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진 윤리위원장 硏究

머리는 「오른쪽」으로 돌아섰지만, 감정이나 정서는 아직도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는 현상
인명진·김용갑 논란은 한나라당 내 보수 성향 목소리가 얼마나 위축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됐다.

특히 印위원장은 취임 당시 김근태 열린당 의장의 「개성춤판」은 옹호했던 반면, 김용갑 의원의 「해방구발언」은 집요한 공격을 함으로써, 한나라당의 윤리기준이 보수(保守)나 우파(右派)적인 것과 거리가 있음을 확인시켰다.

당의 윤리(倫理)는 이념(理念)이다.

한나라당의 이념을 챙기는 책무를 띤 인명진(印名鎭) 씨는 이라크파병 反對-盧武鉉탄핵反對-국가보안법 폐지 등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입장을 취해 온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印위원장의 발언은 本人명의 성명 및 인터뷰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어 상당한 혼란을 준다.

1. 산하단체, 탄핵은 쿠테타

우선 印위원장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교회와사회위원장(2003~2004), 국제위원장(2005~2006) 자격으로 이라크파병 反對 및 盧武鉉탄핵反對 등을 주장하는 성명을 수 차 발표했다. 국제위원장은 KNCC 총회가 열린 2006년 11월20일까지 재직했다.

그는 2004년 3월12일 국회에서 盧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결 시 교회와사회위원장 명의로 백도웅 KNCC총무와 함께 발표한 성명 중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여야 정치인들이 국민들과 나라를 먼저 생각지 못하고, 정치 상황을 탄핵 정국으로 몰아감으로써, 국민들에게 극도의 불안감을 가져다주었고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위기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이 성명대로라면 헌법을 위반한 盧대통령이 아니라 탄핵을 가결한 당시 여당 민주당과 야당 한나라당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같은 날 印위원장이 대표로 있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14개 좌파성향 기독교단체와 연대, 국회의 탄핵안 가결을 『쿠테타』로 비난하며 『국회해산』을 촉구하는 또 다른 성명을 냈다.

《국민의 뜻을 저버린 국회는 당장 해산하고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 발의案이 수구세력인 민주당·한나라당의 당리당략에 의한 의도 하에 통과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는 국민의 뜻에 정면으로 반하는 쿠테타적 사태임을 지적한다(성명 中)》

같은 성명은 『우리 기독인들과 기독교단체들은 국회를 쓰레기 처리장으로 만들 수는 없다』며 『우리 기독인들은 415총선을 통해 썩은 부패정치를 심판할 것임을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같은 해 3월16일 기독교연합회관 대강당에서 『탄핵무효·국회심판·민주수호를 위한 기독교 비상시국기도회』를 개최하는 등 탄핵반대운동에 참여해왔다.

2.『나는 탄핵 반대한 적 없었다』

그러나 印위원장은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취임 이후인 2006년 12월16일 선진한국신문 창간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탄핵에 반대한 적이 없다』며 이렇게 해명했다.

『제가 KNCC 교회와사회위원장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교회와사회위원회 이름으로 성명이 여럿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특정이슈에 관한 성명이 나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탄핵반대)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盧武鉉대통령 탄핵을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탄핵을 의회쿠테타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고 군중의 힘으로 밀어붙이기를 하는 것은 절차적 민주주주의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3. 국보법 어린이 젖떼기에 비유

印위원장의 국가보안법에 관한 견해도 다소 엇갈린다. 그는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폐지를 반대하고 사립학교법개정에 반대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의 시국성명서 발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명은 『정부가 과거사 들추기, 보안법 폐지, 행정수도의 졸속 이전 등 이념적이고 정략적인 일에만 몰두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체성이 흔들리고 대다수 국민은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말할 수 없는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다』며 특히 『보안법의 인권침해 조항은 마땅히 고쳐져야 하나 자유민주 체제를 지키기 위한 「안보를 위한 법」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印위원장은 2004년 10월6일 좌파매체인 「뉴스앤조이」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 흥미로운 비유를 했다. 『한국교회는 왜 우향우 하는가』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서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과 관련된 한국 사회의 모습이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 젖을 때는 상황과 흡사하다며 이렇게 인터뷰했다.

《어머니가 젖을 떼도 된다고 판단할 때는 아이가 그 만큼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어머니의 생각과는 반대로 젖을 못 먹으면 당장 죽을 것처럼 울부짖게 마련이죠. 그때 현명한 어머니는 가짜 젖꼭지라도 물려 아이를 안심 시킵니다》

이에 대해 기자는 『印목사가 말하는 어머니는 盧武鉉 대통령을, 국보법은 젖에 비유된다. 그리고 아이는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는 수많은 대중들인 셈』이라며 「가짜 젖꼭지」라는 완충 절차를 거쳐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선진한국신문 창간호 인터뷰에서는 『저는 과거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내게 법적용이 잘못되었지, 분단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다』며 『작년에 우리교단 총회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을 때 제가 이 시국선언문을 기초하고, 낭독했다고 진보진영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고 답했다.

4. 美에 대한 굴종은 더 많은 굴종 불러

印위원장은 盧정권 들어 이라크파병반대 등 반전평화운동에도 앞장서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국보법이나 탄핵 등과 달리 이라크파병반대에 관한 그의 입장은 일관된 反對입장이었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전을 『세계평화에 대한 파괴』『인간문명에 대한 야만』 등으로 비난하며, 한국의 파병결정에 대해 『굴복은 더 많은 굴종을 가져올 뿐』『한반도 평화는 미국의 오만한 자세를 꺾는 데서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印위원장이 KNCC 교회와사회위원장 자격으로서 백도웅 KNCC총무와 공동명의로 발표한 성명을 일부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이라크전이 인간문명을 야만으로 밀어 넣고 희망과 평화를 송두리째 파괴할 것이다...미국의 패권주의는 이제 그 도를 넘어 국제사회가 그 동안 쌓아온 평화에 대한 질서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특히 여성과 어린이를 볼모로 한다는 점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2003년 3월19일 『미국의 이라크침공 반대 성명』)

《이라크에 韓國전투병력이 파병되기보다는 이라크 전쟁종료를 선포한 미군이 하루빨리 철수하고, 이라크 내 모든 문제는 유엔의 협조 아래 이라크 민중들이 자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더 이상 이라크 민중들의 생명에 대한 위협과 고통을 강요하지 않기를 바란다》(2003년 9월15일 이라크파병반대 성명)

《충실한 신자유주의 이행으로 인한 기형적 경제 구조가 오히려 영원한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이다. 굴복은 더 많은 굴종을 가져올 뿐이고, 파병을 거부했다고 해서 수출이 막힐 거라는 논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근거가 없다...한반도의 평화는 미국의 오만한 자세를 꺾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우리는 「저항의 영성」으로 이라크 파병 철회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양심 있는 국민들의 파병반대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함께 해 나갈 것이다》(2004년 2월13일 이라크파병 반대 성명)


5.『극우세력에 편승한 3·1국민대회』비난

印위원장의 金正日을 포함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급격히 바뀌어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2003년 초만 해도 소위 『反金正日』을 주장하는 이들을 『극우세력』으로 비난하는 성명에 참여했다. 시청 앞 3·1국민대회를 앞둔 시기인 2월24일 145명과 연서하여 발표한 성명의 골자는 아래와 같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극우적 정치세력에 편승하여 反金正日 구호를 외치는 「3.1 국민대회」를 개최하여 南北간의 대결을 조성하는 것은 민족의 염원인 남북의 평화통일은 물론 아시아 및 세계 평화 증진에도 역행하는 것으로 보아 이를 자제해 주기를 바란다. 동시에 극좌적 정치세력에 편승하여 「미군 철수」 등의 구호를 외치며 韓美간의 갈등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남북의 평화통일과 세계 평화에 저해되는 것으로 보아 이를 자제해 주기를 바란다.》

같은 해 4월15일에는 「반핵반전평화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에 참여해 아래와 같은 성명에 동참했다.

《국론의 분열이 심각한 상황에 와 있음을 염려하며 反金正日구호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反美구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운동이 다 같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평화적 남북관계와 돈독한 한미관계를 동시에 추구하면서도 북한이나 미국의 잘못에 대해서는 결코 좌시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방향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의 핵개발 의혹과 이에 대한 미국의 무력대응 가능성을 다 같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철저히 반대하고자 한다.》

6. 7월 대북관계 변화촉구 선언 참여

反美도 나쁘지만, 反金正日도 나쁘다는 양비론적 시각은 盧정권의 실정(失政)이 거듭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印위원장은 2006년 7월28일 각계 인사 140여명과 함께 「대북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특별선언」에 서명했다.

선언은 『북한의 핵보유 및 미사일 발사는 우리로 하여금 그간의 햇볕정책이 얼마나 무력한 것이었나를 절감하게 만들었다』며 『이번 기회에 일체의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북압박은 북한붕괴를 위해서가 아니다』『대북선제공격 등 무력제재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며 개성공단의 북한주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의 운영, 금강산사업의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시까지 잠정 중단,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기초적인 대북지원의 무조건 계속 등을 주장했다.

8. 盧정권은 정통좌파도 아닌 친북좌파 정권

중도적인 印위원장의 태도는 2006년 12월 선진한국신문 창간호에서 현 정권을 『金正日 추종세력』으로 칭하는 등 강한 비판으로 바뀌었다. 그는 현 정권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정권은 정통 좌파도 사회주의 정권도 아닙니다. 金正日 추종 세력에 불과합니다. 친북좌파세력의 어정쩡한 이념으로 정책은 혼란을 가져왔으며, 그것의 실현인 정치현장에서는 무능과 혼란만을 초래하고 있습니다(...)심지어 北核이 우리 것인 양 착각하는 무리들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국가정체성이 무너지고 있으며, 자유주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印위원장은 1970년대부터 노동운동에 몸을 담은 인물로서 긴급조치 위반, YH사건, 金大中 내란 음모사건 등으로 4차례 투옥됐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는 민주정치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을 지냈다. 金泳三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기구인 「행정쇄신위원회」 「세계화추진위원회」 등의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印위원장은 2006년 11월7일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혹여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신념이 바뀐 것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삶의 철학이 바뀐 것은 없다』며 『한나라당에는 나와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간 것』이라고 답했다.

또 한달 후 선진한국신문 인터뷰에서도 「김용갑 의원 징계 결정 후의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나라당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며 『한나라당의 고질병은 상대를 일방적 색깔론으로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족(蛇足) : 기자는 평가를 하는 직업이 아니다. 사실(事實)을 보여줌으로 독자로 하여금 평가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印위원장의 이념성향을 분석하며 약간의 평가가 가미된 사족을 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기자 본인도 혼란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운동권 출신인 印위원장의 前歷과 보수 성향 김용갑 의원에 대한 편향된 공세 등으로 기존 보수 진영에서는 그에 대한 색깔 시비가 일었다. 특히 盧정권 들어 左右대립의 첨예한 사안이었던 이라크파병 反對·盧武鉉 탄핵 反對·국보법폐지 등을 주장해 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나라당이 左派를 윤리위원장직에 앉혔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그는 최근 선진한국신문 인터뷰에서 이 같은 좌파시비를 불식시키며, 오히려 현 정권을 『정통좌파나 사회주의 정권도 아닌 金正日 추종 세력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분명 좌파나 친북으로 규정될 수 없는 발언들이었다.

반면 한나라당의 고질병을 「이념공세의 포기」가 아닌 『일방적 색깔론으로 비판하는 데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정서적인 면에서는 통칭 정통보수, 정통우파와 거리가 있음을 드러냈다. 중도나 전향한 右派인사들에게서 나타나는 일종의 「이념적 혼선」같은 것이었다. 머리는 「오른쪽」으로 돌아섰지만, 감정이나 정서는 아직도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는 현상이다.

엇갈리는 印위원장의 이념관(理念觀)은 혼란스런 한나라당의 정체성(正體性)을 보여주는 단면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이 같은 한나라당의 어수선함으로는 필사적인 친북좌파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유통일과 북한해방의 헌법적·윤리적 사명을 이수하기에 너무나 역부족이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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