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월1일 朴正熙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서 70년대의 비전을 밝혔다. 그는 '1970년대에는 완전 자립 경제를 꼭 성취하여야 한다'면서 '1인당 국민소득은 500달러를 넘어야 하고 수출은 적어도 60억 달러를 돌파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의 규모나 단위, 그리고 평가의 기준은 모두 국제적인 수준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몇몇 상업 부분은 세계1위를 자랑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실현될 때 우리는 조국 근대화의 대부분의 작업들을 70년대에 끝내는 셈이 됩니다>
이해 1월9일에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朴 대통령은 1960년대를 '민족 自覺의 연대'였다고 높게 평가하면서도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이 시국이 戰時냐 平時냐 하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한심한 일입니다. 총칼을 갈고 준비를 하여 폭력, 비폭력, 합법, 비합법, 정규전, 비정규전이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우리들을 치겠다고 벼르고 앉아 있는 적을 목전에다 두고 평시냐 전시냐 이런 논쟁을 한다는 자체가 우리 국민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잘못하면 1970년대에 우리 조상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얼빠진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이러한 수치스러운 역사를 남겼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朴대통령은 1970년의 國政지표도 1968년 이후 3년째 똑 같이 '일면 건설, 일면 국방'이라고 말했다. 朴대통령은 위기의식을 항상 고취시킴으로써 국민들이 벼랑에 선 기분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몰아갔다. 이것이 그의 리더십의 중요한 대목이다. 三星의 성공비결 또한 李秉喆, 李健熙의 끊임 없는 위기의식 조장이었다.
朴대통령의 위대성은 굶주림을 면하면 될 정도의 수준인 1960년대의 한국에서 이미 一流국가를 꿈꾸었다는 점이다. 36년 전 한국의 수출액이 10억 달러도 되지 않을 때 그는 요사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불리는 국제수준에 맞출 것을 강조하면서 몇 개 분야에서는 세계1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예언을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 건설로써 실현했다. 한국인의 꿈이 된 一流국가건설은 박정희에 의해서 첫 삽을 이미 떴다. 1970년대 朴 대통령은 국제수준에도 맞고 세계일류인 重厚長大한 공장들을 건설해갔다. 포항제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龜尾전자공업단지, 창원기계공업단지 등 그때 만들었던 중화학공업의 기틀이 지금도 한국을 먹여살리고 있다.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벌써 한국의 목표를 一流국가로 설정했던 대인물이 박정희였다.
一流국가라는 큰 꿈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의 고민도 깊다. 一流국가를 만들어 행복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싸워야 하고 자유통일하여 북한동포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에 생애를 걸 사람들이 모여 '一流韓國黨'을 건설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정당 없이는 정권을 차지할 수 없고, 정권을 잡지 않으면 一流국가 건설은 물론이고 나라를 바로 세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一流국가를 꿈 꾸었던 박정희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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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03,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