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이 사는 법

노대통령, 두 계급 올려 파격 발탁, 과거엔 “韓美관계가 중요”
주변서 “청와대 가더니 변해”

외교통상부 장관에 내정된 송민순(宋旻淳)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외교관 생활 대부분을 대미 관계 업무로 보내온 사람이다. 그의 대미 관계 인식은 ‘우리나라에 가장 중요한 나라이지만 국익을 놓고 협상할 때면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엔 ‘가장 중요한 나라’에 강조점이 있었는데, 최근엔 ‘싸울 때는 싸워야’로 강조점이 옮겨진 것 같다는 평을 듣는다.


▲ 송민순/외교장관


◆미국과 관련된 3대 협상 마무리


송 실장은 대표적인 미국통이지만, 정작 주미대사관 근무는 한 차례에 불과하다. 75년 외무고시 9회에 합격한 그는 서베를린 부영사로 첫 해외근무를 시작한 후, 인도를 거쳐 86년부터 3년간 주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2000년 외교부 북미국장 시절, 우리나라의 미사일 사거리를 300㎞로 늘리는 한·미 미사일 협상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2차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소극적이었던 미국을 설득,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그는 중견 외교관 시절, 미국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었다. 당시 미국의 고압적 외교행태에 대한 불만을 많이 터뜨렸다. 그가 수석대표를 맡은 대미(對美)협상에서 책상을 치며, 미국에 대해 언성을 높였다는 일화도 있다. 협상장에서 “마치 군인 같다”는 뜻에서 미국측으로부터 ‘커널(colonel·대령) 송’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 시기다.


그렇지만 그 당시엔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장에서 미국 친구들을 상대로 싸우지만, 한·미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그를 아는 사람 대부분이 평한다.


◆절레절레 사건


노무현 정부 초기 송 실장은 위기를 맞았다. 이른바 ‘절레절레’ 사건이다. 외교부 업무보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관들이 냉전시대의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욕설까지 했다는 사건이다. 그 장면이 폐쇄회로 TV에 찍혀 청와대가 진상을 알아보기까지 했다. 나중에 고개를 약간 흔든 것은 맞지만 욕설은 하지 않았고, 고개를 흔든 것도 피곤해서 고개를 돌린 것으로 결론이 났다.


◆노 대통령이 발탁


그러나 2005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만들어내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노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으로 발탁했다. 당시 차관보이던 그를 차관을 건너뛰어 곧바로 장관급으로 임명한 파격 승진이었다. 한 외교관은 “그 후 그 사람 DNA가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외교부장관 자리가 가시거리에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로 본다”고 했다. 한 인사는 “과거엔 사석에서 노 대통령을 심하게 비판하기도 했었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북정책과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에서 ‘자주’를 강조하는 노 대통령과 ‘386실세’들에게 철저히 코드를 맞췄다. 노 대통령보다 더 앞장서는 느낌까지 주었다. 전시 작전통제권을 단독 행사하게 되면 안보가 불안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송 실장은 미국·일본이 “북한이 곧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예고하자 “추정일 뿐”이라고 반박했는데, 그 직후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국회에서 고압적으로 야당 의원들에게 답변해 정회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송 실장은 최근 한 공개석상에서 “미국은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 “유엔에 운명을 맡기면 자기 운명을 포기하는 것” 같은 비외교적 발언으로 미국으로부터 설명 요구를 받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송 실장과 함께 청와대에 근무했던 최성 열린우리당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함께 근무할 때에는 친미적이던데, 지금은 바뀐 것이냐”는 취지로 질문하기도 했다.


◆송민순과 임동원·반기문


송 실장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임동원 전 외교안보수석 밑에서 외교통상비서관으로 일했다. 임 전 수석은 송 실장을 높이 평가했으며, 햇볕정책 실행과정에서 송 실장의 의견을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실장은 당시 “임 수석과 여러 면에서 의견이 통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는 송 국장이 외교부 북미국장으로 승진하고, 임 전 수석이 통일부장관?국가정보원장?통일부 장관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실권을 유지하는 동안 계속됐다.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과도 각종 대미 협상을 함께 한 인연이 있다. 반 장관은 2004년 장관이 되자, 당시 ‘경기도 자문대사’ 로 밀려나 있던 그를 외교부 기획관리실장?차관보 겸 6자회담 수석대표로 중용했다.


◆다혈질


학창시절 복싱으로 몸을 단련했던 송 실장은 다혈질이다. 2000년 북미국장 시절, 한 출입기자와 논쟁을 하다가 주먹질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기자들에게 “공부 좀 해라. 그런 것도 모르느냐”는 말도 자주 한다.


◆비유


그는 비유를 즐긴다. 그의 특징처럼 됐다. 정확한 비유로 히트도 치지만 무슨 소리인지 모를 말을 혼자 하는 경우도 있다. 북핵 협상 와중에 “길을 걷다 지쳤다고 택시로 갈아타서는 안 된다” “고드름은 녹기도 하고 툭 떨어지기도 한다” “어느 항구로 가는지 모르는 항해사에게는 순풍이 불어도 소용이 없다”고 한 것도 알듯 모를 듯한 비유였다.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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