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노동당 비밀당원 송두율씨는 1995년에 쓴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한겨레신문사)란 책에서 '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란 章을 만들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변호하려고 시도한다.
이 章에서 그는 한번도 북한정권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시인하지 않는다. 왜인가. 그의 내재적 접근법 때문이다. 그의 내재적 접근법을 그는 가끔 내재적 비판적 접근법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항상 북한의 발표문을 비판없이 무조건 신뢰한다. 북한이 그때는 한번도 핵무기 개발을 시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도 핵무기 개발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완강한 사찰거부 자세가 바로 핵무기 개발 계획의 實在를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은 미묘한 정치적 내용을 지닌 핵문제의 전략적 의미를 간과하는 단순논리 위에 서 있다'고 말한다.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지만 다른 전략적 이유로 사찰을 거부하고 있을 것이란 의미를 전하려고 애쓴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썼다.
<핵개발은 당연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순전히 평화적인 목적만을 갖고 있다고 북한이 누차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성된 국제정치적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북한에게 核협상 카드를 쥐어주었다>
북한이 개발하지도 않는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국제사회가 떠드는 바람에 북한이 공짜로 핵카드를 갖게 되었다는 기발한 설명이다.
그는 또 제네바 협정으로 북한에 짓도록 된 경수로 건설에 대해서 이런 해석을 한다.
<북한이 남한의 경수로를 수용한 사실속에서 우리는 이 책의 서두에 화두로 삼았던 '배제하고 통합하는 제3'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완전히 상대방을 배제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또 완전히 서로 통합되지 않는 긴장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정은 남북이 민족적인 차원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않으면 모두가 다 패자가 된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알듯 모를 듯한 예의 애매모호한 표현의 결론은 민족적인 차원에서 북한정권의 잘못을 덮어주자는 뜻인 것 같다. 그가 말하는 민족적이란 말의 진정한 뜻은, 민족반역집단인 김정일 정권이 내세우는 가짜 민족주의 노선을 수용하자는 것임을, 그의 정체가 북한노동당원임이 밝혀진 오늘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이하 글은 송두율의 거짓말과 궤변을 분석한 것이다.
<송두율 詐術의 구조 연구>
학자로 위장한 북한노동당원 宋斗律씨의 책을 읽어보면 북한정권의 책임을 미국과 한국측으로 떠넘기는 억지 논리를 구사한다. 그는 1995년8월 한겨레신문사에서 펴낸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에서 '북한경제 침체론의 허상과 실상'이라고 주제를 설정한 다음 원인을 규명하는 척한다.
당연히 지적되어야 할 북한 지도부의 정책 실패, 즉 폐쇄적 경제운영, 우상숭배 등 낭비적 투자, 사회주의 제도의 非능율성은 무시된다. 그 대신 속죄양이 등장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축적되어온, 북한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은 북한경제가 두 가지의 중대한 구조적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첫번째 문제는 국방비 지출의 과중한 부담이고, 두번째는 서방국가들의 對북한 금수조처로 인해 북한이 자본주의 국가들과 협력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집단농장의 사유화라는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개혁조차도 거부하여 수백만명을 餓死로 몰아넣은 북한정권의 守舊的 자세를 그는 지적하지 않는다. 오로지 외부의 위협 때문에 북한경제가 어렵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런 위협과 고립을 자초한 북한의 잇단 對南도발에 대해서 송두율씨는 지적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북한노동당원이었으니까!
위의 책에서 그는 '북한은 매년 150만 내지 200만 kWh 정도 요구되고 있는 에너지의 수요량을 충당하기 위해 1990년대 말경에는 가동할 수 있는 두 개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이 계획은 우선 핵문제의 위기를 넘겨야만 했다'고 썼다. 두 개의 원자력 시설은 발전용이 아니고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송두율씨는 이것이 발전용인데 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건설이 지연되었고 따라서 에너지 부족의 책임은 북한이 아니란 억지를 쓰고 있다.
송두율씨의 이런 책임전가術은 한국내 친북세력이 북한정권을 옹호하는 데 쓰는 흉기로 이용되었다. 고립을 자초한 북한정권의 전쟁도발, 6.25남침, 아웅산 테러, 육영수 여사 암살, 대한항공 폭파에 대해서는 언급함이 없이 한국과 미국의 군사력 건설과 對北경제제재만 도마 위에 올리는 숫법이다.
송두율씨의 글을 읽어보면 난해하기 그지 없다. 어렵지도 않는 주제를 애써 어렵게 설명한다. 읽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남북한 사이의 경계인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북한을 비호하려니까 어렵게 쓰는 것이다.
그는 북한편을 들 때 남북한 사이에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란 포즈를 먼저 취한다. 예컨대 1991년 한길사에서 펴낸 '전환기의 사회와 민족지성'이란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남북한 유엔가입이 기정사실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 이 문제에 다시 우리의 주의를 돌리는 것은, 유엔속에서 남북한 사이의 외교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통일로 이르는 공존적 삶의 원칙마저 안중에서 사라지고 말 위험성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남북한 사이의 외교경쟁'이란 키 워드에서 양편을 공평하게 우려하는 것처럼 위장하여 일단 독자들로 하여금 필자가 객관적 입장에 서 있다는 허상을 던져준다. 미끼인 것이다. 그런 다음 송두율은 이른바 내재적 입장에 의거하여 북한 입장에서 이 문제를 보는 시각으로 전환한다.
'북한이 유엔가입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그러면 어떠한 점을 긍정적으로 보았는가? 북한은 '신세계질서' 수립을 공공연히 호언하는 미국의 직접적인 예봉을 피하면서 남한사회의 냉전적인 정치, 군사적 대결구조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요컨대 북한이 한국과 함께 유엔에 동시가입하기로 한 것은 미국과 남한의 공격적이고 냉전적인 자세에서 일단 피해보자는 뜻이라는 것이다. '남한사회의 냉전적인 대결구조'란 표현은 북한정권 편에 서서 남한사회를 공격하는 필자의 입장을 보여준다. 그 다음 단계에서 송두율씨는 자신의 북한 정권 옹호 논리를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남북의 유엔동시가입은 역시 남북의 공존적 삶을 지향하는 통일에 비추어볼 때 하나의 장애요 난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송두율씨는 여기에 와서는 북한의 입장을 객관적인 진실인 것으로 결론 내린다. 북한이 유엔동시가입에 반대했던 입장이 정당하다는 결론인 것이다. 그의 3단계 논법은 이러하다.
1. 자신이 남북한 사이에서 객관적 입장에 서 있다는 인상을 준다.
2. 북한 입장에서 문제를 보는 내재적 접근법을 쓴다.
3. 2의 입장이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논리상 3단계에서는 2단계에서 소개한 북한의 입장을 과학적으로 비판하고 검증해야 하며 4단계에서 평가해야 한다. 송두율씨는 그런 비판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평가를 내림으로써 북한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는(사실은 선전하는) 것이다. 그는 북한정권의 논리를 선전이 아닌 방법, 즉 객관성으로 위장하여 선전하기 위해 문장을 그렇게 어렵게 쓰고 있는 것이다. 쉽게 써도 되는 것을 어렵게 쓰는 사람은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법이다.
송두율의 말장난(1)/北탁아소 칭찬
송두율씨가 쓴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한겨례신문사. 1995년8월)란 책에는 남북한의 여성 지위를 비교한 대목이 있다. 宋씨는 북한의 탁아소나 유치원 제도를 남한보다 높게 평가하고 여성의 産前産後 휴가를 비교하여 북한이 남한보다 진보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350만명의 어린이들이 무상으로 탁아소나 유치원에서 보호받고 있는 북한에 비하여, 남한에서는 150만명에 달하는 맞벌이 부부 가정의 약 백만 명에 이르는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 위탁시설이 절박하게 요구된다고 하겠다. 1993년9월 현재 위탁시설에서 보호되는 어린이 수는 15만 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의 여성정책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상대적 진보는 남한에서도 최근 논의의 대상이 되고 긍정적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썼다.
수치를 인용한 宋씨의 이 비교는 '10만 마리의 개미군단은 천명의 코끼리 부대보다 무섭다'고 말하는 꼴이다. 비교의 기준이 엉터리이다. 1994년부터 본격화된 대기근으로 북한에서는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굶어죽었다. 탁아소와 유치원에는 쌀이 내려오지 않아 문을 닫아야 했다. 宋씨는 이들이 '보호'받는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들은 김정일 정권에 의해 버림을 받았다.
1999년 미국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이 발표한 북한 대기근 관련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에 북한에선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특히 많이 굶어죽었다.
<영아 11명 중 네 명 사망=사망률이 높은 연령층은 노년층과 어린이들이었다. 1995∼97년 사이 65세 이상에서는 사망률이 연간 1천명당 1백31.8명으로서 이 기간 평균 사망률의 약 세 배나 되었다. 5세 이하의 사망률도 년간(年間) 1천명당 88.9명으로 전(全)연령층 평균의 약 두 배이며 1세 이하 영아 사망률은 더 높고 해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4백40명의 탈북자들이 속한 1천7백82명의 가족 가운데 1995~97년까지 3년간 55명이 출생했다. 그들중 대기근(大飢饉)이 시작된 1995년에 태어난 23명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다음해에 태어난 21명 가운데 5명이 죽었고 1998년 출생자 11명 가운데서는 4명이 죽었다. 남자의 사망률은 年間 1천명당 49.8명으로서 여자의 1천명당 35.4명보다 높았다>
宋씨는 북한의 탁아소 등 제도가 남한보다 진보되었다고 하는데 왜 북한에선 어린이들이 집중적으로 굶어죽고 남한에서는 어린이 비만을 걱정해야 했나. 식량이 내려오지 않은 탁아소가 1억개인들 무슨 소용이 있나 말이다. 탁아소 수치를 가지고서 여성정책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더 진보되어 있다고 논한다는 것이 과연 과학을 아는 이가 할 일인가.
그 탁아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지 않고 북한정권이 제공하는 수치놀음만 하면서 감히 남한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사람, 그가 송두율이다. 이런 자가 과연 지식인인가. 11명의 어린이가 태어나면 1세가 되기 전에 네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런 인간지옥이 남한보다 진보되어 있다니. 송두율씨는 지옥이 천당보다 낫다는 결론을 내는 논문도 충분히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송두율씨는 북한정권이 제공한 수치를 아무런 검증 없이 받아 먹으면서 남한을 공격하는 데 써먹은 어용 지식인일 뿐이다.
송두율은 왜 북한동포의 원수인가
1973년 이후 송두율이 북한노동당원으로 쓴 모든 글은 對南공작문서이다. 내용이나 의도가 그러하다. 이제는 암호처럼 난해한 그의 글을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해독의 공식으로 다른 불온문서를 판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1991년 한길사에서 펴낸 '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이란 책의 맺는 말에서 독일시인 하이네 이야기를 꺼낸다. 1844년 파리에서의 망명생활을 거두고 잠깐 조국 땅을 밟은 하이네가 다시 망명의 길을 떠나면서 '독일: 하나의 겨울 이야기'에서 쓴 말을 인용한다.
송두율씨는 '이성적이고 좋은 사람이라면 그가 설사 프랑스 사람일지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요지의 하이네 말을,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는 귀절로 쓰고 있다. 그는 '우리는 다른 민족도 아닌 같은 민족을 만나면 반쪽짜리 조국의 배신자가 될 수밖에 없는 기막힌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송두율씨가 하이네를 들었으니 우리도 질문할 권리가 있다. 당신은 북한에서 정말 하이네처럼 이성적이고 좋은 사람의 친구가 되었는가.
김일성 김정일이 이성적이고 좋은 사람인가. 당신을 조종한 김용순과 임동욱이 그런 사람이던가.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인간들과 친구가 된 것이 아닌가. 당신은 맞아죽고 굶어죽는 북한동포와 친구가 되어야 했다. 그랬다면 아무도 당신을 조국의 배신자로 몰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이성적이고 좋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은 북한동포들을 배반하고 북한동포들을 죽이고 굶기고 착취해온 김정일 편에 섰기 때문에 조국의 배신자가 된 것이다.
김정일은 농장과 공장을 방문할 때 농장원과 공장 노동자들을 창고에 격리시키도록 한다. 그는 북한동포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북한동포들은 김정일을 원수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북한동포의 원수인 김정일의 走狗가 되어 한국 사람들로부터, 북한동포들에 대한 동정심과 김정일에 대한 경계심을 없애려고 했던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당신은 민족과 조국의 배신자인 것이다.
송두율 말장난11/박정희 모함
송두율이란 자가 얼마나 비겁한 인간인가 하는 것은, 그가 희대의 독재자이자 민족반역자인 김정일이 지령한 범죄인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폭파, 북한동포 餓死, 아우슈비츠 같은 강제수용소 운용, 외국인 납치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김일성 김정일에 비교한다면 천사로 불려야 할 이승만, 박정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송두율은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최소한의 균형감각도 없는 것이다.
1995년 여름에 한겨레신문사에서 펴낸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란 책에서 그는 '김정일에 의해서 주체사상은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면서 소위 주체사상을 격찬하고 있다. 그의 글에서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정리한 철학자로 묘사된다. 김정일이 주체사상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황장엽씨가 주체사상을 정리했다. 황장엽시는 자신의 사상체계가 김일성 김정일에 의해 도용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송두율은 누가 주체사상을 정리하였는가 하는 사실관계를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김정일에 불리한 사실은 있는 것도 없애려 한다. 굳이 캐낼 입장이 아니다.
그는 대기근이 한창 진행중일 때 쓴 책에 북한의 식량위기를 부정하는 글을 쓴 인간이다.
그러면서 송두율은 박정희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박정희)는 '오카모도'라는 이름으로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유격대를 토벌하던 장교였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만주에서 항일 유격대를 토벌한 적이 없다.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한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한 뒤 북중국 熱河지방의 만주군에 배치되어 모택동의 팔로군과 대치했을 뿐이다.
박정희에 대한 초보적인 사실부터 왜곡한 그는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극찬의 기준을 이승만 박정희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해방후 최고 성과중의 하나로 보는 '새마을 운동'에 대해서는 '터무니 없이 조직된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개발독재에 의하여 기층에서부터 점차 형성되기 시작한 저항운동에 대한 예방조치였다'고 비웃었다. 그는 한국 근대화의 성과를 사사건건 부정하려 든다.
그는 남한 모델은 결코 일본 모델은 될 수 없다면서 일본을 들어서 한국의 낙후성을 지적하는 데 쾌감까지 드러내고 있다. '남한이라는 소년이 머지 않아 일본이라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생각 속에는 한일 두 나라 사이의 질적인 구조 차이를 쉽게 망각하게 되는 함정이 숨어 있다'고 한다.
그는 남북을 하나의 민족경제권으로 묶으려는 논리는 자본의 논리나 시장의 논리여서는 안되고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논리의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한다.
<이러한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기 위한 하나의 절대적 요건은 북한사회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주체사상을 검토해 보는 데 있다>
주체사상으로 민족경제의 새 이정표를 찾자는 논지로 이해된다. 이제는 알 수 있다. 그가 왜 이처럼 철면피한 글을 썼는지. 그는 북한노동당원 송두율이었던 것이다.
송두율 말장난 10/'연방제 찬성'
송두율씨가 쓴 모든 책은 북한노동당원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쓴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임무는 대한민국을 적화혁명으로 때려엎는 것이다. 지식인으로 위장한 김정일 똘마니가 어떤 논법을 구사하는지를 알려면 이제는 송두율을 사례연구하면 된다.
송두율식의 言辭를 구사하는 인간은 일단 의심해야 한다. 송두율씨는 악의 논리로 대한민국을 해체하려고 했다. 이제는 송두율을 해체함으로써 김정일 추종자들의 정체를 백일하에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 세력이 공격할 수 있는 표적이 매우 넓어지고 좁혀진 것이다. 애국 우파 자유세력은 대단한 전략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송두율은 예상했던 대로 김정일의 對南적화전략의 핵심인 연방제통일방안을 지지한다. 연방제통일방안이란 것은 남과 북의 각기 다른 체제를 지금처럼 그대로 두고 그 위에다가 고려민주연방공화국정부라는 것을 씌우고 이 중앙정부에 외교 국방을 위임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속임수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남북한 분단은 민족이 달라서가 아니라 이념이 달라서 생긴 것이므로 통일은 남북한의 이념을 단일화하는 일이다. 이념이 다른 그대로 두고 중앙정부를 만들자는 것은 통일을 하지 않고 분단을 고착화하겠다는 反통일안이다. 그럼에도 이를 연방제 통일안이라고 사기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방제를 도입한다는 명분하에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한민국안에서 김정일 추종세력의 활동이 보장되면 적어도 국민의 半은 북한정권편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김정일은 믿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2000만과 남한의 2500만 명을 합쳐 4500만명을 자신들의 편으로 확보한 다음에는 자유선거를 해도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송두율은 무엇이라고 변설하고 있는가.
<우선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교류를 탄탄하게 보장할 수 있는 민족내부적 공감대를 제도적으로 마련하여 초보적 수준이라 할지라도 연방제적 구조를 구축하는 문제가 시급하다. 왜냐 하면 남북간 상호이해의 현재 수준으로는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한반도의 전체적 이익지향은 극히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함께 복잡해질 동북아 지역 내의 이해갈등에 대비한 남북한 공동의 외교적 역량강화라는 견지에서도 연방제적 구조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적 차원에서 상호이해가 촉진되었을 때 체제와 사상의 절대적 위치도 변하기 마련이다>
남북의 화해 협력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우선 연방제로 통일되었다는 선언을 하자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한 다음, 통일된 마당에 왜 주한미군이 필요한가, 왜 국가보안법이 필요한가, 왜 국정원이 필요한가라고 문제를 제기하여 이들 장애요인들을 철거한 뒤 남한을 먹어치우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을 송두율은 남북간의 화해 협력의 촉진이란 말로 미화,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적 차원에서 상호이해가 촉진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남북한 양쪽이 이념을 따지지 말고 같은 민족끼리 뭉쳐 외교도 하고 국방도 하다가 보면 이념의 중요성이 약해지고 우선 한 민족으로 합치게 될 것이란 뜻이다.
한 민족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김정일 정권과 연방제를 받아들인 남한의 친북정권을 가리킨다. 송두율은 남북한의 민족반역 정권을 민족이라 부르고 있다.
송두율이 말하는 민족개념에는 북한주민들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고 김정일 정권이 민족의 챔피언으로 등장한다. 민족반역자를 민족의 대변자로 만들어놓고 하는 민족통합이란 김정일한테 민족을 갖다 바치겠다는 뜻이다. 송두율이 북한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북한주민이 배제된 북한정권, 즉 김정일이다. 송두율이 민족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남북한 민중이 배제된 민족반역자 김정일 세력을 가리킨다.
송두율의 '민족' '북한' 용법을 분석하면 그는 북한과 한민족을 김정일 세력의 사유물로 인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재자의 주구니까 그런 발상이 가능하다.
북한의 핵개발을 부정했던 송두율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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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04, 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