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1일 국민행동본부가 주관한 국민대회 모습
집권세력은 북한이 남조선혁명을 위해 주장해 온 韓美연합사 해체에 앞장서고, 간첩을 민주화유공자로 보상해주며, 한총련의 利敵활동비를 지원하고, 先軍정치를 찬양하는 親北단체에 국고를 대준다.
「대한민국」을 한 없이 폄하(貶下)하고, 부정(否定)하면서도 主敵인 「인민공화국」은 끝없이 포용(包容)하고, 조력(助力)하자고 말한다. 盧정권은 북한의 핵무장 이후에도 對北퍼주기 액수를 줄이지 않았다. 경수로 사업종료를 감안하면 2007년 남북협력기금은 사실상 늘어난 상태다.
서슬 퍼런 정권에 맞서, 밀실에서 침묵하는 야당에 앞서, 「행동」에 나선 의병(義兵)들이 있었다.
공중파는 간신배에 장악돼 바보상자가 돼버리고, 국민은 가슴만 쓸고 있을 때, 광야에 서 「진리」를 외치는 선각자(先覺者)들이 있었다.
바로 국민행동본부(國本, 본부장 徐貞甲)와 이에 동참해 온 愛國시민들이다.
<2006년 14회 대규모 장외집회, 20만 참여>
國本은 2000년 설립 이래 시청앞, 서울역, 광화문 등지에서 수많은 집회를 주도하며 구국(救國)의 선봉에 서왔다.
2004년 10월4일 서울시청 광장 국가보안법사수집회, 2005년 7월15일 좌익세력의 맥아더동상파괴 불법농성 철거집회. 2006년 9월8일 對盧武鉉 최후통첩 100萬국민대회...
좌파의 준동이 격해질수록 國本의 투쟁은 가열 차졌다. 2006년 한 해 대규모 대중 집회만 14회. 경향 각지에서 延인원 약 20만 명이 참여했다.
하나의 언론역할을 하고 있는 國本의 신문광고는 올 해 47번이나 실렸다. 조선일보 등 30면 사설난 아래 실리는 이 광고는 좌경화된 언론이 외면하는 사실(事實)을 담고 있었다. 직설적이면서, 핵심을 찌르는 표현은 보수언론마저 피해가는 진실(眞實)을 두려움 없이 알려왔다.
신문·방송에서 읽기 힘든 주장과 논평을 접한 시민들은 國本의 광고를 읽고 후원 회비를 보낸다. 올 해 성금을 보내준 사람은 약 1만6200명.
國本의 총 수입은 3억8543만원이었고, 올 해말까지 약3억9천만 원가량이 집행될 예정이다. 2006년도 은행잔고는 바닥을 드러낸 채 마무리된다. 성금이 들어오는 대로 집회를 열고, 광고를 내는 등 「행동」에 나서기 때문에 國本의 잔고는 언제나 비어있다.
조직의 등재회원은 3만5천 명이지만, 성금을 보내주는 시민은 얼추 30만 명에 달한다.
30만 명이 보내주는 평균 금액은 올 해의 경우 약 2만3791원. 기업으로부터 후원은 전혀 받지 않는다. 말 그대로 나라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2~3만원 푼푼이 낸 소액헌금으로 國本의 활동이 이뤄지는 것이다.
國本에는 간혹 백 만 원 단위의 거액(?) 헌금이 들어오기도 한다. 지난 9월 100만원의 후원 회비를 보낸 이윤식氏는 6·25참전용사로서 80세 고령이다. 그는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들에게서 매 달 30만원씩의 용돈을 받는데 세 달치를 가불해 보냈다. 나는 다리를 다쳐 열성적으로 집회에 나서진 못하지만, 애국자 여러분들을 뒤에서라도 후원하고 싶었다. 나를 대신해서 싸워주기 바란다. 용기 있게 투쟁해 나라를 구해주기 바란다』
國本은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지탱되기 때문에 유급사원이 없다. 상근하는 직원은 예비역 대령 세 사람과 자영업을 하는 최인식 사무총장이 전부다. 모두 자원봉사자들인 셈이다.
<國本은 韓國과 日本을 동시에 움직였다>
2006년 한 해 國本은 야당과 언론에 앞서 對국민각성과 여론선도에 앞장서왔다. 『연방제가 뭐가 나쁘냐?』는 것이 보편적 인식이던 올 초, 國本은 3월1일「연방제事變저지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대회는 6·15선언을 『對南적화공작文書』로 규정하고, 金大中의 再방북은 『反대한민국 赤化공조』라고 선언했다.
國本은 3월21일, 4월28일 기독교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국민행동 아카데미」와 5월18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金大中 방북저지 국민대회」에서도 연방(연합)제를 둘러싼 南北좌파연합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金正日·金大中·盧武鉉 세력이 추진하는 소위 연방(연합)제 통일은 한국을 빨갱이 세상으로 만들 사기요, 반역』이라는 國本의 주장은 여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논객들은 온·오프라인 상에서 연방제 위험성을 알리기 시작했고,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던 집권세력의 국체변경 음모는 일단 보류됐다.
國本의 투쟁사를 보면 여론을 반 년 가량은 앞서갔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 6월15일 國本은 「『6.15반역후원-간첩비호-세금폭탄』 盧武鉉 퇴진촉구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대회는 『盧정권이 刑期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再犯간첩 민경우(閔庚宇. 前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를 특별사면복권해 주고, 조총련 거물간첩 박용(朴勇)이 해외통일운동가로 위장·입국하는 것도 허용했으며, 올 해 다시 광주 615행사에도 朴勇의 재입국을 허락한 사실』을 규탄했다.
그리고 간첩세상을 만든 대통령을 비판했다. 일심회사건 등 각종 간첩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해지기 반 년 전이었다.
당시 國本의 「행동」은 韓國과 日本을 동시에 움직였다. 대회에 앞서 간첩 朴勇의 수사를 의뢰하는 고발장을 검찰에 접수시키자, 정부는 朴勇에 대해 뒤늦게 입국불허조치를 내렸다. 國本이 조총련 거물간첩의 反국가활동을 저지시킨 것이다.
일본에서는 더 큰 일이 벌어졌다.
朴勇은 당시 민단·조총련 야합의 핵심 인물이었다. 지난 6월 國本이 서울서 폭로한 朴勇의 실체는 민단의 주류인 反金正日세력을 격분시켰다. 朴勇을 비롯한 민단 내 프락치들에 대한 규탄이 이어졌고, 결국 2개월 후 민단·조총련 야합은 실패로 돌아갔다.
<盧대통령에 대한 「경고」는 現職대통령 「고발」로>
國本의 2006년 가장 큰 투쟁은 盧武鉉 정권의 韓美연합사 해체 저지투쟁이었다.
대통령이 앞장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라는 말로 反美감정을 선동하고 나설 때, 國本과 星友會(예비역 장군모임)는 『전시작전통제권은 韓美 양국이 共有하고 있으며, 따라서 「환수」라는 말 자체가 거짓』임을 치고 나갔다.
8월11일 서울역광장에서 「盧정권의 한미동맹파괴工作 저지 국민대회」에 이어 9월11일 「對盧武鉉 최후통첩 100萬 국민대회」, 10월13일 「盧武鉉 고발-퇴진촉구 국민대회」.
韓美연합사해체 반대를 요구하는 國本의 집회는 10월20일 부산역광장, 10월26일 속초수복탑 광장 등 경향 각지로 번져갔다.
대회가 이어지면서 韓美연합사 해체를 기도하는 盧대통령에 대한 「경고」는 헌정사상 초유의 現職대통령 「고발」로 고조됐다.
9월8일 대회에서 선언된 「盧武鉉 퇴진촉구 1000만 서명운동」은 각계각층에 확산됐다. 운동이 시작되자 팩스로 서명지가 밀려들었다.
지난 9월28일 역삼동 국민행동본부 사무실에는 6·25참전용사인 金모씨(77세)가 「대통령 盧武鉉 고발장」에 서명한 407명의 명단을 들고 찾아왔다.
명단에는 20대 젊은이에서 80대 노인, 충청도·전라도·경상도 사람 할 것 없이 고루 참여해 있었다. 그야말로 男女老少가 망라된 것이다.
『서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10명 중 한 명도 안됐다』고 말하는 金옹은 『민심은 노무현을 완전히 떠났다』고 말했다. 國本이 정권은 물론 야당에 앞서 바닥 민심을 대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례였다.
2006년 國本의 장외집회는 11월10일 서울역에서는 「대한민국赤化저지국민대회」로 마무리됐다.
386간첩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당시, 전향386출신 등이 연단에 올라 盧정권이 『전향하지 않은』 金日成주의자들에 움직여지고 있음을 고발했다.
그리고 한총련 등 이적단체에 활동비를 지원해 온 李鍾奭 당시 통일부장관에 대한 고발을 결의했다.
盧대통령 고발에 앞서 행해진 李장관에 대한 고발은 이틀 후 서울지방검찰청에 서류가 접수됐다.
<공갈·협박·고소·고발, 정권의 끝없는 탄압>
『애국의 선봉』이란 말은 듣기 좋은 수식어가 아니다. 國本은 정권의 첫 번째 탄압 대상이기도 했다.
徐貞甲 본부장은 지난 6년간 좌익들로부터 수십 건의 民·刑事上 고소·고발을 당해왔다.
아직도 검찰을 돌아다니며 고통을 겪어야 한다. 물론 기소되거나 패소한 사건은 없다.
좌파단체는 徐본부장을 고발하고, 좌파정권은 공안분실로 그를 부른다. 강직한 대령 출신에게 모욕감을 주고 공포심을 유발하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法으로 걸어봐야 걸만한 범죄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괴롭히는 게 목적인 셈이다.
공갈·협박전화는 생활이 됐다. 집 전화까지 알아 내 아침부터 「상소리」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지난달엔 현직 국회의원도 나섰다. 열린당 최재천 의원은 11월10일 國本을 反자유주의·反민주주의·反공화주의 극우세력으로 비난하며 사실상 法的처벌을 주장하고 나섰다.
崔의원은 이날 대정부질의에서 국민행동본부의 유인물 중 『국민과 헌법을 적대시하는 盧武鉉, 金大中, 金正日을 「대한민국의 3敵」으로 규정하고 국민저항권으로써 赤色쿠테타를 진압해야 한다』는 문구 등을 지적하며 『극우세력은 우리가 꿈꾸는 자유민주주의를 철저히 부정한다』『극우세력은 現정부를 부정하고 쿠테타를 선동한다』『극우세력은 자신들의 이론과 생각만 작동하는 독재체제를 긍정한다』고 극언했다.
또 『극우세력은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라는 대한민국의 국체와 정체를 부정하는 反국가적·反사회적 집단이다. 왜 이걸 놔둬야 하느냐?』며 독일 연방헌법에서 우익과격주의세력에 대한 처벌을 예로 들며 『극우과격세력에 대한 공권력의 분명한 작동이 있어야 한다. 공권력의 작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헌정파괴를 일삼는 盧정권을 비판하며 헌정수호를 주장하는 國本의 유인물에 대해, 「쿠테타를 선동했다」며 허위사실(虛僞事實)을 유포하면서「왜 이걸 놔둬야 하느냐?」는 등 공갈협박(恐喝脅迫)에 나선 것이다.
<2007년, 「행동」의 양(量)을 늘릴 계획>
공갈·협박·고소·고발로 이어지는 탄압에 맞서는 國本의 에너지는 국민의 성원은 물론 주축을 이루는 軍출신들의 「武人기질」에서 나온다.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强骨들은 반역 에 움츠러들지 않고 다음 번 「행동」을 준비한다.
2007년에는 이 「행동」의 양(量)을 더욱 늘릴 계획이다. 매주 한 번 신문광고와 실내강연을 하며, 매월 한 번 전국 순회강연 계획도 잡고 있다.
유급직원도 없는 國本의 용량을 벗어나는 일 같지만, 그만큼 이들은 절박하다. 左派정권 종식을 위한 총력전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전개되고 있는 盧·金회담 저지에 힘을 쏟는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金正日 편인가? 大韓民國 편인가? 국민행동으로 세상을 바꿉시다!』
2007년 國本의 표어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그리고 북한을 해방하기 위한 국민들의 마지막 결행(決行)을 요구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