10일~12일. 9천1백만 원)’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공동기도회(2006년 5월25일)’ 》
<지난 해 한총련 회합에 2억7백만 원 지원>
2004년 7월 정동영 통일부장관 취임 이후, 盧정권은 이적단체가 주축이 된 금강산 南北공동행사를 허가한 데서 나아가 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통일부는 2005년 5월22~24일 소위 ‘6·15실현청년학생본부(6·15청학본부)’가 북한의 ‘조선학생위원회’와 개최한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대학생 상봉모임’을 허가했다. 6·15청학본부가 이적단체 한총련이 주축이라는 사실이 각종 언론을 통해 확인된 상황에서도, 한총련 간부들의 방북을 허용한 것이다. 6·15청학본부 공동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한총련 의장 송효원은 ‘의장님’을 연호하는 북한 참가자들을 향해 “한총련 역사상 처음으로 의장이 이곳에 오게 됐다”며 “미국에 의한 전쟁위기를 남북대학생들이 저지하자”고 화답했다. 참가자들은 한반도기를 흔들며 “反외세·자주통일”을 결의했다.
통일부는 같은 해 7월17일~18일에 금강산에서 개최한 제2차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대학생 상봉모임’도 허가했다.
의문사위 위원장을 맡았던 한상범이 공동대표로 있는 ‘불교인권위원회’ 등은 같은 해 5월23일 성명을 내고 한총련의 금강산방문을 역사적 사건으로 치켜세웠다. ‘조선학생위 엄정철 위원장과 한총련 송효원 의장의 금강산 상봉을 축하하며’라는 이 성명은 “이들의 만남은 참으로 소중한 만남이라 아니할 수 없다”며 “이제 남북의 최고지도자들이 만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연방제(聯邦制) 공화국으로 조국을 통일하자는 선언을 체결하라”고 촉구했다.
盧정권은 한총련이 주도한 금강산 회합을 허가한 것 뿐 아니라 후원에 나섰다. 통일부는 5월과 7월 두 차례의 ‘南北대학생 상봉모임’에 총 2억7백만 원의 혈세를 지원했다.
2005년 7월15일~17일 간에는 역시 이적단체인 범민련남측본부의 소위 ‘금강산통일기행’이 허가됐다. 참석자 290명 중에는 국가보안법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자들과 보안관찰대상자도 포함됐다. 간첩·빨치산 출신 소위 비전향장기수도 다수 참여했다. 마지막 날인 ‘금강산 통일의 밤’은 북한 공연단과 비전향장기수들이 서로 얼싸 안고 “조국통일”을 연호하는 울음바다가 돼버렸다.
<反韓활동 윤이상 음악제에 억대 지원>
2006년에도 이적단체들의 금강산 회합은 계속됐다. 이적단체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는 2005년 12월31일부터 올 1일1일, 지역조직인 ‘서울청년단체협의회(서청)’ 명의로 북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反국가단체 한통련 산하 ‘재일한국청년동맹’과 ‘새해맞이 통일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대회 후 “6·15실현을 위한 反통일세력 청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盧정권은 이 행사를 허가한 것 뿐 아니라 4천6백만 원을 지원했다.
한총련이 주축이 된 ‘6·15청학본부’는 지난 5월10일~12일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 등 학생들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南北대학생대표자모임’을 열었다. 2005년 ‘대학생 상봉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두 차례 가졌던 금강산회합을 2006년 ‘대학생 대표자모임’으로 격상한 것이었다. 이 행사 역시 한총련 의장 장송회가 공동대표 자격으로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대회 후 “6·15선을 끝까지 고수할 것”과 “外勢와 야합하는 反통일세력의 청산”을 결의했다. 盧정권은 여기도 9천백만 원을 지원했다.
이밖에도 지난 4월29일에는 일생에 걸쳐 親北·反대한민국 활동을 벌여 온 故윤이상을 추모하는 금강산 음악회에 1억2백만 원이 지원됐다.
역적 謀議의 해방구 금강산 연구
-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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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24, 22: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