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을 무너뜨린 석유값 폭락작전

미국과 사우디가 협력하여 소련의 외화 가득源을 틀어막다.
기름이 안나와 고생해본 한국인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기억한다. 1974년과 1979년. 이와는 질적으로 다른 제3의 석유파동이 있었다. 1985년 가을에 배럴 당 30달러 하던 기름값이 1986년 4월에 가면 10달러로 떨어진다. 세계최대 석유매장국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석유를 갑자기 증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석유값 폭락으로 경제에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나라가 소련이었다. 소련은 당시 세계 최대의 産油國이었다.

높은 석유값으로 1970년대엔 무역흑자를 기록하던 소련은 1980년대에 들어오면 석유값 폭락으로 큰 타격을 받은데다가 레이건에 의해서 시작된 군비경쟁으로 경제가 더욱 멍든다. 냉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난 뒤 밝혀진 사실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사우디 아라비아와 손잡고 석유增産을 통해서 소련에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CIA 부장 윌리엄 케이시가 이런 공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석유값이 배럴 당 1달러 떨어지면 소련은 연간 10억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미국의 냉전승리는 경제력을 무기화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을 손들게 하는 것도 결국 돈의 힘일 것이다.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유도 미국에 의한 對北간접금융제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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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를 멸망시킨 문서 NSC 68


군사력은 방패, 인권과 자유는 槍이다. 공산주의는 타협이 불가능한 인간과 자유의 敵이고 惡이다.
趙甲濟

[NSC 68]이란 유명한 문서가 있다. 1949∼50년 사이에 입안된 백악관 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의 전략문서이다. 이것을 기초한 사람은 폴 니츠, 당시 국무부의 정책기획부장이었다. 애치슨 국무장관의 후원을 받아 작성되어 트루먼이 서명함으로써 미국의 對蘇기본전략으로 채택된 이 문서는 그 뒤의 냉전전략과 역대 美 대통령의 思考에 큰 영향을 끼쳤다. [NSC 68 때문에 미국은 냉전에서 이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이 문서가 작성되고 있던 때 트루먼 대통령은 군비를 감축하고 국내 복지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고 했다. 폴 니츠는 NSC 68에서 소련이 서구문명을 파괴하려는 惡의 세력이라고 단정한 뒤에 對蘇 강경론을 주장하고 군비증강을 요구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4월7일에 이 문서에 서명은 했지만 군비증강 건의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군사력은 방패, 인권은 창

그러다가 두 달 뒤에 6·25 남침이 일어났다. NSC 68에서 소련의 팽창주의를 예언한 폴 니츠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트루먼은 다시 이 문서를 꺼내보고는 당장 다음 회계연도의 국방예산을 세 배로 늘리도록 했다. NSC 68과 한국전쟁의 이런 타이밍이 미국의 본격적인 냉전 전략을 출범시켰다는 해석이 主流를 이루고 있다. 냉전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고 한반도 통일은 그 냉전을 최종적으로 종식시킬 것이다.

소련 공산주의는 서구의 개인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非문명적, 非서구적, 非기독교적, 反개인주의적 이단 세력이란 것이 이 문서가 서두에서부터 강조하고 있는 도덕적 관점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부른 근거가 여기에 있다. 폴 니츠는 소련의 침략노선으로부터 방어해야 할 미국의 가치를 개인주의에 두었다.

<자유로운 사회는 개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본다. 개인의 자율(自律)과 자중(自重)만 있으면 개인과 개인의 권리 사이에는 층돌 없이 공존할 수가 있다. 이런 자유사상에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과 깊은 관용, 그리고 法治의 전통이 생겨난다. 이것이 자유 사회의 통합성과 활력을 조성하는 것이다>

폴 니츠는 또 [공산주의는 이런 장점을 악용하여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인간의 非이성적인 측면을 선동하여 사회를 파괴하려고 드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이다]고 단정했다.
<소련공산주의의 가치관만큼 우리와 화해가 불가능한 게 없다. 우리를 파괴하려는 집념이 그토록 강한 이념도 없다. 우리 사회의 위험하고 분열적인 성향을 악용하는 데 그토록 유능한 이념도 없다. 인간본성에 내재된 비이성적인 면을 그토록 기술적으로 강력하게 선동할 수 있는 가치관도 없다>

NSC 68은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평화'를 기만이라고 단정했다.
<소련 공산당 전당대화가 정의한 대로 '평화정책'이란 것은 '자본주의와 싸울 때 쓰는 더 유리한 방식'이며 非공산주의 국가를 분열시키고 마비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소련의 정책에 대한 완벽한 승복을 뜻한다>
요사이 남북한 사이비 좌익들이 쓰는 평화의 뜻도 같다. 한국사회를 분열시키고 자유수호 의지를 마비시키기 위해서 쓰는 것이고 북한정권의 對南적화전략에 대한 저항력을 죽이려는 말이다.

NSC 68은, 자유세계의 약점을 지적했다. 그것은 불가피한 최후 수단으로서가 아니면 전쟁이나 폭력수단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허용되는 폭력의 사용은 두 가지 경우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들의 기본권을 파괴하려고 할 때, 또 다른 사회가 자유사회에 대해서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려고
할 때이다. 따라서 對蘇 전략도 자유세계의 이런 약점을 직시한 바탕에서 저들의 군사적 모험주의와는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유사상의 우월성을 과시함으로써 [러시아 인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니츠는 [소련 체제의 본질적인 성격을 바꾸어놓는 것이 승리의 첩경]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본질적인 성격변화가 외부로부터 강요되어서가 아니라 [소련 내부의 자체적인 動力에 의하여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라고 니츠는 강조했다. 그는 군사력을 방패로 보고 인권을 槍으로 해석한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을 증강하여 소련의 침략을 저지한 다음에는 자유세계의 강점인 人權과 자유를 무기로 삼아 전체주의의 反인간성을 폭로함으로써 敵의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NSC 68은 보고서의 끝에서 몇 가지 정책 건의를 하고 있다.

*소련의 영향력과 國力을 축소시킬 것.
*러시아가 유엔 헌장의 국제적 행동규범을 따르도록 한다.
*소련 내부에서 反정부 운동이 일어나도록 권장한다.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한다.
*미국의 보안태세를 강화하여 간첩, 태업, 반역을 저지한다.
*경제력을 강화한다.
*非소련권 국가들이 미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유도한다.
*소련 권력층에서 긴장과 분열이 생기도록 유도한다.
*미국 시민들에게 안보 위협 상황을 알려 경계심을 갖도록 한다.

위의 건의사항은 소련을 북한, 미국을 한국으로 바꾸면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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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해체 위해 준비된 레이건


그는 국내戰線에서 20년간 매일 공산당과 싸워 이겼던 사람이다. 그는 이 경험을 소련에 적용하여 이겼다.
趙甲濟

1980년대 후반, 소련을 필두로 하는 국제 공산주의 제국을 붕괴시킨 主役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助役은 요한 바오로 2세, 대처 영국수상, 바웬사, 그리고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다. 美蘇 냉전은 스탈린이 도발하고 트루먼 대통령이 이에 응전하면서 시작되었다. 트루먼은 자신과 미국의 對蘇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6.25 전쟁에 참전하여 한국을 구했다. 트루먼과 레이건이 냉전을 승리로 이끈 두 巨人이었다. 두 사람은 민주당, 공화당으로 입장은 달랐지만 공산주의를 堊의 세력으로 본 점에선 같았다.

로널드 레이건에 대하여 많은 한국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배우출신의 카우보이’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로널드 레이건을 '근사하게 생긴 바보‘라고 본 한국인들이 많았다. 대통령 레이건의 제스처가 너무 자연스러워 그를 배우 정도의 知能 소유자라고 낮추어 본 것이다.
레이건은 위대한 인물에게 필수적인 ‘위대한 관점’의 소유자였다. 위대한 관점이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능력을 뜻한다.

레이건이 1981년에 집권하여 1989년에 물러날 때까지 공산주의 세력을 코너로 몰아 항복을 받아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든 힘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의 전환이 우연한 인물의 우연한 행위로써 이뤄질 리는 없다. 피, 땀, 눈물이 서린 위대한 노력이 없으면 역사는 이뤄지지 않는다. 역사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은 그 순간을 위해 준비된 인물이다. 레이건이 그러했다. 그는 20년간 미국의 국내전선에서 공산주의와 매일 싸워서 이겼던 사람이다.
배우로서 성공했던 레이건은 1946년부터 1952년까지 영화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의 핵심 멤버나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이 헐리우드의 영화산업에 침투하는 것을 저지했다. 주먹다짐도 하고 테러위협도 받아가면서 그는 좌익들과 매일 싸웠다. 그 전에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그는 이런 對共투쟁의 경험을 통해서 공산주의자들의 본질과 생리, 그리고 전술을 알게 되었고, 대통령이 된 뒤 이 경험을 살려 국제공산주의자들을 분쇄할 수 있었다.

레이건은 공산주의자들을, ‘자유를 파괴하기 위한 적들중 가장 잘 조직되고 유능한 세력’이라고 평했다. 그는 1960년에 다시 영화배우조합 위원장으로 뽑혔는데 ‘러시아와의 이념전쟁이야말로 이 세계의 가장 큰 문제’라는 인식을 가졌다. 그는 평화至上주의자들을 경멸했다. 평화至上주의자들이 “지금은 평화시대이므로 이 평화를 깨는 어떤 일을 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미국을 패배의 길로 내몰고 있는 독약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공산주의자들과 전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이미 패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은 우리와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1960년대 레이건의 이 말은 어리석은 2006년말의 한국인을 향해서 하는 말처럼 들린다. 김정일과 從金세력은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뒤엎으려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노무현, 김대중, 그리고 비겁한 일부 한국인들은 “지금은 남북화해 교류의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공산당 운운 하는 당신들은 전쟁하자는 이야기냐”라고 말한다.

1960년대 레이건은 이런 한국인들에게도 적용되는 논리로써 이렇게 경고했다.
“만약 우리가 공산주의자들과 싸워서 지고 그리하여 자유를 빼앗기게 된다면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패배를 방지하기 위한 행동에서 가장 비겁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졌노라고”
이런 레이건이었기 때문에 1980년대 소련의 허점을 발견하자 이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그 허점을 확대시켜갔고, 결국 공산권의 총붕괴로 몰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레이건이야말로 ‘堊의 제국’과 정면대결함으로써 이를 해체하기 위하여 훈련받고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美蘇 대결을 善惡 대결로 본 레이건


'이 세상에는 죄와 악이 있다. 예수님과 성서의 명령에 따라서 우리는 全力을 다해 이에 대항해야 할 의무가 있다'
趙甲濟

1983년 3월8일 플로리다州 올랜도에서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협회의 전국 대회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서 소련을 「악의 제국」(The Evil Empir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 때문에 이 연설은 역사적인 연설이 되었습니다. 이 연설이 소련 및 동유럽 공산권을 무너뜨린 한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연설문 작성자 안토니 돌란이 기초한 연설문 초안을 검토한 국무부와 백악관 안전보장회의 등은 이 자극적인 용어를 삭제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레이건 대통령이 직접 다시 써 넣었다는 것입니다. 레이건은 할리우드에서 노조 활동을 할 때의 체험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의 전술을 알았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개별적인 선악 개념이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는 당(인민)의 승리와 패배, 역사에 대한 반동인가 진보인가가 판단 기준일 뿐이란 것을.

레이건은 이 연설에서 레닌의 말을 인용하여 『(공산주의자들은) 도덕성이란 것은 계급의 이익에 종속되는 것이며, 舊사회체제를 말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 『공산주의자들은 현 세계에서 악의 중심이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는 『악의 제국이 가진 공격적 본능을 애써 무시하고서 美蘇 양국을 똑같이 비판해야 자신이 우쭐해지는 위선에서 벗어나 옳은 것과 그른 것, 선과 악을 직시하자』고 강조했습니다.

레이건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善과 惡의 대결로 규정했습니다. 따라서 美蘇 양쪽이 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비판하면서 자신을 초월자의 자리에 놓으려는 위선자들은 '사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 '이 세상에는 죄와 악이 있다. 예수님과 성서의 명령에 따라서 우리는 全力을 다해 이에 대항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름으로써 소련을 守勢로 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자들은 소련 지도자들에게 물을 것입니다.

―소련이 악의 제국이란 말이 사실입니까.

소련 지도자들은 물론 부인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스탈린의 대숙청은 악이 아닙니까.

―1930년대의 재판극(show trial)은 악이 아닙니까.

―인위적인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악이 아닙니까.


소련 지도자들이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레이건이 판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소련의 실력자들이 『스탈린의 대숙청은 과오였지만 지금 소련은 인권을 존중한다』고 대답한 이후에는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입니다. 美蘇 관계가 惡과 善의 대결로 그려지고 미국은 善이 되고 소련은 惡이 됩니다. 소련이 惡이 아니라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내부 개혁을 해야 하고 惡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련이 붕괴된 몇 년 뒤 미국과 러시아 군축회담에 참석했던 한 러시아 장군이 술을 마신 뒤 갑자기 흥분상태에 빠져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면서 미국 측 대표들을 향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소련이 왜 망했는지 아십니까?』


『…』


『그 망할 놈의 「악의 제국」 연설 때문이랍니다. 소련은 정말 악의 제국이었단 말입니다!』

소련 사람들도 레이건의 연설을 통해서 소련 체제가 악이란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1983년 3월23일 레이건은 소련을 상대로 또 다른 중대발표를 했습니다. 소련의 미사일을 완벽하게 요격할 수 있는 전략방어구상(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발표했습니다. '별들의 전쟁'으로 알려진 이 전략구상은 소련의 미사일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서 소련 지도부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소련은 이 방어망을 뚫을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해야 하는데 엄청난 돈이 들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또 소련 경제가 내부로부터 붕괴되어가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레이건은 중거리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하는 계획도 밀어붙입니다.

1983년 9월1일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요격기에 의해 격추되어 수십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269명의 승객이 사망하자 레이건은 소련에 대한 비난을 강화합니다. 그는 대한항공기 격추를 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이 폴란드 장교 1만5000명을 학살한 사건과 비교하여 공격했습니다. 이런 전방위 압박에 견디지 못한 소련은 결국 굽히고 나옵니다.


비로도로 감싼 쇠주먹


웃으면서 소련을 붕괴시켜간 레이건의 대전략
趙甲濟

1981~5년 사이 줄기차게 진행된 레이건 대통령의 對蘇강경정책은 소련 지도부를 고민에 빠뜨렸다. 소련 지도부는 레이건과 상대할 인물로서 54세의 새로운 형의 지도자 고르바초프를 공산당 서기장으로 뽑았다.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의 작품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체제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동시에 레이건이 시작한 군비경쟁을 끝내어 소련경제의 내출혈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레이건-고르바초프 대화가 시작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월남전으로 변한 아프가니스탄 전선에서 소련군을 철수시키기로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게릴라들에게 무기와 돈을 대어준 레이건 행정부는 월남전의 복수를 한 셈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의 '별들의 전쟁' 계획을 중단시키는 것을 최우선 외교목표로 삼았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소련은 놀랄 만한 양보를 하지만 레이건은 '별들의 전쟁' 계획에 대해선 양보를 거부한다. 그는 이것이 승부처임을 깨달았다.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인간적으로 친밀해졌다. 레이건은 소련을 붕괴로 몰아가면서도 항상 웃는 얼굴로 고르바초프를 대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에 대해서는 정치적, 외교적 지원을 했다. 레이건은 비로도로 감싼 쇠주먹으로 소련을 친 것이다. 웃으면서 소련을 죽여간 것이 레이건이었다. 여기에 이 대전략가의 위대성이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레이건의 對蘇정책이 스탈린類의 강경파를 지도자로 등장시킬 것이라고 걱정했으나 오히려 개혁파인 고르바초프가 등장하여 스스로 체제를 붕괴시켜나갔던 것이다. 이런 체제자살을 레이건이 유도한 셈이다.


레이건, 이렇게 소련을 붕괴시켰다


신무기 개발 경쟁을 유도하여 소련이 생존차원의 개혁을 하도록 했고, 그 길이 공산체제 해체로 연결되었다.
趙甲濟



마가랫 대처 전 영국 수상의 회고록을 읽으면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소련붕괴 전략이 잘 드러난다. 그녀는 로널드 레이건과 콤비가 되어 공산권을 붕괴시킨 여걸로도 꼽힌다. 이 책에서 대처는 공산권 붕괴의 공을 레이건에게 전적으로 돌리고 있다. 대처는 또 소련제국이 큰 유혈사태 없이 해체된 데는 고르바초프라는 마음씨 좋은 러시아 사나이의 등장과 개혁 시도가 결정적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면서 러시아에서는 욕을 많이 먹고 있는 그를 변호하고 있다.

대처는 1983년3월에 레이건 대통령이 발표한 이른바 '별들의 전쟁 계획'(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이 소련제국 붕괴를 가져온 가장 결정적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SDI란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할 수 있는 기술과 방어망을 가리킨다.

미국이 사람을 달에 착륙시켰던 그 국가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별들의 전쟁'을 시작하려고 하자 소련 지도부는 겁을 집어먹었다. 미국과 맞서 그런 미사일방어기술을 개발하고 배치하려면 경제력과 과학기술력을 집중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국가재정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부문의 무기개발에 들어갈 돈도 이 대응조치에 전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을 했다.

그 이후 소련의 對美 정책은 총력을 다해서 SDI를 포기하도록 하는 데 집중되었다. 레이건은 소련의 이런 초조한 자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므로 더욱 SDI를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척했다. 미국 과학자들도 당시 기술로는 완벽한 核미사일 방어망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레이건은 우직하게 이 계획을 밀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대처 수상에게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 계획을 밀고나간다면 소련의 경제에 큰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소련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결국 소련은 미국의 도전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즉 군비경쟁을 포기할 것이다. 이는 미국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우위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對美우위의 군사력만이 소련 지도부로 하여금 개혁을 거부하도록 하는 마지막 보루이니까.

1986년10월11-12일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아이슬랜드의 레이캬빅에서 頂上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고르바초프는 전략무기 감축과 관련하여 양보를 거듭했다. 고르바초프는, 중거리핵미사일 감축 협상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미사일은 제외한다, 미소 양쪽이 모두 똑 같은 숫자의 전략무기를 남길 수 있도록 감축한다(그 전에는 현재 보유비율에 따른 감축을 주장했다. 그렇게 하면 소련이 더 많은 숫자를 보유하게 되어 있었다)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레이건도 5년안에 전략핵무기-대륙간 탄도미사일, 폭격기, 장거리 크루즈 미사일을 반으로 감축하고 10년 뒤에 대륙간 미사일을 전부 폐기하자는 제안을 했다. 고르바초프는 한술 더 떠 10년 뒤에는 모든 전략무기를 폐기하자고 했다.
레이건은 10년내에는 ABM(장거리미사일요격망 건설 금지)조약에서 탈퇴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 조약과 위반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SDI 실험은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때 고르바초프가 그동안의 양보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함정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소련이 제안한 양보는 조건부이다. 즉, 미국이 SDI 개발계획을 실험실에서만 추진한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고르바초프는 SDI를 단념시키기 위해서 그동안의 파격적 군비감축안들을 제안했던 것이다. 레이건은 주저 없이 고르바초프의 이 제안을 거부했고 頂上회담은 결렬되었다. 세계의 언론은 레이건을 공격했다. 세계 평화에 巨步를 내디딜 수 있는 기회를 차버렸다면서. 선전전에선 이겼지만 고르바초프는 속으로 이것으로 소련은 곤경에 처할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고르바초프가 레이건의 양보를 얻기 위해서 제안했던 군비감축안들을 거두어들일 수가 없게 된 점이다. 소련은 그 뒤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들 제안을 토대로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끼만 떼인 결과를 낳았다.

고르바초프 회고록에 이 레이캬빅 회담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그는 레이건과의 마지막 담판은 '세익스피어의 드라마' 같았다고 했다.
'우리는 대화를 중단했다가 다시 만나 이야기하다가 다시 헤어지곤 했다. 회담의 성공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SDI는 넘을 수 없는 걸림돌이었다. 대화는 돈좌하더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레이건은 말했다. '조금만 더 양보하여 내 안을 받으세요, 그러면 미국 소련과 협조할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득이 되는지 나중에 알게 될 거요'. 나는 거의 절망적으로 그를 설득하려고 다가갔지만 그는 한 걸음 뒤로 빠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는 평화를 만든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텐데...'

회담이 결렬되어 두 사람이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레이건이 고르바초프를 향해 질책하듯 말했다고 한다.
'귀하가 여기에 오기까지 모든 일들을 이렇게 계획해서 나를 이 지경에 빠뜨렸습니다.'
'아닙니다. 대통령 각하. 지금 당장 회담장으로 돌아가서 사인합시다. 귀하가 우주를 군사화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한다면 말입니다.'
'정말 미안하군요.'
두 사람은 헤어졌다.

사실 레이건은 SDI를 추진할 때부터 대처 수상에게 '나는 어떤 경우에도 이것만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배우시절 좌익과 대결하면서 공산주의의 악마적 속성을 체험했던 레이건의 이 무서운 일관성이 소련군사제국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했으며 그 길은 공산권 해체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김정일을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참고자료로 소개했다. 김정일이든 고르바초프이든 힘을 바탕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공산주의자들로부터는 어떤 양보도 얻을 수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강한 압박을 받아야 변한다. 김정일도 양심이 있을 것이다, 합리적일 것이다, 고마움을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보가 아직 한반도에 살고 있다면, 더구나 그가 고위직에 있다면 우리는 잠을 잘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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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물리학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사하로프 박사의 통역관이었던 그는 1973년 이스라엘로의 이주 비자를 신청했다. 소련은 제정 러시아시절부터 反유대주의가 강했었지만,공산체제가 들어선 이후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사라졌다고 선전해 왔다. 이 때문에 그가 이스라엘로 이주하겠다고 신청한 것은 그 자체가 공산체제에 대한 불충이었다.

1977년 샤란스키는 국가반역죄 및 간첩죄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이후 9년간 감옥과 강제수용소를 전전했다. 소련 당국은 그의 사상을 뜯어고치겠다면서, 수감 기간 중 그를 아주 열악한 숙식환경 속에 방치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문제는 국제문제가 되었다.

1985년 레이건 美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장 밖에서는 샤란스키의 아내 아비탈이 남편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레이건은 회담 도중 고르바초프에게 샤란스키 문제를 거론했다.

'당신은 샤란스키가 미국의 간첩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은 저 부인의 말을 더 믿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를 포함한 정치범들을 계속해서 감옥에 가두어 놓고 있는 한, 우리의 신뢰 관계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이듬해 2월 고르바초프는 샤란스키를 석방했다. 고르바초프가 석방한 최초의 정치범이었다. 그는 '동서간의 포괄적 스파이 교환'이라는 명목으로 서방 세계에 수감 중이던 소련 동구 스파이들과 교환됐다. 베를린의 그뤼니케 다리를 건너 서방세계로 온 그는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역사를 바꾼 스팅어 미사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의 공격용 헬기를 백발백중 격추시켜 철군을 유도하다.
趙甲濟


1986년 9월26일 아프가니스탄의 잘라라바드 공항 상공에서 소련의 공격용 헬기 석 대가 反共게릴라가 발사한 세 발의 스팅어 미사일을 맞고 격추되었다. 이 스팅어 미사일을 파키스탄을 통해서 아프가니스탄 게릴라들에게 공급하도록 명령한 것은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레이건은 1981년 취임하자말자 스팅어 미사일을 제공하도록 하려고 애썼으나 武器관련 기밀누출 등을 두려워한 관료들과 의회가 반대하여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무게가 15kg에 불과한 스팅어 미사일은 어깨에 메고 쏠 수 있고, 약5km의 사정거리에 속도는 音速이었다. 게릴라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중 340개의 스팅어를 쏘아 269대의 소련 전투기(대부분이 헬기)를 격추시켰다. 스팅어 미사일은 표적과 불꽃을 분간할 줄 알았고 발사한 사람이 미사일이 목표물을 적중시킬 때까지 앉아서 관찰하면서 조종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쏘고는 피해버릴 수가 있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陸上은 게릴라들이, 制空權은 소련의 공격용헬기가 장악한 상태로 교착상태였다. 미국이 간편한 스팅어 미사일을 게릴라들에게 공급하자 이 균형이 깨졌다. 2년 뒤 고르바초프는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12만의 소련군대를 철수함으로써 소련 붕괴의 단초를 연다.


레이건의 도전, '고르비여, 장벽의 문을 열라'


귀하가 자유화를 원한다면, 여기 저 문앞으로 오세요. 고르바초프씨, 그 문을 여세요. 고르바초프씨 그 벽을 무너뜨리세요'
趙甲濟

레이건의 對蘇 전략의 본질은 미국의 강점으로 소련의 약점을 치는 것이었다. 즉 미국의 경제력으로 소련의 경제를 치는 것이었다. 레이건은 집권하자말자 군사비를 연간 20% 이상씩 늘리고 '별들의 전쟁' 프로그램으로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 한편 석유값을 떨어뜨려 소련의 外貨가득원을 목졸랐다. 소련은 이런 미국에 대항하여 장거리 미사일 등 군비강화에 돈을 쏟아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국가재정은 바닥나고 인민들의 생활은 어렵게 되었다. 1985~86년 사이 소련은 연간 150~200억 달러의 추가 예산을 군비경쟁에 퍼부어야 했다. 이 시기 소련이 만든 기계류의 약63%가 군사용이었다고 한다.

고르바초프는 이런 출혈 경쟁을 견딜 수 없어 1986년 10월 아이슬랜드 레이캬빅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레이건에게 '별들의 전쟁'계획을 포기하는 것을 조건으로 대담한 전략무기 감축안을 내어놓았다. 레이건은 '별들의 전쟁' 계획 포기를 거부했다. 對蘇 군비경쟁은 소련으로 하여금 굽히고 나오게 만들었다. 경제파탄이 도저히 소련의 군사력 증강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1987년 6월12일 레이건은 西베를린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연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 귀하가 진실로 평화를 바란다면, 귀하가 소련과 동구권의 번영을 바란다면, 귀하가 자유화를 원한다면, 여기 저 문앞으로 오세요. 고르바초프씨, 그 문을 여세요. 고르바초프씨 그 벽을 무너뜨리세요'

레이건은 베를린 장벽에 '이 벽은 무너질 것이다'라고 낙서한 것을 보고는 즉석에서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유럽을 가로지르는 벽들이 무너질 것입니다'

레이건의 이 역사적 연설이 있은 지 2년반이 흘러 베를린 장벽은 진짜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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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란 여러분 옆집에 실직자가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不況이란 여러분의 일자리가 위태로운 상황을 의미합니다.
경기회복이란 지미 카터가 실직자가 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로널드 레이건, 1980년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한국에서 경기회복이란 守舊좌파들과 민주業者들과 귀족노조간부들이 失職者가 되고 젊은이들이 취직자가 되고 고액납세자들이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의미하는가?

노무현이 특히 말 실수를 많이 할 때는?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
趙甲濟

1996년에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클린턴에게 패했던 봅 돌 전 상원의원은 유모어 감각이 아주 뛰어난 이였다. 그가 하버드 대학에서 연설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한 시간 동안 학생들이 배꼽을 잡았다. 그가 쓴 '위대한 대통령 우스개'(Great Presidential Wit)라는 책이 있다. 역대 대통령의 유모어를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서 돌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유모어 감각에 따라 순위를 붙였다. 1등은 링컨, 2위는 레이건, 3위는 플랭크린 루스벨트, 4위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 순위를 보다가 놀랐다. 잘 웃기는 대통령이 대체로 위대한 대통령이고 유모어 감각이 꼴찌인 대통령들은 국정수행면에서도 형편이 없다는 점이었다.

유모어 감각은 좋은 성품, 여유, 독서, 그리고 예민한 언어감각에서 나온다. 이런 성품의 소유자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편안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말을 가장 못한 사람이다. 따라서 유모어는 기대할 수도 없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 유모어 부문 1위는 단연 全斗煥씨이다.

미국 대통령중 유모어 부문 랭킹 2위인 레이건은 암살기도범의 총을 가슴에 맞고도 아내에게 '덕킹하는 것을 그만 잊었어'라고 말했던 이다. 그는 또 수술대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면서 들어온 의사들에게 '당신들은 모두 공화당원이겠지요?'라고 농담을 했다.

국제공산주의를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레이건은 공산당의 생리에 대한 많은 우스개를 남겼다. 그의 공산주의자 구분법.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은 사람이고 非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잘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대입해보아도 될 것 같다.

'좌익은 김일성 김정일을 읽은 사람이고 우익은 김일성 김정일을 잘 아는 사람이다'

북한을 문헌으로써, 그것도 북한에서 생산된 문헌으로써 이해한 사람은 거의가 김정일을 좋게 보고 북한을 誤判한다. 관념으로서의 북한론은 체험으로서의 북한론과 너무나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實在하지 않는 관념으로서의 북한과 김정일像을 머리에 넣고 다니니 하는 말마다 초점이 맞지 않는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런 농담도 했다.

'소련 농업에서 잘못 된 점 네 개는 무엇인가?'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

이런 응용은 어떨까?

'노무현 대통령이 말 실수를 특히 많이 할 때는 언제인가?'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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