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자유를 위한 투쟁- 우리는 승리한다!

기원전 507년 아테네인들이 ‘자유를 위한 첫 싸움’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2007년은 대한민국 애국세력이 승리하는 해!
미지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2500여년 전 아테네인들이 해냈던 일을, 조국의 미래에 대한 믿음과 자유를 향한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대동단결하여 투쟁하기만 한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해 내지 못할 리 없다.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시작된 아테네 민주주의 =

기원 전 508년, 아테네의 신진 정치인 클레이스테네스는 스파르타왕 클레오메네스를 끌어들여 페이시스트라투스가(家)의 참주정(僭主政)을 타도했다. 하지만 조국을 스파르타의 속국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던 클레이스테네스는 뜻을 이루기가 무섭게 클레오메네스와 결별했다.

오랜 참주정이 끝나자 정치적 공백기가 도래했다. 아테네의 명문가들은 참주정 이전의 귀족정(貴族政)으로의 복귀를 원했다.
그러나 클레이스테네스는 전혀 새로운 정치체제를 제안했다. 바로 ‘나라의 주인’인 시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민주정(民主政)’이었다.

사실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개념은 페이시스트라투스가의 참주들이 대중에게 아부하기 위해 내세웠던 입에 발린 소리였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종래 ‘허구’에 불과했던 그러한 개념을 현실화시키자고 나선 것이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이미 한계가 드러난 귀족정이나 참주정을 혁파하고, ‘민주정’을 통해 종래의 엘리트 계층과 상공업 발전과 함께 성장한 새로운 시민계층(물론 근대의 부르조아와는 다름)의 에너지를 하나로 결집시켜 국가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다.

하지만 귀족계층 등 기득권 세력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아르콘(집정관)인 이사고라스라는 귀족을 중심으로 뭉쳤다.
아테네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클레이스테네스와 손을 잡았다가 팽(烹)당했던 스파르타왕 클레오메네스도 아테네의 발전이 장차 자국(自國)에게 해(害)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사고라스와 손을 잡았다. 이사고라스는 클레오메네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의 아내까지 바쳤다.

기원 전 507년, 클레오메네스는 소수(少數)의 병력을 거느리고 아테네로 들어와 반(反)스파르타적인 700개 가문을 숙청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그는 이사고라스와 함께 아크로폴리스를 차지하고 앉아 민주개혁의 중단 등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체제 수립을 논의했다. 이미 아내를 클레오메네스에게 바쳤던 이사고라스는 이제 조국의 자유마저 클레오메네스에게 팔아넘기려 하고 있었다.

클레오메네스와 이사고라스가 한참 아테네의 장래를 놓고 장난을 치고 있을 때,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 거리에서 수상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클레오메네스의 오만방자함과 이사고라스의 반역행위에 분노한 아테네 시민들이 궐기한 것이다.
이미 아테네의 민주개혁을 주도했던 클레이스테네스와 그 동지들이 해외로 망명한 뒤라, 자신들을 가로막을 세력은 없으리라고 자신하고 있던 클레오메네스와 이사고라스는 경악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틀간 아크로폴리스를 봉쇄했다.
결국 궐기 사흘째 되던 날, 클레오메네스는 손을 들었다. 속국을 찾은 종주국의 왕인 양 거드름을 피우며 아테네로 들어왔던 클레오메네스는 거지꼴을 하고 아테네에서 쫓겨났다.
나라를 팔아먹으려던 이사고라스는 간신히 목숨만 건져 외국으로 도망쳤다. 그의 추종자들은 성난 시민들에게 붙들려 살해됐다.

그 직후 해외로 망명했던 클레이스테네스와 그의 동지들은 귀국해 새로 수립된 민주정치체제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인류 최초의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이렇게 해서 역사에 등장할 수 있었다.

사실 클레이스테네스가 제안한 ‘민주정’은 사상 초유의 정치실험이었다. 클레이스테네스가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역설하기는 했지만, 과연 시민들이 나라의 주인으로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는 전혀 검증된 바 없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조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압살하려는 클레오메네스와 이사고라스의 음모에 감연히 맞서 궐기함으로서 자신들이 진정 ‘나라의 주인’이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유할 자격이 있음을 당당하게 입증했다.

만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아테네 시민들의 자발적인 궐기가 없었다면, 아테네의 민주주의, 아니 세계의 민주주의는 요람에서 압살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자유의 힘=

아테네인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기원 전 506년 스파르타왕 클레오메네스는 스파르타의 동맹세력인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여러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함께 아테네로 쳐들어왔다. 반역자 이사고라스와 아테네의 숙적 테베도 여기에 가담했다.
다행히 스파르타가 주축이 된 펠레폰세소스동맹군은 내분으로 와해됐지만, 테베군은 아테네 침공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에 맞서는 아테네군은 과거의 아테네군이 아니었다.
과거 아테네군이 혈연공동체 단위로 편제되어 있었다면, 새로운 아테네군은 행정구역 등을 단위로 새롭게 형성된 시민공동체 단위로 편제되어 있었다.
과거의 아테네군이 단순히 ‘내 가족, 내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싸움터에 나선 ‘부족군(部族軍)’이었다면, 새로운 아테네군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움터에 나서는 '국민군‘이었다.

과연 이 ’국민군‘이 제 몫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민주개혁을 주도했던 클레이스테네스도 확신하지 못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아테네군이 테베군을 전멸시킨 것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말했다.
<그렇게 해서 아테네는 돌연 강국으로 부상(浮上)했다. 전투뿐 아니라 모든 면에 전력(全力)을 기울여, 평등과 ‘표현의 자유’로 무엇을 이룰 수 있는 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참주의 백성일 때 그들은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일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참주가 사라지자 별안간 세계 최고의 전사(戰士)가 된 것이다. 노예처럼 억눌려 있을 때는 책임을 회피하며 노력을 게을리 하였으나, 자유를 얻자 자기 스스로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안으로는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밖으로는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퇴해 서구(西歐)문명을 수호해낸 ‘위대한 아테네’의 시대는 이렇게 막이 올랐다.

=반역의 군상(群像)=

2500여년 전 아테네 민주주의의 출발과 그에 대한 헤로도투스의 평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아크로폴리스에서 서로 손을 잡고 갓 태어난 아테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모살(謀殺)하려 못된 꾀를 짜내는 스파르타의 왕 클레오메네스와 반역자 이사고라스의 모습-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 아닌가?
군국주의 국가 스파르타의 왕 클레오메네스의 얼굴 위로 ‘선군(先軍)정치’를 고창(高唱)하는 김정일의 얼굴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조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클레오메네스에게 팔아먹으려 했던 이사고라스의 얼굴 위로 김정일과 야합해 ‘연방제 사변’으로 가는 6-15공동선언에 합의했던 김대중, 땅에 떨어진 지지율을 회복하고 내년 대선(大選)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해 좌익정권을 재창출하려 뒷구멍으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획책하고 있는 노무현의 얼굴이 오버랩되지 않는가?
아테네의 집정관이던 이사고라스가 조국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자가 된 것이나, 어쨌거나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차례로 헌법파괴적인 '연방제 사변'으로 가는 길을 닦고 있다는 점도 닮은 꼴이다.
그러고 보니 제 마누라까지 갖다 바치며 클레오메네스와 야합했던 이사고라스의 행태 또한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정일에게 조공을 바쳤던 김대중, 북한이 미사일을 쏘건 핵실험을 하건 아랑곳 없이 대북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노무현의 행태와 무척이나 닮았다.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전국을 돌면서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는 김대중, 막가파식으로 애국세력과 미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 노무현-그들이 노리는 바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장래를 파탄내고 김정일과 손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내년 대선에서 좌익정권을 재창출해내겠다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그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일 것이다. 만일 내년 대선에서 패한다면 그들은 그동안의 반역과 부패와 실정(失政)에 대해 법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연방제 사변=

김대중-노무현 세력이 김정일과 야합하는 ‘연방제 사변’에는 ‘낮은 단계’와 ‘중간 단계’, ‘높은 단계’,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변은 내년 봄쯤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우리 민족끼리’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것이다.
어쩌면 김정일은 국군포로, 납북자, 이산가족 문제 등에서 ‘통 큰’ 양보를 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댓가로 노무현은 더 많은 대북(對北)지원과 함께 북핵문제 등에서 ‘민족공조’를 약속하게 될 것이다. 2008년 북경올림픽에서 남북공동선수단 구성, 서해 NLL 인근해역에 남북공동어로구역 설정 등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어용 방송-인터넷 매체-신문들이 연일 당장이라도 남북통일이 될 것처럼 나팔을 불어대는 가운데 노무현은 전격적으로 대통령직 사임을 발표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노무현의 ‘용퇴(?)’와 함께 그동안 그의 무능과 부패와 실정은 잊혀질 것이다.
노무현이라는 걸림돌이 치워진 상태에서 열우당과 민주당, 고건, 그밖에 회색지대에 기생하는 기회주의자들은 ‘평화개혁세력의 대동단결’이라는 사기적인 명분으로 신당을 창당하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나, 박원순 변호사, 한명숙 총리 같은 신선한(?) 인사들을 대선 후보로 내세울 것이다.
한편으로 이들 ‘평화개혁세력’들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내세워 군사비 절감을 통한 양극화 해소 및 저출산-고령화 사회 대책 비용 조달, 군복무 기간 단축 내지 모병제 도입 등 안보포퓰리즘 정책으로 병역 연령대의 젊은이들과 그들의 부모 표를 끌어 모으려 할 것이다.

‘중간 단계’의 연방제 사변은 노무현-열우당에 대한 지지도 추락이 계속되고, 이명박 등 한나라당 대권주자들과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40~50%대를 달려,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변으로는 상황 반전(反轉)이 쉽지 않을 경우이다.
이 경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과 노무현은 내킨 김에 “6-15선언에 따라 ‘조속한 시일 내에’ 남과 북이 ‘국가연합’ 내지 ‘낮은 단계의 연방’ 단계로 돌입한다”고 ‘선언’ 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부분은 ‘조속한 시일 내에’라는 단서와, ‘국가연합’ 내지 ‘낮은 단계의 연방’ 돌입을 ‘선언’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국가연합’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을 실천해야 하는 부담은 회피하면서, ‘선언’의 정치적 효과는 극대화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높은 단계’의 연방제 사변은,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서 남과 북이 전격적으로 ‘국가연합’ 내지 ‘낮은 단계의 연방’에 들어간다고 선언하면서, ‘통일헌법’ 제정 등을 이유로 대선을 무산시키는 방안이다.
물론 이것은 ‘통일’을 빙자한 헌법파괴에 해당된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을 누르기 위해 좌익세력들은 ‘반통일세력 척결’을 이유로 애국세력과 비판언론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테러를 자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07 자유를 위한 투쟁=

그렇다면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그런 악몽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남북정상회담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고, ‘연방제 사변’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경고해야 한다. 저들이 요즘들어 부쩍 내세우는 '평화개혁세력'이라는 말의 사기성도 고발해야 한다. 이러한 형태의 저항은 ‘낮은 단계’ 의 ‘연방제 사변’이 현실화될 경우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만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모살(謀殺)하는 ‘중간 단계’ 내지 ‘높은 단계’의 ‘연방제 사변’이 현실화된다면?
그때 국민들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룩한 민족사상 최고의 정치-경제적 성취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의 바탕에는 ‘자유’가 있었다. 마치 자유가 아테네인들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해방 이후 미국을 통해 수입된 자유는 대한민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김일성과 김정일이라는 ‘참주’의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는 북한 동포들은 지난 50년간 어떤 의미 있는 성취도 이룩하지 못했다 (물론 반미투쟁, 선군정치, 핵개발, 자주외교, 이런 것들을 ‘북한 체제의 위업’으로 찬양하는 얼간이들도 있겠지만). 오늘날 북한 주민들의 경제수준은 조선왕조 500년 가운데도 가장 절망적이었다는 철종 연간만도 못하다는 연구결과까지 있을 정도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헤로도투스의 말처럼 노예 상태로 억눌려 있는 자는 책임을 회피하며 노력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다.

‘연방제 사변’에 맞서, 금년 대선에서 좌익정권의 재등장을 막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성취를 가능케 했던 바로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2500여년 전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이 아직 체험해 본 적도 없는 미지(未知)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스파르타와 테베인들을 상대로 목숨을 건 투쟁을 벌여 ‘민주주의의 유산(流産)’을 막아냈다.
반면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그 가치가 입증됐다.
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서는 데 있어 우리가 망설이거나 두려워한다면, 2500여년 전 아테네인들에게 쪽팔릴 일 아니겠는가?
미지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2500여년 전 아테네인들이 해냈던 일을, 조국의 미래에 대한 믿음과 자유를 향한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대동단결하여 투쟁하기만 한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해 내지 못할 리 없다.

나는 믿는다!
기원전 507년에 아테네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2007년 대한민국의 애국시민들도 저 반역사기도당과 싸워 이겨 반드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리라고....
나는 또 믿는다!
자유를 위한 첫 싸움에서 승리한 아테네가 페르시아의 침략을 격퇴하고 난 후 한 시절 동안 자유와 번영을 만끽하면서 ‘민주주의’라는 위대한 유산을 인류에게 남겨주었듯이, 대한민국 또한 ‘2007년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한 뒤에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을 휴전선 이북으로 확산시키고, 더 나아가 5000년 찌든 가난과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자유와 번영을 꽃피운 우리의 경험을 아직도 가난과 정치적 혼란에 시달리는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전파(傳播)하게 될 것이라고....

기원전 507년이 아테네인들이 ‘자유를 위한 첫 싸움’에서 승리한 해였던 것처럼, 2007년은 대한민국 애국세력이 조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가열찬 투쟁을 벌이는 해, 그리고 끝내 그 투쟁에서 승리하는 해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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