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을 '노동당'으로 부르자!

이 정당이 하고 있는 親北反美反헌법적 행태는 '反민주'이므로 '민주노동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정확하다.
민주노동당(이하 노동당으로 약칭)은 강령, 정책, 행태가 위헌적인 정당으로서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해산 제소를 해야 마땅하다. 386 극좌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이 정부는 그런 국가의 의무를 유기하고 있다. 이 노동당엔 이미 북한 간첩망이 침투했다. 남한의 노동당에 침투한 북한공작線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 黨의 대표단은 對南赤化공작부서인 북한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 사회민주당 초청으로 평양에 가서 反대한민국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守舊좌파가 장악한 대한민국 공권력을 이 黨이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盧정권은 對北정책 등에서 노동당의 협력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 黨의 反헌법적=반역적 행태를 어디까지 규제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정권이 반역적 정당과 야합한다고 해서 국민들까지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국민들이 이 정당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자위적 조치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이 정당을 '노동당'이라고 줄여서 불러주는 것이다. 이 정당의 자칭 명칭은 민주노동당이다. 이 정당이 하고 있는 親北反美反헌법적 행태는 '反민주'이므로 '민주노동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정확하다. 그렇다고 반역노동당이라고 불러주기도 어려우므로 민주를 떼고 '노동당'이라고 부르자.

우리는 조선노동당을 북한노동당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조선노동당의 '조선'을 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3조 규정에 따라서 자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조선이라고 불러주면 한반도에 조선과 한국 두 주권국가가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에 '조선'을 '북한'(한국의 북반부)이라고 칭하면서 조선노동당도 북한노동당이라고 부른다. 같은 이치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기둥인 자유민주질서를 파괴하려는 강령과 행태를 보인 정당 명칭에서 '민주'라는 성스러운 이름을 떼어내어야 한다.

노동당이란 이름은 북한노동당과 혼동될 수 있다는 불평이 생길 것이다. 그럴 경우에 대비하여 '남한노동당'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남한노동당은 해방 직후 생겼던 공산당인 남로당과 혼동될 소지가 있다. 그런 경우엔 '남한의 노동당'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요사이 '남한의 노동당'이 하고 있는 행태는 해방직후 남로당이 하던 짓과 닮은 점이 많다. 이름도 자연히 그 성격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열린우리당'이란 명칭도 열린당, 열우당, 열당 등으로 불린다. 이 당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열린우리당'이라고 불러주면 당원도 아닌 사람이 黨員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결과를 빚는다. 그래서 열린당, 열우당, 열당, 또는 '우'에 힘을 주어 '열린우리당'이라고 발음하여 '우리'를 짐승을 가두는 '우리'로 해석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自救策을 남한의 노동당에 대해서도 써야 저들의 속임수에 속지 않는다. 명사를 정확하게 써야 진실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 正名사상이다.
=================================================
--------------------------------------------
열린우리당을 정확하게 발음해야
'달아난 짐승들을 잡아들여 우리를 다시 닫아야'


작년 7월 미국 로스 앤젤레스 한국통일문화진흥회의 LA지부(회장 金道祐)가 주최한 창립8주년 기념식 및 강연회에 초대받았다. 나는 '한국의 절망과 희망'이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강연 뒤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 것까지 포함하여 3시간이 걸렸다. 약300명의 교민들이 참석하여 끝까지 경청해주었다. 라디오코리아 방송국에서 강연을 한 시간 중계했다. 시종 진지하게 조국의 위기에 대한 나의 설명을 들어준 교민들의 표정은 떠나온 고향에 대한 걱정으로 차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이, 가장 성공한 在美동포인 李承晩박사의 영도하에 미국과 손잡고 세운 나라임을 강조했다. 李박사와 미국을 매개로 하여 대한민국은 해양문화권 선진국의 정치제도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과학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반면 북한은 실패한 在中-在蘇동포 金日成이 소련의 스탈린이 써주는 시나리오대로 꼭두각시 놀음을 하면서 세운 괴뢰국가였다. 李, 金 두 사람은 기독교를 믿었으나 李박사는 미국으로 건너와서 자유민주주의와 만났고, 金은 북쪽 대륙으로 올라가서 증오의 狂信과 만났다. 李박사는 기독교와 민주주의를 결합시켰고, 金은 기독교에서 사랑을 빼어버리고 그 儀式을 도용하여 공산주의와 교배시켜 오늘의 소위 주체사상이란 신흥종교를 만들었다.

李承晩이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유학온 것은 한국의 축복이고 金日成이 대륙으로 간 것은 북한동포의 재앙이 되었다.

盧武鉉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성공조건이 되었던 해양화 노선을 수정하여 균형자론으로 위장된 親대륙노선으로 가려고 한다. 우리가 대륙에서 배울 것이 무엇인가. 중국 러시아 북한에서 배울 것은 무엇인가. 아직도 대륙국가의 속성은 독재와 탄압과 침략의 근성이 아닌가. 한국이 해양성을 상실하면 대륙적 침체와 전제체질로 변질되어 진취성을 상실하고 쇠퇴했다는 것은 역사의 한 법칙이 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강연을 끝낸 뒤의 질문응답 시간에 한 교민이 재미 있는 제안을 했다. 내가 한반도의 대표적인 두 사기성 作名에 대해 한 논평과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열린우리당이란 두 名詞야말로 한반도의 가장 큰 거짓말이다'고 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다 거짓말이다. 김정일정권은 조선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니며 인민이 선택한 정권도 아니고 공화국도 아니다. 다 거짓말이다. 열린우리당은 열리지도 않았고 '우리당'도 아니다. 나는 이 黨에 가입한 적이 없다. 좌파는 이런 식으로 국민들을 속이는 데 대해 양심의 가책이 일어나지 않도로 하는 마취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60대 후반으로 되어보이는 질문자는 이렇게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黨名을 존중해줍시다. 그 대신 발음을 정확하게 합시다. 열린우리당의 '우'에 액센트를 둡시다. 그 이름대로 '우리'가 열려 그 안에 있던 짐승들이 바깥으로 달아났어요. 국민들이 그것들을 잡아들이는 일을 하면 될 것 아닙니까'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발음을 정확하게 하자는 말씀을 본국에 전하겠습니다. 狂信과 싸울 때는 합리나 과학으로써만은 부족하고 다른 종류의 신념체계, 기독교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광신과 사기에 대해서는 유머감각도 중요한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북한의 ‘평화개념’ 재음미


한미동맹 파괴, 주한미군 철수를 평화라고 규정.
송대성(미래한국)



송대성(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일반적으로 ‘평화(peace)’의 개념은 ‘조용하고 화목한 상태’ 혹은 ‘전쟁이 없이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 상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는 ‘평화`라는 단어를 수많이 사용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평화보장’, ‘남북한간 평화’, ‘북핵문제 평화적 해결’, ‘평화문화와 냉전문화’ 등 보수와 진보, 여와 야,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남북한 모두들 평화라는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평화(peace)’라는 단어는 비록 그 표현은 같을지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하고 심지어 전혀 상반되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남북한 간에 같은 평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협상도 하고 회담도 하지만 그 구체적인 의미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본고에서는 북한이 뜻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라는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평화의 개념에는 ‘소극적인 개념(Negative Peace)`과 ‘적극적인 개념(Positive Peace)’ 두 가지가 있다. 소극적인 개념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 혹은 ‘폭력이 행사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며, 적극적인 평화개념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소극적인 개념에 ‘전쟁을 발생케 하는 원인들 제거’라는 내용을 포함시킨 평화개념이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소극적인 한반도 평화개념은 남한이 보유하고 있는 개념이나 별 차이 없이 비슷하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적극적인 평화 개념이 남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개념과 너무나 상이하다.

정상적인 평균 남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적극적인 개념은 “한반도에서 전쟁이나 무력충돌 없이 한반도 전체가 평온하고, 북한이 적화통일의지를 완전히 포기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적극적인 평화개념은 “조선반도에서 군사적인 행동이 중지된 가운데,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되어진 상태”(북한사회과학출판사, 조선말대사전, 1992, pp. 109-10)라는 개념이다.

북한의 이러한 적극적인 한반도 평화개념은 여러 곳에서 정의되고 있는데 그 중 『김일성 저작선집 3권』(p. 415)에는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에서도 반미투쟁은 평화를 위한 투쟁의 기본이다. 미제국주의는 평화의 주된 교란자이며, 평화의 가장 흉악한 원쑤이다...부르죠아 평화주의자들은 제국주의가 남아있는 조건에서도 전쟁을 영원히 없애고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정의의 전쟁(예컨대 조국해방전쟁)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제국주의자들을 축출하지 않고서는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제국주의자들이 있는 상태에서의 평화는 노예적 굴종의 평화이며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한반도의 적극적인 평화개념을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 되고 한미동맹이 붕괴된 상태’를 직간접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개념을 요약하면 ‘한반도에서 군사적인 행동이 중지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되고 미국과 한반도의 연(緣)이 완전히 종결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이러한 평화개념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생각하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공동연합방위체제를 구성하여 여하한 외부의 위협도 철저히 억제함이 진정한 한반도 평화’라는 개념과 너무나 상치되는 개념이다.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 그들의 독특한 한반도 평화개념을 가질 수도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우리 사회 속에 존속하고 있는 만경대정신숭모세력들이 이러한 북한의 한반도 평화개념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점과 노무현정부가 이러한 북한의 한반도 평화개념을 은근히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의 안보역량에 치명적인 훼손을 가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한국군 단독행사 문제도 노정부가 북한의 한반도 평화개념을 은근히 지지함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미래한국

-----------------------------------------------------------
'正義는 평화보다 더 소중하다'


우드로 윌슨의 제1차 세계대전 參戰 요구 연설(1917년 4월2일)

“正義는 평화보다 더 소중하다”


번역; 정영목

[연설의 배경] 우드로 윌슨은 미국의 제28대 대통령(1913~1921)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의 격변기를 통과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미국의 참전 결정을 내리는 과제와 세계대전을 마무리짓고 새로운 세계 체제를 구성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1915년 독일 잠수함이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격침시켜 미국인 128명을 포함한 승객 1,198명이 사망하자 윌슨 대통령은 독일 정부에 강력히 항의, 독일은 그해 9월 중립국 선박이나 민간 여객선은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독일은 1917년 2월 무제한 잠수함 공격을 재개한다. 또 독일 외상 짐머만은 멕시코 주재 자국 전권공사에게 미국이 참전하면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하도록 공작하라는 암호전문을 보냈으나 영국 첩보당국이 이를 가로채 해독하여 미국에 넘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윌슨은 참전을 결심하고, 2월3일 의회 연설을 통해 독일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한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1917년 4월2일 의회에서 윌슨은 다음에 수록된 것과 같은 연설을 한다. ‘전쟁교서’로 알려진 이 연설이 있은 지 나흘 뒤 의회는 압도적 다수로 전쟁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독일제국에 선전을 포고한다. ‘전쟁교서’는 일차적으로 미국 참전의 계기가 된 문건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동시에 거기에 나타난 윌슨 대통령의 이상주의적 구상이 실제로 전쟁 후의 세계 질서 재편의 밑그림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윌슨 대통령이 구상한 국제연맹에 정작 미국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이러니지만). 우리 민족과 관련된 민족자결주의는 1918년에 국제연맹 구상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이지만, 이 문건에서도 그 싹을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의 변화에 대한 우호적 발언은 극좌파인 레닌의 볼셰비키 10월 혁명이 있기 전에 행한 연설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연설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는 안전해져야 한다”는 대목이며, 이것이 곧 미국의 참전 명분이기도 했다. 마지막 구절은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가 했던 말을 원용한 것이다.
-----------------------------------------------------

국회의원 여러분, 내가 의회에 특별 회기를 요청한 것은 심각한, 대단히 심각한 정책 선택의 문제, 그것도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할 문제가 있는데, 그 결정의 책임을 내가 떠맡는 것은 옳은 일도 아니고 헌법이 허용하는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3일 나는 여러분에게 독일제국 정부의 특별 발표를 공식적으로 전달했습니다. 발표 내용은 독일 정부가 2월1일부터 법과 인도주의에 의한 모든 제약을 무시하고, 영국과 아일랜드의 항구, 유럽 서해안, 지중해 내의 독일 적국 항구에 접근하는 선박은 모두 잠수함으로 격침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전쟁 초기부터 독일 잠수함전의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년 4월 이후 독일 정부는 당시 우리와 했던 약속에 따라 잠수함 지휘관들의 행동을 다소 제한했습니다. 그 약속은 여객선은 격침하지 않으며, 공격 대상으로 삼는 다른 선박들의 경우에도 저항하지 않거나 도주를 시도할 때는 적절한 경고를 하여 적어도 승무원들이 구명선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방 조치는 미흡해서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잔인하고 비인간적 행위로 희생된 조난선들을 통해 여러 번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어느 정도 자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 새로운 정책은 이 모든 자제 조치를 내팽개쳤습니다. 독일 잠수함은 국적, 선박의 성격, 적재화물, 목적지, 임무를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선박을 경고 없이, 그리고 승선자들을 불쌍히 여겨 구출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격침했습니다. 교전국의 선박만이 아니라 우호적 중립국의 선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병원선, 또 슬픔과 고통에 시달리는 벨기에 국민에게 구호물자를 싣고 가던 선박들마저 동정심도 없고 원칙도 없는 무모한 공격으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벨기에로 가던 배들은 다름 아닌 독일 정부가 해당 구역 통과를 보장한 안전통행권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특색 때문에 다른 배로 착각할 수가 없었음에도 공격을 당했습니다.
지금까지 문명국의 인도적 관행에 동의해온 정부라면 절대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잠시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다는 어떤 나라도 지배권을 가지지 못한 곳이었고, 세계의 길들이 자유롭게 뻗은 곳이었습니다. 국제법은 이런 곳에서 존중하고 준수할 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법은 힘겨운 단계들을 거치면서 형성되어 왔습니다. 법 제정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음에도 사실 그 결과는 미흡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국제법은 인류의 양심이 요구하는 바를 반영해야 한다는 명확한 목적 의식을 잃은 적은 없습니다.
독일 정부는 복수와 필요성을 구실로, 또한 바다에서 달리 이용할 수 있는 무기가 없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정의마저 일축해 버렸습니다. 독일 정부가 지금처럼 그 무기(잠수함)를 이용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양심의 가책, 또 국제 교류의 기초가 되는 상호 이해에 대한 존중심을 완전히 白眼視(백안시)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지금 그 공격과 관련된 재산상의 손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엄청나고 심각한 일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독일 정부가 非전투원, 남자, 여자, 어린이들을 제멋대로 대량 살상했다는 사실뿐입니다. 사망자들은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조차 순수하고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일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재산이야 돈으로 메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롭고 순수한 사람들의 생명은 그럴 수 없습니다. 교역을 방해하는 현재의 독일 잠수함戰은 인류에 대한 전쟁입니다.
그것은 모든 나라에 대한 전쟁입니다. 미국 선박들이 침몰했습니다.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희생되었는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중립적이고 우호적인 나라들의 배와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물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것은 무차별적 공격이었습니다. 이것은 全인류에 대한 도전입니다. 각 나라는 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국민성과 목적의식에 걸맞게 차분히 침착하게 대응책을 선택해야 합니다. 흥분은 금물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복수가 아니며, 나라의 물리적 힘을 과시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권리, 인간 권리의 옹호일 따름이며, 이 면에서는 우리도 인권을 위해 싸우는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President Woodrow Wilson Requests a
Declaration of War to the German
Empire(April 2, 1917)

“But the right is more precious than peace.”

Gentlemen of the Congress: I have called the Congress into extraordinary session because there are serious, very serious, choices of policy to be made, and made immediately, which it was neither right nor constitutionally permissible that I should assume the responsibility of making.
On the third of February last I officially laid before you the extraordinary announcement of the imperial German government that on and after the first day of February it was its purpose to put aside all restraints of law or of humanity and use its submarines to sink every vessel that sought to approach either the ports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or the western coasts of Europe or any of the ports controlled by the enemies of Germany within the Mediterranean. That had seemed to be the object of the German submarine warfare earlier in the war, but since April of last year the imperial government had somewhat restrained the commanders of its undersea craft in conformity with its promise then given to us that passenger boats should not be sunk and that due warning would be given to all other vessels which its submarines might seek to destroy, when no resistance was offered or escape attempted, and care taken that their crews were given at least a fair chance to save their lives in their open boats. The precautions taken were meager and haphazard enough, as was proved in distressing instance after instance in the progress of the cruel and unmanly business, but a certain degree of restraint was observed.
The new policy has swept every restriction aside. Vessels of every kind, whatever their flag, their character, their cargo, their destination, their errand, have been ruthlessly sent to the bottom without warning and without thought of help or mercy for those on board, the vessels of friendly neutrals along with those of belligerents. Even hospital ships and ships carrying relief to the sorely bereaved and stricken people of Belgium, though the latter were provided with safe conduct through the proscribed areas by the German government itself and were distinguished by unmistakable marks of identity, have been sunk with the same reckless lack of compassion or of principle.
I was for a little while unable to believe that such things would in fact be done by any government that had hitherto subscribed to the humane practices of civilized nations. International law had its origin in the attempt to set up some law which would be respected and observed upon the seas, where no nation had right of dominion and where lay the free highways of the world. By painful stage after stage has that law been built up, with meager enough results, indeed, after all was accomplished that could be accomplished, but always with a clear view, at least, of what the heart and conscience of mankind demanded.
This minimum of right the German government has swept aside under the plea of retaliation and necessity and because it had no weapons which it could use at sea except these which it is impossible to employ as it is employing them without throwing to the winds all scruples of humanity or of respect for the understandings that were supposed to underlie the intercourse of the world. I am not now thinking of the loss of property involved, immense and serious as that is, but only of the wanton and wholesale destruction of the lives of noncombatants, men, women, and children, engaged in pursuits which have always, even in the darkest periods of modern history, been deemed innocent and legitimate. Property can be paid for; the lives of peaceful and innocent people cannot be. The present German submarine warfare against commerce is a warfare against mankind.
It is a war against all nations. American ships have been sunk, American lives taken, in ways which it has stirred us very deeply to learn of, but the ships and people of other neutral and friendly nations have been sunk and overwhelmed in the waters in the same way. There has been no discrimination. The challenge is to all mankind. Each nation must decide for itself how it will meet it. The choice we make for ourselves must be made with a moderation of counsel and a temperateness of judgment befitting our character and our motives as a nation. We must put excited feeling away. Our motive will not be revenge or the victorious assertion of the physical might of the nation, but only the vindication of right, of human right, of which we are only a single champion.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