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결식이 끝난 후 영정을 앞세우고 식장을 떠나고 있다 (鄕軍葬)ⓒkonas.net
그래서 일까, 아직도 조국 '자유대한민국' 을 그리며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 오늘도 이름 모를 북녘 땅 오지에서 그 날을 그리워하는 국군포로들의 외침으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21일 오전 7시 30분. 분당 서울대병원에서는 6·25한국전쟁 참전 중 중공군에게 포로가 되어 43년 동안 북한에서 모진 학대를 받아오다 1994년 탈출해 조국 자유대한의 품에 안겨 북한실상 알리기 등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벌여오다 지난 19일 지병인 뇌졸중으로 사망한 故 조창호 예비역 중위의 영결식이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大韓民國在鄕軍人會葬)으로 엄수되었다.
박세직 향군회장을 비롯한 향군회장단과 임직원, 유가족, 황규식 국방부차관, 양원모(육군중장) 합참 인사군수본부장, 전주식 포병전우회 회장 등 참전친목단체 대표를 포함 30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기독교식으로 거행되었다.
7시 18분, 향군 임직원들의 기립 영접아래 향군상조회원들의 운구로 태극기에 감싼 故 조 중위의 영현이 식장에 들어서고 그 뒤를 이어 유가족들이 입장하면서 영결식이 시작되었다. 식장은 평소 온화한 조 중위의 모습처럼 미소를 머금은 채 국화로 둘러쌓인 영정사진 한편으로 고인이 귀환 직후 정부로 부터 받은 훈장(보국훈장 통일장)증과 훈장이 마치 고인의 지난했던 지난 삶을 돌이켜보게 하는 듯 했다.
고인 약력보고, 조사와 추도사, 종교의식 및 헌화·분향, 고인에 대한 경례 순으로 진행된 이 날 영결식은 시종일관 엄숙한 애도 분위기 속에 이어져 고인의 생애만큼이나 가슴을 저미게 했다.
재향군인회 창설이후 54년 만에 첫 향군장(鄕軍葬)으로 치러진 이 날 영결식에서 재향군인회 김규 호국안보국장은 약력보고를 통해 '고인은 1930년 10월 2일 평양에서 출생 후 연세대 재학 중 전쟁이 발발하자 애국충정과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신념으로 국군에 지원, 육본 직할 101포대 관측장교로 참전, 1951년 5월 강원도에서 중공군에게 포로가 되어 북한에서 탈출 모의죄로 13년간의 수감생활과 자강도에서 14년간 광부생활 등으로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고 고인의 행적을 소개했다.
김 국장은 이어 '그럼에도 고인은 조국에 대한 불꽃같은 귀환의 소망을 안고 1994년 탈출 귀환, 중위로 전역 후 북한 독재체제 실상과 국군포로 생활을 알리는 등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종신회원으로서 안보강사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며 사회활동도 활발하게 수행해 왔다'고 보고했다.
박세직 재향군인회장은 조사에서 '여생을 오직 북한 억류 국군포로들의 조기송환을 위해 바치신 고 조창호 예비역 중위님의 영전에 750만 향군회원과 더불어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며 '불굴의 투혼을 불태운 참 군인으로서, 국군포로 송환과 그 가족 돕기 운동의 선구자로 신명을 불태웠던 큰 발자취가 더욱 고귀하게 느껴진다'고 애도를 표했다.
박 회장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함은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서의 가르침처럼 오늘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나가신다 할지라도 불굴의 투혼과 국군포로 조기송환을 위한 발군의 업적들은 아름다운 밀알이 되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싹이 트고, 꽃을 피워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며 '전 향군회원은 조용히 옷깃을 여미고 참 군인으로, 뜨거운 조국애로 일생을 바치신 위대한 노병에게 불멸의 찬가를 보내며, 삼가 명복을 빈다'며 떨리는 음성으로 낭독해 식장을 숙연케 했다.
고인이 속했던 예비역 포병장병으로 구성된 포병전우회 전주식 회장은 추도사에서 '조창호 중위는 진정한 6·25전쟁영웅'이라며 다시 한번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조명하고 '병마와 투병하면서도 북에 억류된 국군포로를 데려와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며 다른 사람은 침묵하고 있을 때 님은 집회 현장에 나와 햇볕정책만으로는 변화를 추구할 수 없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하고 나섰다고 강조했다.
전 회장은 목이 메인 음성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온몸을 바친 조 중위의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며 '이제 무거운 짐 모두 훌훌 털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라'고 기원했다.
이어 고인이 평소 다니던 분당 새문안교회 주관으로 종교의식이 이어졌다. 교인들은 기도를 통해 '지옥 같은 북에서 탈출해 꿈에도 그리던 자유대한에서 신앙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이 했으며, 좌익이 날뛰는 이 시기에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북한주민과 국군포로 참상을 알리는데 전력을 기울여 왔다'며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소원했다.
종교의식이 끝난 후 박세직(향군회장) 장례위원장을 필두로 유족 및 유가족 대표, 참전 친목단체 대표, 황규식 국방부차관 등의 순으로 분향 및 헌화가 이어지고 고인에 대한 경례를 마지막으로 영결식이 마무리되었다.
영결식이 끝난 후 영현은 전체 참석자들의 애도와 경례를 받으며 국방부 헌병대의 호송아래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
故 조 중위의 유해는 이 날 오후 화장되어 4시 30분 국립현충관에서 안치식이 거행된다.
이 날 귀환 국군포로 1호인 조창호 (예)중위의 영결식이 거행된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행사장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보낸 조화를 비롯,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윤광웅 국방부장관, 박유철 보훈처장, 김관진 합참의장 및 육·해·공군 참모총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정 관계와 참전 친목단체에서 보낸 조화가 식장을 가득 메웠다.
한편 20일에도 故 조 중위의 빈소에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조문을 하고 갔으며, 이 날 저녁 8시 50분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조문을 하기도 했다. (Kon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