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창작가’ 출신의 김 부자 초상화 전문 화가 김기성(탈북자)씨.ⓒ 프리존뉴스
북한에서 7년 동안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만 그렸다는 김기성(99년 탈북·36세)씨는 12일 서울 모처에서 가진 <프리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모든 예술은 북한체제를 찬양하고 인민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술분야 지망생들의 엘리트 코스로 알려진 평성예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김씨가 주로 그렸던 그림은 북한 서부철도총국 관할 하의 역사(驛舍)와 후방총국 관할 하의 사업장에 걸리는 김 부자(父子) 초상화였다.
“60년대 이전 일본 등 외국서 공부한 화가 모두 숙청”
김씨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그리는 데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가장 우선되는 원칙은 아무나 그릴 수 없다는 것. 실제로 김 부자의 그림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은 ‘만수대창작사’와 ‘조선인민군미술창작사’ 두 곳 뿐으로 기타 창작 사에서는 이곳에서 그려진 작품을 받아 그대로 베끼는 임모(臨摹)만 할 수 있다.
물론 임모를 할 수 있는 사람도 국가 주도로 이뤄지는 교육과정을 무사히 통과한 ‘1호창작가’여야만 하며, 그림을 그릴 때에도 ‘최대의 정중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옷차림도 단정하게 갖춰야 하며, 흡연은 물론 잡담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과거 일본에서 그림을 공부 했던 한 상급화가의 경우 어느 날 술을 먹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김일성의 초상화를 그리다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봤다. 이 사람 뿐만 아니라 60년대 이전 남한을 비롯한 외국에서 추상화를 공부했던 모든 화가들이 숙청됐다.”
“김정일 초상화 ‘6등신’에서 ‘8등신’으로 신장 부풀려야”
또 다른 원칙으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모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되 장점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단점은 최대한 생략해야 한다. 일례로 김일성의 경우 그림에서 뒤통수의 ‘혹’을 생략해야 하며, 김정일의 경우 6등신 단신을 8등신으로 부풀려야 한다. 물론 이들의 표정은 최대한 ‘자애롭고 인자한 모습’이어야만 한다는 것.
김씨의 경우 초상화는 이틀에 하나, 유화작품의 경우 한 달에 3~4개 정도가 할당량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초상화만 계산해도 한 달에 15장으로, 일 년에 180여장 정도를 그려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김 부자의 그림에 동원되는 미술가는 전국적으로 대략 1만~2만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김씨는 작업에 투입되는 물자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김 부자의 그림에 쓰이는 재료는 모두 외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만수대 창작사에서 다시 가공되어 공급되는데, 여기에 투입되는 외화만도 엄청나다. 특히 심각한 전력난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비추는 전기는 꺼지면 안 된다. 게다가 초상화를 운반하는 차량은 ‘1호 작품 모심 열차’로 지정해 특별 관리된다.”
“북한서 김일성·김정일과 관계된 모든 것 ‘신성불가침’”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과 관계된 모든 것이 ‘신성불가침’의 대상이다. 이 때문에 지난 1997년 가을 함경남도 금호지구 경수로 건설현장의 남한 근로자 숙소에서 김정일 사진이 담긴 노동신문이 찢어진 상태로 휴지통에서 발견돼 북한 당국이 관련자 색출과 우리 측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바람에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 북한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차단과 극단적인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교육이 낳은 결과로 밖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겠지만, 김씨는 그 원인을 북한 노동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하 10대 원칙)에서 찾았다.
10대원칙은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 된지 2개월 뒤인 74년 4월에 자신이 직접 정리해 발표한 것이다. 10대 원칙은 북한 주민들의 모든 사고와 행위의 유일한 기준이자 준칙으로 기능하고 있다. 북한에도 헌법이나 일반 법규가 있고, 이보다 상위규범인 노동당 규약이 있지만 주민들을 일상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이 10대원칙이다.
“‘당10대원칙’ 김일성과 관계된 모든 것 ‘철저 보위’ 명시”
“북한 주민들도 살아가면서 일반 법령이나 법규는 그다지 의식하지 않지만 10대원칙에 대해서만은 매우 조심스럽게 대한다. 만에 하나 10대원칙의 어느 한 조항이라도 위반하게 되면 도저히 구제될 길이 없고 바로 정치범으로 간주돼 가혹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10대원칙에 어긋난 행동을 보고도 못 본 채 하거나 덮어두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특히 10대원칙의 제3조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제3조의 여섯 번째 항목에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휘장,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수령님을 형상한 미술작품, 수령님의 현지 교시판, 당의 기본구호를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북한 주민들은 항상 10대원칙을 금과옥조로 교육받고 거기에 적응해 왔다”면서 “이산가족 상봉 현장에서 북한 사람들이 주저 없이 ‘장군님 덕분에...’를 읊조리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남한 대북방송 듣고 자유세계에 대해 동경, 탈북결심”
김씨는 김 부자의 초상화를 그렸기 때문에 90년대 중반 발생한 ‘고난의 행군’ 당시에도 생활이 그렇게 곤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의 마음에 탈북의 불을 지핀 직접적인 동기는 다름 아닌 남한의 ‘대북방송’이었다. 그는 방송을 들으며 자유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키웠고 마침 남한의 친척과 연계가 되어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김기성씨가 탈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갓 돌을 지난 아들의 미래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남한 방송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던 중 두 번째 아들이 태어나니까 나는 지금 이렇게라도 사는데 이 아이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탈북을 결심했죠.
탈북 후 홍익대에 진학해 미술을 전공한 김씨는 현재 디자인 회사를 경영하며 자유북한방송(대표 김성민)에서 ‘독재의 하수인들에게’, ‘사회주의 변혁 그 현장 속으로’ 등의 파트를 맡아 대북 방송 기자로 활동 중이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기사출처: 프리존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