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0월29일) 조선 등 주요 일간지의 사이트에는 ‘한나당 빅3 캠프 어떤 인재들이 뛰고 있나’라는 연합통신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그 중 박근혜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이라고 든 사람들의 명단을 보고 한심하고 착찹한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의 핵심측근은 유정복 의원, 유승민 의원, 김무성 의원, 김기춘 의원 등이고, 또한 박씨가 조언을 듣는 전문가 중에는 일간지 정치부장 출신 이연홍씨, 서울대 방석현 교수 등 40명 정도로 한다.
내가 박근혜씨의 참모에 관심을 갖는 것은 참모를 보면 후보를 알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통보수 또는 애국보수 세력이 이명박씨나 손학규씨 보다는 압도적으로 박근혜씨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념 스펙트럼에서 가장 오른 쪽에 있는 지만원씨가 박근혜 만은 지지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시중의 그 같은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모진을 보니 그런 생각을 접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大選 3修 참모
박근혜씨의 톱 브레인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으론 유승민 의원과 방석현 교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이회창씨 참모로 이미 두 번이나 대선을 치르고 패배한 인물이다. 즉 ‘대선 3수 참모’인 것이다. 김대중씨가 87년, 92년, 97년 대선에 내리 출마해서 결국에는 성공했으니 참모가 3수를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선거에서 연거푸 지는 바람에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사람들이 염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北核을 善으로 갚자”는 박근혜 참모
박근혜씨 캠프에 참여한 이연홍씨는 중앙일보 정치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내가 이연홍씨를 기억하는 것은 중앙일보에 연재된 독특한 편지쓰기 형식의 칼럼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나 논점이 있지도 않은 그저 그런 글들이지만, 그 중 북핵에 관한 2005년 7월2일자 칼럼은 참으로 황당해서 나는 반론 형식의 글을 미래한국신문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연홍씨는 부시 대통령에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린 자신의 칼럼에서 부시를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몰아 붙이고 난 후, 성경은 악(惡)을 선(善)으로 갚으라고 한다면서, 북핵을 선(善)으로 갚아 보라고 충고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영어로 써서 코리아 타임스 같은 영자신문에 실어야 할 것인데, 그것을 중앙일보 지면에 실은 것부터가 우스운 일이다. 무엇보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칼럼이 갖고 있는 대북유화주의(對北宥和主義)이다. 더구나 예수님을 빌어 와서 북핵을 선(善)으로 갚으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충고했으니, 지나가던 뭐가 웃을 일이 아니던가.
이런 사람이 박근혜씨의 선거참모라면, 박근혜씨는 북핵을 선(善)으로 갚겠다고 공약한 것과 마찬가지다. 박근혜씨는 한미 연합사 해체와 북 핵실험에 대해 우유부단한 반응을 보였는데, 대북유화론자인 이연홍씨를 참모로 기용한 것과 어떤 관계가 없는지도 궁금하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연홍씨가 이회창씨에 대해 쓴 2005년 7월24일자 칼럼이다.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이 글에 대해 이회창씨를 위해 두 차례나 선거운동을 한 유승민 의원과 방석현 교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 이연홍씨의 중앙일보 칼럼 2건과 내가 쓴 미래한국신문 칼럼을 아래에 첨부하니 독자 여러분들이 직접 읽기를 권합니다.
<1> 중앙일보 2005년 7월2일자
[중앙 포럼] 부시 대통령 각하
(이연홍 논설위원)
당신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는 예수다.' 당신은 기독교인입니다. 정확히는 복음주의 감리교 신자지요. 그러나 명목상 그렇다더군요. 사람들은 당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 부릅니다. 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니까요. 당신의 참모 상당수도 그들이고요. 정책 또한 그 기조입니다. 특히 대외 정책에서요. 그래서 정책보다 교리 우선이라는 소리도 듣습니다. 당신의 신앙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근본주의는 원래 출발이 간단합니다. 곧이곧대로 믿자는 거지요. 성경에 써 있는 그대로를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지요. 자꾸 근본을 찾게 되니까요. 그러다 보면 끝으로 갑니다. 종교에서 양 끝은 어딘가요. 선과 악입니다.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눕니다. 이슬람 근본주의도 마찬가지지요.
문제는 악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근본주의의 해결책은 전쟁입니다. 나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니까요. 궤멸의 대상입니다. 상대가 ´악의 축´이라면 더 하겠지요. 대화와 설득은 종교적 배신일 겁니다. 전쟁은 그렇게 정당화됩니다. 결국 극단주의로 흐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르침이 있습니다. 물론 근본주의적 훈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전체를 꿰뚫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당신이 믿는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건 누구였나요. 근본주의자들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이지요. 율법을 어겼다는 죄명을 씌웠지요. 그들에겐 율법만이 선이었습니다. 이외의 것은 악이었지요. 이분법입니다. 그들은 선을 좇았지요. 그러나 결과는 죄였습니다. 그것이 근본주의의 함정입니다. 율법 중의 하나가 안식일을 지키는 겁니다. 그날엔 일을 해선 안 됩니다. 병자를 치료해서도 안 되지요. 그런데 예수는 그것을 했습니다. 율법을 어겼지요. 알면서 그랬지요. 법보다 사랑이 중요함을 가르친 겁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악과 원수를 다루는 방법을 말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악에 지는 거라 했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으라 했습니다. 그래야 악을 이긴다 했습니다. 악은 하나님이 갚아준다 했습니다. 그러니 맡기라 했습니다.
성경은 원수도 사랑하라 했습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 했습니다. 배고파하면 먹이라 했고 목말라하면 마시게 하라 했습니다. 그때마다 원수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는 거라 했습니다. 언젠가 하늘의 진노가 바람을 보내겠지요.
스스로 원수를 갚아선 안 됩니다. 기독교인이라면요. 더더욱 성경의 무오류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라면 말입니다. 왜냐하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거니까요. 그것은 죄입니다.
9.11 테러는 분명 악이었습니다.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은 스스로 갚았습니다. 악을 악으로 말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습니다. 역사적 평가는 별개입니다. 그러나 가르침을 따르진 않았습니다. 그래야 했다면 종교를 앞세워선 안 되지요.
북한 핵도 악입니다. 악으로 갚자는 소리가 있습니다. 특히 당신 주변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9.11의 악을 이겨냈습니까. 아직도 당신은 전쟁 중입니다. 악이 악을 부르니까요. 악순환입니다.
악을 선으로 대해 보시지요. 배고파하면 먹여 보시지요. 목마르다면 물을 주시지요. 선의 무기를 잡아보시지요. 그리고 요구하십시오. 선의 보답을 말입니다. 인민과 세계를 향해서요. 인권을 보답하고 평화를 보답하라 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선순환을 엮어내시지요. 모두 이기는 선의 전쟁을 치르십시오. 그것이 보다 근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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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앙일보 2005년 7월24일자
[중앙포럼] 이회창 전 총재 귀하
(이연홍 논설위원)
정치는 왜 할까요. 권력을 잡기 위해서지요. 그게 전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권력은 수단일 뿐입니다. 목표는 무엇을 남기느냐입니다. 그래서 어떤 세상을 만드느냐입니다. 그걸 위해 권력이 필요한 거죠.
그렇다면 정치인의 명예는 뭘까요. 권력을 잡는 걸까요. 물론 아니지요. 목표에 도달하는 겁니다. 어떤 권력을 창출했느냐지요. 어떤 결과를 도출했느냐입니다.
묻겠습니다. 만약 권력을 잡지 못했다면요. 정치인의 명예는 없는 걸까요. 권력이 없었으니까요. 결과도 없는 거 아닙니까. 세상을 바꾸지 못한 거지요. 그러니 명예도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권력이 없어도 명예는 있습니다.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명예를 얻으려면요. 다시 도전할까요. 권력을 잡을 때까지 말입니다. 한 번 정도는 더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이상은 곤란합니다. 세상의 변화를 막는 겁니다. 명예를 더 잃는 거지요. 세상의 장애물이니까요. 물론 특별한 경우도 있었지요. 네 번 만에 권력을 쥐었습니다. 김대중(DJ) 대통령입니다.
그렇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하면 안 되지요. DJ와 총재님은 다릅니다. 정치 기반이 다릅니다. 환경도 다릅니다.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명예를 얻으려면요. 세상을 바꾼 명예 말입니다. 권력 없이요. 결국 내가 세상이 되는 겁니다. 변화의 대상이 되는 거지요. 떠나는 겁니다. 아니 떠나주는 겁니다. 그 자체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정계은퇴란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은퇴도 명예입니다. 고도의 정치행위입니다. 거기서 그쳐선 안 됩니다. 혼자 가지 말아야지요. 데리고 가야 합니다. 변화의 대상들을 말입니다.
더 있습니다. 다시 오지 않아야지요. 돌아오라 해도 말입니다. 잡아끌어도 버텨야 합니다. 그것이 명예의 완성입니다. 권력을 잡지 못한 정치인의 그것입니다. 실패했지만 성공한 겁니다. 그 명예는 훗날 영향력이 됩니다. 또 다른 정치가 되는 겁니다. 차원이 다른 정치 말이죠. 권력 이상의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합니다. 그런 분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엔 말입니다. 저는 총재님을 기대했지요. 그럴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실망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입니다. 지난 3년을 돌이켜 보세요. 떠나신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가지 않았습니다. 늘 그 경계선에 계셨습니다. 이쪽만 쳐다보면서요. 불러주길 기다리는 것 같았죠. 최근엔 발을 담가 보시더군요. 뜨거운지 차가운지 알아보려고요. 어떻습니까. 뜨겁던가요. 아닐 겁니다.
지금의 이 나라를 어떻게 보시나요. 아마 엉망이라 하실 겁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총재님을 원할까요. 지금 이 순간에 말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게 보신다면 착시입니다. 세상은 또 다른 변화를 원합니다. 스스로 변하기 때문이지요. 이미 저만치 가 있습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쫓아가지 마십시오.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저 그대로 계십시오. 아니 더 멀리 가십시오. 세상과 반대로 말입니다. 가다 보면 언젠가 만납니다. 한 바퀴 돌아서요. 그때 세상이 주는 선물이 있을 겁니다. 바로 명예입니다. 그걸 택하십시오. 그것이 총재님께 남은 역할입니다. 세상에 주는 총재님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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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래한국신문 2005년 7월25일자
北核을 善으로 갚으라고 ?
- 중앙일보의 ‘부시 대통령 각하’ 칼럼을 읽고 -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신문의 사설과 칼럼을 읽다보면 자기와 다른 견해를 발견하기도 하고 간혹은 사실에서 잘못된 글도 보게 된다. 그러나 지난 2005년 7월2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부시 대통령 각하’라는 제목으로 이연홍 논설위원이 쓴 칼럼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실소(失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칼럼을 그냥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데, 그것은 이 칼럼이 선(善)과 악(惡)에 관한 기준을 180% 전도(顚倒)시키는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칼럼을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칼럼은 부시가 복음주의 감리교 신자라면서 “사람들은 당신(부시)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부릅니다”고 하면서 부시의 정책, 특히 대외정책이 근본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근본주의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눈다고 하면서 성경에는 근본주의적 가르침도 있지만 전체를 꿰뚫는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칼럼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것은 근본주의자이며 율법주의자였다면서, 예수는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해서 율법을 어겼다고 했다. 이어서 칼럼은 성경이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했고, 악은 하나님이 갚아 준다고 했다고 썼다.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면서 기독교인이라면 스스로 원수를 갚아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칼럼은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다. “9․11 테러는 분명 악이었습니다. - - 다만 당신은 스스로 갚았습니다. 악을 악으로 말입니다. - - 북한 핵도 악입니다. 악으로 갚자는 소리가 있습니다. 특히 당신 주변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9․11의 악을 이겨냈습니까. 아직은 당신은 전쟁 중입니다. 악이 악을 부르니까요. - - 악을 선으로 대해 보시지요. 배고파하면 먹여 보시지요. 목마르면 물을 주시지요. - - 선의 보답을 말입니다. - - 그것이 보다 근본이 아닐까요.”
참으로 웃기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우선 필자가 역사와 국제문제에 대해 기본적 소양이 있는지 그것이 의심스럽다. 21세기 초의 대외정책 문제에다 성경의 단편적 구절을 엉뚱하게 엮어 쓴 것 자체가 우습다. 왜 예수가 십자가에 박혀 죽어야 했는지에 대해선 신학자에 따라, 또 역사학자에 따라 많은 해석이 있다.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2000년 전의 35년을 해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런데, 성경의 토막 구절을 들어 21세기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난하고 나섰으니 웃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과 대(對)테러 전쟁이 완전한 성공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성경의 토막 구절을 인용한 이 칼럼은 소양이 부족한 목사가 자기 교회 교인 몇 십 명 모아 놓고 하는 이야기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칼럼은 “악은 선으로 갚으라 했습니다. 그래야 악을 이긴다 했습니다. 악은 하나님이 갚아 준다 했습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은 “스스로 원수를 갚아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고 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옮겨 놓는 발상은 우습기만 하다. 성경을 잘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신약에 포함된 복음서와 각종 서신 들 자체에서도 적지 않은 충돌이 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하고 체계를 세우는 신학이란 학문이 있는 것이며, 당시의 역사적 기록과 성경을 함께 연구하는 고대 기독교 역사학이란 학문이 또한 있는 것이다.
필자가 이 칼럼에 대해 특히 우려하는 점은 그것이 너무나 패배주의적이고 유화(宥和)주의적일 뿐더러 선(善)과 악(惡)에 관한 기준을 흐려 놓기 때문이다. 이 위원 말대로라면 악(惡)에 대해 싸우는 것도 악(惡)인 셈이니, 그런 기준으로 역사를 이해하면 역사책을 다시 써야 할 판국이다. 칼럼의 기준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 침략에 대해 저항해서 싸웠어도 아니 되고 그저 하나님에 기대고 있었어야 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도 그저 그대로 있어야 했던 것이고, 안중근 의사가 이또 히로부미를 살해한 것도 악을 악으로 갚은 것이 될 것이다. 또 6․25 남침에 맞서 한국군과 미군이 많은 피를 흘리고 싸워 자유를 지켜 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칼럼의 말대로라면 압제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한 모든 전쟁은 잘못된 것이니, 히틀러에 대항해서 싸운 처칠과 루즈벨트, 공산주의 소련과 맞선 레이건은 악을 악으로 갚은 ‘나쁜 사람들’인 셈이다. 칼럼에 의하면 히틀러의 유럽지배를 허용한 챔벌레인 영국 총리와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조국이 나치의 군대에 유린당하는 결과를 초래한 2차 대전 당시의 프랑스의 무능한 정치인들이 ‘좋은 사람들’일 것이다.
칼럼은 결론적으로 북한의 핵도 악이지만 이를 선(善)으로 대하고 선(善)의 보답을 요구하라고 했다. 북한의 악은 불문에 부치고 일단 퍼주라는 것이니, 결국 노무현 정권의 대북 유화정책을 지지하기 위해서 예수까지 들먹인 셈이다. 물론 세상 모든 사안을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칼럼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논리를 비약하고 있다. 칼럼은 북한과 이슬람권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인권유린에 대해선 말 한마디 못하면서 자유민주체제를 헐뜯는 데는 혈안 돼 있는, 좌파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박근혜의 大選 참모진을 보고
- 이상돈(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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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29, 2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